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전서 11절 새벽기도회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24년 1월 3일
  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1.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사도행전 17장에 사도 바울은 제 2차 선교여행 때에 데살로니가로 가서 복음을 증거하게 됩니다. 유대인의 회장에 들어가 21일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합니다.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는 귀부인들이 바울과 실라를 따릅니다. 이에 유대인들이 시기하여 불량배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하고 야손의 집에 침입하여 바울과 신라를 백성에게로 끌고가려고 찾으나 없어 야손과 몇 형제들을 끌고 읍장에 가서 소리 지르면서 천하를 어지럽게 하는 사람들이 여기도 있다고 하면서 야손이라는 사람이 바울과 실라를 맞아 들여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고 다른 임금 곧 예수라고 하는 이를 전한다고 소동을 일으키며 고소합니다. 야손은 보석금을 내고 풀려납니다.
데살로니가에서 빠저나온 바울은 야손의 집의 교회(데살로니가교회)의 소식이 궁금하여 디모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예수님이 오신 전와 예수님이 오신 ​후로 구분됩니다. 그러나 현대의 교회사는 코로나 이전과 코로나 이후로 구분됩니다. 예수님은 구약을 가르고, 마틴루터는 구교회(카톨릭)과 신교회 (기독교)를 가르고 현대는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가르는 (쭉정이와 알곡을 가르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7장 1~9절, 데살로니가교회의 사역이 유대인의 반란으로 중단되어 실라, 디모데가 데살로니가 교회에서 도망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대한 복음, 믿음에 대하여 가르쳤는데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가장 잘 아려진 디모데를 보내기로 작정합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데살로니가 교회로 보냈을 때에는 아덴에 있었습니다. 디모데와 실라는 베뢰아에 들린 후에 합류하게 됩니다. (행 17:10-15절)
디모데를 보내기로 한 것은 사도 바울이 데살로가 성도들에게 대한 사랑입니다.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많은 시련과 박해에 직면한 성도들에게 바울은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유혹과 핍박을 잘 이기도록 권면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그들의 목자 바울이 고난을 견디는 것을 보고 영감을 받아 그와 같이 하게 되었습니다. 존 칼빈은 이렇게 논평합니다.
히 13:7.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 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
우리는 믿음의 교훈을 받은 사람들의 모범에 자극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그들이 고난 속에서도 굴복하지 않도록 자신의 모범으로 강화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신실함은 그들의 모델이며, 우리의 불성실함은 그들이 본받을 수 있는 나쁜 모본을 그들 앞에 제시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하라고 명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신실하게 따르려고 노력하지만, 또한 우리가 다른 신자들에게 선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위해서도 노력합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개척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해 부모와 같은 심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식이 잘되면 부모는 그저 기쁘고 감사합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자신을 본받고 주님을 본받자 큰 보람과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주님을 본받을 수 있을까요? 어느 마을 앞 절벽 위에 인자한 얼굴 형상의 바위가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큰 바위 얼굴이라고 불렀습니다. 언젠가 그 큰 바위 얼굴의 사람이 나타날 것이라는 전설을 믿고 기대하며 살았습니다.
​어니스트라는 성실하고 소박한 젊은이도 큰 바위 얼굴을 보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날마다 그 바위를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마을 출신의 저명한 인사가 나올 때마다 큰 바위 얼굴이 나타났다고 환호했습니다.
어니스트는 평생에 네 명의 인물을 만났습니다. 돈을 모았으나 인색하고 탐욕스런 상인, 정력과 의지는 있으나 온화함이 결여된 장군, 말을 잘하나 따뜻한 사랑이 모자란 정치가, 모든 것을 아름답게 노래하는 재능은 있어도 말과 생활이 일치하지 않는 도시의 시인이었습니다.
어니스트는 이들이 큰 바위 얼굴과 달라 보여 실망하곤 했습니다. 어니스트는 희망을 잃지 않고 성실히 살았습니다. 그런 그가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된 어느 날 마을 사람들은 그가 바로 그토록 기다리던 큰 바위 얼굴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호손의 단편 소설 <큰 바위 얼굴>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느 대상을 늘 바라보면 언젠가 그와 비슷하게 닮아간다는 것입니다. 부부가 오래 같이 살면 얼굴이 서로 비슷해집니다. 서로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은 효과 때문입니다. 얼굴뿐만 아니라 말투, 생각, 행동, 음식 취향까지 서로 닮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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