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4.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5.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1. 序
성경에서 양은 우리 인간들에게 가장 가까운 동물들 중에 하나입니다. 인류역사상, 성경의 역사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짐승이 있다면 양입니다.
창세기 4장 4절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는 짐승이 양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께 제사 드릴 때에 소나 양이나 염소나 비둘기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님께 가장 많이 드리고 즐겨 드리는 짐승이 바로 양인 것입니다.
출 29장 38. ○네가 제단 위에 드릴 것은 이러하니라 매일 일 년 된 어린 양 두 마리니 39. 한 어린 양은 아침에 드리고 한 어린 양은 저녁 때에 드릴지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에
요한복음 1:29○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그리고 공생애를 마치면서 십자가에 죽는 모습을 이사야 53장 7절에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세상에서 가장 양이 많은 나라는 뉴질랜드, 호주, 영국 등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나라들이 양의 떨을 깍아 의복을 수출하고, 양고기를 수출합니다. 내장과 똥 외에는 버릴 것이 없습니다. 양은 온유하고 돌봄이 쉬워스 뉴질랜드 경우에는 사람보다 양이 더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들과 공존하면서 살아가는 짐승중에 양을 우리에게 주시면서 우리에게 영적인 교훈을 주십니다. 목자 없이 살아갈 수 없다, 예수님이 우리의 목자이시다.
2.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나의 목자는 하나님)
3.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목자 만큼 양을 아는 것도 없습니다. 양이 필요한 것들에 대하여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양은 목자에 대하여 잘 알고 있지만 가끔씩 고집을 불려 목자의 음성을 듣지 않고 자신의 마음대로 살아갑니다. 그 때에 어려움을 당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평안과 축복은 목자에게 있지 않고 양에게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처럼 세상이, 땅이, 복을 주는 줄 알고 우상을 섬기다가 어려움을 당하고 나라가 망하는 것 처럼 우리는 세상의 나의 목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목자가 되어야합니다. 양을 기르는 것이 세상이 아나라, 물질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기른다고 확신하며 사는 것입니다.
저는 뭉치를 키우는 적이 있스니다. 페키니즈라는 개입니다. 내가 뭉치에게 요구하는 것은 아주 단순합니다. 대소변 가리는 것입니다. 패드에 바르게 쌓아야하는데 자신 마음대로 아무데나 싸므로 주인에게 불편을 줍니다. 그래서 개를 훈련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다른 사람들을 물거나 짖지 말라고 할 때에 짖지 말아야합니다. 우리 뭉치가 우리 청년들을 물었습니다. 그래서 청년들이 교육관에 들어오는 것을 두려워하였습니다.
양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양이 음성을 듣고 수많은 양들이 목자에 달려오는 영상을 보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양의 주인의 음성을 흉내내더라도 양은 반응하지 않습니다. 오직 주인의 음성만 듣고 달려오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 신앙생활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담임목사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때로 새벽기도회 시간에, 수요예배 시간에, 주일 예배 시간에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성원순복음교회의 식구들은 목자의 음성,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한 주간을 세상에서 열심히 생활합니다. 직장에 나가서 돈을 벌고, 운전도 하시고, 학교에 나가서 일을 합니다. 그리고 주일날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하여 찾아오는 것입니다.
때때로 양들은 이리를 만나가나 맹수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때에 양의 울음소리가 주인에게 들려지는 것입니다. 바로 기도소리인 것입니다. 그 기도 소리를 통하여 주인이 달려와 이리에게서 위험한 곳에서 건저주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목자를 따릅니까? 바로 주님이 우리를 가장 잘 알고 주님이 세상에서 최고의 목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만큼 우리를 사랑하는 목자가 어디 있습니다. 다른 목자들은 양을 이용합니다. 양을 죽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요한복음 10장 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주 모습 내 눈에 안 보이고, 주 음성 내 귀에 안 들려도 내 영혼 주를 만나 신령한 말씀 늘 배우도다.”
