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2장 15절# 소통# 금요철야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로마서 12장 15.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16.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17.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1. 序
우리가 살아가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납니다.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 아무런 기억 없이 잊혀진 사람들도 있고 고마운 사람들고 있고 불쾌한 기분을 갖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몇번이고 해결하기 위하여 노력한적도 있습니다.
나의 학창시절에는 기억남은 선생님이 한 분 계십니다. 백골 선생님이고 영어선생님인데 군 생활을 백골부대에서 하셨다고 하여 토요일이가 일요일가 아침에 나와서 청소를 하는 날이 있었는데 나오지 않는 학생들을 점심시간에 집합시켜 몽둥이로 때리셨던 선생님입니다. 그런데 그 선생님이 우리 반에 들어와서 사람을 살아가면서 죽음으로 달려간다고 하시면서 죽기전에 우리가 해야할 일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바로 죽음 뒤에 영생을 생각하는 삶을 살라고 하시면서 예수님을 믿으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믿거나 예수님을 믿으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손을 들으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지만 저는 손을 들었고 그 선생님이 교탁 앞으로 나오라고 하셔서 앞으로 나왔더니 제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예수님 잘 믿는 사람이 되라고 하시며 저의 용기를 칭찬해주신 기억이 있습니다. (David Lim 교수님)
사도 바울은 정말로 고마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빌립보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였습니다. 바울이 감옥에 갇혔을 때 빌립보 사람들은 멀리 떨어져 있었음에도 기꺼이 바울을 도와주었습니다. 당시에는 감옥에 갇히면 스스로 먹을 것을 준비해야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감옥 생활을 할 수 없었습니다. 빌립보 사람들은 그런 바울을 헌신적으로 도두며 필요한 것을 공급해주었습니다. 그들에 대한 사도 바울의 마음은 그의 편지에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정도로 그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빌립보서 1장 3절에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사도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을 생각하며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감사의 마음을 하나님과 성도들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요즘 정말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감사한적이 있습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정말 곤란합니다. 하나님 문제를 해결해주세요.. 하고 간절히 기도했는데 정말 응답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감사 감사 감사 기도만 기억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려분들이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하고 계시는지요. 내가 사람들에게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중요한 질문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소통하면 살아왔는지 중요한 질문입니다. 나의 가족과의 관계에서 그리고 우리 동역자들과의 관계에서 나의 친척과의 관계에서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어떻게 화목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입니다.
옳바른 소통은 생명을 흘러가게 하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자신과 소통하고 있는 상대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을 전하는 소통입니다.
세상에서는 어떻게 소통하고 살고 있는가?
예전에는 편지로 소통하였지만 지금은 카카오톡, 트위터, 외국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페이스북과 같은 Social Network Service 실시간 소통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소통의 도구는 수적으로 계속 늘어나고 있고 기술적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소통의 수단이 정치적이거나 자신을 자랑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지 그 사람을 위로하거나 아품을 서로 나누는 역활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예전에 뉴스를 통하여 알게된 것은 죽은지 3개월이 되었는데 그 옆집 사람이 알지못했다는 것입니다. 외국에서는 더 심한 것은 중국에서 피투성이 되어 쓰러졌는데 주변에 아무도 그 사람을 도와주지 않는 것입니다. 미국도 뉴욕에서 피투성이 된 사람이 쓰러졌는데 그냥 지나갔다고 합니다. 누가복음 10장 30절에 선한 사람의 비유가 무색할 정도로 세상이 강팍해졌습니다.
근본적인 현상의 뿌리에는 바로 인간의 죄라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죄는 사람과 하나님을 단절시키기 때문입니다. 죄은 이기주의이고 자신만 아는 삶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죄로 물든 인간의 소통방식을 내려 놓고 하나님안에서 올바른 소통을 배워야합니다.
2. 하나님과 소통
이사야 59장 1.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2.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3. 이는 너희 손이 피에, 너희 손가락이 죄악에 더러워졌으며 너희 입술은 거짓을 말하며 너희 혀는 악독을 냄이라
가장 중요한 소통의 1번지는 바로 하나님과의 소통인 것입니다. 그 소통의 통로가 바로 기도인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하는데 지겹다고 생각하십니까? 정말 억지로 하고 계십니까? 기도가 쉬면 인생이 메말라지는 것입니다. 기도가 쉬면 자녀들이 생활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저를 기도하게하시고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관계가 행복해지게 하시는 것입니다. 저의 삶이 어려우면 아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라는 하나님의 신호구나 하면서 하나님을 찾습니다.
칼마르크스는 처음 공산주의를 만들 때에 동물의 세게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합니다. 동물의 세계를 보니 먹을 문제만 해결해 주면 평화롭게 사는 구나 생각하여 인간들에게도 먹는 문제를 균등하게 해결하면 평화롭게 사는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고합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무엇입니가? 이히려 인간 세계에는 억압과 불평등에 대한 불만과 반발만 찾아오게 되었것입니다.
근본적인 문제가 바로 하나님과의 소통이 단절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목마름의 해결은 바로 주님을 만남에서 이루워지는 것입니다. 사마리야 여인이 목마름이 해결하기 위해서 우물가에 왔다가 예수님을 만나고 영적인 목마름을 해결하고 물동이를 집어 던지고 마을로 달려가 주님을 증거하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될라 (요한복음 4장 13절)
3. 소통하려면 겸손과 온유함이 있어야합니다.
사람들과 바른 소통을 위해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점검하고 하나님앞에서 마탕히 품어야할 마음을 품어야합니다.
