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그 사람의 입장에서 이해하는 것입니다.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24년 3월 30일
고린도전서 13장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세상에서 가장 익숙한 단어가 있다면 사랑이라는 단어입니다. 대중가요도, 소설도, 기독교에서도 사랑이 제일이라고 강조합니다. 우리 가운데 가장 친숙한 단어가 사랑입니다. 그러나 홍수가 나면 온천지가 물인데 정작 마실 물이 없는 것처럼 온 세상에 사랑으로 말하지만 진정한 사랑이 없습니다.
사랑은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말에 역지사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상대편과 처지를 바꾸어 생각하는 말입니다. 똑같은 유리인데 유리창을 통해서는 다른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고, 거울을 통해서는 다른 사람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자기 모습만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거울 뒤에는 은칠이 되어있기 때문이란다. 네가 다른 사람을 제대로 바라보고 그들의 입장을 이해해 주기 위해서는 먼저 네 마음에 있는 은칠을 벗겨버려야 하느니라. 투명해져야지 다른 사람을 제대로 볼 수가 있단다. 다른 사람의 입장서기 위하여 나의 죄악의 은칠을 벗겨야합니다.
스티븐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나는 뉴욕 지하철에서 어느 일요일 아침 . 지하철을 탄 사람들은 조용히 앉아서 신문을 읽고 있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생각에 잠겨 있거나 또는 눈을 감고 쉬고 있는 상황이었다. 전체적으로 매우 조용하고 또 평화스러운 장면이었다. 그런데 다음 정거장에서 한 중년 남자와 그의 애들이 탑승한 순간 아이들은 매우 큰소리로 떠들고 제멋대로 여서 전체 분위기가 금방 바뀌었다. 아이들과 함께 탑승한 그 남자는 바로 내 옆에 앉았는데 두눈을 감고 이러한 상황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이 보였다. 아이들은 앞뒤로 왔다 갔다 하면서 큰소리로 말하고 물건을 팽개치며 심지어는 어떤 사람이 읽고 있는 신문을 움켜 잡기까지 하였다. 매우 소란스런 분위기였다. 그러나 내 옆에 앉아 있는 이 남자는 죽은 듯이 가만히 있었다. 화를 내지 않고는 견디기 어려운 상황이였다. 나는 이 남자가 자기 아이들이 저렇게 날 뛰도록 내버려 두고 자신은 무감각하게 가만히 있으면서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것을 이해할수 없었다. 거의 모든 승객들이 짜증을 내고 있음을 쉽게 알수 있었다, 나는 마침내 더 이상 참을수 없어서 이 남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아이들이 저렇게 많은 손님들에게 폐를 끼치고 있습니다. 어떻게 아이들을 좀 조용하게 할 수는 없겠습니까?”그때야 이 남자는 마치 상황을 처음으로 인식한 것처럼 눈을 약간 뜨면서 다음과 같이 힘없이 말하였다.
“당신 말이 맞군요 저도 뭔가 어떻게 해 봐야겠다고 생각 합니다. 그런데 사실 지금 막 병원에서 오는 길인데 한 시간 전에 저 아이들의 엄마가 죽었습니다. 저는 앞이 캄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고 아이들 역시 이 일을 어떻게 해야 될지 막막한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이 순간에 나의 심정이 어떠했는지 상상할수 있는가? 내 패러다임이 바꾸어졌다. 나는 갑자기 상황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고 상황을 다르게 보았기 때문에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고 다르게 느끼게 되었기 때문에 다르게 행동하기 시작했다. 나의 짜증은 사라졌고 화가 났던 내 자신의 태도나 행동을 어떻게 다스릴까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내 마음은 온통 이 사람이 가진 고통으로 가득 채워졌다. 동정심과 측은한 느낌이 자연스럽게 넘쳐 나왔다.
“당신의 부인이 돌아가셨다고요? 저런 안됐습니다. 뭐라고 위로할 말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바뀐 것이다. 짜증은 사라지고 화도 가라앉았고 아이들에 대한 동정심과 측은한 마음으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이해의 영어단어는 understanding입니다. 아래서 서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서 보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왜 그러한 말을 하고 왜 그러한 행동을 하는지에 대하여 말하는 것입니다.
매미의 수명이 보통 6년입니다. 6년 중에서 5년 11달은 땅속에서 애벌레로 있다가 땅속에서 나무 뿌리의 즙을 먹으며 지내다가 4째 껍질을 벗고 정확히 6년째 여름철 땅위로 올라와서 울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땅위로 올라온 뒤에 매미는 다섯번 허물을 벗습니다. 비로서 매미가 됩니다. 결국 매미의 일생은 4주입니다. 다섯번 허물을 벗으며 그늘진 곳에서 묻혀 긴 세월 부르지 못했던 노래를 4주 동안 열심히 부른 것입니다. 왜 부르짖을까요? 바로 암컷을 부르는 처절한 사랑의 노래입니다. 4주의 제한된 기간 안에 암컷을 불러 후손을 이어가려는 절박한 노래인 것입니다. 새는 이 매미의 노래소리를 듣고 자신의 먹이로 생각하여 매미를 잡아먹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는 사랑의 노래를 멈추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매미가 이렇게 노래부는 것을 보고 시끄럽다고 나무를 차거나, 매미와 배짱이처럼 게으름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매미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매미의 처절할 삶을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