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2장 11절 새벽기도회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24년 10월 23일

  1.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2.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

  3. 또 다시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 하시고 또 다시 볼지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 하셨으니

  4.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본문의 중심 주제는 형제(11절), 내 형제들(12절),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13절),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14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에 흐르는 내용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들의 형제로 가족으로 살아가시는 목적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에 대한 결론적인 말씀이 바로 히브리서 4장 15절의 말씀입니다.

  1.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동정(체휼)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대 제사장 되시 예수님께서 우리와 똑 같이 고난도 받고 시험도 받고 훈련도 받고 삶을 동일하게 함께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구원하셔서 12절의 말씀처럼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고 예배하게 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자녀를 키우다보면 아버지의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 아들 평강이를 키우다 보면 내 모습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위대한데, 부모님에 대한 효도의 사랑은 아주 작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장모님을 모시고 효도한다고 하지만 늘 부족함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 어머니가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데 그리 많은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직 자식에 대한 사랑만 하고 있습니다. 어쩌다 선물을 하나를 주면 그것으로 감사하고 고마워하는 마음입니다. 알면서도 속아주고 함께 투자를 하면 내가 손해인줄 알면서 자식에 손해를 보는 것이 부모님을 마음입니다. 마치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처럼 아들을 기다리는 마음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1.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2.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여기에 담겨있습니다. 죽음의 세력을 잡고 있는 마귀를 멸하기 위하여 주기를 무서워하지 않고 평생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시기 위하여 죽이심을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합니다.

사람마다 두려움이 있습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 지혜의 부족에 대한 두려움, 새로운 일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큰 두려움은 바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죽음의 세력을 잡고 있는 마귀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두려움을 극복한 사람도 있고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아내에 대한 두려움으로 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하였습니다. 그의 아들 이삭도 아내에 대한 두려움으로 거짓말하였스니다. 야곱도 형에 대한 속임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요셉의 형들도 자신의 동생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모세도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가나안 땅에 대한 보고에 대한 두려움으로 원망하고 애굽으로 돌아가지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이렇게 극복하였습니다. 당신을 헤롯이 죽이려고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때에 예수님은 그 두려움을 극복한 비결은 사명으로 생각하였고 사명으로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다가 제삼일에는 완전하여 지리라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누가복음 13:32-33).

십자가의 길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사명으로 그 길을 걸어갔던 것입니다.

  1.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종노릇하고 있는 형제들을 생각하면서 십자가의 길을 당하게 걸으셨던 것입니다. 죽음의 길을 회피하지 않고 죽음의 길을 당당하게 걸어갈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이땅에 오셔서 할 일에 대한 사명감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혀 주셨고 부활의 축복으로 우리 모든 사람들에게 산소망을 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기 때문에 우리도 부활에 동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영원한 나라에 함께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본받은 사도 바울도 자신의 사명감을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사도행전 20:24).

사명이 있으면 죽지 않습니다. 사명이 있으면 좌절하지 않습니다.

존 웨슬리는 말했습니다. “사명을 마치기까지 나의 생명은 불멸이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일이 남아 있는 한 나는 죽을 수 없다” 데이비드 리빙스턴은 말했습니다. “사명을 가진 사람은 그것을 달성할 때까지 절대로 죽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사명이 주어져 있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사명일까요? 나의 마음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떨쳐버릴 수 없는 거룩한 부담감을 주는 그 일이 바로 나의 사명입니다.

사명을 붙잡아야 의미 있는 인생, 후회 없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깨닫고 사명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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