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전서 1장 2절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25년 4월 27일

 

 

  1.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2.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3.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1. 서 序

 

삶이 흔들리고 있다면 죽음에 대하여 생각하여 보라. 장례식에 어떤 사람들이 참석할까요? 사람들은 어떤 말을 건넬까요? 나의 인생에 어떤 것을 기억할까요?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기에 가장 좋은 소설입니다.

 

이반 일리치가 사망했다는군요?라는 부고소식입니다. 동료에게 전해집니다. 동료들은 이반 일리치를 좋아했지만 사망소식을 접하는 순간 그의 죽음이 자신의 승진이나 자리 이동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계산하기에 바빴씁니다.

 

아내 미망인은 남편의 죽음으로부터 나올 국가의 지원금을 어떻게 하면 더 받을 수 있을지 물어보기에 바빴고 그의 친구들은 장례식 때 카드놀이를 하기를 원했습니다. 고위 공직자의 아버지, 그의 삶도 성공한 고등법원 판사로의 삶을 살았씁니다. 좋은 집을 마련하고, 많은 돈을 벌었고, 부러워할 만큼의 아내를 얻었습니다. 내가 사랑해서 아내를 얻은 것이 아니라 남들의 눈에 비치는 모습을 통하여 아내를 얻은 것입니다. 더 좋은 집을 꾸미기 위하여 사다리에 올라갔다가 떨어저 고통스럽게 죽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반 일리치의 삶은 외형적인 것에만 인생을 투자했지 진정한 내면의 세계에 대하여서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우리의 삶이 내적인 성숙에 집중해야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우리는 심판대 앞에서 서야하는데 우리가 살아가면서 행한 모든 행위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서 판단을 받게 됩니다. 껍대기의 인생이니고, 쭉정이와 겨와 같은 인생이 아니라 알곡있는 삶 그것을 우리의 삶이 평강받게 되는 것입니다.

 

 

  1. 역사적인 배경

본문은 데살로니가에서는 우리의 성도의 신앙이 쭉정이나 겨와 같은 신앙이 아니라 알곡과 같은 신앙이 되기 위하여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데살로니가는 알렉산더 황제의 누이인 살로니카를 위하여 만들어진 도시입니다. 20살에 왕이 되어 세계 정복을 위에 온몸을 바치면서 살았씁니다. 그가 인더스 강가에 병에 걸려 죽기까지 오직 전쟁만 하게 되었습니다. 알렉산더가 죽자 그의 4명의 부하 장군들이 정복한 땅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본토는 카산드로, 이집트는 톨레미, 안티오코스는 지중해와 이스라엘 주변, 리시마커스는 소아시아를 중심으로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본토를 다스리는 카산드로가 살로니카를 위하여 데살로니카라고 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사도 바울이 차 전도 여행 때에 3주간 걸처 복음을 증거한 곳입니다.

 

행17:1. 그들이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2. 바울이 자기의 관례대로 그들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그 후 데살로니가 교회는 부흥과 성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러가지 핍박으로 인하여 데살로니가 교회는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고린도에서 1년 6개월을 머물면서 데살로니가를 썼습니다.

 

사도행전 18장 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11. 일 년 육 개월을 머물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

 

여러분 저는 여러분들과 함께 2002년 6월 1일부터 와서 설교를 시작하였습니다. 23년동안 주일설교만 1196번 설교를 했습니다. 새벽기도회 매일, 수요예배 철야예배까지 하면 약 5천번 이상은 설교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변화가 안됩니다.

 

 

 

  • 데살로니가 교회의 평가

1) 믿는 자의 본이 되었습니다.

  1.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2)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습니다.

  1.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3)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교회

  1. 그들이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에 들어갔는지와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와

 

4)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주님을 기다리는 교회

  1.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1. 믿음의 역사

살전 1장 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1. We continually remember before our God and Father your work produced by faith, your labor prompted by love, and your endurance inspired by hope in our Lord Jesus Christ.

 

믿음에는 역사가 있어야합니다. 역사란 history가 아닙니다. 역사는 행위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즉 믿음에는 실천이 필요합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믿는 마음이 있어야 신앙생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도 않는데 어떻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까?

 

로마서에는 믿음은 입으로 시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야고보서 사도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야고보서 2장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1.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예수님이 제자들을 세우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만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믿을 뿐만아니라, 예수님의 신앙을 본받고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고, 복음을 증거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 12.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라

 

야고보서 2장 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믿음은 행위와 분리될 수 없습니다. 종교개혁으로 믿음과 행위를 분리하려는 노력을 우리 기독교인들이 많이 했습니다. 왜냐하면 천주교와 분리하기 위해서입니다. 천주교는 상당히 행위를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기독교인들은 천주교와 분리하기 위하여 행위를 멀리해서는 안됩니다. 성경은 늘 강조하는 것은 믿음의 신앙고백이 있어야합니다. 뿐만 아니라 믿음은 행위가 동반되어야합니다.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입니다.

