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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12장 1절 영성일기

2013-01-04 16:36:04


 

새해는 주님만 바라보고 살자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13년 1월 1일

[히] 12: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히]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1.

도미티아누스 황제(81-90년) 때 일어난 그리스도인 대박해를 가리킨다고 보면, 박해로 불안해 하며 배교의 위기를 겪는 이들의 믿음을 북돋워 주기 위해 쓰여졌어요.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온 연륜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초보적인 신앙에 머물러 모임에 자주 빠지고 선행과 봉사생활에서 멀어지는 등 나태한 신앙행태에 대해서도 가르침을 주고 있어요.

대제사장인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1장 2절), 만왕의 왕(2장 9절), 영원한 대제사장 (7장 20절), 예수그리스도는 희생제물(10장 10절), 예수 그리스도만이 믿음의 대상(11장),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자 (12장 1절)

본문의 말씀은 신앙생활을 경주에 비유함으로 그 경주를 완성하여 하늘나라에 갈때까지 주님을 바라보라는 말씀으로 이루워저있습니다.

여러분 경주하면 우리는 마라톤을 생각할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많은 경주가 있지만 마라톤처럼 힘들고 어려운 경기가 없습니다. 마라톤을 튐으로서 사람들이 탈진하고 맥이 풀려서 어지럽게 되고 현기증과 심장마비로 죽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올림픽의 최종 행사를 마라톤으로 마치게 되는 것입니다.

왜 인생의 경주를 할까요? 상급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있는 말씀처럼 많은 군중들 앞에서 열심히 뜀으로서 골인하여 영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선수가 우승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받는 영광과 찬사는 한 나라의 영웅이 되고 그리고 부와 영애에도 따라오는 것입니다. 경기도 안성에 680평의 엉청난 큰 집에서 사는 것을 인터넷에 보았습니다.

인생의 경주에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인생의 경주에서 포기하는 사람들은 영광을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학교를 다닐 때 보면 공부를 도중에 포기하는 학생들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삶이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렵고 힘들은 인생이라도 학생의 시절에는 잘 참고 중학교 고등학교 졸업을 하고 성인이 되어 자신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성원순복음교회도 교회를 짖는데 도중에 포기하면 우리가 입당할 수 없습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우리는 이 길을 끝까지 달려가야 마침내 입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인생의 경주에서 주님을 바라보며 경주해야합니다.

– 2013년의 새해 주시는 말씀 (주님을 바라보자)

– 유기성 목사님의 책을 읽고 설교를 합니다.

딸을 차를 태워주는데 어느 유명한 목사님이 천국과 지옥을 갔다 온 뒤 책을 내셨는데 천국에 가니 제일 좋은 곳에는 개척교회 목사님들이 미자립교회 목사님들이 게시고 지옥에 가보니 첫 번째 층에 큰 교회 유명한 담임목사님이 계시나도 하였습니다. 자기 아버지도 그래도 큰 교회 유명한 목사인데 아바저지 지옥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답답하여 물어본 것입니다. 아빠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입니다. 유기성 목사님은 딸에게 명쾌한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딸이 아빠를 이렇게 위로하였다고 합니다. “아빠 지옥 맨 밑바닥이 아니라 첫 번째 층이라고” 해요 하면서 아빠를 위로하였다고 합니다.

말씀을 전하기만 하고 그 말씀대로 살지 않는다면 그것은 결코 작게 여길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다고 설교자가 말씀대로 살지 못한다고 설교말씀을 증거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설교를 하고 그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해야합니다.

저는 설교 잘하는 목사가 아니라 설교 말씀대로 사는 목사가 되기를 원합니다. 저는 참으로 설교를 못합니다. 그러나 조금씩 우리 성도들이 잘 들어주셔서 말씀을 증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교단에서나 아니면 세미나에서 그리고 방송설교를 듣다보면 나도 모르게 설교에 은혜받고 설교 말씀대로 살겠다는 결심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성도들에게 가르치려고 하였습니다. 제가 먼저 나는 설교 말씀대로 살지 않는 모습을 종종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습니다. 그리고 수요예배 철야예배 그리고 새벽기도회, 어는 교회에서는 성경공부를 시키고 더 열심히 있는 성도들은 큐티를 시키고 성경을 날마다 연구하며 성경에 대하여 알려고 하는 성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기도도 하면 성경을 말씀을 들을 이리 저리 잘 끌어당겨 은혜로운 기도를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살교고 하는 사람들이 적습니다.

