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3장 2절 새벽기도회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24년 10월 28일

  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2. 그는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신실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이 하셨으니

  3. 그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

  • 재앙의 결과는 생각

하나님은 높이 앉아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낮고 낮은 곳으로 내려와서 우리에게 친히 모법을 보여주신 분이니다. 그분이 이 세상을 살 때에 어떻게 살았는지 깊이 생각해야합니다.

사람들은 생각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부초처럼, 다람쥐 체바뀌 돌듯이 살아갑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생각의 중요성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땅이여 들으라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예레미야 6:19).

마귀에 유혹에 빠진 아담과 하와의 종말을 보십시요. 가룟유다의 생각을 빼았은 가롯유다의 삶을 보십시요. 악한 마귀는 사람을 사로잡으려 할 때 먼저 생각을 사로잡습니다. 사람들의 생각 속에 악한 생각을 집어넣습니다. 그 때 그 생각을 받아들이면 마귀는 그 사람을 사로잡아 움직입니다.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요한복음 13:2). ​잘못된 생각의 씨앗을 받아 품은 결과로 가룟 유다는 마귀에게 사로잡혀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욥도 자신의 불행을 일허게 생각하였습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내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욥기 3:25). 욥은 행복한 순간에도 다가올 불행을 생각하고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생각이 중요합니다. 인생의 행복과 불행은 생각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도 생각에서 오고, 우리가 실패하는 것도 생각에서 부터 오는 것입니다. 비교의식, 가난의식, 열등의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실패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는 것은 예수님의 삶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하신 말씀을 깊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닭이 알을 품듯이 그것을 품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에 대한 생각들이 더 넓어지고 더 깊어지고 더 풍성해져야 합니다.

나무를 고정하기 위하여 못을 박듯이 예수님에 대한 생각이 단단히 고정하는 것은 말씀의 못을 가지고 우리의 생각의 마음 판에 깊이 박아야합니다. 생각이 고정된 사람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습니다. 유혹은 고정되어 있지 않은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자기 남편이나 아내에게 마음이 고정되어 있지 않으면 다른 이성에게 마음을 빼앗기게 됩니다. 생각이 고정되어 있지 않은 것은 유혹의 문을 활짝 열어 놓은 것과 같습니다.

마귀는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의 생각을 사로잡아 예수님이 아닌 세상 것에 몰두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예수님께 복종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고린도후서 10:5).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는 사람의 삶의 좌우명은 ‘오직 예수’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예수님을 생각하고 예수님을 자랑하고, 예수님을 전합니다.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눈을 뜨고,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고, 예수님과 함께 눈을 감고, 예수님과 함께 안식합니다.

  • 왜 우리는 예수님을 깊이 생각해야합니까?

우리의 교단이 다 다릅니다. 장로교, 감리교, 순복음, 침례교입니다. 교회의 명칭보다 교회의 이름이 이러합니다. 대한 예수교 장로회, 예수님 교단과 기독교 교단이 분리 되었습니다. 중심이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교회입니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입니다.

빌게이츠는 1년에 한번 인적 없는 호숫가에 통나무 집에서 2주일동안 생각의 시간을 갖는 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가 생각입니다. 생각의 기간이 기도의 시간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을 깊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세상에 행한 일들을 깊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어느 날 미국 레이몬드시의 한 부유한 교회에 어떤 부랑자가 와서 객사하게 되었다. 그는 인쇄공이었는데, 기술의 발달에 따라 직장에서 쫓겨 나와 레이몬드 시에서 사나이는 오래 전에 직장을 잃었고, 아내는 약 한번 써보지 못하고 병으로 죽고, 딸은 기를 능력이 없어 고아원에 맡겼다. 사나이는 이 마을에 들어와서 직장을 구하였으나 사람들은 아무도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단지 목사님만 다른 곳에 가서 일자리를 찾아보라고 말해 주었다고 했다.

