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
오늘 본문으로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우리의 대부분의 기도시간에 기도에 집중하지 못하고 생각의 흐름속으로 기도가 떠내려가는 경우가 종종이 있습니다. 여러가지 기도 제목을 쫒아서 기도해야하는데 여러가지 생각으로 기도에 집중하지 못하고 기도가 떠내려 가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생각속으로 세상의 문화속으로 세상의 정보속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여러가지 동영상과 유튜브를 통하여 우리 생각이 떠내려가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이 주님께 고정하지 못하고 떠내려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살아있는 송사리는 한강을 거슬러 올라가도 죽어 있는 잉어와 붕어는 떠내려가고 있습니다. 먼저 우리의 믿음과 신앙생활이 살아 있어야합니다.
둘째로 떠내려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을 고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배가 정막한 항구에 앵커를 고정하고, 밧줄로 배를 고정하듯이 단단하게 묵어야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중요한 하나님의 말씀의 밧줄로 묵어야합니다.
교회만큼 기도하지 좋은 곳이 어디 있습니다. 기도 만큼 통성으로 기도하기 좋은 곳이 어디있습니다. 교회 만큰 찬송하기 좋은 곳이 어디 있습니다. 마음껏 기도하고 찬송할 수 있는곳 우리의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에다가 말씀으로 단단히 고정해야합니다.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해야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
우리가 들은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로 부터 들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대리자 전달자 천사로 부터 들었습니다. 그 들은 것에 유념해야합니다. 깊이 생각해야합니다. 예수님을 깊이 생각해야합니다.
1장에 있는 내용을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합니다.
1장의 주된 내용은 선자자보다더 위대하신 예수님입니다. 천사보다 위대한 하나님입니다. 천사들은 우리를 위하여 수종드는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천사를 숭배해서는 안됩니다. 천사를 중보자 예수님보다 더 경배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에게 들은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복음입니다. 복음은 무엇입니까? 누가복음 4장의 말씀처럼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눈먼자들*병든자들에게 복음을, 포로된 자들에게 복음을, 눌린자들에게 복음을 증거하기 위하여 예수님께 오셨다고 하였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모든 성경은 예수님을 위하여 쓰여졌고 예수님을 아는 것이 영생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들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사야에게, 다니엘에게, 누가복음 2장에 사가랴에게, 요셉에게, 마리아에게 하신 말씀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한 천사들이 있습니다. 베드로의 옆구리를 차가면서 옥에서 구출한 천사들이 견고한 말씀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신 말씀들이 있스니다. 그러나 천사도 피조물이기 때문에 그들을 경배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무엇에서 떠내려가지 말아야합니까? 큰 구원을 등한히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주로 말씀하셨고, 그리고 우리에게 확증하였고,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 확증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이 말씀하셨고, 1세대 베드로와 사도들에게 말씀하셨고, 다음으로 사도 바울에게 그리고 사도 베드로가 전한 복음, 사도들이 전한 복음,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을 다음 세대에 전한 복음입니다. 디모데가 있습니다. 디도가 있습니다. 빌레몬이 있습니다. 오네시모가 있습니다. 이러한 제 2세대, 3세대에 전한 복음을 확증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증거할 때에 치료가 임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들이 임했습니다. 그리고 다음세대 베드로와 사도바울의 복음이 능력이 있었습니다. 죽은 자들이 살아나고, 뱀을 집으면 무슨 독을 마셔도 안전하고 병든 사람들에게 손을 얻고 기도하니 낳았다고하였습니다. 사도행전 3장에 앉으뱅이가 치료받았습니다.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
2010년에 칠레에서 터널 붕괴 사고가 났습니다. 33명의 광부들이 622m 지하 갱도에 갇혔습니다. 전 세계가 이 사람들의 생명이 어떻게 될 것인가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수고와 노력으로 69일 만에 전원이 무사히 구출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적과 같은 구원에 기뻐하며 환호했습니다. 우리는 이보다 더 큰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그 어떤 구원보다 위대한 구원입니다. 영원한 형벌의 장소인 지옥에서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의 형벌에서 구원을 받고 하늘나라 백성이 되었을 때 하늘에서는 기뻐하며 환호했습니다. 그런데 구원을 받았음에도 아무런 기쁨도 없고 감격도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주어진 큰 구원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등한히 여깁니다.
왜 소중히 여기지 않을까요?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구원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첫 번째 이유는 값없이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그냥 얻은 것은 시시하게 여기고 내가 돈 주고 산 것은 소중하게 여깁니다. 구원이 값없이 주어졌다고 해서 시시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셨고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피를 흘리시고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피로 값을 지불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값을 치를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것을 아시기에 구원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구원을 감사하며 귀하게 여깁니다.
구원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두 번째 이유는 세상 것들에 몰두하기 때문입니다. 영국을 여행하던 한 여행객이 해안지방을 지나다가 많은 갈매기들이 해변에 죽어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행객은 죽은 갈매기들을 치우고 있는 사람에게 죽음의 원인을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그가 이런 대답을 했습니다. “이곳에는 여행객들이 많이 옵니다. 여행객들은 갈매기에게 맛있는 먹이를 던져줍니다. 갈매기들은 맛있는 먹이들을 받아먹다가 자연 먹이에 대한 식욕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철이 지나서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어지면 갈매기들은 바다 속의 많은 먹이를 놔두고도 여행객들이 던져주는 음식을 기다리다가 굶어죽고 만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이 주는 달콤함에 몰두하다보면 구원을 받고도 영적 생명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구원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세 번째 이유는 이 땅에 소망을 두고 살기 때문입니다. 옛날에 어렵고 힘들 때는 천국을 소망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잘 먹고 잘 살게 되면서 사람들의 관심은 이 세상 삶에 집중되었습니다.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 우리가 처음 신앙생활을 할 때 얼마나 뜨거웠습니까? 얼마나 은혜를 사모하며 열심히 기도했습니까? 처음 구원을 받았을 때의 기쁨과 감격을 간직하고 구원을 소중히 여기며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