실제적인 예를 적용하도록 하겠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였습니다. 성도님들은 얼마나 기뻐하고 계십니까? 여러분들은 항상 기쁘게 살고 계십니까? 화도 내고 짜증내고 불평하고 살고 있습니까? 대부분이 항상 기뻐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그렇게는 살 수 없지요. 그러나 항상 기뻐하려고 노력해야합니다.

범사에 감사하였습니까? 어는 목사님이 이러한 사건이 있었다고 합니다. 목사님께서 교회를 수리하다가 그만 6미터에서 털어지셨습니다. 지방에 계신 지방회장님입니다. 그런데 머리로떨어지지 않고 등허리로 떨어지셔서 119가 와서 병원에 치료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몇 달동안으로 누워서 생활하면서 병문안을 가니까? 떨어지는 순간에도 감사하다고 하였습니다. 사모님에 대하여 원망 불평이 나오수 있었다고 합니다. 사모님이 붙잡고 있다고 그만 집으로 들어가 버리는 바람에 그 높은 곳에서 떨어지셨다고 합니다.

설교자들은 공과를 인도하는 성도님들은 설교를 잘하려고하였지 설교 말씀대로 살료눈 간절한 마음이 없습니다.

목회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고 겸손하게 살아갑니다. 하나님앞에서 크게 잘못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려움이 물러가고 평안하고 부흥하면 설교자가 되지 목회자가 되지 않습니다. 설교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 나온다고 크게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육신을 가지고 살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더 가지고 싶고, 더 먹고 싶고, 더 누리고 싶은 것이 우리 인간의 모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도를 딱거나 선행을 해서 구원을 받는 종교가 아닙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고 그리고 내가 예수님을 바라보고 사는 것이니다.

프랑크 루박 선교사님의 고민은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시는데 왜 내 삶속에서 역하하지 안으시는가 하는 것이 였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사아계시고 나와 함께 계시는 것을 알지만 자신에게 주님과 함께 하는 분명한 체험이 없다는 그의 고민은 우리가 가진 고민과 같습니다. 안 믿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삶속에서 주님의 임재를 항상 느낄수 있는 것도 아닌 그런 삶에서 나온 고민입니다.

그는 1930년 1월 1일부터 결심을 합니다.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시고 나를 보고 계신다면 나도 하나님을 바라보아야겠다. 나도 계속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아보자“ 그리고 결심한 것을 끝까지 지키기 위해 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을 계속 바라본 삶의 기록을 하루 하루 남깁니다. 내가 오늘 아침에 눈을 뜨면서 주님을 바라본 것, 오늘 밥을 먹을 때 주님을 바라본 것,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하나님이 처음 의식이 된 것이 언제었는지, 또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 주님을 바라보았는지, 주님을 바라보고 사는 자신의 삶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입니다. 그의 일기가 프랭크 루박의 편지 (셩명의 말씀사)라는 제목의 책으로 나와있습니다. 그의 일기가 보고 싶어서 국내의 출간된 책이 있는지 백방으로 찾아보았지만 찾지 못하다가 찾게 되었는데 일기가 아니라 편지라는 제목으로 나와있었습니다. 게다가 내용을 모르면 읽어도 감동이 없습니다.

그냥 평범합니다. 프랭크 부박 선교사의 하루 일과를 써놓은 것입니다. 그렇지만 내용을 알고 읽으면 엄청납니다. 그 일기가 하나 하나 읽기 시작하면 3월이 다르고 4월이 다라고 5월이 다라고 6월이 다릅니다. 어려웠습니다. 24시간 내내 주님을 생각하지 않고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일기를 쓰려고 생각해보니까 비로소 평소에 주님을 생각하지 못하고 살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이런 찬송가를 즐겨 불렀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그 내용대로 실천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언제나 주는 날 사랑하사, 언제나 새 생명 주시나니, 영광의 기약이 이르도록 언제나 주만 바라봅니다.](찬송가 407장 후렴)

여러분! 찬송가를 부를 때마다 그 가사가 내 삶인가 떠올려보면, 그렇게 되기를 바랄 뿐이지, 실제 자신의 삶은 아닌 것입니다. 필리핀 선교사로 나간 루박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3월이 지나고 4월이 지나면서 주님이 정말 함께 계심을 순간순간 느끼게 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이 그와 함께 계신 것을 느끼고 알게 되었습니다.

