히브리서 5장 1절 새벽기도회
홍철기목사 성원교회
2024. 11.
성경공부를 통하여 얻고자하는 것은 성경의 지식이 아닙니다.
성경공부를 통하여 얻고자는 성경공부를 통하여 물질도 아닙니다.
성경공부를 통하여 얻고자 하는 것은 바로 순종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성경공부를 통하여 예수님을 만나는 방법이 바로 성경공부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새벽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바로 성경공부가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
제가 수색에 있을 때 정영순집사님이라는 분이 계셨는데 그분이 우리교회 토요일마다 오셔서 꽃꽃이 해습니다. 꽃가계를 팔았스면 좋겠는데 팔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저도 그 꽃가계를 사지 않겠습니다. 종로구에 있는 석탄 빌딩 지하에서 하시는데 5000만원주고 들어갔는데 조금만 권리금 받고 빠져 나가를 원합니다. 빠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2년도 아무런 보수없이 하니까 하나님께 우리 나오려고 하니까? 그 집이 복을 받습니다. 그리고 40평 아파트도 어떻게 사게 되었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사실이 있습니다.
첫째, 그들은 백성 중의 하나인 대제사장입니다.
1절에『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취한 자이므로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나니』라고 했습니다.
제사장이라는 직분은 상징적인 의미에서「다리를 놓는 사람」입니다. 하늘과 땅을 연결하고, 동과 서를 연결하고, 남과 북을 잇는 사람입니다. 건널 수 없는 관계를 다시금 잇는 자가 제사장의 직무입니다. 이상적인 대제사장은 그의 제사장 관저의 조용한 곳에 머물러 있으면서 하나님과 교제하고 일년에 한 번씩만 장엄한 예복을 입고 속죄의 예식을 집행하는 「세상적인」사람이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오히려 이상적인 대제사장은 사람들 가운데로부터 온 사람이어야 했고 사람들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그는 산 속의 사람이 아니라 시장터의 사람, 특수한 사람이 아니라 보통의 사람이어야만 합니다.
둘째, 백성을 이해하는 대제사장입니다.
2-3절에『저가 무식하고 미혹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싸여 있음이니라 이러므로 백성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림과 같이 또한 자기를 위하여 드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상적 대제사장은 무지하고 쉽게 넘어지며 곁길로 나가는 자들을 온유하게 이끌 수 있는 긍휼의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즉 자신이 비록 대제사장이라고 할지라도 자신도 죄인이라는 것을 의식하고 대속죄일에 비록 위엄스런 제사 예복을 입었지만 제물로 드릴 짐승의 머리에 손을 얻고「오 하나님이시여! 나는 불의를 저질렀고 당신 앞에서 그리고 나와 나의 가족 그리고 아론의 자손들, 당신의 거룩한 백성들 앞에서 법을 어기고 죄를 지었나이다. 오 하나님이시여 제가 기도하옵나니 내가 당신과 나와 나의 가족 앞에서 저지르고 범한 죄악들과 범죄들을 용서하옵소서」라는 기도를 드린 후에 시은소에 피를 뿌리는 제사장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연약함을 노출하여「연약의 공동체」속에 참여 합니다. 도덕적 연약, 일반적 연약, 육체적 연약, 지성적 연약, 정서적 연약성이 있기에 무지하고 곁길로 나가는 자들을 온유하게 다루는 제사장입니다.
셋째, 하나님이 선택한 대제사장입니다.
4절에『이 존귀는 아무나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라야 할지니라』
대제사장직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만 가능합니다. 스스로 자신을 대제사장으로 세울 수 없습니다. 인간의 어떤 권위도 제사장을 세울 수 없습니다. 아론과 그의 모든 후손들도 모두 하나님의 선택적 부르심에 의해서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무시하고 제사장직을 수행하려다가 화를 당한 이들이 있습니다. 고라와 그의 250명의 추종자들은 땅에 삼킴을 받았습니다. 공인되지 아니한 제사를 집행함으로 제사장직에 스스로를 높였기 때문이었습니다(민 16:16-40).
