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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5장 7절 예수님의 고민

2012-03-24 19:37:48


 

히브리서 5장 7절 – 예수님의 고민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12년

히 5: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히 5:8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히 5:9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히 5:10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

예수님의 고민 이러한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고민하고 삽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건, 위인이건 평범한 사람이건, 모든 사람들은 고민하지 않고 살아갈 수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고민이 있다는 것은 감사할 조건입니다. 고민하지 않는 사람들은 공동묘지에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어머니 고민처럼 비가 오면 나막신 장사의 아들 때문에 고민하고 날씨가 맑으면 우산장사의 아들 때문에 고민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현실입니다. 이번에 4월달 총선에 나오는 총선후보들도 모두다 고민이 많을 것입니다. 어떻게하면 국회의원이 될수 있을까? 하는 고민들을 많이 할 것입니다. 이 나라에 대통령이 되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고민 많이 하는 곳 중에 하나가 청와대일 것입니다.

1. 마더 테레사의 고민

마더 테레사에 대한 극찬의 내용입니다. 자기 희생의 화신이며 다국적 선교단체의 수장인 성녀 테레사, 그런데 그 마더 테레사의 영적 고민이 있었습니다.

마더 테레사 수녀는 1979년 12월 11일 노르웨이의 오슬로에서 노벨평화상을 받을 때 이런 인상적인 말을 한 바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안에 있고, 우리가 만나는 가난한 사람들 안에도 있고, 우리가 주고 받는 웃음 안에도 있습니다”

노벨상을 받기 3개월전에 1979년 9월 마이클 반 데어 피트 신부에게 이렇게 자신의 심정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신부님을 특별히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침묵과 공허함이 너무 커서 보려 해도 보이지 않고,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습니다. 기도하려 하여도 혀가 움직이지 않습니다. 신부님이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주님, 나의 주님, 당신이 버린 저는 누구입니까? 당신의 사랑하는 딸, -그러나 지금은 가장 증오 받는 사람처럼 된 저를 주님은 더 이상 필요하지도, 사랑하지도 않아 내던져 버렸습니다. 부르고, 매달리고, 기도하지만, 아무 대답도 없으며, 매달릴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무도 없습니다. 혼자입니다. 제 믿음은 어디에 있나요? 저 깊은 곳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공허와 어두움만 있습니다. 주님, 이 알 수 없는 고통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저는 믿음이 없어졌습니다. 감히 제 마음속에 가득하고 저를 괴롭히는 말과 생각들을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대답 없는 수많은 질문들이 제 마음 속에 살아 있어서 그것들이 드러날까 봐 두렵습니다. 그러면 신성을 모독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계신다면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제 생각을 하나님께 올리려고 할 때마다 이 공허함이 너무나 확연해서 그런 생각들이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제 영혼에 상처를 줍니다. 사람들은 주님이 저를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이 어두움과 추위와 공허함이 너무 커서 아무 것도 제 영혼을 감싸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성심(聖心)의 부름에 맹목적으로 빠진 실수일까요?

-고해신부의 제안으로 예수님께 드린 기도, 날짜 불명 〈마더 데레사-나의 빛이 되어라 2007년〉 (브라이언 콜로디척 신부 엮음·허진 옮김/ 오래된 미래사 번역 출판)

마더 테레사가 자신의 일기에다 예수님과 직접 대화하면서 소명을 받은 내용도 들어있습니다. 신비로운 체험이죠 특별히 그녀가 캘커타에서 봉사하게 되는 시점에서 받은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렇게 놀라운 하나님의 신비의 체험이 있으면서도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그녀의 현실속에는 갈등하고 영혼이 메말라 가고있다는 것입니다. 마더 테레사는 ‘어느 순간부터 천국도 그리고 하나님의 존재도 의심하고 정신적 어두움 상태를 격고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예수님은 안 계십니다라고’ 까지 고해편지를 쓰기도 했습니다. ‘말해주십시오, 신부님. 왜 제 영혼에는 이렇게 많은 고통과 어둠이 있는 건가요?’-1959년 8월 피카치 신부에게..

