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1장 20절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19년 1월 1일 송구영신예배
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찬양 “고개들어 주를 맞이해 엎드리어 경배하며 찬양 ”
사람마다 기대하고 소망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건강을 위하여 기도하고, 어떤 사람들은 사업이 잘되는 것을 위하여 기도하고, 어떤 사람들은 자녀들이 잘되는 것을 위하여고, 우리 사모는 마지막 학교 옴기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정년 퇴직할 마지막 학교인데 잘 마칠수 있도록 기도하고, 그리고 저는 우리교회가 부흥하는 것을 원하고 간구합니다.
사람에게 기대하여 그 사람에 투자하였는데 아무런 기대치가 돌아오게 될 때에 화가나고 분노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한 예로 마이크로닷의 부모에게 제천사람들이 투자하였는데 야 밤에 도주하였을 경우 얼마나 분노하고 20년이 지난 이후에도 그에 대한 상응한 댓가를 받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별로 소망하지 않는 일이였는데 소망하는 일이 일어나면 얼마나 기쁘겠습니다. 국민일보에 보니 ‘KBS 연예대상’ 이영자 “포기하지 않게 기둥 돼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린다” 이번에 MBC에서 또 받게 되었습니다. 그때에도 하나님께 영광돌린다고 하였습니다.
주일날 오후 예배를 마치고 김예기권사님의 사업장에 가게 되었습니다. 홍대에 사업장을 7억 보증금에 4천만원씩 달라고합니다. 주인이 너무 떠무니 없이 임대료를 올려 달라니 세입자는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사업장 뒤에 가보니 음료수고 여러 가지 물건들을 잔득 쌓아둔 것을 볼수 있습니다. 다 팔리면 체워넣기 위합니다. 그만큼의 기대와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없는 시골동네에는 그렇게 많이 물건을 쌓아두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팔리지 않기 때문에 안팔리면 제고처리해야하고 그리고 버려야하기 때문입니다. 낭비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간절한 기대라는 말씀의 뜻은 목마른 사슴이 물을 찾기에 갈급함이라는 표현과 동일합니다. 그 기대하는 것들을 바라보고 사는 것이 우리 인간들이 아니겠습니까? 2019년도에는 여러분들이 기대하고 소망하는 일들이 다 이루워지는 한해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이렇게 기대하고 소망하는 것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몇가지를 부탁하고 있습니다. 2019년도에는 이러한 일들을 이루면서 살아가는 한 해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부끄러움이 없어야합니다.
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기대하고 소망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첫째로 아무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에 큰 교회 목사님들이 방송에서 부끄러움을 많이 당하고 있습니다.
1) 내가 그렇게 될 줄 몰랐다. (사랑의 교회 오정현 목사님)
고등학교 다닐 때에 대학교 다닐 때에 자신이 그렇게 유명해 질 줄 몰랐습니다. 저도 어린 시절에 고등학교 대학교에 대한 학력 컴프렉스가 있었기 때문에 조금씩 거짓말도 하고 자신을 자랑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이야 그것이 창피한 일이 아니였지만 그 당시에는 그렇게 창피한 일이였습니다. 그렇게 거짓말을 하였던 것이 훗날 나의 삶에 부끄러움이 될줄을 몰랐습니다. 요즘 연애인들이나, 정치인들을 보면 자신이 어린 시절 그와 같이 유명해질 줄 모르고 부끄러운 행동을 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국무총리나 장관이 되려고하는 사람들의 청문회를 하면 자신의 잘못된 과거나 나타나서 창피를 당하는 것을 것을 볼수 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나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2) 남의 잘못을 용서할 줄 모른 사람 (000 장로님)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님인 조용기목사님의 3아들에게 대한 비리를 뉴스타파에서 고발한 내용을 보면서 이러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용기 원로목사님이 은퇴하면서 모든 장로님도 직책에서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장로님들도 영향력이 축소되었습니다. 이에 분계하여 모든 자료를 언론에 알리게 되었고 그리고 법에 심판을 받도록하였습니다. 물론 잘못된 부분이 있지만 이렇게까지 할수 있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순복음교회에 한국교회에 부끄러움을 나타나게 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3) 내려놓기 어려운 명성교회의 모습
어렵게 키운 세계 최대의 장로교회를 다른 분에게 주는 것이 조금 미덥지 않고 자신의 영향력이 축소될 것 같은 마음으로 김삼환목사님의 아들에게 담임목사직을 인계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이것이 화근이 되어어서 총회에서 다시 재판위원회가 열리게 되었고 그리고 지지부진하니까? 방송국에서 그러한 일들을 콩놔라 밭놔라하는 일들을 보게 됩니다.
이러한 일로 인하여 기독교가 세상에 빛이 되지 못하고 소금이 되지 못하여 세상에밟히니 하나님께 영광도 되지 못하고 세상에 덕이 되지 못하니 얼마나 마음이 안타까운지 모릅니다.