사울도 그의 통치권을 상실했습니다.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그는 참을성 없이 사무엘의 제사장직 기능을 대신 집행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삼상 13:8).
웃시야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잘못되어 제사장의 향을 사용하다가 문둥병에 걸리게 되었고 그 병은 그의 마지막 죽는 날까지도 계속되었습니다(대하 26:16-21).
그러므로 참된 제사장이라면 깊은 겸허와 겸손으로 옷을 입어야 했습니다. 그의 사역은 결코 경력이 아니었습니다.
아모스 7장에 기록된 아모스와 아마샤와의 대결은 두 가지 종류의 사역자들을 모형론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예일 것입니다(암 7:10-17). 권력을 추구하고 생존을 위해 일하는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는 자신의 경력과 관록으로 종교를「조작」하였고 하나님을 이용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세속적인 야망을 이루기 위하여 목회의 길에 들어선 사람이었기에 하나님으로부터의「소명」,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부터의「부르심」은 전혀 생소한 단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모스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을『선지자가 아니다』(14절)라고 까지 외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는 빵을 위해 사는 직업적인 선지자가 아니라고 항변한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그는 전적으로 하나님에 의해 강권적으로 부르심을 받아 선지자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택하신 대제사장입니다.
본문 5-6절에『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저더러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날 너를 낳았다 하셨고 또한 이와같이 다른 데 말씀하시되, 내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 하셨도다』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에 의해 선택된 진정한 의미에서 궁극적인 왕이시며, 최상의 의미에서 대제사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왕적 신분과 직임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날 너를 낳았다』고 하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왕이심을 함축적으로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사장적 직분에 대하여『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계열을 좇는 제사장이라』고 하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청중을 향하여 폭발적인 선언을 했습니다.
예수님의 대제사장직은 멜기세덱의 신비로운 제사장직과 동일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영원한 왕직과 영원한 제사장직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빌 2:6,7). 또한 그는 왕의 직분이나 대제사장의 직분을 추구하시지도 않았습니다. 그의 유일한 목표는 아버지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선택하여 영원한 대제사장직에, 영원한 왕권에 임명하였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 세상에 계실 동안 자신을 보내시고 임명하신 하나님께 대해 절대적으로 복종하였습니다. 심지어 그는 죽기까지 순종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아버지 하나님께 대해 이러한 지극한 복종을 보여주신 것은 그를 따르는 우리들 역시 그의 발자취를 따라야 함에 대한 모범을 보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겸손과 복종심은 자신이 전적으로 하나님에 의해 선택되어 임명되었다는 사실에서 출발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사장직은 아론의 그것보다 탁월한 것입니다. 구약의 아론의 제사장직은 잠정적이었으나 예수님은 멜기세덱과 같은 영원한 대제사장입니다. 예수님의 제사장직은 끝이 없으며 시작도 없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와 같은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왕으로, 대제사장으로서 그 누구보다도 우월하실 뿐만 아니라 백성들의 연약함에 대한 체휼성에 대해서도 탁월하신 분입니다. 예수님께서『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의 소원을 올렸던』
(7절)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고뇌야말로 우리의 연약함에 대한 체휼하심의 최상의 모습일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로부터 주춤거리는 모습속에서 정통적인 인간 고뇌를 보게 됩니다. 마가는 예수님께서『심히 번민하더라』고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14:33). 여기서 투영되고 있는 것은 공포에 질려 버린 한 인간의 놀라움일 것입니다. 마땅히 마셔야 할 고난과 죽음의 잔을 생각하니, 그는 공포에 사로잡혔습니다. 마가는 다시금 예수님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인용하고 있습니다.『내 마음이 슬픔에 압도되어 죽음의 지경에 이르게 되었도다』(34절), 마가는 공포로 가득찬 신비를 좀더 깊숙이 들어가 보면서 말하기를 그가『조금 나아가서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가라사대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35,36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