이 위대한 성녀인 마더 테라사의 고백입니다. 그는 사람들로부터 성녀라고 칭송을 받고 돈 주고 노벨상을 사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존경함을 받아서 노벨상을 받은 사람인데 마음에 고민과 갈등이 있었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사순절기간 마지막 고난주간을 앞에 놓고 거룩하게 살고자하는 성도님들에게 어떻게 하면 예수님의 고난을 잘 이겨내고 있는지 함께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2. 십자가 앞에서 예수님의 고민

마 26:38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마 26: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마 26:40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세상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바로 소크라테스입니다. 그는 영혼불멸설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독배를 마실 때에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육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완전히 해탈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환희로 생각하며 죽음을 저승로 기쁘게 떠나가게하는 요소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소크라테스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이유를 스스로 이렇게 죽음 뒤에 완전한 해탈이 있을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물론 부처도 이러한 생각으로 도를 가르쳤습니다.

여러분 이순신장군도 그의 마지막 전투 노량해전에서 그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끝까지 자신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정말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장수일까? 어째든 죽음을 피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진정한 우리나라의 위대한 장수입니다.

수많은 UDT 전사들이나 깡패들을 보면 죽을 두려워하지 않고 맞이하는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유독 예수님은 그러한 죽음을 두려워하고 비겁하게 하였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닙니다. 예수님은 비겁쟁이가 아닙니다. 진정한 사람으로 오셨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하듯이 예수님도 그러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정직한 마음입니다. 사람다운 모습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 하나님께 울었습니다. 슬퍼하셨습니다. 피와 땀을 흘려가면서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울부짖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사람들에게 울지 않고 아무말씀도 하지 않았습니다.

마 27:11 예수께서 총독 앞에 섰으매 총독이 물어 가로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고

마 27:12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고소를 당하되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는지라

3. 예수님 왜 고민을 했을까?

1) 예수님은 육체를 가지신 분이기 때문에 죽음 앞에서 고민하셨습니다.

히 5: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예수님은 신이면서 예수님은 사람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에 신의 아들로 오셨기 때문에 무슨 고민이 있을까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신이시면서 능력은 신이시면서 완전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같이 아파하시고 같이 괴로워하시고 같이 슬퍼하셨습니다. 잠도 자시고, 어린 시절도 있고 그리고 배고파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은 예수님은 완전한 인간이셨습니다. 왜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을까?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인간의 모습은 바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에 모델이 되기 위함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인도에 이러한 선교사님의 일화가 있습니다. 인도에서는 윤회설을 믿습니다. 그 인도사람들이 예수님을 잘 믿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신이시면 인간이기 때문에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교사님이 한 예로 그들을 깨우쳤습니다. 개미가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장난을 치였습니다. 깊은 웅덩이를 파놓고 그곳에 불을 피었습니다. 많은 개미들은 항상 자신이 다니는 길로 그 앞 개미를 쫒아서 다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앞만 따라간 개미들이 하나같이 다 불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때에 인간인 신들이 개미에게 말해 줄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개미화 되는 것입니다. 완전한 개미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길을 제시고 생명을 제시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incarnation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공생애 3년 반을 마치는 시점에 이제 십자가를 지는 시점에 이르렀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기도로 준비하였습니다. 그 기도가 바로 겟세마네 기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무덤은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부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6: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이것이 진정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이것은 비겁한 것도 아니고 이것이 인간적인 모습니다.

