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12장 1절 #말과 경주하기 #홍철기목사 #주일설교 #유튜브참조
1. 여호와여 내가 주와 변론할 때에는 주께서 의로우시니이다 그러나 내가 주께 질문하옵나니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반역한 자가 다 평안함은 무슨 까닭이니이까
2. 주께서 그들을 심으시므로 그들이 뿌리가 박히고 장성하여 열매를 맺었거늘 그들의 입은 주께 가까우나 그들의 마음은 머니이다
3.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아시고 나를 보시며 내 마음이 주를 향하여 어떠함을 감찰하시오니 양을 잡으려고 끌어냄과 같이 그들을 끌어내시되 죽일 날을 위하여 그들을 구별하옵소서
4. 언제까지 이 땅이 슬퍼하며 온 지방의 채소가 마르리이까 짐승과 새들도 멸절하게 되었사오니 이는 이 땅 주민이 악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그가 우리의 나중 일을 보지 못하리라 함이니이다
5. ○만일 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네가 평안한 땅에서는 무사하려니와 요단 강 물이 넘칠 때에는 어찌하겠느냐
6. 네 형제와 아버지의 집이라도 너를 속이며 네 뒤에서 크게 외치나니 그들이 네게 좋은 말을 할지라도 너는 믿지 말지니라
장모님과 함께 주일예배를 드리고, 월요일날 아침 7시에 교회에서 출발하여 영등포역에서 광주역으로 향하였다. 장모님과 함께 오랫만에 여행이였다. 무려 4시간, 오고가고 8시을 기차에 보내야했다. 12시 30분에 도착하여 잠깐 점심을 먹고 다시 기차를 타야했다. 어떻게 이 시간을 보낼까? 생각하다가 싱가폴 가는 비행기를 생각하면 책을 읽을 경심을 하였다. 오늘은 그 책을 읽고 은혜받은 것을 여러분들에게 설교하려고합니다
새벽기도회 시간에 고린도전서 7장에 대하여 설교하다가 헨리 8세의 예를 들었습니다. 헨리 8세 당시에 유럽은 카톨릭 교황이 전 유럽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교황의 허락없이는 결혼 이혼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헨리 8세는 조광지처를 버리고 새로운 아내를 얻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얻은 아내가 그 유명한 앤 블린이라는 여성입니다. 앰 블린도 천일만에 사형당했다고 하여 천일야화입니다. <천일의 앤>(Anne of Thousand Days)은 영화도 있습니다.
핸리 8세는 영국 중심의 성공회 즉 기독교를 만들어 로마교황으로부터 독립하였습니다. 핸리 8세가 죽고, 에드워드 6세가 왕이 되었지만 일찍 죽고, 이복 누나인 메리 여왕이 왕이 되었습니다. 이때에 국교를 다시 천주교로 바꾸었습니다. 당시의 수많은 기독교인들을 처형하였습니다. 그 때에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존 낙스의 기도는 백만대군보다 더 무서운 기도이다. 그리고 메리여왕도 죽고 자녀가 없으므로 엘리자베스 1세가 영국의 여왕이 되었습니다. 메리 여왕 당시 엘리자벳스 여왕이 감옥에 가두고 여러번 죽을 고비를 넘겼으나 살아남아 영국을 빛낸 최고의 여왕이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섹스피어가 작품들이 유명해지고 엘리자베스 1세가 스페인 제국 무적함대를 칼레 해전에서 완전히 태풍으로 격파하고, 동인도회사를 세우는 등, 수많은 치적을 남겨 약소국이었던 잉글랜드가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이 될 수 있었던 기틀을 마련한 여왕이다. 영국은 2022년 현재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통치하며 나라를 다스리고 있습니다.
2. 본문의 설명
예레미야는 눈물의 선지자입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베냐민 땅 아나돗의 제사장들 중 힐기야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렘1장1절) “내가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여 선지자로 세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나는 아이라 말할 줄도 알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 시키소서라고 거절합니다. 하나님은 “너는 아이라고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 보내든지 너는 가서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어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고 말씀합니다.
