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구절

요한복음 3장 16절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23년 9월 22일 금요철야

 

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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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면 요한복음 3장 16절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어린 아이들까지 이 성경구절을 알 정도면 모든 사람들이 알 수 있는 구절입니다.

 

오늘 성경의 진정한 의미의 요한복음 3장 16절의 말씀을 함께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주어는 하나님이십니다.
  2.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다. (창1장1절)

히브리어 동사 베레쉬트는 하나님만을 주어로 사용하는 동사입니다.

무질서한 세계를 질서있는 세계로, 어두운 세계를 광명의 세계로 이끄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장소 에덴에서 살게 하셨습니다. 그분이, 창조자 하나님이 나를 오늘 만드시고 조성하신 분이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집을 세우시고, 성을 지켜주시고, 자녀를 축복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알아야합니다. (시편 127편)

 

가장 지혜롭고 모든 학문에 박식한 솔로몬은 말년에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전도서 12장 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14.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교회는 다니는데 자기 마음대로 상상하고 자기 마음대로 착각하면서 살아가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성도들입니다. 마치 출애굽한 백성들이 모세 지도자는 산 꼭대기에 있는데 자신들의 애장품으로 만든 우상 금송아지로 예배하는 것입니다.

 

피트 윌슨(Pete Wilson)의 저서 ‘하나님인가, 세상인가’에 보면 아들과 술래잡기 놀이를 하는 얘기가 나옵니다. 둘째 아들이 어렸을 때, 술레잡기 놀이를 좋아해서 아빠인 윌슨목사가 종종 함께 놀이를 했다고 합니다. 아이를 위해서 아빠가 술래가 되어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열까지 센 다음에 온 집 안을 뒤지며 숨어 있는 아들을 찾습니다. 아이가 없는 곳을 다니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소파 뒤나 책상 밑에 숨어있는 아들을 찾게 되는데, 그 때마다 들킨 아이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고 합니다. 그는 자기가 아이를 슬쩍 보고 있는데도 아이는 아빠가 보이지 않으면, 아빠도 자기를 못 본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고 했습니다. 그 얘기 끝에 아이만 그런 게 아니라 어른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습니다.

 

내가 눈을 감으면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느끼며 사는 성도들입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가운데서 나쁜 짓하고,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도적질하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거짓말하고,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죄를 짖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다 보고 계시고 하나님은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심을 알아야합니다.

 

 

  1.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요한복음 3장 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일본 도쿄에서 올림픽이 열리게 되었을 때 경기장의 확장을 위해 건축한지 3년 된 집을 헐게 되었습니다. 인부들은 지붕을 헐어 내리다가 꼬리 쪽에 못이 박힌 채 벽에 붙박여 있는 도마뱀 한마리를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그 도마뱀은 아직도 살아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공사를 중단하고 살펴보았습니다. 다른 도마뱀 한마리가 좁은 길을 따라 계속 먹이를 물어다가 먹이고 있었습니다. 그 도마뱀은 하루에도 몇 번씩 못에 박힌 친구를 위해 먹이를 날라주기를 무려 3년간 계속했던 것입니다. 사람은 음식만 먹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을 먹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을 먹어도 사랑의 영양을 공급받지 못하면 정상적인 성장을 할 수 없습니다.

 

C.W 밴더버그는 내가 전 세계 사람 모두를 사랑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어려운 것은 바로 옆집에 사는 내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독일의 유명한 신학자 본회퍼는 인간은 타인을 위할 때에 존재합니다. 이웃을 위한 것이 바로 나를 위한 것이고, 겨례를 위한 것이 곧 나를 위한 것입니다. 남을 대접하는 것이 곧 자기가 대접 받는 것입니다. 참 사랑은 남을 위할 때에 진정한 믿음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랑은 자신을 열 줄 아는 것입니다. 이웃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필요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수 많은 문제와 범죄는 사랑의 결핍에서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좀 더 이웃에 대하여 사랑과 관심을 가질 때에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사랑의 빚을 진 사람들입니다. 이 사랑의 빚을 갚는 것은 구원 받은 성도의 의무입니다.

 

주어는 하나님이고, 목적어는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것이 축복입니다. 여러분 가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단풍을 보고 아름답고 하는 것은 사람이 표현할 수 있는 표현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아름답다고 말하고 난 뒤에 하나님이 지은 것이기 때문에 아름답다고 고백해야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다.

 

대원 아파트에 대추가 많이 달렸다고 늘 어머님이 말씀하십니다. 저렇게 많이 달렸을까? 하면서 대추나무를 바라보십니다. 우리 밑에 집 주인 할아버지내가 조금 튼튼하게 지었으면 저는 벌써 대추나무를 심었을 것입니다. 축대가 무너질까 걱정하여 대추나무를 심지 못고 있습니다. 대추나무의 열매를 맺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보고 감사해야합니다.

 

옛날 사람들은 쌀 미(米)자가 팔과 팔이 합성해서 만든 글자라고 합니다. 즉 밥 한톨이 내 입에 들어오기 까지 88명의 손이 수고했다는 것입니다. 밥 한톨에 대한 감사입니다. 우리 인간은 혼자서 독존할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하고 나 홀로 수고 하여 얻는 것이 없습니다.

