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를 기다리며 (메시야를 기다리며)
사무엘 베케트의 작품 고도를 기다리며와 같습니다. 고도는 누구인지, 신인지, 자유인지, 메시야인지 정확하게는 알수 없습니다. 이 작품으로 1969년에 노벨상을 수상합니다.
등장 인물중에 주인공인 블라디미와 에스트라공이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고도씨를 기다립니다. 두사람의 대화는 현실과 전혀 맞지 않는 대화를 주고 받습니다. 한쪽에서 밥을 먹었냐고 물어보면 다른 한쪽에서는 난 술을 싫어한다고 대답합니다.
그들은 고도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도 모르고 그들은 그냥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치 우리 성도들이 신앙생활하고 간구하는 것이 무엇을 원하고 기다리는지 알지 못하고 그냥 그분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지나가는 포조와 짐꾼 럭키와 만나서 대화를 나누지만 역시 무의미한 대화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주변의 이야기를 나누지만 그냥 무의미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살아갑니다.
밤이 되자 심부름을 하는 양치기 소년이 고도씨는 내일온다고 알려줍니다. 마치 이단의 종교지도자들이 언제 어느 시간에 자신이 올것을 알려줍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사실을 알고 내일을 기다리지만 내일도 오지 않게 계속적으로 오지 않습니다. 내일 오지 않으면 우리 자살하자고 합니다.
결국 블라디미르는 양치기 소년에게 화를 내며 쫓아냅니다. 아침에 잠을 깬 에스트라공이 고도가 왔는지 묻지만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차라리 멀리 떠나자고 합니다. 하지만 블라디미르는 내일 고도씨를 만나기 위하여 여기와야한다고 말합니다. 오지 않는 고도로 인하여 나무를 쳐다보면서 목이나 맬까하지만 끈이 없고, 내일 끈을 챙겨와 고도가 오면 자살하자고 다짐하는 내용입니다.
블라디미르는 철학자에 비유됩니다. 고도가 올 것이라도 믿고 있는 낙천주의자 철학자입니다. 성적으로 타락한 성직자?
에스트라공 누더기 옷에 모자를 쓰고 있는 사람입니다. 블라디미르와 반대적인 성품을 가져으며 감정적이고 비관적인 사람입니다. 작품속에 계속 던지는 대사로서 할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하면서 비관적인 사람입니다.
사람마다 기다리며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들은 권력을 기다리고,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기다리고, 어떤 사람들은 좋은 신랑과 신부를 기다립니다. 우리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도 예수님을 기다리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 기다림에 지처 포기하고 좌절하고 스스로 자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믿음있는 성도는 오래 참음으로 기다리면서 끝까지 기다리는 성도들이 되어야합니다. 소망이 더디 이루어진다는 것은 자신의 바램과 기대가 자신의 생각대로 잘 이루어지지 않는 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그렇게 되면 마음이 속상하고 실망하게 됩니다그런 마음의 상태를 상한마음 깨어진 마음이라고 합니다그러나 반대로 자신의 바램과 기대가 생각한 대로 다 이루어지면 마음은 한없이 기쁘고 행복해지게 됩니다이런 마음의 상태를 생명나무에 비유한 것입니다생명나무는 에덴동산 안에 있던 나무로서 영생과 행복을 상징하는 나무입니다에덴동산에서 살면 영생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그래서 사람들은 생명나무는 구원을 설명하거나 마음의 만족과 행복을 상징하는 단어로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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