예레미야도 마찮가지지만 목회를 하면서 이런 기도를 합니다.
예레미야 11장 21절 여호와께서 아나돗 사람들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그들이 네 생명을 빼앗으려고 찾아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언하지 말라 두렵건대 우리 손에 죽을까 하노라 하도다
생명의 위협을 가하는 아나돗 사람입니다. 아나돗 사람들은 예레미야 1장 1절의 말씀처럼 자신의 이웃입니다. 선지자들 제사장들입니다. 지금 말하면 같은 동역자들 목사님들이 죽이려고합니다. 이유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언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예언이 선지자들의 예언과 다르고 삶과 다르기 때문에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합니다.
예레미야 33장 1.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두 번째로 임하니라 이르시되
예레미야 37장 16○예레미야가 뚜껑 씌운 웅덩이에 들어간 지 여러 날 만에
예레미야와 비슷한 상황이 있습니다. 바로 하박국서입니다. 예레미야와 동시대인이며 합1:6에 바벨론 침입, (주전 640~609년) 여호야김의 통치 초기임을 알수 있습니다. 하박국은 다른 나라의 침입에 대하여 하나님께 질문합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같은 동내, 같은 민족, 같은 제사장들끼리의 핍박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28장 시드기야 4년에 하나냐를 통하여 고난)
3. 예레미야의 질문
예레미야 12장 1. 여호와여 내가 주와 변론할 때에는 주께서 의로우시니이다 그러나 내가 주께 질문하옵나니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반역한 자가 다 평안함은 무슨 까닭이니이까 2. 주께서 그들을 심으시므로 그들이 뿌리가 박히고 장성하여 열매를 맺었거늘 그들의 입은 주께 가까우나 그들의 마음은 머니이다
예레미야의 질문 악한 자의 형통, 반역자의 평안함, 왜 하나님 그들을 심으시고 뿌리가 박히고 성장하여 열매를 맺게 하십니까? 입은 주께 가까우나 그들의 마음은 아주 멈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제대로 된 답변을 듣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않습니다. 하박국에게는 믿음으로 살아라, 오늘 본문에서는 말과 경주하거라고 답변합니다. 언제나 동문서답, 이해 할수 없는 답변입니다.
예레미야는 무당의 답변처럼 몇날 몇시에 그들이 죽을 것이다. 바벨론이 망할 것이라고 답변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기도하고 살아라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라고 답변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실 깊이 생각하면 이상한 답이지만 그 말씀이 맞습니다. 결국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전도서 12장 13절) 일의 끝은 하나님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장 28절)
목사님 왜 우리 자녀들이 이러한 어려움을 당해야합니까? 하고 질문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왜 하나님 우리 가정에 물질의 축복을 주시지 않습니까? 하고 질문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답변합니다. 성도님 기도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보세요 하나님이 분명히 좋은 일들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듣는 성도들의 입장에서 참 어처구니 없고 성의 없는 답변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습니다. 저는 점쟁이도 아니고 무당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 경험으로 기도하다가 응답이되고 나도 모르게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예레미야의 두번째 질문!
주님께서 그들을 심으시고, 그들이 뿌리가 박히고 장성하여 열매를 맺고, 그들의 입은 주께 가까우나 마음은 멀리 있습니다. 라고 묻습니다. 그 때에 답변이 5절 6절입니다.
4. 하나님의 답변
5. ○만일 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네가 평안한 땅에서는 무사하려니와 요단 강 물이 넘칠 때에는 어찌하겠느냐
6. 네 형제와 아버지의 집이라도 너를 속이며 네 뒤에서 크게 외치나니 그들이 네게 좋은 말을 할지라도 너는 믿지 말지니라
우리말 성경에서는
5. “만약 네가 발로 사람들과 함께 달렸는데 그들이 너를 지치게 했다면 네가 어떻게 말들과 경주할 수 있느냐? 만약 네가 평안한 땅에서 비틀거려 넘어진다면 요단 강변의 수풀에서는 어떻게 하겠느냐?
