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4장 44절

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45.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46.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49.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이 어떻게 하면 예수님의 삶을 본받아 옳바르게 살아갈 수 있는지 함께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예수님이 예수님의 제자를 세울 때에 어떻게 하셨는가?

마가복음 3장 13.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14.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15.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예수님은 예수님의 제자를 세울 때에 먼저 기도하시고 그리고 자기가 원하시는 자들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들을 오늘도 성도로 주의 종으로 부르십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예정하심으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4.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예수님은 성도들을 그리고 주의 종들을 부르시고 자기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을 가만히 살펴보면 하나님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늘 함께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에 그 사건이 바로 임마누엘 사건입니다. ‘God with us’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행하는데 가장 행복한 여행은 바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여행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모가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고합니다. 유럽의 핀란드에 가서 오로라를 보는 것입니다. 아프리카의 소금사막을 보는 것입니다. 저와 함께 하자고 하는데 건강에 영 자신이 없어서 걱정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돈도, 자녀도, 남편도 다 떠나지만 예수님은 여러분들과 함께 천국 문으로 같이 동행하고 있습니다. 가장 어려운 해변의 길을 갈 때에 여러분들을 등에 없고 가시는 것입니다. With Covid19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With Jesus이 중요한 것입니다.

2) 전도도 하며 (*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우리 성도들은 나만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우리를 보내신 것입니다. 우리 김성애권사님과 함께 과일이 남아서 김성심과 이연숙,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누워주면서 복음을 증거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명이 있어서 여러분들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3) 귀신을 쫓아내며 권능도 가지게 하려고 하십니다. (15.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오륜교회에서 하고 있는 다니엘 21기도회를 참석하면서 들은 적이 있습니다. 다니엘기도회 8일차 김윤상선교사님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멕시코에서 교통사로 14일동안 의식이 없었습니다. 그 기간동안 자신은 마귀의 밑에서 노동을 하는데 어려서부터 배운 예수님, 보혈이라는 단어를 통하여 마귀와 귀신들이 떠나고 자신이 살아나게 되었다고 간증하였습니다.

금요철야 시간에 이스라엘 히브리대학에 박사학위를 받고 목회하시는 분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자살 폭탄테러가 발생하여 10여일을 의식없이 죽어있어다고합니다. 손을 구부릴 수 없는 상황 가운데에서도 예수님이 지켜주셔서 박사학위를 받고 목회하고 가르칠수 있는 교수까지 허락하신 것은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이라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시간에는 2종류의 시간이 있습니다.

크로노스는 과거-현재-미래로 연속해 흘러가는 객관적·정량적 시간이다. 연대기를 뜻하는 영어 단어 ‘크로니클'(chronicle)이 여기서 왔다. 반면, 카이로스는 인간의 목적의식이 개입된 주관적·정성적 시간이다. 적절한 때, 결정적 순간, 기회라는 뜻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때입니다. 기적의 시간입니다. 특별한 구원의 시간이고 하나님의 역사하는 시간들입니다. 하나님의 때에서 치료가 일어나고 살아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크로노스 시간에 역사하는 것은 예수님의 보혈의 사건이고 예수님의 능력의 사건입니다. 우리 힘으로 죄인으로 하나님의 능력의 도우심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크로노스 시간을 만드는 것입니다.

2. 현대를 살아가는 예수님의 제자들은 성경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합니다.

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45.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현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이 주의 종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확신이 없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 않는다면 성도도 주의 종이 아닙니다. 사람은 숨을 쉬는 것처럼 기도하고, 밥을 먹는 것 처럼 주의 말씀을 먹어야합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라고 하였습니다.

