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2장 1절 #고독한 결단
(수2:1)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싯딤에서 두 사람을 정탐으로 가만히 보내며 그들에게 이르되 가서 그 땅과 여리고를 엿보라 하매 그들이 가서 라합이라 하는 기생의 집에 들어가 거기서 유숙하더니
(수2:2) 혹이 여리고 왕에게 고하여 가로되 보소서 이 밤에 이스라엘 자손 몇 사람이 땅을 탐지하러 이리로 들어 왔나이다
(수2:3) 여리고 왕이 라합에게 기별하여 가로되 네게로 와서 네 집에 들어간 사람들을 끌어내라 그들은 이 온 땅을 탐지하러 왔느니라
(수2:4) 그 여인이 그 두 사람을 이미 숨긴지라 가로되 과연 그 사람들이 내게 왔었으나 그들이 어디로서인지 나는 알지 못하였고
(수2:5) 그 사람들이 어두워 성문을 닫을 때쯤 되어 나갔으니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하되 급히 따라가라 그리하면 그들에게 미치리라 하였으나
(수2:6) 실상은 그가 이미 그들을 이끌고 지붕에 올라가서 그 지붕에 벌여놓은 삼대에 숨겼더라
(수2:7) 그 사람들은 요단 길로 나루턱까지 따라갔고 그 따르는 자들이 나가자 곧 성문을 닫았더라
1. 序
의암 주논개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논개(論介, 1574년 9월 17일[1] (음력 9월 3일) ~ 1593년) 또는 주논개(朱論介)는 조선 선조 시대의 열녀이다. 조선 전라도 장수현 임내면 대곡리 주촌마을 출생으로 1571년 선비 주달문(朱達文)과 부인 밀양 박씨 사이에서 반가(班家, 양반의 집안)의 딸로 태어났다. 부친 주달문은 진사(進士)로 일찍이 슬하에 아들 주대룡을 두었으나 15세에 괴질로 요절하였고 이후 40세가 넘은 나이에서야 딸 논개를 보았다. 1578년 부친 주달문의 별세 후 숙부 주달무에 집에 의탁되었으나, 숙부가 벼 50석에 김부호(金富豪)의 집에 민며느리로 혼인시키려 하였습니다.
이를 피해 모녀는 경상도 안의현(현재의 경상남도 함양군)의 친가에서 피신하였고, 이에 부호는 1579년 기소하여 모녀를 구금하였다. 이때, 장수현감 충의공 최경회(崔慶會)의 명판결로 모녀를 석방시키고 모녀는 현감의 관저에 의탁하게 되고 후일에 최경회가 성년이 된 논개를 후처로 맞아 들인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최경회가 전라 우도의 의병장으로 의병을 모집하고 병사를 훈련할 때 논개는 이를 도우며 보필한다. 1593년에 최경회가 경상우도(慶尙右道) 병마절도사로 임명되어 동행하였으나, 진주성이 함락되고 최경회가 순국하자 논개는 일본군들이 진주 촉석루에서 연회를 벌이고 있을 때 왜장 기다 마고베(게야무라 로쿠스케)를 유인하여 진주 남강 진주 의암에 기다 마고베를 끌어 안고 남강에 투신하여 순절(殉節) 했다.
2. 기생 라합
(마1:6)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마1:6) 이새는 다윗왕을 낳으니.