3. 양의 뿌리를 통하여 양각나팔이 됩니다. (복음의 나팔)
여호수아 6장 4.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나아갈 것이요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며 그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5.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불어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 하시매 6.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제사장들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언약궤를 메고 제사장 일곱은 양각 나팔 일곱을 잡고 여호와의 궤 앞에서 나아가라 하고 7. 또 백성에게 이르되 나아가서 그 성을 돌되 무장한 자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나아갈지니라 하니라
양각나팔을 쇼파르[Shofar]라고 합니다. 쇼파르는 숫양의 뿔로서 관약기, 즉 나팔을 만드는 것입니다. 양각나팔은 출애굽기에서 처음 언급되었습니다. 전쟁할 때에, 회개할 때, 승리할 때, 희년을 선포할 때등 여러가지 용도로 나팔을 붑니다. 요즘 어느 교회에서는 나팔을 불면서 예배를 시작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양각나팔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해도 신앙생활에 지장이 없습니다. 그러나 양각나팔의 의미를 알 때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인 의미를 더 깊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양각 나팔은 오늘 본문에서 승리를 위한 나팔입니다. 하루에 한 바퀴식 돌다가 마지막 날 일곱번재 날에는 일곱바퀴를 돌았습니다. 일곱제사장이 나팔을 불 때에 백성들은 크게 소리를 외쳤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더니 여리고 성이 무너졌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수많은 철옹성과 같은 여리고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린양 예수님의 뿔로서 복음의 나팔, 치료의 나팔를 불면 철옹성이 무너지고, 모든 질병과 삶의 문제들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세상의 성벽이 높고 아무도 무너뜨릴 수 없는 질병, 자녀의 문제들 앞에서 우리는 주님의 양각나팔을 통하여 힘차게 외칠 때에 우리의 모든 문제가 무너지고 쓰러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팔소리 천지 진동할 때에 (180장)
하나님의 나팔소리 천지진동 할 때에 예수 영광 중에 구름타시고 천사들을 세계만국 모든 곳에 보내어 구원 얻은 성도들을 모으리
주님 오시는 날에도 예수님의 나팔소리와 함께 천군 천사들과 함께 이땅에 재림하실 것입니다. 그때에 하나님의 심판의 나팔소리, 구원의 나팔소리를 다 듣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양각나팔은 복음의 나팔입니다.
교회에서 세상의 정치 이야기를 하면 안됩니다. 복음의 나팔이되어야합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주식과 돈 버는 이야기를 할 때에 관심을 가집니다. 그러나 세상의 복음의 이야기를 할 때에 아무도 듣지 않습니다. 양의 뿔에서 나오는 예수님의 복음의 이야기를 할 때에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4. 양의 가죽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 기록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 22:19○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양은 죽어서 양의 가죽을 남깁니다. 이 양의 가죽에 성경을 기록하였습니다. 그것을 양피지라고 합니다. 양피지는 필기구로 사용하려고 가공한 양가죽입니다. 양피지는 파피루스보다 튼튼해서 성경 두루마리로 사용되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가져오도록 부탁한 양피지는 아마도 히브리어 성경의 일부분이었을 것이다. 사해 두루마리의 일부도 양피지 사본이었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13.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하나님의 말씀을 작성한 선지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원본이 없어질 수 있으니까? 사본을 작성하는데 그 사본들을 양피지에 작성하였습니다. 사본들의 이름은 사해사본, 맛소라 사본, 사마리아 사본, 알렉산드리아 사본, 바티칸사본 들이 있습니다.
양이 죽음으로서 성경이 되었습니다. 마치 어린양 예수님이 죽음으로 말씀이 육신이 되것과 같습니다. (요한복음 1장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양은 자신이 죽고 그 가죽을 통하여 말씀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죽어 말씀이 된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죽지 않으면 우리 삶속에 말씀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육의 생각, 세상의 생각으로 가득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나오지 않습니다. 양의 본성은 다른 양들을 받고 양은 자신의 마음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하나님의 뜻을 모르면 자신의 옳은대로 행하고, 결국은 범죄의 길로 타락의 길로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엔게디 지역에서 발견된 고대성경 1970년대 경 양피지가 석탄처럼 까맣게 탔습니다. 이 때에 조금만 거드려도 부서지므로 해독이 불가합니다. 그래서 현대 과학자들이 까맣게 탄 양피를 과학적으로 복원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5. 양은 제물이 되어야합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히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 9:12)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만 그 가장 중요한 목적은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하여 희생의 제물이 되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고 말씀하셨습니다. 분명히 예수님은 만민의 죄를 대속하는 제물이 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제물이 되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보혈의 피를 믿는 자들은 모두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양은 털을 통하여 우리를 따뜻하게, 양 표피를 통하여 성경을, 양의 가죽을 통하여 이불과 신발을, 양의 젖을 통하여 건강을, 양의 죽음을 통하여 우리의 구속함을 주었습니다.
마치 하나님께 아담과 하와의 범죄함을 인하여 그들을 구원하는 예표로 가죽옷을 입혀주신 것 처럼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의 가죽옷을 입혀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드릴 때에 하나님이 미리 준비하신 어린 수양을 통하여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결론
양의 한자는 羊가 들어 가는 한자들은 아름답다, 옳다, 선하다라는 뜻으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선(善)은 양(羊)과 제단모양(ㅛ),입구(口)가 모여서 선이 됩니다. 옳음의 義는 나 我(나 아) 위에 어린양 예수님 있어야 옳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어린 양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내가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