왜 하나님의 말씀이 중요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인류의 역사를 시작하는 때부터 지금까지 검증된 말씀입니다. 제가 처음 목회할 때에는 말씀의 검증이 벌로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목사님과 신학교 교수님들에 의하여 수많은 말씀들을 검증받아서 올린 말씀들입니다. 또 성도들은 그 말씀대로 살다가 보니 하나님께서 그 말씀에 합당한 증거들을 주시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세월이 지난 수록 말씀이 확실해지고 말씀에 증거가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가장 핵심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메시야 되심과 예수님이 나의 구세주되심을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을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1) 모세의 율법에 예수님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세 오경에서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백성들을 구원하였다는 내용(출12:13),

장대위에 달린 놋 뱀을 바라봄으로서 살아나는 사건 (민수기 21:9)과 도피성과 대제사장의 죽음과 사면(민 35:28)이 대표적인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2) 율법과 선지자의 글

율법과 선지자의 글 속에서는 예수님의 출생에 대한 예언입니다. (이사야 53장), 예수님의 베들레헴 탄생에 대하여 미가서 5장 2절, 애굽의 피난에 대하여, 나귀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심 스가랴 9장 9절, 여호와의 종으로 오신 스가랴 3장 8절, 은 삼십에 배반당할 것을 예언하심 스가랴 11장 12절에 대하여 말씀하고있습니다. 이것보다 더 정확한 예언들이 어디 있습니까? 어느 종교 지도자나 종교 창시자가 이러한 예언들이 있습니까? 오직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3)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예수님의 탄생에 대하여 시편 22편 9절에, 유다지파에서 나올 것을 예언하는 내용이 시편 78편 67절,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에 머리를 흔들 것(시편 109편 4절), 욕을 당하여도 입을 열지 아니함(시편 38편 13절),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께 의탁하심 (시편 31편 5절)등이 시편에 너무 많이 기록되어있습니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이 아브라함과 다윗의 세계로 부터 시작하였고 예수님에게 마침니다. 누가복음에서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여 아담과 아브라함과 다윗과 그리고 예수님에게 흐르는 복음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요한복음에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셨다고 하였고고 그의 영광을 지금 보고 있다고 말슴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딤후 3:16; 벧후 1:20-21) 그 기록이 바로 예수님에 대한 말씀이고 증언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도행전 18장 28절에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공중앞에서 힘 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이러라.’ 또한 성경한 기록한 목적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한 그를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복음 20장 31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3. 현대를 살아가는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하여 확신이 있어야합니다.

46.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기독교의 가장 핵심적인 교리는 무엇일까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설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는 기독교의 심장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던 믿지 못하던 많은 분들께서 정작 십자가와 부활이 어떤 구원의 원리를 가지고 있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시는 것 같습니다.

많은 불신자들은 기독교의 교리가 불공평하며 말도 안되는 엉터리라고 생각하십니다. 어떻게 극악무도한 살인자가 예수를 믿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천국에 가고, 평생을 착하게 살았어도 예수를 믿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지옥에 가는건지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십니다. 인간의 관점에서 이것을 이해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기독교의 교리를 전체적으로 이해하신다면 세상의 그 어떤 다른 종교의 교리보다 기독교가 논리적이며 법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죄는 어떤 작은 죄라도 지옥의 큰 자석에 끌려들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로마서 8장 1절의 말씀처럼 결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자석에 아무런 상관없는 프라스틱이나, 고무는 끌려가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피는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게하는 것입니다. 행실의 문제가 아니라 행동의 문제가 아니라 입으로 시인하고 주님을 고백하고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면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시는 것입니다.

율법의 핵심은 죄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죄를 씻어 주는 것이고 부활은 죽음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 천국으로 가는 능력인 것입니다.

이것은 기록된바, 의로운 자는 없나니 단 한 사람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으며 그들이 다 길에서 벗어나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나니 단 한 사람도 없도다. <로마서 3:10~12>

마치 이와 같은 예화가 있습니다.

결혼 17년 만에 이혼한 이부진 사장의 선행은 2014년 2월에 있었던 일이다. 2014년 2월 25일 오후 5시쯤 서울 중구 장충동2가에 위치한 서울신라호텔에서 모범택시 1대가 호텔 주출입구 회전문을 들이받았다. 이로 인해 4명의 호텔직원과 투숙객이 부상을 당했고 회전문은 파괴됐었습니다. 택시 운전기사 홍모 씨(82)는 “손님을 태우기 위해 로비 쪽으로 천천히 접근하던 중 갑자기 속도가 높아졌다”며 급발진을 주장했다. 그러나 경찰은 홍모 씨의 운전 부주의로 사고가 난 것이라고 결론내렸다. 홍모씨는 5000만원 한도의 책임 보험에 가입돼 있었고 신라호텔이 입은 피해액은 약 5억원이었다. 이로 인해 홍모 씨는 4억 원이 넘는 돈을 신라호텔에 변상해야 할 상황이었다. 이부진 사장은 이 사고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사장은 한인규 호텔신라 부사장을 불러 홍모 씨의 상황을 알아 볼 것을 지시했다. 그리고 빚을 탐감해주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으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잘 믿는 스데반집사님을 돌로 때려서 자신의 발 앞에 두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는 율법에 충성하면 하나님께 충성하는 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난 뒤에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갈라디아 2장 19.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히브리서를 요약하면 유대교로 다시 돌아가려고 하는 그들에게 예수를 믿는 것이 도움이 됨을 논증하기 위해 히브리서의 대제사장 기독론을 전개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대제사장 되심과 십자가에서의 죽음의 사건이 영원히 효과 있는 제사로써 과거의 죄뿐 아니라 현재의 죄도 해결해 주시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결론