루박 선교사님 자신은 별로 변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사람들은 루박 선교사가 변했다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변한 것이라고는 주님을 계속 생각하고 일기를 쓰는 것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루박 선교사의 얼굴 표정이 달라졌다고 말했습니다.

5월에 접어들면서 그는 스스로의 변화에 대해 충격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루박 선교사의 5월 24일 일기를 인용합니다.(63쪽)

“나는 아무 것도 염려하지 않게 되었고 잠도 설치지 않게 되었습니다. 또 대부분의 시간을 즐거운 기분으로 지내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거울을 보면 내 눈과 얼굴에서 새로운 빛이 도는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매순간 나는 그것을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가볍게 맞이합니다.”

5개월째 그의 변화된 모습입니다. 그가 그동안 한 일이 무엇입니까? 계속 주님을 생각하고 바라보려고 한 것입니다.

그가 눈을 뜰 때 주님이 그를 보고 계시고 그와 언제나 함께하시는 것이 사실이니까, 그래서 그도 24시간 내내 주님을 생각한 것입니다. 잠에서 깨어 눈을 뜰 때 “주님, 잘 잤습니다. 오늘 하루도 지켜주시고 동행해주십시오. 그러면 저는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라고 기도합니다. 세수를 할 때도 주님이 함께 계신 것을 알고, 밥을 먹을 때나 밤에 잘 때까지 항상 주님을 생각하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5개월이 지나고 6월에 접어든 6월 3일자 일기에 루박 선교사는 이렇게 썼습니다.(70쪽)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이제 낯선 분이 아니십니다! 오직 주님만이 이 우주 가운데서 조금도 낯설지 않은 분이십니다. 주님은 늘 내 안에 계십니다. 지금도 계십니다.”

여러분! 주님과 24시간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변함없이 우리와 24시간 함께 하십니다. 참 어렵게 들릴지 모르나, 주님을 24시간 만나고 동행해야 합니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 주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주님을 지금 만나야 합니다. 특별히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는 것과 같은 인생을 살 때, 피난처요, 요새요, 의지이신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알고 보니 프랭크 루박 선교사님이 대단히 유명한 분이였습니다. 미국의 우표에 선교사님의 초상이 올라가 있는 것은 프랭크 루박 선교사님이 유일하다고 합니다. 세계 문명퇴치선교회를 설립한 분이자 정치적 지위도 없는데 미국의 의교정책에 자문 역할까지 했던 분이였습니다. 필리리핀의 구석에서 선교사역을 했지만 그의 영향력은 엄청났습니다. 어떻게 그럴수 있었을까요?

그 비밀은 프랭크 루박 선교사님이 매일 주님을 바라본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게속 일기로 쓴 겁니다. 제가 그 책을 읽고 우리 교회에서 남자 성도들과 함께 실제로 그 일기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데 예수님이 우리와 gAp하시는 것이 잘 믿어지지 안는다면 프랭크 루박 선교사처럼 우리도 한번 해보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 일은 간단합니다. 아침에 눈 뜰 때부터 밤에 잘 때가지 내가 얼마나 예수님을 생각하는지 계속 써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번모여서 그것을 나눠보았습니다. 우리가 한일은 그것밖에 없습니다. 부흥회를 한 것도 아니고 특별한 성령체험한 것도 아닙니다 영성 일기를 쓰기 시작하자 사람들이변화가 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강력한 성령 체험을 했던 사람이라도 주님과 전혀 동행하지 않는 사람을 많이 봅니다. 우리가 특별히 강력한 어떤 은혜 체험 때문에 주님의 임제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의 그 체험이 지금 예수님과 동행하는 믿음을 갖게 해주지는 않습니다. 엄청난 체험을 하고도 무섭게 타락하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주님의 임재란 한두번의 강력한 체험이 아니라 계속 주 예수님을 바라보는 태도입니다 한번 바라보는 것이 아닙니다. 하루만 바라보는 것이 아닙니다. 하주 한달 6개월이 아니라 1년을 게속해서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남자 성도들이 좀 어설프기는 해도 일기를 쓰기 시작했고 3개월쯤 지나자 한 성도님이 아내에게 자신의 비자금을 다 내 놨습니다. 남편이 비자금을 왜 숨길까요? 아내 몰래 숨기는 것은 뭔가 아내 몰래 쓸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4시간 예수님을 바라보는 일기를 쓰다보니 아내 몰래 비자금을 쓸 일이 없어졌습니다. 이제는 아내에게 에기하지 못할 일이 아예 없습니다.