여리고성에서 살면서 기생 라합의 삶은 술도 팔고, 몸도 팔았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과 이사를 듣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형성되었고 이스라엘의 백성이 되기로 마음을 먹었던 것입니다. 더 이상 기생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의 첩자를 도와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첩자를 도와주다가 들키면 사형입니다. 죽을 수 있는 상황이지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더 크기 때문에 그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영적으로 주고자하는 의미는 아무리 추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믿고 따르면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예수님의 족보에 오를 수 있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신분이 아니라 현재의 믿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잘못된 편견과 오해
1) 하나님의 나라는 권력있는 사람들이 다스린다는 생각은 잘못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믿음이 있는 사람들이 다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전1: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 학문적으로 지혜있는자 유명한 의사, 대학교수가 세상을 다스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사모와 세브란스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소화기내과에 수많은 학생중에서 공부도 잘해야하고, 수술도 잘해야 교수로서 진료하는 의사로 살아남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환자를 치료함에 있어 머리도 좋고 수술 실력도 좋아야 병원으로부터 환자로 부터 명의라는 칭의를 받습니다. 세상은 머리와 능력이 세상을 지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에 의하여 다스려지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나라는 종교의 힘, 천주교, 기독교, 불교에 힘으로 이끌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 내에서도 각 교단의 힘이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 중에서 교회의 사이즈에 의하여 세상이 이끌어간다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의인에 의하여 이끌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에 의인 10사람을 찾으시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얼마나 철저히 믿고 하나님만을 위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하여 입성하는 관문이 바로 여리고성입니다. 여리고성을 이기기 위해서는 그곳을 정탐하고 그곳의 상황을 알아야하는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여호수아는 정탐군을 여리고성으로 침입시켰습니다. 작은 여인, 기생라합의 도움을 받고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이 믿음있는 행동이 그 가정을 살리고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가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고전1: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 기생 라합
하나님의 말씀에 왜 이름만 썼으면 좋은데 왜 기생자를 붙이는지 모르겠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약2:25)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를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약2: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세상은 기생으로 부르지만 하나님은 사랑스러운 딸이고 이런 기생도 하나님의 족보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중요한 것은 세상에서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서 인정받아야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교회들이 욕을 먹고 있고, 세상에서는 교회를 외면하고 있지만 지금 도 하나님은 교회를 통하여 영혼이 구원받고, 교회를 통하여 천국의 출장소로서 구원받는 사람의 공동체가 되어서 열심히 천국복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죄인들이 모이는 곳이지만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통하여 천국에 들어올 동안 그것에서 조금이라도 거룩하게 살도록 하는 장소입니다.
4. 기생라합은 하나님 편에 섰습니다.
(수2:4) 그 여인이 그 두 사람을 이미 숨긴지라 가로되 과연 그 사람들이 내게 왔었으나 그들이 어디로서인지 나는 알지 못하였고
(수2:6) 실상은 그가 이미 그들을 이끌고 지붕에 올라가서 그 지붕에 벌여놓은 삼대에 숨겼더라
세상은 어디에 줄을 서느냐에 따라서 대통령이 되기도하고 대통령이 되지 못하기도합니다. 특별히 국회의원도 마찮가지입니다. 어느 당의 공천을 받느냐에 따라서 당선되기도하고 당선이 되지 못하기도합니다.
전쟁이 감도는 가운데 여리성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여리고 왕의 편에 서있습니다. 여리고성의 왕의 말에 따라 명령을 순종하고 준행합니다. 그러나 라합이라는 여인은 여리고 왕 편에 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편에 섰습니다. 여리성 편에서는 매국노입니다. 나라를 팔아 먹는 이완용과 같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라합은 세상의 편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편에 선 것입니다. 별볼일 없는 이 여인이 이스라엘 편에, 하나님의 편에 섰기 때문에 그와 그의 가족들이 살았습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월급 많이 주고, 복지가 좋은 곳에 줄을 섭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잘 해주는 회사로 옴기고 조금이라도 연봉이 좋은 곳으로 옴깁니다. 자신에게 불편하게 하면 하나님도 버리는 세상입니다. 여러분들은 조금 불편하다라도 하나님의 편에 여러분들은 조금 불편하고 힘들더라고 교회에 편에, 목사님 편에 서서 주의 일을 감당하시기를 기도합니다.
5. 라합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수2:9)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백성이 다 너희 앞에 간담이 녹나니
라합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홍해를 건너고, 광야을 지나며, 수많은 대적들을 이기게 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던 것입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성으로 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전쟁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는 시점입니다. 이제 결정해야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을 것인가? 아니면 세상의 철옹성과 같은 여리성과 여리성 왕을 믿을 것인가? 하는 결정입니다.
그러나 라합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하나님 능력 편에 섰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지만 죽고 난 뒤에는 심판이 있음을 믿었습니다. 에베소서의 때를 아끼라는 말입니다. 사람이 기회가 있을 때에 기회를 잡으라는 것입니다.
어느 영화인지 2028년에 지구로 향하여 혹성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안전한 지하 창고, 어떤 사람들은 죽음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인공을 다가오는 혹성을 향하여 달려가서 혹성을 폭파하기 위하여 혹성에 도착하고 혹성을 폭파하는 일을 합니다. 물론 영화이기 때문에 상상해서 영화를 만들었지만 우리가 능히 생상할 수 있는 일입니다. 어려운 일을 만나면 대부분 도망가고 숨고 피하지만 진정으로 위대한 사람들은 그것에 맞서서 싸우고 어려움을 극복하는 사람들입니다.
라합은 하나님의 능력을 들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능력을 편에 섰습니다.