고린도전서 1장 22.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25.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유대인들은 표적 구하고, 헬라인들(이방인들)은 지혜를 구하나 우리 성도들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구해야합니다.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은 죄를 사하고,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은 우리를 치료하고,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은 귀신을 쫓아내고,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은 성전으로 담대히 들어와 예배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2) 부활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든 사람들은 거의 의심만은 도마와 같은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야곱이 비교되고, 사도 베드로와 도마가 비교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조상처럼 사도 바울처럼 그런 믿음이 없습니다. 의심하고 또 의심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현대인들에게는 더 그러합니다. 과학이 이렇게 발전하고, 컴퓨터로 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제 자율주행 차량도 나온다고 합니다. 돈만 있으면 못할 것이 없는 세상에 살아갑니다. 그래서 부활을 싫어하고 죽음을 싫어합니다. 의심많은 도마처럼 예수님을 눈으로 보아야하고, 손으로 못자국을 만저보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30년 되었어도 잃어버린 자식은 금방 알아볼 수 있는 것처럼 아무리 오래된 예수님의 모습이라도 그분을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입니다.

인도의 시크교 출신인 선다싱은 새벽 5시까지 자신에게 예수님을 보여주지 않으면 저 달려오는 열차에 죽겠다고 기도하였습니다. 새벽 4시 45분 쯤에 주님이 나타나셔서 ‘나는 너를 위하여 죽었다. 너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잠언 8장 17절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4. 현대를 살아가는 예수님의 제자들은 증인이 되어야합니다.

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49.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본문에 있는 말씀은 사도행전 1장의 말씀과 같은 내용입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능력을 받을 때까지 성에 머물러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성령의 능력이 임하게 되었을 때에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예수님의 증인 된다고하였습니다.

기독교의 핵심은 2가지입니다. 장로교회에서 강조하는 하나님의 말씀과 감리교와 오순절 교단에서 강조하는 성령입니다. 이 두가지 축이 형성될 때에 증인에게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3년 6개월동안 들었고, 그리고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후에 기도해야합니다. 성령받기를 기도해야합니다.

운동하는 선수들은 변칙기술로 인하여 많은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통으로 배운 사람들이 결론가서 이기는 것입니다. 이번 올림픽에서 신유빈은 첫 세트를 2-11의 큰 점수 차로 내주며 불안하게 출발했습니다. 탁구 사상 역대 최고령인 니시아리안은 2000년 시드니 대회부터 이번 대회까지 5번째 출전하는 ‘백전노장’이었다. 흔하지 않은 왼손 펜홀더인 데다 핌플 러버를 쓰기 때문에 웬만한 정상급 선수들도 힘들은 상대입니다. 7세트로 넘어갔고, 신유빈은 마지막 세트에 니시아리안을 11-5로 돌려세워 극적인 4-3 역전승하였습니다.

야구에서도, 테니스에도, 권투에서도 변칙적으로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고전하지만 결론은 정통으로 기본기부터 배운 선수가 이기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에도 변칙을 좋아하면 안됩니다. 이상한 방법으로 능력를 사용하는 것이 변칙으로 사람들을 혹하게 하는 신앙생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 보다는 이상한 방법으로 신앙생활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이지 내가 받고 싶다고 돈주고 사서 받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기독교를 병들게 하는 것입니다. 이단이 되는 것입니다.

(찬송 364장 내기도하는 한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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