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누가복음 3: 21.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22.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7:5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베드로후서 1:17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1. 序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할 때에 하늘로부터 이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마태복음 3장 17절, 누가복음 3: 21.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22.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두번째로 헐몬산에서 예수님이 변화되어 구약의 선지자들보다 더 높은 자리에 계시는 주님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7:5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베드로가 베드로후서를 성령의 영감으로 작할 때는 정확지는 않지만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인지 예수님이 천국에 계실 때인지는 분명하지는 않지만 그 때에도 내 기뻐하는 자라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베드로후서 1:17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여러분 모두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에 살면서 사람들로 부터 인정을 받거나 직장 상사로부터 인정을 받고 칭찬을 받으면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지 직장에서 열심히 일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로 부터 직장 동료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미움과 시기의 대상이 된다면 직장생활이 괴롭고 힘듭니다.

1.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사람들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사람들은 영안이 어두운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주와 이세상의 모든 만물보아 분명히 하나님이 하심을 보이는데 영안에 어두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스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죄의 깊은 수렁에서 살아갑니다. 영안이 어두워서 앞이 잘 보이지 않고 세상을 어둡게 살아갑니다. (마태복음 6장 22.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23.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

우리교회 김재복집사님이 운전을 잘하셨는데 눈을 다치셔서 한쪽 눈이 잘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운전하지를 못합니다. 저는 나이가 들면서 안경을 자주 바꾸워도 작은 글씨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입니다. 영적인 눈도 마찮가지입니다. 사무엘상에 보면 엘리제사장은 눈이 흘렸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영적인 눈이 흐린 것입니다.

영적인 눈이 흐리면 삼손처럼 될 수 있습니다. 영적인 눈이 흐리면 육적으로 범죄합니다. 자신의 쾌락을 위하여 자신의 몸을 사용하게 될 때에 육적인 눈이 뽑히고 연자 맷돌을 돌리고 있습니다. 삿16장 21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우리가 살아가는데 더 관심을 가지고 주의 깊게 생각해야하는 것이 바로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주의를 해야하는 것입니다. 육적인 생활보다는 영적인 생활이 더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루종일 깨어있을 수 없습니다. 다같이 기름을 준비하고 다같이 예수님을 기다리는데 우리 육적으로 피곤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영적인 기름을 충분히 준비하지 못할 때에 우리의 등불이 꺼질 수 있습니다. 신랑을 맞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인줄 알면서도 죄를 짖는 인간들입니다. 죄인줄 알면서도 회기심과 악한 생각에 꼬리를 물고 또 물어 죄를 이기지 못합니다. 영적인 성령님이 내 안에 있어 못된 생각 악한 생각들을 이겨내야 합니다.

傷人乎? 不問馬. (상인호? 불문마) 廐焚 子退朝曰 傷人乎? 不問馬. (구분 자퇴조왈 상인호? 불문마) “마구간이 불에 탔다. 조정에서 퇴근하신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은 다치지 않았느냐?’ 고 물으셨지만, 말에 대해서는 묻지 않으셨다.”

화재가 나서 마구간이 탔다면 말이 화상을 입었거나 죽었을 가능성이 크지만, 먼저 확인한 사항은 인명의 생사입니다. 말이야 또 구하면되는데 사람들의 생각은 그렇지 않습니다. 당시 춘추전국시대에는 말이 대단한 부의 가치입니다. 일반 백성들은 말을 가지고 있지 못하고 이동수단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던 실정입니다. 적어도 대부이상 신분이 되어야지 출퇴근용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지금 말하면 벤즈를 타고 다니는 것입니다. 전쟁에서 꼭 필요한 전쟁의 수단입니다. 그렇게 귀한 것보다 사람의 인명을 더 존중하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불이 나면 말들은 말들은 절대로 주인의 말을 듣지 않고 그대로 화마에 휩싸여 죽게된다고 합니다. 사람도 죄인줄 알면서도 나오지 못하고 그곳에서 죽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술을 끊어야 살 수 있는데 술을 끊지못하고 술로 인하여 죽게 됩니다. 마약이 나쁜 줄 알면서 마약하다가 죽습니다. 도박이 나쁜 줄 알면서 도박하다가 죽습니다. 어리석은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시편 69편 1.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물들이 내 영혼에까지 흘러 들어왔나이다 2. 나는 설 곳이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지며 깊은 물에 들어가니 큰 물이 내게 넘치나이다 3. 내가 부르짖음으로 피곤하여 나의 목이 마르며 나의 하나님을 바라서 나의 눈이 쇠하였나이다

여러분 깊은 수렁에 들어가면 몸부림치면 칠수록 더 깊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의 끈을 잡고 있는 사람의 끈을 잡아야합니다. 깊은 수렁에서 빠저 나올 수 있습니다. 그 생명의 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줄인 것입니다. 그런데 줄을 잡아당기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어떻게 하든지 벗어나기 위하여 노력하지만 더욱 깊은 수렁에 빠져드는 것입니다.

