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bible

사도행전 26장 24절 나와 같이 되기를

2013-11-11 09:12:06


 

사도행전26:24~29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13년 11월

24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 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25 바울이 이르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나이다 26 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기로 내가 왕께 담대히 말하노니 이 일에 하나라도 아시지 못함이 없는 줄 믿나이다 이 일은 한쪽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니이다 27 아그립바 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 28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29 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하니라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러한 제목으로 설교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결박받고 있지만 상당한 자부심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교만한 마음과 상당히 다르게 표현될 수 있습니다. 자신을 정확하게 평가하고 그리고 정확한 목적으로 사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자부심은 곧 힘과 용기와 삶의 추진력인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집에 명성이 있거나 삶이 확신이 있는 가문들은 자부심으로 살아갑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Noblesse oblige)라는 말은 프랑스어로 귀족의 의무입니다. 노블리스 명예, 오블리주 의무가 합하여 한 단어가 되었습니다. 지도층이 솔선수범한다는 말이고 자신의 품격을 말하고 있습니다. 14세기 프랑스와 영국간의 백년전쟁이 있었습니다. 프랑스 북부 도시 칼레는 영국군의 포위 당해 칼레 시민들이 1년 가까이 맹렬히 저항하지만 결국 영국에 항복 사절단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영국왕 에드워드 3세는 칼레 시민들의 거센 방항에 대한 대가로 모든 시민을 살려내기 위해서는 그동안 반항에 책임을 지기 위해 6명의 사람이 처형당해야한다고 요구했습니다. 광장에 모여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시민들은 처형을 자처하는 사람들은 놀랍게도 도시의 가장 부자였던 외스타슈 드 생 피에르, 시장 법률가 상인등 귀족 5명이였습니다. 다음날 속옷 차람에 목에 밧줄을 걸고 처형장에 나온 6명은 교수대를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옴기는데 임신한 영국 왕비의 설득으로 마지막 순간 목숨을 구하게 됩니다. 이들 6명의 용기와 희생전신은 오늘날까지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로 남아 있습니다. 칼레시민은 550년이 지난 1884년 조각가 로뎅에게 이들 6인의 조각상을 의로하여 10년에 걸처 1895년 칼레의 시민의 조각상을 왕성하게 됩니다. 이후 이 조각상은 복제되어 12개국으로 보내졌고 그 중 1개는 우리나라에 소장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도 자부심이 있고 성원순복음교회 다니는 성도의 마음속에도 자부심이 있어야합니다.

2. 사도 바울의 자부심 (나와 같이 되기를)

사도바울은 1차 2차 3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이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기를 원합니다. 에베소 장로들의 영접을 받고 자신의 목회 철학을 이야기하며 에베소 장도들과 이별하는 장소에 최종적으로 “나의 달려 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을 마치려함에 나의 생명을 조금도 아깝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예루살렘으로 향합니다.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만나고 그곳에서 유대인을 전도하려고 하였을 때에 먼저 유대교에 심취했던 사람들이 사도바울은 유대교의 이단의 괴수인 것을 알고 사도 바울을 죽이이로 결심한 40명이 있습니다. 이들은 사도바울을 죽이기 전에 먹지도 않겠다고 결심한 자였습니다.

표준새번역 사도행전 23장 12. ○날이 새니, 유대 사람이 무리를 지어서,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고 맹세하였다.

13. 이 모의에 가담한 사람은 마흔 명이 넘었다.

14. 그들이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로 가서 말하였다. “우리는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아무 것도 입에 대지 않기로 굳게 맹세하였습니다.

15. 그러니 이제 여러분은 의회와 짜고서, 바울이 한 일을 좀더 자세히 신문하려는 척하면서, 천부장에게 청원하여, 바울을 여러분 앞에 끌어내어 오게 하십시오. 우리는 그가 이 곳에 이르기 전에 죽이려고 준비를 다 해 놓았습니다.”

16. ○그런데 바울의 조카가 이 음모를 듣고, 서둘러 가서, 병영으로 들어가, 바울에게 그 사실을 일러주었다.

17. 그래서 바울은 한 백부장을 청해서 “이 청년을 천부장에게 인도해 주십시오. 그에게 전할 말이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8. 백부장이 그를 데리고 천부장에게로 가서 “죄수 바울이 나를 불러서, 이 청년이 대장님께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하면서, 데려다 달라고 부탁해서 데려왔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9. 천부장이 청년의 손을 잡고, 아무도 없는 데로 데리고 가서 “내게 전할 말이 무엇이냐?” 하고 물어 보았다.

