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괴로움에 참여하였습니다. 자신의 고난, 동참하였습니다. 감사하고 격려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고난은 무엇인가?
고린도후서 11장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갈라디아서에서는 사도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 서로 짐을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고 하였습니다.
갈라디아 6장 17절에 자신은 예수님의 고난의 흔적을 가지고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수고로움이 없이 편지를 쓰는 이유는 너희가 나와 고난에 동참하였기 때문입니다.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주고 받은 일이 무엇인가? 바로 이어서 나오고 있습니다.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물질적으로 주고 받은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에서 출발하여 데살로니가로, 그리고 베레아로 복음을 증거하면서 극한 고난과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배고품과 추위와 궁핍으로 인하여 고통도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유대인의 핍박은 어쩔수 없지만 배고품과 궁핍의 고난은 너무 힘들고 어려웠는데 빌립보 교회가 두번이나 선교헌금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7장 5.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불량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하게 하여 야손의 집에 침입하여 그들을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으나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지 않기 위하여 자비량으로 선교하였습니다.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데살로니가 전서 2장 9.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노라
그러나 빌립보 교회는 성경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for even when I was in Thessalonica, you sent me aid again and again when I was in need.)
또 주고 또 주고, 한국어로 번역하면 두번이나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로마 감옥에 있는데 12년 뒤에 물질을 또 주고 또주고 한 것입니다.
마게도니아 유럽을 떠날 때에 후원한 것이 아니라 10년이 지나고 난 뒤에 또 주고 또 주고 하였던 것입니다.
자신이 이제 로마 감옥에 있는데 에바브로 디도를 통하여 물질을 주게 되었던 것입니다. (2장 25절)
사도 바울은 네게 능력주시는 자안에서 자족하고 또 자족하기를 배웠지만 물질적으로 헌신하는 빌립보 교인들에게 참 잘하였다고 별표 다섯개를 하였던 것입니다. 학점을 받을 때 엑설런트라는 표현이 있는데 참 잘한 것입니다.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사도 바울은 선물을 구함이 아니라 너희에게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주는 것이 받은 것보다 복되도다 하시는 말을 들은 것입니다.
잠언11장 24.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25.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26. 곡식을 내놓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에게 저주를 받을 것이나 파는 자는 그의 머리에 복이 임하리라
마태복음 6장 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빌립보 교인들은 풍족한 가운데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였습니다. 어려운 가운데 하나님께 드렸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스니다.
이러한 드릴 때에 기독교인들에게 하나님이 영원한 기쁨과 만족을 주시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선한 일을 위하여 자신의 물질을 드리는데, 기독교인들은 영원한 천국을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헌신하는 것은 하늘나라에 영원한 상급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헌금을 보고 사도 바울은 너무 기뻤습니다. 자신이 기뻐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도 기뻐하시고 하나님도 감동할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예수님 안에서 한몸이라고 하였습니다. 한몸된 지체가 부족한 부분을 위하여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는 것처럼 우리 성도들이 어려움을 격고 있는 성도들에게 좋은 것을 공급하는 것입니다. 오직 빌립보 교인들만 이를 공급하였다고 칭찬하는 것입니다.
부유한 항구 도시 데살로니가에서 헌금하지 않았지만 오직 빌립보 교인들만 한번 아니라 다시 한번 다시 한번 공급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기독교인들은 내면적인 성령충만도 중요하지만 외적으로 나타는 성령의 열매들도 더 중요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5절의 주고 받음을 통하여 영혼도 사랑도 주고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린다고하여 우리가 더 가난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더 가난해지는 것이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누가복음 6장 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