예수님의 그 십자가 얼마나 잔혹한지 예수님이 사셨던 예루살렘으로 성지순례한 적이있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의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제 1지점 : 빌라도 법정에서 예수님이 재판을 받은 곳

제 2지점 : 로마 군사들이 예수님에게 가시관을 씌우고 홍포를 입혀 희롱한 곳

제 3지점 :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다 처음 쓰러진 곳

제 4지점 : 예수님이 슬퍼하는 모친 마리아를 만난 곳

제 5지점 : 구레네 사람 시몬이 예수의 십자가를 골고다 언덕까지 대신 진 곳

제 6지점 : 성 베로니카 (ST. Veronica) 여인이 물수건으로 예수의 얼굴을 딱아준 곳

제 7지점 : 예수님이 두 번째 쓰러진 곳

제 8지점 : 예수님이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누가복음 23: 28)라고 말씀하시며 여인들을 위로한 곳

제 9지점 : 예수가 세 번째로 쓰러진 곳

제 10지점: 로마병사가 예수님의 옷을 벗긴 곳

제 11지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곳

제 12지점: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운명하신 곳

제 13지점: 예수님의 시신을 놓았던 곳

제 14지점: 예수님이 묻힌 곳

http://philosophy78.blog.me/130107901891

예수님께서 손바닥에 못을 박았는데 어떤 신학자는 손목이라고 하는 신학자도 있습니다. 그리고 양발에 못을 박았는데 그곳에 받침대가 있었다고 하는 신학자가 있습니다. 가장 고통스럽게 죽이는 방법 중에 하나가 바로 오랫동안 십자가 위에서 죽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온몸에 피가 빠저서 죽게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로마 군병이 가슴에 창으로 대부분의 죄수들은 로마군병들이 죽지 않으면 다리 뼈를 꺽어서 죽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일찍 죽으셨습니다.

요 19:32 군병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요 19:33 예수께 이르러는 이미 죽은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요 19:34 그 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4. 예수님처럼 고민을 십자가로 극복해야합니다.

1) 나의 죄성를 십자가로 묵어야합니다. (싸이렌)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한 오디세우스는 사랑하는 가족이 기다리고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녀 키르케의 유혹에 빠져 가족을 잊고 그녀와 동거를 하게 된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오디세우스는 키르케의 만류를 뿌리치고 다시 고향을 향해 배를 띄운다. 그러나 고향으로 가려면 반드시 이타나 섬을 지나쳐야 한는데 그곳에는 달콤한 노래로 선원들을 유혹해 잡아먹는 바다 요정 세이렌 자매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섬에는 부서진 배와 선원들의 뼈가 산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오디세우스는 부하들이 세이렌의 노래를 듣지 못하도록 밀랍으로 귀를 막게 하고 자신의 몸을 쇠사슬로 돛대에 묶게 한 뒤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섬을 지나자 세이렌 자매는 여는 때처럼 달콤한 노래로 선원들을 유혹했습니다. 마법에 걸린 것처럼 세이렌 유혹에 빠져든 오디세우스는 발버둥을 치면서 쇠사슬을 풀어달라고 명령하지만 아무도 그 명령을 듣지 못해 무사히 섬을 빠져나가게 된다. 비상경보를 의미하는 사이렌 Siren이라는 단어는 이렇듯 유혹을 상징하는 바다 요정 세이렌 Seiren에서 기원했다.

여러분 지금은 주님이 고난 당한 주간을 한주간 앞에 남겨두고 있습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이 한 주간을 살면서 우리의 생각의 십자가의 피로 묵어야합니다. 죄성이 많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것을 이기기 위하여 우리는 항상 깨어서 기도하고 그리고 예수님의 피로 그 죄성을 묵어야합니다.

2) 확실한 목표의식이 있어야합니다. (십자가의 죽으심)

예수님이 고난 가운데 그리고 고민 가운데서도 이긴 것은 예수님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십자가가 예수님의 사람을 정결하게 그리고 거룩하게 그리고 예수님의 고민을 해결하는 실타레가 되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잘아는 톨스토이가 있습니다. 이 분 노벨상을 받지 못했습니다.