 

명예의 전당이 있는 것처럼 신앙의 전당이 희브리서 11장이 믿음의 전당입니다. 믿음의 전당에 이름이 올라온 사람들은 아벨입니다. 더 낳은 제사를 드렸다고 하였습니다. 노아는 믿음으로 방주를 만들었다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났다고 하였습니다.

 

1885년 4월 5일이 아펜젤러와 언더우드가 한국에 들어온 날입니다. 이 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140년 된 것입니다. 당시의 왕 고종시대에는 이 나라가 정말 가난하고 세상에서 제일 못사는 나라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선교사님들이 교회를 세우고, 어린 자녀들에게 교육을, 그리고 병원을 세우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를 말할 때에 기독교 없이 이야기 할 수 없습니다. 이로인하여 우리 기독교가 불교 신도수보다 많게 되었고, 마을마다 동내마다 교회가 형성되게 되었습니다.

 

 

 

둘째는 사랑의 수고가 있는 교회입니다.

  1.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성경을 요약하면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를 죄에서 용서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 모인 공동체가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교회 공동체는 우리 모든 형제와 자매를 사랑의 공동체로 섬기고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는 하나님의 사랑이 충만한 곳입니다.

 

교회는 저절로 성장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헌신하고 희생해야 성장합니다. 희생이 바로 사랑인 것입니다. 외부의 핍박과 박해 속에서도 견딜 수 있는 것은 성도들 간의 사랑의 수고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수고는 교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에서 어머니가 사랑의 수고로 말미암아 자녀가 바르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회에 누군가 봉사함으로 거리가 깨끗하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식당에서 누군가 봉사해야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의 봉사는 시간 나면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내서 봉사하는 것입니다. 헌금이 아까워서 교회를 나오지 못하면 사랑이 식은 것입니다.

 

사랑이 식으면 주님을 덜 생각합니다. 여러분 연애하는 자녀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매일 전화하고 또 전화하고 하지만 사랑이 식으면 매일 만나기를 싫어합니다. 주일날만 예수님을 생각하면 사랑이 식은 것입니다. 매일 매일 생각나면 사랑이 아직 식지 않은 것입니다.

 

사랑이 식으면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식으면 쉽게 세상에 빠집니다. 이단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죄가 내 마음을 접근합니다. 그리고 시험에 들게 하고 유혹에 빠져서 죄와 교제하는 것입니다.

 

시편 51편 12.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하였지만 육신적인 음욕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여자들을 두었습니다.

 

1) 미갈: 사울왕의 딸입니다.

2) 아히노암: 헤브론에서 사울을 피해다닐 때 얻은 이스르엘 여인​

3) 아비가일: 양치는 나발의 아내입니다.

4) 마아가: 그술왕 달매의 딸입니다.

5) 학깃 6) 아비달​

7) 에글라: “다윗의 아내”(삼하 3:5)

그러나 아비삭은 마지막 수종 드는 여인이지만 동침하지 않았습니다.

 

게스트 하우스 할 때에 카나다에서 온 자매가 있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pretend (위선적)서 집에서 나와 한국에서 한국어를 배우면 일하며서 살아간다는 자매를 보았습니다.

 

헌신을 통하여 교회가 성장합니다. 우리교회에 사랑의 수고입니다 양순옥권사님입니다. 그분이 청소를 합니다. 교회가 교회 다운 것은 형제를 자매를 따뜻하게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합니다. 사랑하는 마음과 배려하는 마음과 용서하는 마음이 없으면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학교도 학원도 아닙니다. 봉사활동을 위한 모임도 아닙니다. 교회는 가정과 같이 화합하고 예수님의 사랑을 나누는 공동체입니다.

 

 

셋째로 소망의 인내가 있는 교회입니다.

  1.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1. We continually remember before our God and Father your work produced by faith, your labor prompted by love, and your endurance inspired by hope in our Lord Jesus Christ.

 

6절에 보니 너희에게 많은 환난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6.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데살로니가 교회에 환난을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소망의 인내로서 이겨나가라고 하였습니다. 소망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군 생활을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요? 아무리 갈궈봐라 국방부시계는 돌아간다고 하였습니다. 울림 엔터테이드먼드의 연습생들이 데뷰날이 있기 때문에 참고 연습하는 것입니다. 운동선수가 고된 훈련을 참고 인내하는 이유는 금메달이라는 명예가 있기 때문입니다. 공무원들이 참고 직장을 다니는 것은 퇴직하는 날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성도들이 이렇게 어려운 가운데 참고 인내하는 것은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데살로니가의 소망은 무엇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심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도 필요하고, 사랑도 필요하지만 수많은 환난과 핍박을 이겨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인내가 필요합니다.

 

로마서 5장 4절에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을 앎이로다”

 

우리 성도들도 수많은 고통과 환난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십자가의 고통과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듯이 우리의 삶 속에서 고난을 잘 이겨내야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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