6. 네 형제들과 네 아버지의 집조차도, 그들조차도 너를 배신했다. 그들이 너를 반대해 큰소리를 냈다. 그들이 네게 좋은 말들을 해도 그들을 믿지 마라.
하나님의 답변은 사람과 함께 달리기 시합하는데 지치면 말들과 경주할 수 있게는냐! 너는 말과 경주할 사람이야, 평안한 땅에서 비틀거리는데 요단강변이 수풀은 어떻게 하겠느냐? 서울 강남에 홍수로 인하여 고통 가운데서도 이겨라.. 코로나 19에서도 살아남고, 우크라이나 전쟁 가운데서도 살아남아 남고, 경제적인 어려움 가운데서도 살아 남아라. 피 투성이가 되어서도 살아 남으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즉 말과 경주하며 살아라, 요단강(강남 홍수) 가운데서도 살아라.
1)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
형통이란 말은 히브리어로 찰레아흐라는 말입니다. 영어로 prosperous입니다. 형통의 국어사전적 의미는 온갖 일이 뜻과 같이 잘되고 번영함이라고 되어있습니다. 목적하는 바를 이루는 것이 형통이라는 뜻입니다. 즉 악인의 형통은 악한 뜻을 가지고 악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잘되는 것입니다. 악인이 잘 산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형통은 하나님과 함께 함이 형통입니다. 요셉의 예가 그러합니다.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심으로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물질적인 가치관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인정하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잠언 3장)
우리 아들가 작년 이만 때의 일입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그 회사에서 자동차도 주고, 한우 고기도 주고, 컴퓨터도 죽고, 좋은 명품도 주고 하였습니다. 회사의 프렛폼을 만드는 일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회가의 하는 일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잘 믿고, 매일 아침마다 예배를 드리는 회사입니다. 목사님이 와서 예배 인도를 합니다. 이사 할 때에 저를 초청하였는데 가지못했습니다. 아들 공부가 더 중요하다 공부해라 그리고 416 전공과목을 잘 마치고 미국에 들어가 졸업하고 한국에 나오지 않고 영주권을 받겠다고 미국에서 머물고 있습니다. 그동안 열심히 하지 않는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고 봉사하는 모습을 보고 돈보다는 신앙생활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아들이 묻습니다. 아버지 회사에서 악한 일들을 하는데 아버지 회사가 잘되고 젊은 사람들이 엉청나게 부자로 살아요라고 물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잘 알지 못하지만 악인의 형통은 오래가지 못하고 바르게 사는 사람들이 형통한다고만 해주었습니다. 우리가 예레미야처럼 악인의 형통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과 경주하시기를 원하십니다.
2) 말과 경주하고 요단강물을 두려워하지 말라
보행자들과 함께 경주하는 것 할 수 있느냐? 할 수 있습니다. 그럼, 말과 함께 경주할 수 있느냐? 아니요, 하나님의 답변은 말과 경주하라는 것입니다.
평안한 땅에서 살 수 있느냐? 예 살수 있습니다. 그럼, 요단강의 범람 가운데 살수 있느냐? 아니요?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살아내라는 것입니다. 강남 침수로 반지하 일가족 3명 참변을 당하였습니다. 이번 폭우로 7명이 숨지고 6명이 실종되었습니다. 그런데도 폭우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포기하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 불가능한 환경 가운데서 살아남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주시는 말씀은 악인 생각하지 말고 너는 말과 경주하고 요단 강물에서도 살아남으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악이 고통당하고, 의인이 형통하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질문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훈련 방법은 우리의 상식을 넘어 이상한 방법으로 상상을 초월하여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욥, 야곱, 요셉, 모세, 다윗, 에스더, 다니엘의 3친구들이 대표적인 것입니다.
