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9장 1절, 응답받는 기도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24년 1월 5일
  1.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2.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3.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4.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5.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6.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말콤 글래드 웰이 쓴 책 아웃라이어의 책에
1921년 스탠퍼드 대학의 심리학자 루이스 터먼은 초등학교 학생, 중학교 학생 25만명을 검사해 IQ 평균 140이상인 사람들을 조사했습니다. 대부분의 보통사람을 살아갔다고합니다. 공부를 잘하는 것은 IQ 왜에 수 많은 요인이있다고 합니다.  그 중에 몇가지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공부해야 할 스스로 이유를 알아야합니다.
저는 공부를 싫어했습니다. 그런데 공부해야할 이유를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책을 싫어했습니다. 책을 읽어야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하버드생 새벽 4시 반에 일어나는 학생들은 자신들이 일어날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자신이 좋은 학점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졸업 후 좋은 곳에 취직하기 위해서입니다.
내적으로 내가 정말 간절히 하고 싶다고 느끼는 동기가 있기 때문에 공부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우리가 기도해야할 이유를 분명히 알 때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을 살펴보면
공부를 오랫동안 한다고 다 좋은 성적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집중하는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 평강이가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 엄마가 놓고 간 수학문제를 끝까지 풀지 않다 엄마가 온다는 것을 알고 집중해서 풀어버리는 것입니다.
기도에도 집중이 필요합니다. 그냥 멍 때리고 있다가 어는 순간 필이 되면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집중하여 기도하는 시간이 기도의 시간입니다.
  1. 본문 내용
불의한 재판관(the Unjust Judge) 비유에서 한 불의한 재판관이 자기 원수에 대한 원한을 풀어달라는 과부의 지속적인 간청을 무시하다가 번거롭게 함을 인하여 들어 준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항상 기도하고 낙망하지 말아야 한다”
가장 중요한 구절이 1절입니다. 항상 기도하는 것이고, 둘째는 낙망치 말고 기도하는 것이고, 셋째는 믿음의 기도인 것입니다.
  • 항상 기도하자
  • 1절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불의한 재판장은 하나님도 무시하고, 사람도 무시하는 사람입니다. 안하무인, 후안무취입니다.
교만하고 건방지기 이를데 없는 사람내 눈 밑의 사람을 안 본다는 사람입니다. 얼굴에 철면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잘못도 모르고 낯짝이 자기 멋대로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정말 답이 안나오는 사람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푸틴과 김정은입니다. 협상의 테이블에서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날마다 거짓말하고 남을 무시하는 그런 사람들이 오늘 불의한 재판장과 같은 사람입니다.
시편 3:4에서는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 성산에서 응답하시는 도다”
시편 18:6에서는 “내가 환난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저가 그 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 귀에 들렸도다”
시편 34:15에서는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 귀는 저희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 도다”
시편 55:16 “나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여호와께서 구원하시리로다”
시편 77:1 “내가 내 음성으로 부르짖으면 내게 귀를 기울이시는 도다
시편 88:1,2에서도 “여호와 내 구원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야로 주의 앞에서 부르짖었나니 나의 기도로 주의 앞에 달하게 하시며 주의 귀를 나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소서”
신약성경에서도
​에베소서 6장 18절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데살로니가전서 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사무엘은 기도 쉬는 것을 여호와 앞에서 범하는 무서운 죄로 여겼습니다. 여기에서 ‘죄’는 히브리어로 ‘하타아’인데, 성경에서 죄에 대하여 가장 많이 사용되는 용어로서 ‘과녁을 벗어났다’는 의미이다. 이는 기도하지 않는 것이 가장 대표적이면서도 기본적인 죄가 된다는 점을 지적해준다. 항상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이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이 볼 때만 기도하는 사람있습니다.
기도는 영적인 호흡과 같은 것입니다. 제가 양압기를 끼고 있습니다.
수면 중 좁은 기도를 일시적으로 확장시켜 주는 효과적 치료입니다. 양압기는 특별히 고안한 마스크(주로 코)를 통해 공기를 기도로 불어 넣어, 수면 중 좁은 기도를 일시적으로 확장시켜 주는 효과적 치료입니다.
아프리카에서도 가뭄이 들 때면 기우제를 올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기우제를 올리면 반드시 비가 내린다고 하니 신기한 일입니다. 왜 아프리카에서는 기우제를 올리면 꼭 비가 오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했다.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올리기 때문이다. 당연히 기우제를 올리면 비가 오는 연유다. 칼럼자는 이 아프리카 사람들의 기우제 방식을 들으면서 이거야말로 하늘에 대한 정성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얼마나 절실했으면..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올릴까. 하늘이 비를 내려줄 때까지 정성의 마음을 바치는 것이기에 비가 내릴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찰스 스폴전목사님은 기도는 노동이라고 하였습니다.
어거스틴은 기도를 오래하지 않는 사람은 죽은 신앙이라고 하였습니다.
  1.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라  1절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2.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과부의 청을 들어준 이유가 있습니다.  낙심하지 않고 과부는 매일 불의한 재판관에게 왔습니다. 여러분 매일 전화를 해보세요. 들어줍니다. 번거롭게 하기 때문에 들어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훌륭해서도 아니고, 그 사람이 능력이 있어도 아니고 여인이 낙심하지 않고 계속 오기 때문에 들어주는 것입니다.
야베스의 기도라는 책에는 이런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환상 중에 천국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 때 베드로가 나와서 천국에 있는 자신의 살 집을 모두 보여 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창고에 가서 그 창고의 문만은 열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베드로에게 물었습니다.‘왜 이 창고는 열지 않습니까? 이 창고도 열어서 보여 주세요.’그러자 베드로가 난감해 하면서 ‘이 창고는 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도 계속해서 이 사람이 창고를 보여 주기를 요구하자 베드로가 마지못해 창고를 열었습니다. 그 창고에는 온갖 보화가 넘쳐 났습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네가 이 세상에 있으면서 받을 복이었는데, 네가 기도로 구하지 않고 계속적으로 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창고에 쌓여져있기만 한 것이다.
성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는 30년 뒤에 응답을 받았습니다.
죠지 물러는 5명의 친구 중에서 자신이 죽은 뒤에 응답을 받았습니다.
  1. 믿음의 기도하라 (알고 기도하라)  8절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이단들은 이 본문을 불의한 재판관이 바로 기성교회 목사라는 것입니다. 잘못된 해석입니다. 오늘 본문의 포인트는 바로 기도의 내용입니다. 주 포인트가 불의한 재판관이 아닙니다. 기도를 이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확신있는 기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의 믿음을 보고 고처주셨습니다. 믿음은 주님을 아는 것입니다. 여러분 알다라는 단어는 야다라는 단어로서 부부간에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요드로 시작하는 ‘야다’는 몸과 마음을 써서 ‘알다. 야다. ‘알다’를 의미하는 동사다. 몸과 마음과 체험으로 아는 것을 뜻했다. 체험으로 알다. ‘야다’는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체험으로 깨닫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이 말을 ‘알다’ 보다 ‘깨닫다’로 옮기면 뜻이 잘 통할 때가 있다.
이스라엘의 영웅 삼손이 태어날 때,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와 그의 아내에게 천사가 나타나서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예고하였다. 그들은 천사인 줄 모르고 지극히 손님을 모셨다. 그런데 천사가 제단의 불길을 타고 올라가는 것을 보고 “그제야 마노아는 그분이 주님의 천사였다는 것을 야다했다 (알았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