다윗은 기가막힐 웅덩이에서 끌어 올리사 나의 발을 반석에 두셨다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찬송하고 주님에게 존귀와 영광의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시편 40편 1.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2.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3.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

잃어버린 지갑, 핸드폰, 안경을 찾기 위하여 무척이나 노력한 적이 있습니다. 금방 쓴 핸드폰을 찾지 못하여 이러저리 찾다가 다른 전화기로 울려보곤합니다. 안경을 금방 썼었는데 없는 것입니다. 지갑 찾아 3000리입니다. 마치 지갑, 핸드폰, 안경의 구원의 줄을 찾아 이리 저리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불교가 좋을 까? 천주교가 좋을 까? 이만희, 문선명, 박태선이 좋을까하여 이 곳 저 곳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오직 기독교 외에 다른 길은 없습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 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2.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는 구원 (구원을 위하여 무엇을 행할까?)

누가복음 24장 45.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46.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예수님을 믿기 시작하면 썩은 밧줄이 아니라 생명의 밧줄입니다. 그 줄을 잡는 것은 바로 예수님을 내 마음속에 받아들여 예수님의 영처럼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해야할 일은 예수님이 마지막 부탁 명령인 죄사함의 회개입니다.

회개의 종류에는 2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뉘우침입니다. 마치 가룟유다의 뉘우침입니다. 그런데 또 다른 회개가 있습니다. 바로 죄사함의 회개입니다. 바로 베드로의 회개입니다. 요한일서 1장 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목사에게나 신부에게 회개하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에게 신부에게 자백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오직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인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착각합니다. 우리가 선행함으로 스스로 죄 않짖고 성결하게 살려고 노력하지만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바르게 살기 운동본부를 일천개를 만들어도 되지 않습니다. 죄사함의 회개통하여 구원이 가능한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공생애를 보낼 때에 여전히 교만하고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았습니다. 육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고 난뒤에도 예수님을 배반하였습니다. 남의 눈만 의식하면서 외식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러한 베드로가 죄사함의 회개가 일어난 뒤에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진정한 죄사함의 회개가 일어날 때에 우리의 삶가운데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과 힘이 우리에게 임합니다.

불이 나면 많은 사람들이 죽은 이유는 2가지입니다. 불에 타서죽고 연기와 유독가스로 인하여 죽게 됩니다. 그러나 소방관을 만나면 살아날 수 있습니다. 소방관이 안전하게 피할 길을 열어주고 그리고 정상적으로 호흡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불이나서 옥상으로 올라가도 높은 사다리 차나 헬기로 구조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장면을 꿈을 꾼적이 있습니다. 창세기 28장의 장면을 연상하면서 하늘에서 사닥다리가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것을 타고 안전한 장소 하늘나라로 올라가는데 주일날 제가 빠지면 그 사닥다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생한 적이 있습니다. 그후로는 주일날 빠진 기억이 없습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주일성수를 꼭 하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28장 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십자가의 사닥다리는 인간과 하나님을 연결하는 것입니다. 야곱이 꿈을 깨고 난뒤에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 곳 벧엘에다가 하나님의 전을 세우겠습니다. 2) 아비집으로 돌아올 때에 십일조를 반드시 하겠습니다. 3)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될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 제일주의 신앙입니다. (20절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21.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야곱은 인간의 힘을 사용할 때에는 야곱과 에서가 서로 죽이려고 하였지만 얍복강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난 뒤에는 서로 사랑하고 서로 물건을 나누워쓰고 자신들이 상대방의 앞잡이가 되겠다고 합니다. 부부가 살면서 서로 주도권을 잡으려고 싸우다가 이혼하는 가정을 보았습니다. 이혼 과정에서 변호사를 사게됨으로 가정이 풍지박산나는 경우를 보았습니다. samsung, sk 부부가 서로 이혼하게 됨으로 엄청난 위자료와 변호사 비용이 발생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은 야곱처럼 변화되어 이스라엘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3. 우리의 구원의 완성을 위하여 뒤로 물러가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10:38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10:39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필요한 것은 구원이고 구원받은 사람들이 꼭 필요한 것은 구원을 포기하지 않는 믿음입니다. 물론 신앙생활 할 때에 필요한 것은 기도입니다. 회계기도입니다. 또한 성경을 매일 읽는 것도 필요합니다. 매일 계명을 잘 지키고 선행을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믿음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죽음의 순간의 일성(一聲)은 믿음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4장 6.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믿음은 시작과 끝입니다.

