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1-3 새벽기도회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26년 2월 23일

 

 

 

개역개정 요한계시록 1장

  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2.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느니라
  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1. 요한계시록 95년에서 96년까지 가장 늦게 쓰여진 책입니다.

1) 칼리굴라 (Caligula, 재위 37~41년): 요한의 청년기이자 초기 교회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막 형성되던 시기입니다. 자신을 ‘신’이라 칭하며 예루살렘 성전에 자신의 동상을 세우려 시도해 유대인들과 큰 갈등을 빚었습니다. 직접적인 기독교 박해보다는 유대교 전체와의 마찰이 컸던 시기이며, 요한은 이 시기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 같은 존재로 활동했습니다.

 

2)네로 (Nero, 재위 54~68년): 기독교 최초의 공식적 박해자입니다. 박해의 발단: 서기 64년 로마 대화재의 책임을 기독교인들에게 돌리며 잔혹한 처형을 시작했습니다. 베드로와 바울이 이 시기 로마에서 순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요한은 이 박해를 피해 혹은 사역의 확장을 위해 에페소(에페수스)로 거처를 옮겼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3) 도미티아누스 (Domitian, 재위 81~96년) : 요한에게 가장 고통스러웠던 시기이며, 질문하신 ‘가마솥 기적’이 일어난 때입니다. 자신을 ‘주님이요 하나님(Dominus et Deus)’이라 부르게 하며 황제 숭배를 강요했습니다. 이를 거부하는 기독교인을 반역자로 간주해 대대적으로 박해했습니다.

 

요한과의 관계: 요한은 로마로 압송되어 고문을 당했으나 죽지 않자, 파트모스(밧모) 섬으로 유배되었습니다. 이곳에서 그는 박해받는 교회들을 위로하기 위해 <요한계시록>을 기록했습니다.

4) 네르바 (Nerva, 재위 96~98년) : 도미티아누스가 암살된 후 즉위한 ‘5현제’의 첫 번째 황제입니다. 전임 황제의 가혹한 정책을 폐지하고 온건한 정치를 펼쳤습니다. 네르바의 관용 정책 덕분에 요한은 파트모스 섬 유배에서 사면되어 에페소로 귀환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그는 에페소에서 제자들을 양성하며 평안히 노년을 보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12제자 중 유일하게 순교하지 않고 노년까지 생존하여 자연사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는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하신 예수님의 말씀(요한복음 21:22)이 성취된 것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1. 누가 기록했는가요? 예수님의 제자 요한이 기록하였습니다.

 

1) 전승에서는 요한이 섬에서 악령들을 다스리거나 쫓아내는 모습을 통해 그의 영적 권능과 거룩함을 상징적으로 나타냅니다. 이는 요한이 신앙 공동체와 영적 세력 사이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음을 드러냅니다.

 

2) 기름 가마솥에서의 기적 (라틴 문 앞의 수난)

서기 95년경,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에페소에서 활동하던 요한을 로마로 압송하여 사형에 처하려 했습니다. 황제는 요한을 부글부글 끓는 기름 가마솥에 던져 넣으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뜨거운 기름 속에서도 전혀 해를 입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시원한 목욕을 마친 듯(as from a refreshing bath) 더 건강하고 활기찬 모습으로 가마솥에서 걸어 나왔다고 전해집니다. 일부 기록은 그가 마치 ‘회춘(rejuvenated)’한 것 같았다고 묘사합니다.

이 놀라운 광경을 본 많은 이교도가 그리스도교로 개신하였으나, 황제는 이를 마법이라 생각하며 요한을 죽이는 대신 파트모스 섬으로 유배를 보냈습니다. 요한은 그곳에서 요한계시록을 집필하게 됩니다.

 

산 조반니 인 올레오(San Giovanni in Oleo): ‘기름 속의 성 요한’이라는 뜻으로, 요한이 가마솥에 던져졌던 바로 그 자리에 세워진 작은 예배당입니다.