20. 그가 대답하였다. “유대 사람이 바울이 한 일을 좀더 자세히 신문하려고 하는 척하면서, 내일 그를 의회로 끌어내어 오게하고 대장님께 청하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21. 그러니 대장님은 그들의 말에 넘어가지 마십시오.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고 맹세한 사람이, 마흔 명 남짓 매복하여 바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지금 준비를 다 하고, 대장님으로부터 승낙이 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22. 천부장은 그 청년에게 “이 정보를 내게 제공하였다는 말을 아무에게도 누설하지 말아라” 하고 명령한 뒤에, 그를 돌려보냈다

천부장은 유대 최고 명령자 유대총독 벨릭스 각하가 있는 가이사랴에 보내기로 결심하고 그 밤에 군사 470명을 대리고 약 102km 떨어진 가이사로 호송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을 살리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군인 동원되었는가 천부장은 1000명의 병력을 운용하는 사람입니다. 그 중에 약 반절 470명을 대동하고 바울을 짐승에 태우고 가는 장면을 상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보명 이백명, 기병 칠십명, 창병 이백명을 바울을 호위하여 가게 됩니다.

5일 후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변호사를 대동하고 총독 벨릭스 앞에서 고소합니다. 당신 때문에 태평성대를 이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 바울이라는 사람이 우리나라 유대를 전염병이 돌게 하듯이 나사랏이단을 소요케하고 있습니다. 저가 우두머리입니다. 사도바울이 변론합니다. 자신이 믿고 있는 예수님에 대하여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주님을 영접한 것을 말하게됩니다. 벨릭스는 사도 바울의 말을 듣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죄가 없음을 알고 제판을 연기합니다. 벨릭스는 자신의 아내와 사도 바울의 말을 더 듣기 위하여 혹시 돈을 얻을 수 있을 까하여 사도 바울을 불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에게 두려운 마음을 주셨고 사도 바울을 석방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구류하였습니다.

그 후 2년이 지나고 세로운 총독이 오게 되었습니다. 베스도라는 총독입니다. 이 총독도 벨릭스와 같았습니다. 사도 바울의 제판을 신속하게 처리하지 못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이 제판은 큰 잘못도 없고 단지 종교와 예수님에 대한 제판이고 종교제판이기 때문에 차이 피일 미루게 되었습니다. 제판중에 그는 자신 뿐만 아니라 당시의 유대의 왕 아그리파와 함께 제판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변론하는 내용입니다. 자신이 저기 있는 대 제사장의 문서를 가지고 다메섹으로 가다가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왜 나를 핍박하느냐의 예수님의 말씀에 혼비 백산하여 놀라게 되고 눈까지 멀게 되었으면 그 일로 인하여 기적을 체험하게 되고 그는 철저히 주님의 일만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충성이 예수믿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 예수님을 더 잘믿는 것을 깨닫고 어찌하든지 베스도 총독과 아그리바왕에게 복음을 증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베스도는 사도 바울의 말을 듣고 네가 미쳤다고 하였습니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하였다고 말합니다. 아그리바왕은 사도 바울이 적은 말로 나를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도다 하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얼마나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복음증하는 일에 최선을 다한 모습을 보게됩니다. 이번 추수감사주일을 통하여 우리 성도들이 이일에 미처 사도 바울처럼 자부심을 가지고 복음을 증거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 나처럼 되기를 원한다. ( 사도 바울의 삶)

사도행전 26장 28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29 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하니라

사도 바울처럼 되기를 원한다.

사도 바울은 다소 출생으로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특권층으로 살았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중의 베냐민 지파로서 최고의 권력층까지 올라갔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고 난 뒤에는 육체적인 차원이 아니라 정신적인 차원으로 인생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3장에 말씀하였든이 이 모든 기득권과 특권을 배설물로 여기고 예수님 밖에 자랑할 것이 없다고는 확신과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로 인하여 자신이 여러번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그러나 교회를 생각하는 마음에 비하여 이러한 일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죄수의 몸에도 불구하고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한다고 당당하게 외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인가? 용기와 믿음과 확신있는 자심감입니다.