자신이 음란 동영상을 끊지 못랄 거라고 생각했던 한 집사님에게도 음란 동영상이 끊어지는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동안 금식도 하고 철야도 해보았지만 끊어지지 않던 음란 동영상이 3개월만에 끊어지게 되었습니다. 뜨거운 성령 체험을 한 것도 아닙닌다. 계속해서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집에서 짜증이나 혈기로 살았습니다. 혈기가 다시 일어나지 않는 일들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이 품어지는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하지요. 주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유기성목사님도 성질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일기를 통하여 그러한 일들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고후 5장 17절

이 말씀이 실제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저희 교회는 전 교인이 영성 일기를 쓰는 일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매일 일기를 써서 인테넷 카페에 올리고 나눔방을 통해서 서로 나눕니다. 영성 일기를 쓰는 프로그램을 교회 홈페이지에 연결시켜놨습니다.

어느 여집사님이 일기를 처음쓰게 된 날이었습니다.

12월 28일 큰 아들에게 엄마가 쓰는 일기에 대해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오늘은 두 아들이 방학하는 날이다. 아이들은 너무 기뻐했지만 엄마인 나는 말할 수없는 걱정이 몰려왔다, 이제 이 아이들과 44일간의 험난한 대장정을 어찌 대처해 나갈지 게다가 바로 이순간 주님과 24시간 동행하며 일기를 써야하다니… 일기를 쓰는 첫날 정말 기적적으로 아이들의 전쟁상황에도 고성과 잔소리가 사라졌다. 작은 목소리로 타이르거나 야단칠 마음을 참고 지나갔다. 내가 계속해서 주님만 생각하고 주님께 집중하다보니 아이들이 호사를 누리는 날이 되었다. 큰 아들이 다른 때와 다른 엄마를 보고 물었다. “엄마 그 일기 언제까지 쓸거야”

일기가 개인적으로 한달이 고비입니다. 그러나 6개월이상을 써야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 청소년부 아이들도 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넷세대인 청소년들은 교회에와서 말씀을 듣는 일에 별로 귀가 열려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인테넷에 올려서 나눠복라고 하자 정말 다양한 프로그램들로 일기를 나누기 시작하였습니다. 아이들이 일기를 얼마나 재미있게 쓰는지 모릅니다. 전도사님과 선생님들은 그 일기를 읽고 그 일기 가운데 상담하고 조언해주고 댓글을 달아주었습니다. 그러자 아이들의 삶 또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아이들이 주님을 바라보는 임재를 경험하자 기도회가 달라지고 기도가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여름수련회를 정선군 사북에 있는 강뤈랜드에 발 씨어주는 전도를 하고 왔습니다. 처음에는 과연 아이들이 이것을 할 수 있을까? 하였습니다. 도박장에 들어가는 사람이 누가 발을 씻겠다고 할가 싶어 3일간 한 나살므이 발이라도 씻어줄 수 있다면 성공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발 씻겨드리는 일이 한 두건이 아니였습니다. 발을 씻겨드리면서 아이들도 울고 발을 씨는 동안 복음을 들은 사람들도 울고 그 장면을 보는 성도들도 모두 울었습니다.

사북일때에 돌면서 마을마다 발을 씻어들리고라였습니다. 첫 번째 께애시로 버스 운전기사의 발을 씻어드리기로 마음이 통했스니다. 종점까지 따라갔습니다. 너희들이 이 마을에 온 것이 만니 하고 기사가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이들이 기사님의 발을 씻겨드리고 싶어서 종점까지 따라왔다고 하였습니다. 문안해서 뿌리치는 기나님에게 이이들이 다시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마음에 기사님의 발을 씻어드리라고 말슴하였습니다. 가나님은 그냥 얄말만 벗어주세요.

그런 다음 아이들이 발을 씻어주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시가님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자녀들이 교회에 가자고 전도했지만 극구 교회에 나가지 않던 분이였는데 아마 그날 아이들을 통해 주님이 자신의 발을 씻겨주시는 느낌을 받은 것 같습니다. 다음날 이 기사님이 운전기사드레에게 발을 씻으라고 이끌어냈고 아이들이 그날 일을 간증하라고 하면 밤이 새도 모자랄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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