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13장 9절 새벽기도회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25년 3월
-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음식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음식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
- 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은 그 제단에서 먹을 권한이 없나니
- 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라
-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예수님의 십자가는 예루살렘성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제사장과 바리세인들은 예수님을 부정한 사람으로 생각하여 성전 밖에서 죽였습니다.
아브라함이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온 것 처럼, 모세가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고난당함을 더 좋아하여 출애굽한 것처럼 우리 주님도 부와 안락의 삶보다는 사명의 삶을 따라서 예루살렘 안으로 들어가 죽기를 결심하고 성문 밖에서 죽으신 것처럼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나가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은 영광과 평안과 행복의 삶이기보다는 멸시와 천대와 십자가와 헌신과 고통의 삶의 자리인 것입니다. 굳이 예수님을 잘 믿을 필요가 있는가? 굳이 헌신하면서 욕을 먹고 능욕을 받을 필요가 있는가? 우리가 굳이 선교의 자리로 내려가야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수 있습니다.
찬송가 461장 십자가를 질수 있나
(1)십자가를 질 수 있나 주가 물어 보실때 죽기까지 따르오리 성도 대답하였다 후렴:우리의 심령 주의 것이니 주님의 형상 …
히브리서 12장 1절의 말씀처럼 우리 앞에 있는 경주를 하는데 수많은 허다한 증인들이 우리를 보고 있고 우리는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서 당한 경주를 걸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기쁨으로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기쁨으로 걸어가야합니다.
치욕을 짊어진다는 것은 부끄러움을 참고 걸어간다는 뜻입니다. 십자가는 중형중에 중형입니다. 총으로 한번 죽으면 아주 쉽게 죽지만 십자가는 한방울 한방울 피를 흘려가면서 죽는 것입니다. 특별히 십자가에 죽기 전에 채찍의 형벌과 십자가를 지고 가는 길은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길입니다. 왜 이러한 치욕을 감당했을까요? 바로 12절에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2.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자기의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하신 것입니다. 백성들을 거룩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인류의 가장 중요하고 큰 문제가 바로 죄의 문제입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성 안에는 유대인들, 바리세인들, 서기관들, 제사장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영문밖에는 과부 고아, 죄인, 이방인들이 있습니다. 그곳의 사람들을 위하여 그곳으로 향하였던 것입니다.
히브리서는 AD 64년에 67년 경에 쓰여졌습니다. 사도 바울인지, 어떤 저자가 쓰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누가 썼든지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한지 30년이 지난 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사건에 대하여 말씀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복음을 증거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구약을 믿고, 모세의 율법에 따라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진정한 복음의 의미를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특별히 이방인들에게 다른 복음은 영지주의 세속주의에 물든 초등학문과 같은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게 경고하기 위함입니다. 마치 오늘날 신천지의 복음과 같은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제단은 희생제단, 구약의 짐승의 제사를 의미하고 있는데 이제 신약의 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배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의 제단은 그리스도 예수님의 죽으심과 십자가의 사건들을 통하여 구원과 죄사함의 역사를 말씀하기 위함입니다.
히브리서 3장 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하늘의 부르심, 우리가 믿는 도리, 하나님의 도성, 장자들의 모임을 생각할 때에 예수님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새 사람, 새 아담으로 살아가는 삶은 예전의 관습과 종교적인 형식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피조물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히브리서 9장 12절의 말씀처럼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하였기 때문입니다.
아이의 고집에 지고 마는 엄마는 엄마가 연약하여서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아이를 달래고 먹을 것을 주기 위하여 엄마가 변덕스러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변덕스럽게 보이는 것도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본래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시고 어김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이에 대해 호세아 선지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호세아 6:3). 힘써 여호와를 알자”는 말씀은 하나님을 아는 일에 전심전력하자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