어려분 제가 이번 주일 내내 믿음에 대하여 여러분들에게 말씀 드렸습니다. 달걀을 바위에 치면 당연히 달걀이 깨지는 것입니다. (목사님들과 이야기) 그러나 믿음이 이와 반대입니다. 세상이 이치로 생각하면 달갈이 계지지만 믿음으로 바라보면 바위가 깨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낳지 않을 병과 같은 것이 낳게 되는 것 세상의 이치로 바라보면 그것이 불가능하지만 믿음의 영적인 세계에서 보면 그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 성원순복음교회 세상의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돈도 없고 성도도 없는데 어떻게 지었을까?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보면 그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고비 때 마다 하나님이 그 물질을 준비하고 보호하시는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베스도 총독이 이렇게 사도바울에게 이야기 합니다. “바울아, 네가 미쳤구나.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하였구나” 하였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내가 미친 것이 아니라 참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왕인 아그립바 그는 유대인입니다. 그리고 유대에 대한 모든 일들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선지자도 알고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하심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유대 내에의 사건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의 기적과 표적들이 한 구석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을 왕께서 알고 계시지 않습니다. 그때에 아그립바왕이 이렇게 바울에게 말합니다. “그대가 짧은 말로 나를 설복해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고 하는가!” 하고 말하였다.

짧은 이야기나 긴 이야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전하 아그립바왕과 모든 사람들이 제가 결박받은 것 말고 저와 같이 예수님을 영접하기를 원합니다.

2. 나처럼 되기를 원한다는 2가지 측면

사도행전 26장 28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29 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하니라

자만 심으로 충만 함이 아닙니다. 자신의 삶속에서 자신의 신념으로 충만 함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예수님에 대한 확신으로 믿음으로 충만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우리나라 역사를 보면 속세를 버리고 낙향하여 제자들을 교육하고 그리고 저술활동에 충신한 선비들을 보았습니다.

벼슬도 싫고 명예도 싫고 정든 언덕에 초가집 짓고 밭에 나가 김도 매고 밤이면 사랑방에서 새끼를 꼬는 일들을 하면 부자와 벼슬아치들을 부러워하지 않는 자심부으로 충만한 절개 곧은 분들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 총독과 유대의 왕과 많은 고관들 앞에서 자신이 예수님을 만난 사건과 지금 내 모습은 부족하지만 나와 같이 예수님을 믿어 진정한 평화와 복을 누리기를 원한다고 고백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신분상 지금의 모습은 별거 아니지만 훗날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난뒤 2000년 뒤에 아니 천국에서 사도바울의 모습과 그 당시의 모습을 상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사도바울은 전도의 불타는 열정을 우리가 느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마음이 마치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잃은 양을 찾은 목자 비유]를 통하여 얼마나 즐거우면 그 벗과 이웃을 불러다가 즐기자 하면 잔치를 하겠습니까? 양 한 마리의 가격은 얼마나 나가겠습니까?

[잃은 드라크마를 찾은 여인 비유] 이 여인이 드라크마를 잊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찾게 되었습니다. 찾아내고 벗과 이웃을 불렀다고 합니다. 드라크마는 얼마 정도 합니까? 약 45달러입니다. 약 5만원정도 되는 것입니다. 이 돈을 찾았는데 그 돈 보다 더 많이 드는 것입니다. 이는 전도의 기쁨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잃은 아들을 되찾은 아버지 비유]를 더 극명합니다. 압권입니다.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유산으로 받은 물질을 다 써버렸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돌아올 때에 더 많은 것으로 그에게 주었던 것을 볼수 있습니다.

전도는 최고의 부가가치 산업입니다. 사업을 잘하려면 최고의 부가가치를 올려야합니다. 여러분 삼성에 만든 핸드폰 스마트 폰의 원가는 얼마일까요? 재료비는 그리 많치 않을 것입니다. 그러데 기술과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부가치를 올린 것입니다.

여러분 작은 컴퓨터의 반도체를 통하여 많은 물질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가가치를 가장 높이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도 돈이 들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복음증거입니다. 혹시 여러분들이 돈이 들더라도 하나님이 이 것을 더 많이 보상해주시는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서울=연합뉴스) 방현덕 기자 = 올해 한국의 경상수지 흑자폭이 수출대국 일본을 처음으로 앞지를 것으로 보인다. 3일 한국은행과 일본 재무성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한국의 경상흑자는 총 422억2천만달러로 집계됐다. 반면에 일본의 경상수지 흑자폭은 같은 기간 415억3천만달러로 한국보다 7억달러 가량 적었다. 연중 누계 기준으로 한국이 일본보다 많은 경상흑자를 거둔 것은 통계가 존재하는 1980년 이후 최초다. 연간 기준으로 따져도 한국이 630억달러(한은 전망), 일본이 601억달러(일본총합연구소)로 올해 첫 역전이 예상된다. 이 같은 한국과 일본의 경상흑자 역전현상은 최근 양국의 경제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동안 한국의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일본과 비교 대상이 아예 못됐다. 경제규모가 한국의 약 6배(2012년)에 달하는 등 규모의 차이가 컸기 때문이다. 경상흑자도 금융위기 때인 2008년 일본(1천593억6천만달러)이 한국(32억달러)의 50배에 달했다.