에스더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에스더에게는 모르드게, 하만, 왕에게서 풀어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마치 말과 경주하는 것과 같고, 요단강의 홍수 가운데 있는 것과 같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에스더는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왕이 에스더에게 그대의 소원이 무엇이며 요구하며 나라의 절받도 주겠다고하였습니다. 그러나 참고 참고 또 참았습니다. 제가 왕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겠습니다. 하만과 함께 오세요. 잔치 가운데 왕은 에스더에게 또 소원을 묻습니다. 이번에도 참고 또 참습니다. 왕의 목전에 은혜를 입었는데 내가 다시 잔치를 베풀겠습니다. 내일 왕과 하만만을 위한 잔치를 베풀겠습니다(에스더 5장 8절).
왕에게 이렇게 어려번 요청할 상황이 아니지만 에스더는 침착하게 결정적인 기회가 올 때까지 기다렸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만은 왕의 총애를 받는 신하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잔치를 베풀면서 자신은 유대인이고 자신과 함께 유대인들이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왕에게 간청합니다. 왕은 주동자가 누구냐고 묻자 하만이라고 대답합니다. 완전이 상황이 역전되었습니다. 하만 말과 같은 월등한 자이며, 교활한 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에스더 편이고 에스더는 자신이 소원하는 것을 이루웠습니다.
세상은 공부와 돈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주변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과 나와의 만남이 중요한 것입니다. 마치 야곱처럼 얍복강에서 하나님을 만나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다메석 선상에 하나님을 만나니 모든 것을 극복하고 살아 갈수 있는 힘을 얻었습니다. 야곱은 에서 형과 화해하고, 바울은 사십에 하나 감한 매 다섯번, 세번 태장, 돌로 맞고,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들의 위험, 시내의 위험, 광야의 위험, 바다의 위험, 거짓 형제중의 위험을 당하고, 주리고 목마르고 굶고 춥고 헐벗었지만 그러한 모든 고난을 이기고 복음을 증거하고 있다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전천후 신앙입니다. 전천후(全天候)란 어떠한 기상 상태나 시계(視界)의 시야상태가 좋지 않아도 사용할 수 있고 활동하고 비행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전천후 농업이라 하면 가뭄이나 홍수 등의 나쁜 기상, 기후 조건 속에서도 별 지장 없이 농업을 경영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전천후 전투기라 하면 어떤 기상 조건에도 견디면서 비행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전투기를 가리키는 것이다. 옛날에는 하늘만 쳐다보고 농사를 짓게 되었지만 지금은 농부들도 전천후 농사를 짓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신앙생활에 있어서 전천후 신앙생활을 해야 하겠다. 그럴려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불거나, 날이 덥거나 춥거나 변함없이 여전히 교회생활을 잘하는 전천후 신자들이 되어야겠다. 기분이 좋을 때는 잘 믿고, 기분이 나쁘거나 무슨 일이 잘 안되면 잘 믿지 않는 그러한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 된다. 교회가 평안할 때는 교회에 잘 다니고, 교회가 좀 어려움이 있으면 교회 출석을 중단하거나 등한히 하고 사람들의 눈치나 살피고 머뭇거리는 것은 참된 신자의 자세가 아니다. 참된 신자라면 그럴 때는 더더욱 교회가 든든히 서가도록 뜻을 모으고 힘을 쏟아 교회를 위하여 더욱 노력하고 기도해야 한다.
저는 어린 시절 김포공항 근처 방화동에서 살았습니다. 초등학교를 송정국민학교를 다녔습니다. 집은 계화산 근처인데 그곳에 공수부대 훈련하는 장소가 있습니다. 11미터정도의 높은 건물과 훈련장소들이 있습니다. 특별히 한강쪽에서 많은 낙하산들이 한강쪽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살았습니다. 김포공항 근처 개화산에서 공수부대가 훈련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11미터의 높이에서 뛰어 내리도록 지시합니다. 그럼 높은 비행기에서도 뛰어내립니다. 믿음의 높이가 바로 11미터입니다. 주일성수의 11미터, 십일조의 높이입니다. 여러분들도 한번 시험해보세요. 정말 하나님은 살아계시기 때문에 여러분들에게 풍요와 하나님의 축복이 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