노벨 문학상 수여 행사가 1901년에 처음 시작된 것은 다 아는 일이다. 당시 제1회 수상 작가는 ‘톨스토이’일 것이라는 데에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당연히 후보에 올라 있었고, 이미 필생의 대작이랄 수 있는 많은 작품으로 ‘대문호’로 칭송 받고 있는 터였을 뿐만 아니라, 일생의 문학적 긴 여정을 거의 마쳐가는 시점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수상자에서 밀려 났다. 다음해 1902년, 그 다음 해 1903년,,,,,톨스토이의 노벨상 수상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드디어 그가 아내 ‘소피아’와의 불화에 시달리다 못해 조용히 살 피난처를 찾아 나섰다가 가출 열흘 뒤, 작은 시골 역 ‘아스타포보’ 대합실에서 생을 마감한 1910년에도 그의 노벨상 수상 소식은 없었다. 결국 톨스토이는 서거 100주년이 되는 오늘까지도 노벨 문학상과는 인연을 갖지 못한 세계적인 문호로 남아있다.

당시 러시아의 정치 사회 현상이 매우 불안정했었다는 데에서 찾아야 될 것 같다. 러시아 ‘로마노프’왕조의 마지막 황제인 ‘니콜라이 2세’ 치세 환경은 잇달아 일어나는 농노 반란과 맑스주의 좌파의 혁명적 사회 변혁 운동이 노벨상 주최측의 정서와는 너무 달랐는지도 모른다.

톨스토이가 사유재산을 부정하고 교회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운동을 폈기 때문에 당시 심사위원단은 그를 ‘유물론자’로 판단했었다는 후문이 있었다. 비록 노벨 문학상과는 인연이 없었지만, 톨스토이는 러시아 최고의 작가일 뿐만 아니라 자타가 인정하는 ‘세계적인 문호’라는 찬사가 늘 따라다닌다. 이러한 그의 위상은 무엇보다도 그의 3대 장편소설, 「전쟁과 평화」와 「안나 카레니나」, 그리고「부활」의 문학예술적 가치에서 평가되었을 것은 새삼 말할 필요가 없다. 노벨상을 받지 못하는 이유를 50년이 지난뒤 발표하는 관습이 있다고 합니다. 노벨상을 받지 못한 이유로 물론 정치적인 이유가 있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톨스토이가 기독교적인 작품을 많이 섰지만 기독교이라고 보기 힘들다는 후론이다. 무늬만 기독교인이지 실제적으로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것이 바로 노벨상의 심사원들의 후문입니다.

3) 인계점에 죽고 난 뒤에 부활이 있습니다.

지푸라기 하나로 코끼리 등뼈를 부러뜨릴 수 있을까? 말도 안된다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하지만 임계점을 가정한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처음에 지푸라기 하나를 코끼리 등에 올린다면 코끼리는 아무런 무게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하나 둘 쌓아가다 보면 언젠가 코끼리가 더 이상 견딜수 없는 순간이 도래한다. 바로 그 순간 지푸라기 하나를 더 추가하면 코끼리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다. 바로 그 순간을 임계점이라고 한다.

증기기관을 움직이러면 물에 열을 가해 수증기를 만들어내야 한다. 섭씨 0도의 물에 열을 가하기 시작해 10도, 20도 30도 아무리 열을 가해도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물 일뿐이다. 그러나 99도가 될 때까지 질적으로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섭씨 99도에서 섭씨 100도가 되는 바로 그 순간, 액체인 물은 순간적으로 질적변화를 일으켜 기체가 된다. 이것이 바로 임계점이다.

대나무 중에 최고로 치는 모죽은 씨를 뿌린 후 5년동안 아무리 물을 주고 가꾸어도 싹이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시기가 지나면 어느 날 손가락만한 죽순이 돋아나 주 성장기 4월이 되면 갑자기 하루에 80센티미터씩 쑥쑥자라기 시작합니다. 모죽이 그렇게 어느날부터 쑥쑥 자랄수 있는 것은 5년의 긴 세월 동안 땅속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성장의 준비를 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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