오늘 본문의 사도 바울은 로마시민권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는 감옥에 갖치게 되었습니다. 도둑질이나 강도짓을 하여 갖친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증거하다가 갖히게 되었던 것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우유부단하게 융통성있게 살면 굿이 어려움을 당하지 않아도 될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성자이신 한경직 목사님이 자신이 신사참배함으로 평생 그것으로 인하여 마음의 가책이 되었고 속죄의 의미로 살으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본문은 아무일에든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사소한 일에든지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몇 년 전부터 교회의 물건을 아끼기 위하여 우리 사모에게 설교문을 복사해 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죄라고 생각하여 제가 A4용지를 사가지고 교회에서 출력하여 사용합니다. 아주작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 죄로 인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고 마귀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아주 작은 일들이 무엇입니까? 학생들은 컨닝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사소한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부끄러움의 일을 당하는 것은 대부분의 죄의 결과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앞에서 선악과를 따먹고 그로 인하여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하여 나뭇잎으로 자신의 모습을 가리고 하나님의 얼굴을 피한 것을 볼수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하여 나단 선지자의 훈계를 통하여 부끄러움을 씻기 위하여 회개하고 눈물로 주님앞에서 용서를 구한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속에서 늘 이러한 기도를 해야하는 것입니다.
시편 51편 7.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2. 담대한 사람들입니다.
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기대와 소망을 이루는 사람들의 특징을 보면 대게 담대합니다.
성경에서 아브라함은 자신의 부모님의 집을 떠나는 일은 정말 어렵고 힘들은 일인데 담대함으로 떠났던 것입니다. 자신에게 돌아올 여러 가지 해택을 포기하고 아무도 없는 곳으로 떠나는 것은 참으로 여러운 것입니다.
에스더 또한 담대한 여인입니다. 자신은 죽으면 죽으리하면서 담대히 왕의 부름을 받지 않고 왕앞에 나가 자신의 나라를 구원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그로인하여 하만이 죽고 모르드게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아나는 부림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담대함을 보십시오.
다니엘 3장 14. 느부갓네살이 그들에게 물어 이르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한다 하니 사실이냐
15. 이제라도 너희가 준비하였다가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누구이겠느냐 하니
16.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17.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18.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신약에서는 아리마대 요셉이라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다 도망갔지만 아리마대 요셉은 담대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하였습니다.
43.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경 받는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44. 빌라도는 예수께서 벌써 죽었을까 하고 이상히 여겨 백부장을 불러 죽은 지가 오래냐 묻고
43. Joseph of Arimathea, a prominent member of the Council, who was himself waiting for the kingdom of God, went boldly to Pilate and asked for Jesus’ body.
사도 바울도 담대한 사람입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26.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28.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3. 자기 부정입니다.
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는데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와서 예수님께서 절하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는 주의 좌편에 앉게 해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때에 예수님이 그 어머니와 제자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기는 자가되고, 너희 중에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되어야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려함이 아니라 섬기려고 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세포는 새로 태어나고 그리고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 죽어가는 현상이 바로 노화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목욕탕에 가서 태와 각질을 벗겨내는 것입니다. 그때에 죽어있는 세포를 벗겨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죽지 않고 변형된 세포가 있는데 바로 암세포인 것입니다. 죽지않고 변형되어 다른 세포를 고통을 주는 세포를 의미합니다.
우리 평강이와 가정예배를 드리면서 이러한 이야기를 나누웠습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죽지 않는 사람들이 이와같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아프다고 학교가지 않습니까? 여러분 아프다고 직장가지 않습니까? 아파도 학교가고 아파도 직장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조금만 불편하면 조금만 마음이 상하면 교회가지 않습니다. 이것은 자신이 아직 죽지 않고 내 마음속에 아직도 살아있기 때문에 물질에 아직 죽지 않기 때문에 십일조 드리지 않습니다. 내가 죽어서 나오는 것이 교회요. 내 물질이 죽어서 드리는 것이 십일조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까딱없이 죽지 않습니다. 기대하고 소망하는 것을 이루기 위하여 죽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속에 더려운 것을 가지고 한해를 살수 없습니다. 더려운 욕망있는데 우리 하나님이 신령한 것들을 부워주지 않습니다.
2019년은 새로운 한해입니다. 그동안에 한해를 살아가면 우리가 더러운 것이 있으면 오늘 이 시간에 모든 죄들을 예수님의 피로 씻어야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소망하는 것이 기대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자신이 잘살고 잘먹고 명품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는 그렇게는 못할찌라도 우리는 우리의 삶속에서 비움의 삶을 살아가야합니다.
모든 위대한 종교는 자기 비움에서 시작합니다. 불교도 자기 비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비움을 통하여 스스로 부처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 비움을 통하여 예수님이 성령님이 우리 속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서 죽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영이 성령이 없는 사람들을 죽은 사람이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꾸 죽은 사람처럼 세상의 것으로 체우려고 합니다. 아닙니다. 올해는 하나님의 영으로 체워서 하나님의 영적인 복을 먼저 받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이 자기 비움이 얼마나 어려운줄 아십니까?
먹고 싶을 때 먹지 않고, 사고 싶을 때 자지 않고, 명품을 가지고 싶을 때에 명품을 갖지 않고, 자기를 나타내고 싶을 나타내지 않고 자기 이익을 위하여 움겨주고 싶을 때에 나누워주고 베풀고 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힘들은 일입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음난과 더러움이 다가올 때에 그것을 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아십니까? 조금 쉬고 싶을 때에 하나님께 나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아십니까?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하였습니다. 이 죽는 연습이 바로 새백기도회이요, 철야이요, 수요예배요, 주일 성수입니다.
저는 여러분들과 함께 철야를 하려고합니다 이곳에 와서 매년 하였습니다. 그런데 점점 하기 싫어집니다. 왜입니까? 참석하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제가 안한다고 누가 무엇이라고 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내 마음속에 그곳도 안하면 주의 종도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일을 통하여 1년을 주님과 함께 살겠다는 마음의 결심으로 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