산 조반니 아 포르타 라티나 성당: 라틴 문 근처에 위치하며, 매년 5월 6일을 ‘라틴 문 앞의 성 요한 수난 기념일’로 기리기도 했습니다.

 

언급하신 ‘대리석 광장’은 에페소의 박해의 문(Gate of Persecution) 건설 시 사용된 경기장 대리석이나, 요한이 사역했던 에페소 도시의 화려한 거리 풍경과 연관되어 전승이 구전되는 과정에서 섞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 기적적인 사건 외에 요한이 에페소에서 겪었다는 독배 전승이나 금으로 변한 나뭇가지 이야기 등 다른 전설에 대해서도 더 궁금하신가요?

 

 

  1. 요한계시록의 장 요약

1장 – 3장까지는 7교회에 대한 말씀

4장부터는 천상의 예배의 모습

5장은 죽임당한 어린양에 대한 찬양과 예배

6장부터 16장까지는 7인, 7나팔, 7 대접에 대한 내용

17장 18장은 바벨론 나라의 멸망

19장은 그리스도의 승리, 예수님의 재림, 짐승의 패배

20장은 천년왕국

21장은 새하늘과 새 땅

22장은 주 예수여 어서오시옵소서

 

 

 

  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예수님이 직접 보여주시는 계시입니다. 다른 사람의 말씀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에 대한 계시입니다.

계시와 예언의 다른 점은 계시는 큰 틀에서는 보여지는 것이고, 예언은 보여진 것에 대한 계획, 하나님의 역사를 말씀으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셨고, 계획한 것을 예수님이 성취하셨고, 그것을 하나님의 천사가 요한에게 보여주셨고, 요한은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욥은 그가 고난 가운데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귀로만 듣다가 이제는 눈으로 본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눈으로 보면 얼마나 큰 감동이 될까요?

 

 

무엇에 대한 말씀입니까? 속히 될 일에 대한 하나님의 말슴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속히 될 일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1) 급이 일어날 일입니다. 2) 그런데 지금까지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벧후 3장 8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은 천년이 하루같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시간대로 측정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간대를 우리가 알아야합니다.

 

 

1절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는 성경 속 인물들을 독창적인 영적 상상력으로 해석한 예술가로 유명합니다. 그가 요한계시록과 사사기의 구절을 연결해 ‘예수 그리스도 = 기묘자(Wonderful)’라는 정체성을 강조한 맥락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사사기 13장 18절: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내 이름은 기묘자니라”

마노아(삼손의 아버지)가 여호와의 사자에게 이름을 물었을 때의 답변입니다.

 

히브리어 ‘펠리(Peli)’: ‘이해할 수 없는’, ‘놀라운’이라는 뜻입니다.

기독교적 해석: 전통적으로 이 ‘여호와의 사자’는 성육신 전의 그리스도(Christophany)로 해석됩니다. 대한성서공회 성경보기에서 사사기 13장을 확인하면, 이 존재가 제물의 불꽃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신비로운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각: 블레이크는 예수를 단순히 과거의 인물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거룩한 상상력(Divine Imagination)’ 그 자체로 보았습니다. 그에게 계시록의 예수는 인간을 억압하는 율법의 신이 아니라, 자유와 예술적 생명력을 주는 ‘기묘자’였습니다.

 

  1. ‘기묘자’라는 연결고리 (이사야 9장 6절)

“그의 이름은 기묘자(Wonderful)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이사야의 예언은 사사기의 ‘기묘자’와 계시록의 ‘예수’를 하나로 묶어주는 핵심 근거가 됩니다.

 

블레이크의 주장: 그는 예수님이 곧 우리 안에 살아있는 영적 실체라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 자신”이 곧 계시의 주체이자, 사사기에 나타난 신비로운 그 이름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입니다.

 

윌리엄 블레이크는 자신의 시와 그림을 통해 “모든 사람이 결국은 그리스도와 같다”는 파격적인 인본주의적 영성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블레이크가 그린 요한계시록 삽화들이나 그의 대표시 ‘아침의 노래’에 나타난 예수의 형상에 대해 더 깊이 알아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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