먼저 우리가 품어야할 마음은 겸손입니다. 겸손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존재인지 제대로 인식할 때 자연스럽게 우리의 마음에 생기는 것입니다. 억지로 훈련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큰 죄를 짖지 않았지만 모든 사람들은 다 죄인입니다. 나는 감옥에 가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살인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자신에게 조금 억울한 일이나 조금 불편한 일이 있으면 화를 내고 자신의 불편을 토설합니다. 그래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소통이 단절되고 혼자 외롭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한 마음과 온유한 마음을 품어야합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할 때에 내가 겸손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겸손한 것은 자신이 지은 죄, 즉 스데반집사를 죽인죄, 예수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한 죄들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은 죄인 중에 괴수라고 하고 평생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속에서 하찮은 것, 그리고 작은 성도의 고통까지도 함께 귀를 기울이고 겸손한 마음으로 그들의 어려움을 공유하고 함께 기도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온유함이라 헬라어로 야생마를 길들이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통제된 힘이라는 뜻입니다.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지만 그것을 억제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자신이 돈이있고 그것을 자랑할 수 있지만 그것을 자신의 쾌락으로 사용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는 것이 바로 온유의 힘입니다.
저는 우리 아버님이 대전교도소에서 40년동안 목회하시며 작은 교회를 섬기면서 살아오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왜 하나님이 그렇게 사시는 아버님에 부하게 하시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 왜 저에게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워주셔서 큰 목회할 수 있도록 하지 않으시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깊이 생각하니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만큼 살아오는 것도 은혜고, 이만큼 축복을 살고 있는 것도 은혜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부하고 능력이 있으면 그것을 이겨나갈 수 있는 제어의 능력이 있어야하는데 그것을 잘 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저에게 알맞게 주시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지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는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루살렘 올라가 예수님이 왕이 되면 나는 우의정, 좌의정해야지 하면서 서로 싸우는 모습을 볼 대에 예수님은 어떠한 생각을 하셨을까요? 아직도 죽지 않았구나?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셨을 것입니다.
4. 소통을 위한 두번째 마음 공감과 긍휼의 마음
훌륭한 교사 존경받는 리더는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공감이라는 영어의 단어가 empathy라는 단어입니다. 이 말의 뜻은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무엇인가 비어있는 상태로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인간관계의 갈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그 사람의 마음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의 예화가 생각납니다. 목사님께 어는 성도가 찾아와 다른 성도의 허물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억울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목사님이 그렇군요하면서 그 정도의 말에 공감했습니다. 그러더니 다음날 다른 성도가 찾아오 자신의 억울함을 말하면서 전날 찾아온 성도의 허물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그렇구요 하면서 공감하더라고 합니다. 그리고 성도가 나간뒤에 사모님이 오셔서 왜 다 공감하냐고 따지시니까? 사모님도 옳으십니다. 하고 공감하셨다고 합니다.
긍휼이라는 단어는 compassion입니다. com은 함께라는 뜻입니다. passion은 아픔, 고통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통과 아품을 함께한다는 뜻입니다. 아내를 긍휼이 여기고, 자녀들을 긍휼이 여기는 마음입니다. 그 래 참 아프지 수고많이 했어요. 잘 될 것야. 하면서 권면하는 것입니다. 긍휼을 함께할 뿐만 아니라 긍휼은 그 사람에게 위로의 말을 함으로 그 사람에게 용기를 얻고 이겨나갈 수 있도록 힘을 주는 것입니다. 아들에게 힘을 주고 성도에게 힘을 주는 것입니다.
5. 소통하는 자세
로마서 12장 15.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16.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17.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기쁨도 함께 슬픔도 함께하는 것입니다. 즐거워 하는 자들과 우는 자들과 함께 하라는 것입니다. 마음을 높은데 두지 말고 낮은데 두고 스스로 교만하게 살지 말고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는 것입니다.
빨리 가려면 혼자가고 멀리가려면 함께하는 말이 있습니다. 인생은 빨리가는 길이 아닙니다. 멀리가는 길입니다. 신앙생활도 40년, 60년을 해오고 있지만 먼길 가다보니 여러 사람들이 우리 교회에 오고 가는 것을 볼 수있습니다.
멀리 가기 위하여 그들과 침밀한 관계 접촉이 중요한 것입니다.
라포르(rapport)는 친밀한 관계 접촉이라는 사전적인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심리학과 의학에서 사용되는 일종의 신뢰감이란 뜻입니다. 의사와 환자 간에도 라포르가 있어야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신약실험을 할 때에 신약을 사실대로 알리고 투약한 환자들에게 65%의 투약효과가 있었다고합니다. 그런데 신약이라고 하고 설탕물을 대신 먹인 환자들에도 30%쯤 치료효과가 있었다고합니다. 이 결과가 라포르를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몸에 부여하신 자연 치유력과 더불어 의사에 대한 신뢰 즉 라포르가 이런 결과를 가져온 요인입니다. 목사와 성도들과의 관계에도 이러한 라포르가 필요하고 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끼리도 라포르가 필요하고, 거래하는 고객과의 관계에서도 라포르가 필요합니다.
결론입니다.
인디언의 속담중에 그 사람의 신발을 신어보기 전에는 함부로 그 사람을 논하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의 마음의 자세에도 이러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 사람이 어떠한 고통을 당하고 있는지, 그 사람이 어떠한 경제적인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지 우리가 그 사람을 정죄하거나 판단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누가복음 6장 31절)
우리가 예수님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영역이 소통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게 되고 믿게 되다. 따라서 우리의 작은 소통의 영역도 가법게 넘겨서는 안된다. 작은 말과 행동을 통해서 우리 안에 담긴 예수님이라는 보물이 흘러갈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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