물론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무척이나 어렵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믿음을 지키지 못한 사람들,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믿음에 관하여 파선하였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1장 19.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20.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탄에게 내준 것은 그들로 훈계를 받아 신성을 모독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으로 인하여 구원받은 것은 참으로 쉽고 쉬운 일입니다. 다른 종교는 고행해야 구원을 얻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하나님은 말씀으로 창조하셨지만 구원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직접 이땅에 내려오셔서 직접 피를 흘려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는데 그것을 믿음으로 믿어야 구원함을 얻습니다. 이렇게 쉬운 구원인데 이제 부터가 어려운 것입니다. 믿음생활속에 행복한 나날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가지 환난과 핍박이 올 때가 있습니다. 그 때에 믿음을 포기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여러분들을 항상 보호하고 계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히브리서 7장 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신앙생활할 때에 힘들고 어려울 때에 믿음으로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마가복음 16장 16.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18.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옷을 만들 때에도 옷에 치수가 중요합니다. 건축을 할 때에 건물의 청사진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옷에 불편이 없고 교회 건물에 불편함이 없습니다. 우리교회를 지을 때에 여러번 생각하여 교회를 건축하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비로 인하여 세고, 교회에 불편함이 있어서 건축을 시작하였습니다. 종합건설 시공업체 4군데에 입찰 금액을 제출하라고 하였습니다. 평균 5억 5천만원입니다. 그런데 익투스건설만 4억 3천인 것입니다. 우리로서는 가장 작은 금액을 선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조금 부족하더라도 부족한데로 살아야합니다. 왜냐하면 돈은 그 가격을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의사로부터 처방전을 받는 것은 종이를 먹는 것이 아닙니다. 약사가 조제해준 약을 먹는 것입니다. 그 약이 효능이 있는 것이지 처장전이 효능이 있는 것입니다. 성경의 말씀도 글짜에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글짜속에서 살아있는 말씀이 내 마음에 감동이 되고 그것을 실천하고 행동하게 될 때에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믿음생활은 아주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믿음 생활은 아주 단순합니다. 순종입니다. 순종할 때에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나만 장군은 엘리사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요단강도 되고, 아바나와 바르발 강도 됩니다. 그러나 요단강에서 말씀하였기 때문에 요단강에서 목욕해야하는 것입니다. (12.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려 분노하여 떠나니) 예수님이 지시한 항아리에 물을 가득 부었을 때에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의 생각과 이성이 아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에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선물을 주기를 원했습니다. 이 시계를 너 가질래, 어니요 선생님의 시계를 제가 어떻게 가지겠습니까? 너 가질래, 아니요, 너 가질래, 아니요. 그런데 한 아이가 선생님 제가 갔겠습니다. 그리고 호주머니속에 넣었습니다. 모든 아이들이 와 하고 소리쳤습니다.

이것이 구원의 믿음입니다. 내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그냥 따라서 순종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여러분 마귀는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이는 것입니다. 그만 타협해, 적당히 해, 네가 믿음의 조상이나 되느냐 하고 여러분들에게 타협하고 포기하도록 유혹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마귀를 대적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포기하지 않게 하는 힘이 바로 성령님입니다.

결론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들은 성령의 사람들입니다.

저는 금요일날 새벽기도회를 하면서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사도행전 13장 9절에 보면 사울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바울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과 공생애 동안에 실수가 많았지만 그들이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받고 난 뒤에는 사도행전 전반부는 예수님의 제자들의 사역이였습니다. 그런데 후반부에 올수록 사도 바울의 성령이 더 강하게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우리가 의지하고 인정하고 환영해야 할 분은 오직 성령님이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성도들의 신앙생활를 포기하지 않도록 하는 힘이 바로 성령임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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