그는 그날 설교가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이였기에 뒷자리에 조용히 있다가 설교가 끝나고 앞으로 나와서 말했다. “그렇다면, 예수를 따른다는 것이 좋은 옷을 입고 주일마다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인가요? 진정 그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길입니까?…….”라고 말하고 그 자리에 쓰러지게 된다.

이 일 후에 제일교회의 맥스웰 목사님과 여러 성도들의 삶에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목사님은 성도들에게 물음을 던진다. 신앙인으로 살아가면서 어떤 일을 하기 전에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라고 생각해 보고 일을 하지는 것이었다

아무도 도와주는 이가 없어 죽게 된 것이다. 이 사건에 충격을 받은 레이몬드 교회의 헨리 맥스웰 목사는 교인들에게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라는 기준을 갖고 1년만 살아 보자고 권면했고, 교인들은 그를 따랐다.

그렇게 살기로 결단한 이후 사람들의 삶이 달라졌다. 신문사 사장이 권투 관련 소식을 싣지 않기로 했고, 광고 수입이 많은 일요판의 제작을 중단했다. 전국적인 오페라단의 가수로 일해 달라는 요청을 받은, 장래가 촉망되던 성악가는 거리의 부랑아를 위해 성가를 부르는 복음 가수로 헌신했고,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은 상속녀는 빈민들을 위한 지원센터 건립에 재산을 희사했다. 정치에 무감각했던 대학의 총장은 술집 건립에 반대하는 정치가를 지원하기 위해 정치 운동에 나서게 되었다. 여기에서 렉텡글이라는 빈민굴이 나오는데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부터 많은 사람들은 이곳으로 모여든다. 처음에는 그들에게 핍박을 받지만 그들과 이들은 함께 변화의 길을 걷는다.

  • 그러므로

앞에 있는 말을 할 때에 그러므로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붙들어 주시는 분입니다. (16. 이는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둘째로 속량하는 분입니다. (17.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셋째로 도우시는 분입니다. (18.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과 저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에 의하여 부르심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그것을 콜링이라고하는데 소명과 같은 것입니다.

부르심은 로마서 8장 30절입니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리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엇으로 부르셨습니까? 구원받으라고 부르셨고,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라고 부르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을 부르셨습니까? 시편 55편 1절에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오라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7절입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것이요.

  1. 우리가 믿는 도리

우리가 믿는 도리가 바로 신앙고백입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시 하나님을 믿는 것,

그이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 동정년 마리아에게 잉태되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으시고, 죽은지 삼일만에 다시 살아나신 그분을 우리가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고백이고 이것이 복음입니다.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희브리서에서는 그분은 선지자들보다 더 위대하시고, 그분은 천사들보다 더 위대하시고, 오늘 본문의 대제사장보다 더 위대하신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1. 그분은 신실하신 분

  2. 그는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신실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이 하셨으니

  3. 그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

사람들은 신실하지 않습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왜 계약서를 쓰고, 이사하는 사람들이 왜 전월세 계약을 합니까? 사람들이 신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혼식을 할 때에도 서약서를 쓰게 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결혼을 하고 분륜하고 서약을 깨드리는 것입니다.

교회안에서도 신실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번에 광화문 근처에서 예배드렸습니다. 김예기권사님과 임경애 성도와 편정자목사님, 그리고 최혜금권사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가 전광훈목사님측에서 큰 소리로 예배를 방해하는 것입니다. 10월 27일은 한국교회가 예배하는 날로 예배를 드리겠다고 사전에 예약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가 끼어들어 그곳에 있는 많은 성도들이 예배가 방해되어서 시청쪽으로 가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너무 마음 아프고 섭섭했습니다. 그동안 신뢰했던 목사님에 대한 실망이 극에 달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신실하지 않으면 인간들을 심판할 수 없습니다. 오직 신실한 하나님만 예수님만 우리를 심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신명기 7장 9절입니다.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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