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로새서 2장 8절 그 안에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23년 11월 15일
  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2.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3.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4.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5.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라
  6.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7.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8.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그 안에의 단어가 6절에, 7절에, 9절에, 10절에, 11절에, 12절에 (6번) 그 안에 나옵니다.
1) 그 안에 뿌리를 박으라고 하였습니다.
2) 그 안에 (예수님)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를 넘치게 하라
3) 그 안에 철학과 헛된 속임수에 주의해라 이는 초등학문이다.
4) 그 안에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인성도 있지만 하나님의 신성이 있습니다.
5) 그 안에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가 되는 것입니다.
6) 그 안에 육체의 할례가 있지않고 그리스도의 영적인 할례가 있다는 것입니다.
7) 그 안에 부활이 있습니다.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2:9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신약성서에는 “생명”으로 번역할 수 있는 헬라어가 셋 나온다.
프쉬케(ψυχή), 비오스(βίος), 조에(ζωή)가 그 셋이다. 이 셋은 넓게 말해서 “생명”으로 번역할 수 있지만, 하나하나는 각각의 독특한 뜻을 지니고 있다.
프쉬케는 생물학적 목숨이다. 의학적으로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육체적 목숨을 말한다. 예를 들어, 예수께서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걱정하지 말고, 몸을 감싸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아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지 아니하냐?”(마6:25)라고 말씀하시거나,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린다”(요10:11), “나는 양들을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린다”(요10:15)라고 말씀하셨을 때, “목숨”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프쉬케이다.
비오스는 영어 바이오(bio)의 기원이 된 헬라어이다. 그러나 영어에서 바이오가 “생물” “생명” “생리”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것과는 달리 헬라어 비오스는 생명이라기보다는 “생활”이나 “살림”에 가깝다. 요한1서는 우리가 조심해야 할 유혹으로 “육체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요일 2:16)을 꼽는다. 여기서 “이생”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데 새번역은 “세상 살림”으로 번역하여 이해를 돕는다. 헬라어로는 비오스이다. 살림살이 혹은 생활 수준으로 번역할 수 있다. 탕자의 요청으로 아버지가 아들에게 나누어 준 것도 비오스다(눅15:12). “살림”을 미리 나누어 준 것이다.
조에는 프쉬케나 비오스와는 다른 생명이다. 프쉬케와 비오스는 (물론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지만)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생물학적 목숨이나 생활의 수준과 방식은 상당 부분 부모님이 내게 물려주신 것이다. 그러나 조에는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숨겨두신 생명이다. 씨앗과 같다. 예수께서는 이 씨앗을 피우고 열매 맺어 풍성하게 사려고 이 땅에 오셨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더 넘치게 얻게 하려고 왔다.(요10:10)
예수께서는 생명의 빵으로 우리에게 오셨다(요6:35). ὁ ἄρτος τῆς ζωῆς!(호 아르토스 테스 조에스). 생명을 살리는 빵, 생명을 풍성하게 하는 빵으로 오셨다는 말씀이다. 조에 생명은 예수를 만날 때 살아나 역동 친다. 이 생명이 있으면 비오스가 어려운 형편이라 할지라도 능히 이겨낼 수 있다. 그것이 조에의 힘이다. 이것이 고린도후서에서 바울이 전하는 바이다. 아래 성경말씀 7절의 “보물”을 “생명”(조에)로 바꾸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고린도후서 4장 7절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 엄청난 능력은 하나님에게서 나는 것이지, 우리에게서 나는 것이 아닙니다. 8우리는 사방으로 죄어들어도 움츠러들지 않으며,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으며, 9박해를 당해도 버림받지 않으며,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습니다. 10우리는 언제나 예수의 죽임 당하심을 우리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그것은 예수의 생명도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기 위함입니다. (고후 4:7-10)
비오스 수준의 신앙생활이 있다. 기복신앙을 제외하고라도, 삶의 질을 높여주려는 일체의 계몽적 신앙 프로그램이 비오스를 위한 것이다. 예를 들어 아버지 교실, 부부학교, 자녀교육교실 등등 말이다. 그러나, 요한복음이 전하는 신앙의 본질은 비오스에 있지 않고 조에에 있다. 조에를 살리고 풍성케 하는 신앙생활! 어떤 모습일까 묵상해 볼 일이다.
2:10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시라
세상의 정사와 권세의 머리는 왕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애굽의 왕 바로, 바벨론왕 느브갓네살, 로마의 황제 시저, 가이사, 지금의 왕 퓨틴, 시진핑, 김정은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생명은 한정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영원하시고 정사와 권세가 그의 머리에 있고 능력이 그에게 있는 것입니다.
홍해에서 그들이 죽었습니다. 느브갓네살이 교만하다가 죽었습니다. 로마의 시저는 자신의 부하에게 죽었습니다. 퓨틴도, 시진핑도, 김정은도 어떻게 죽을 줄 알지못하지만 분명히 죽습니다.
예수님은 2천에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도 살아서 모든 믿는 자들에게 능력이되고 모든 교회의 머리가 되십니다.
  1.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2.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바울은 이단의 침입에 직면한 골로새 교회를 비롯한 주변 교회를 향하여 사랑으로 연합할 것을 권면했습니다.
바울은 골로세 교인들에게 육체적인 할례 중심의 유대인들에게 속지 말라고 분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공동체 안에서 떠나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연약한 짐승들이라도 떼를 지어 같이 다니면 맹수들이라도 함부로 공격하지 못합니다. 맹수들의 밥이 되는 것은 무리에서 이탈한 짐승입니다.
비행기로 씨를 뿌려야 할 만큼 큰 밀 농장의 주인에게 존이라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부부가 이웃집 파티에 다녀오는 사이에 그만 행방불명이 되었습니다. 그 아이는 집에서 혼자 놀다가 그만 무성하게 자란 밀밭 속으로 들어갔던 것입니다. 점점 깊이 들어가 길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린 존은 밤새도록 밀밭 속에서 헤매다가 공포에 질린 채 죽고 말았습니다.
존의 부모는 이튿날까지 아들을 찾을 수 없자 한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그 다음 날 동네 보이스카웃 대원을 동원해 손에 손을 잡고 밀밭을 훑어나갔습니다.
얼마 후 존이 싸늘한 시체가 되어 밭고랑에 누워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존의 부모는 아들의 시체를 안고 눈물을 흘리며 한탄했습니다. “진작 손에 손을 잡을 것을···”
이 일은 우리 신앙생활에 경종을 울립니다. 요즘 개인주의가 발달하다 보니 사람들과 관계를 맺지 않고 자신을 드러내지 아니하고 조용히 신앙생활을 하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혼자서는 어렵습니다. 산상집회를 인도하는 무디에게 어느 신자가 질문했습니다. “꼭 이렇게 모여서 예배드려야 하나요? 집에서 혼자 드리면 안 되나요?”
그러자 무디는 활활 타오르는 장작더미에서 장작 하나를 빼내서 밖으로 던졌습니다. 얼마 안 뒤어 그 장작의 불은 꺼져버렸습니다. 그러자 무디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혼자 있으면 이렇게 불은 꺼지게 됩니다.”
성도들도 함께 모일 때 열을 발산하며 타오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 안에서 연합하면 마귀는 틈을 타지 못합니다. 우리는 모이기를 힘쓰며 연합해야 합니다.
형제의 연합은 하나님 보시기에 선하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연합은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한복음 17:21).
모여서 뜨겁게 기도하고 서로 도우며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이단을 물리치고 그리스도를 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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