 

제 2차 대전 후에 여객기 한 대 가 승객들을 태우고 가다가 갑자기 엔진 고장이 났습니다. 조종사는 최선을 다해 보았지만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모든 승객들에게 낙하산을 타고 뛰어내려야만 살 수 있다고 호소했습니 다. 그러나 승객들은 겁에 질려 아무도 뛰어내리지를 못했습니다. 한참을 고민하던 조종사는 번뜩 지혜가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맨 먼저 독일 사람에게 명령했습니다. ‘히틀러의 명령이니 뛰어내려라. 그랬더니 하이, 히틀러! 하고는 뛰어 내렸습니다’ 두 번째는 일본 사람에게 명령했습니다. ‘천황 폐하의 명령이니 뛰어내려라. 그랬더니 쏘 데스까 하고는 뛰어 내렸습니다’ 세 번째는 불란서 사람에게 제안했습니다. ‘낙하산이 퍼지는 저 패션이 너무 멋있잖아요? 그러니 뛰어내리세요. 그래서 뛰어내렸습니다’ 네번째는 미국사람에게 말했습니다. ‘미합중국은 민주주의 국가이니 다수결의 원칙을 따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뛰어내렸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국 사람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조종사가 한국 사람에게는 어떤 명령도 하지 않고 그를 가까이 오라고 하더니는 귀속말로 뭐라뭐라 소곤거렸습니다. 그랬더니 한국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용감하게 뛰어내렸습니다. 조종사가 뭐라고 말했는지 아세요. “뛰어내리는데 공짜에요”

 

믿음이 없을 때에는 아이들처럼 자신의 것만 알고 그 물질을 움켜줍니다. 그러나 믿음이 성장하고 난 뒤에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처럼 자식을 위하여 가족을 위하여 헌신하고 내려주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사랑의 최고의 사랑은 아카페 사랑인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이 최고의 사랑입니다.

(결혼 시에는 저에게 얼마만큼 사랑하냐고 우리 아내가 꼭 물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 만큼 사랑하실까? 우리 하나님은 천지 만물도 우리를 위하여 모든 자연들도 우리를 위하여 우리의 필요한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음식도 사줄 수 있습니다. 밥도 사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평강이를 달라고 하면 줄 수 없습니다.

 

다 표현 못 해도 나 표현하리라 다 고백 못 해도 나 고백하리라 다 알 수 없어도 나 알아가리라 다 닮지 못 해도 나 닮아가리라

그 사랑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 사랑 얼마나 날 부요케 하는지 그 사랑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를 그 사랑 얼마나 나를 감격하게 하는지

 

 

  1.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주심

요한복음 3장 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기독교는 왜 예수님만 믿으라고 하는가? 독단적이고 이기적인 종교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불교와 천주교는 함께 공존하고 서로 사이좋게 지내는데 기독교만 화합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는 종교라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 사모와 항상 만나는 장소가 있습니다. 홍대역 1번 출구입니다. 여러분 전철에서 나와야 할 출구는 1번 출구입니다. 그래야 만날 수 있습니다. 9번 출구까지 있어도 1번 출구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1번 출구로 나와야 만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4:12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모르고 기독교는 독선적이라고 하며 이런 저런 모양으로 기독교를 비하합니다. 그리고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말합니다.

 

영국의 존 힉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아주 독실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후에 그는 회교도들이나 불교신자들, 세상의 진지한 종교인들을 보면서 그들의 신앙과 경건에 감동을 받고 예수님에 대한 절대성이 흔들렸습니다. 기독교, 카톨릭, 불교, 이슬람교 다 구원이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다른 쉬운 말로 하지만 산꼭대기에 오르는 길이 여럿이듯이 하나님께 이르는 길, 구원의 길도 다양하다고 말하며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몇 달 전 기감 목회자 및 평신도 4,5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목회자의 60.3%, 평신도의 70.7%가 NCCK 즉각 탈퇴를 지지할 정도로 교단 내 NCCK에 대한 반대 여론은 거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단 지도부가 이에 미온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프로테스탄트가 천주교로부터 나온 이유는, (천주교가) 면죄부를 팔고 성모를 숭배하고 천사를 숭배하고 타락하면서 본질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에 대부분의 교단이 신사참배에 참여했지만, 믿음의 거룩함을 유지한 조상들은 순교를 각오하고 이를 거부해 감옥에 끌려가 죽임당했다”며 “연합보다 중요한 것은 거룩”이라고 했다.

 

 

왜 예수님인가?

구약 시대의 죄의 댓가를 어린양으로 속죄하였습니다. 그 죄 값을 매번 짐승을 잡아서 속죄 제물로 드림이 번거롭고 복잡하기 때문에 단번에 우리 주님이 어린양 되셔서 이 땅에서 죽으시고 죄 값을 치루워 주심으로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법을, 구원의 길을 이렇게 제정하시고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 구원을 위하여 친히 육신이 되어서 이 땅에 오셔서 죽으신 것입니다. 한 예로 재판장 앞에서 어떤 사람이 어자피 사형수 이기 때문에 감방있는 나의 동료를 대신하여 내가 죽어주겠습니다. 그러니 이 사람을 용서해주세요라고 한다면 재판장이 이 사형수의 외침들을 들어주겠습니까? 죄인은 죄인의 죄를 대속할 수 없습니다. 죄없는 독생자 예수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신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빨래를 할 때에 옥시크린으로 하이타이로, 묵은 때를 제거할 수 있지만 우리의 죄는 제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완전히 자신의 보혈의 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0:14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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