2011년도 일본 대지진으로 에너지 수입이 대폭 늘어난데다 한때 세계를 호령하며 일본을 제2의 경제대국으로 일궜던 전기전자 기업들이 몰락한 탓이다.한은 관계자는 “지난해 말 이후에는 일본의 ‘아베노믹스’로 엔화가치가 40% 가량 절하되며 경상수지의 달러 환산액이 줄어든 탓이 크다”고 설명했다. 같은 기간 한국의 흑자폭은 293억9천만달러→260억7천만달러→431억4천만달러로 상승세를 탔다. 휴대전화·자동차 등 주력 수출품목이 호조를 보여서다. 올해 남은 기간도 탄탄하다. 한국은 9월까지 20개월 연속 경상흑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10월 수출도 사상 처음으로 500억달러를 돌파했다. 반면에 일본은 남은 기간 경상수지 악화가 예상된다. 겨울철 난방수요로 에너지 수입이 급증하기 때문이다. 작년 11월~올해 1월도 3개월 연속 경상적자를 냈다.

왜 우리나라가 이렇게 일본보다 잘 살게 될까요? 저는 정치를 잘하여서 그렇게 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오직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중국의 교수가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넘어가는 모든 세계의 나라들은 그곳에 교회와 예수님이 있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전도하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들이 일어난다고 하였습니다.

존 번연은 이렇게 말합니다. “ 때로는 사슬에 묶인 사람이 사슬에 묶인 사람들을 대하는 것처럼 아무런 희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나의 쇠사슬이 철컹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구원의 길을 전했다.

사도 바울의 심정을 보십시오. 그는 복음성에 절절이 복음증거에 대한 구절들이 많이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롬 9:1-3).

“골수(骨髓)”라고 하는 성경의 표현은 인간의 영혼 깊숙이 있는 핵심적인 자리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이 골수라는 말은 문자적인 의미로 뼈 속에 흐르고 있는 육체적인 피를 가르킵니다. 골수에서 피가 형성되고 이곳에서 사람의 생명의 근원이 창조되는 곳입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자신의 존재 전체가 내면으로부터 견딜 수 없는 슬픔으로 가득 차 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사도 바울의 골수에 사무치는 근심은 바로 구원받지 못한 자신의 가족과 동포들에 대한 근심이었습니다.

데이비드 브레이너드(David Brainerd)입니다. 그는 18세기에 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했던 사람입니다. 21살에 회심했고, 25살에 선교사로 소명을 받았고, 29살에 꽃다운 나이로 요절했습니다. 그는 짧은 생애를 살면서 기도에 자신을 바치고 인디언 선교에 자신을 다 드렸습니다. 결국에는 건강을 돌보지 않은 이유로 폐결핵에 걸려서 죽었습니다. 그가 죽기 직전에 남겨놓은 일기 가운데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영혼을 주님께 인도할 수 있다면, 내가 어디에 있든지, 어떻게 살든지, 또 무엇을 견디게 되든지, 나는 관계하지 않노라. 잠을 자면 저들을 꿈꾸고, 잠을 깨면 첫째 생각이 잃어버린 영혼들이라. 아무리 박식하고 능란하며 또 심오한 설교와 청중을 감동시키는 웅변이 있을지라도, 그것이 결코 인간의 심령에 대한 뜨거운 사랑의 결핍을 대신할 수는 없노라”

말씀을 마칩니다.

사도행전 23:1을 보면 “내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다”고 고백합니다. 바울은 죄수 몸으로 묶여 있습니다. 하지만 부끄러움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떳떳하게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합니다” 말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교만에서 나온 말이 아닙니다. 스스로 양심에 부끄러움이 없이 살았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부끄러움이 없이 사는 것은 예수님을 증거한는 삶입니다. 성원순복음교회 성도들이 이번 주일 내내 주의 복음을 증거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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