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복잡한 서열의 질서로 얽혀 있습니다.

자연의 법칙에서 우리 사회의 무형의 규칙에 이르기까지, 이 질서는 우리 삶의 모든 면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제 가족과의 작은 에피소드에서 출발합니다. 이름하여 뭉치, 우리 가족의 소중한 애완견입니다. 그리고 이 작은 이야기는 우리 사회의 큰 그림으로 확장되며, 결국에는 영적인 깨달음으로 이어집니다.
뭉치는 우리 가족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서열을 농담 삼아 말하자면, 사모님, 우리 아들, 뭉치, 그리고 나, 목사인 제가 마지막입니다. 개들의 서열 정립은 흥미롭습니다. 배를 보이면 상대를 존중한다는 의미이고, 으르렁거리면 도전하는 자세입니다. 뭉치는 제게만 으르렁거리지만, 나머지 가족에게는 순종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이러한 동물의 서열이 인간 사회에도 반영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학력, 연봉, 은행 잔고로 사람의 가치를 재는 듯합니다. 이러한 서열 정립은 특히 결혼 시장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연봉도 연예인의 인기 순위, 스포츠 선수의 몸값 등은 사회적 지위를 가늠하는 척도가 되곤 합니다. 최근 뉴스에서 전 펜싱 국가대표 남현희 씨의 재혼 소식은 이러한 현상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이는 재벌가의 일원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전청조 씨에 의해 더욱 부각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 사회는 눈에 보이는 서열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지만 들개들 사이에서 발견되는 리더십은 다른 양상을 보여줍니다. 그들에게는 양보의 리더십이 존재합니다. 가족이 배부르게 먹을 때까지 기다리는 수컷은 무리를 보살피는 리더의 상징입니다. 이러한 자연의 리더십은 모든 구성원에게 안정감을 제공하며, 늑대의 리더는 항상 무리를 이끌며 앞장섭니다. 이는 ‘인류 밖에서 찾은 완벽한 리더들’이라는 주제로 더욱 깊이 탐구될 가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신봉하는 영적 리더, 예수님은 서열을 어떻게 정하실까요? 예수님의 가르침은 세상의 기준을 뒤집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죽을 때 살고, 낮아질 때 높아지며, 섬길 때 높임을 받는다’는 말씀은 세상의 서열과는 완전히 다른 하나님의 나라의 원칙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아이러니와 패러독스는 기독교의 중심적인 교훈으로, 모순되거나 역설적인 상황에서 더 큰 진리를 발견할 수 있음을 가르칩니다.
마지막으로,
영적 리더십에 대한 성찰은 우리 자신에게 물어보게 합니다. 마음 속에 산 소망을 품고 있는가? 이 소망은 우리를 이끄는 힘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소망을 품은 아펜젤러와 언더우드는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선진국으로의 변화를 이끌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산 소망이시며, 그분이 계신 곳에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적은 성령의 역할로 완성됩니다. 성령은 시작이자 끝이며, 우리 모두는 성령을 간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