(수2:10)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라
“우리가 들었다” 여러분 우리가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살기 위하여 우리가 결단하려고 금요철야에 나온 것입니다. (롬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라합은 하나님을 상천하지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수2:11)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의 연고로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 하지에 하나님이시니라
“상천하지에 하나님이시니라”하늘과 땅에 오직 유일 하신 하나님입니다. 욥은 하나님에 대하여 알기만 했지만 욥은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상천하지의 하나님임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을 체험했습니다. (욥42: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현대 많은 기독교인들은 무엇인가? 복을 받기 위해서나, 나의 삶에 저주가 없기를 위해서 예수님을 믿습니다. 부적처럼 십자가를 목에 걸고 다니면서 모든 저주에서 지켜주시는 부적처럼 살아갑니다. 우리는 라합처럼 안연한 복과 부적처럼 귀신으로 부터 안전하는 그런 복이 아니라 어려움을 극복하고 도전하고 쟁취하여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당시 라합의 결단 앞에서 박수 처줄 사람도 없고 응원단도 없고 함께 기도해줄 사람도 없습니다. 오직 자신이 결단하고 결과를 기다려야하는 상황입니다. 지금 말하면 목회자도 없고, 중보기도줄 권사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사람을 의지 하지 않고 전능하신 하나님, 상천하지의 하나님을 의지하며 나갔습니다.
마치 마틴 루터와 같은 심정이였을 것입니다. 대다수 카톨릭 성도들인데 종교개혁을 한다고 하면 얼마나 두려움과 공포가 밀려왔을까요?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루터는 “주여 제가 여기 있나이다 제 양심은 이 말씀 외에는 다른 것에 매일 수 없습니다”라고 고백하므로 종교 개혁을 하였습습니다.
마음은 믿는데 고백하지 않는 것은 비겁한 침묵입니다. 기독교인이면 아리마데 요셉처럼 떳떳하게 확신을 가지고 사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6. 라합은 가족을 구원했습니다.
(수2:12) 그러므로 청하노니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은즉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하여 나의 부모와 남녀 형제와 무릇 그들에게 있는 모든 자를 살려주어 우리 생명을 죽는데서 건져내기로 이제 여호와로 맹세하고 내게 진실한 표를 내라
기생라합은 나 혼자만 여리성에 빠져나가는 비겁한 이기주의자 아니라, 내 부모와 남녀 형제와 무릇 그들에게 있는 모든 자를 살려 달라고 강청했습니다.
정탐군들이 약속합니다. (수2:18) 우리가 이 땅에 들어올 때에 우리를 달아내리운 창에 이 붉은 줄을 매고 네 부모와 형제와 네 아비의 가족을 다 네 집에 모으라
붉은 줄을 매고 네 부모와 형제와 네 아비의 가족을 다 네 집에 모으라. 붉은 줄은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고 하고 있습니다. 여리고성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자신 혼자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확신이 있었습니다. 믿음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라합을 닮아야합니다.
길거리 노점에서 붕어빵을 만들어 팝니다. 틀에 부어서 만들기 때문에 빵 모양이 똑같습니다. 그래서 부모를 꼭 닮은 아이를 보면 붕어빵이라고 합니다. 가족을 보면 무엇을 닮든지 닮습니다. 외모나 행동뿐만 아니라 성품까지도 부모를 닮습니다. 걸어가는 뒷모습이나 웃는 모습까지도 닮습니다. 같은 유전자를 물려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닮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우리도 사랑의 하나님을 닮아야합니다.
가시고기는 주둥이로 강바닥의 모래를 퍼내고 그곳에 수초로 둥지를 짓고 알을 낳습니다. 가시고기 수컷은 이때부터 알을 보호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합니다. 몸집이 큰 물고기들과 처절한 싸움도 하고 천개 넘는 알들의 원할한 산소 공급을 위해 뒤집어 주고 지느러미로 끊임없이 부채질을 해줍니다. 그렇게 하루 24시간을 단 한순간도 먹지도 쉬지도 않고 반복하면 일주일이 지나면서 부화가 시작됩니다. 그동안 단 한순간도 먹지도 쉬지도 못한 가시고기는 새끼들에게 먹이가 되어 먹히기 위해서 둥지 옆에서 죽어갑니다.
아빠 가시고기의 사랑은 목숨까지도 내놓는 사랑입니다. 가시고기는 우리 하나님을 닮았습니다. 가시고기 새끼들도 자라면 아빠 가시고기와 같은 특별한 사랑을 하게 될 것입니다. 새끼는 부모를 닮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기생 라합처럼, 예수님처럼 닮아야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단순히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가족, 모든 친지들을 다 구원하는 일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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