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평양, 제국주의 시대의 부흥
1907년 새해, 평양은 일제 제국주의의 압박 아래 놓여 있었습니다. 장대현 교회에서는 정월 초이튿날(1월 2일)부터 시작된 신년부흥회가 13일째(1월 14일)를 맞이하며 절정에 다다르고 있었습니다.
신년 부흥회에 참석하기 위해 1,500명이 넘는 성도들이 황해도와 평안도 등 각지에서 음식을 싸 들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먼 길을 달려왔습니다. 성도들은 원산에서 시작된 부흥의 불길이 평양에도 타오르기를 간절히 기대하며 모여들었습니다.
저녁 부흥 성회에서 헌트 선교사의 설교 후, 성도들은 통성기도를 하며 회개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때, 한쪽 눈이 어두운 길선주 장로가 조심스럽게 강단에 올라섰습니다. 길선주 장로는 한국 새벽기도회의 시작을 연 인물이며, 장대현 교회뿐 아니라 평안도 지역에서 믿음 좋기로 널리 알려진 분이었습니다.
“나는 아간과 같은 자입니다”
길선주 장로는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습니다. “나는 아간과 같은 자입니다. 나 때문에 하나님께서 축복을 내리실 수 없습니다. 저는 1년 전 죽은 친구의 유언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돈을 훔쳤습니다.”
죄를 고백하는 길 장로의 눈가에는 어느새 눈물이 맺혔습니다. 쥐색 두루마기를 입은 그는 죄를 고백하는 순간, 북받쳐 오르는 울음을 참지 못하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얼굴은 뜨거운 불에 데인 듯 붉게 달아올랐습니다.
예배당 안은 정적에 휩싸였습니다. 성도들은 숨소리조차 죽인 채 길 장로의 다음 말을 기다렸습니다.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함 속에서 길 장로의 어깨만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1년 전 세상을 떠난 친구로부터 셈을 잘 못하는 아내를 위해 재산을 정리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재산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100달러, 적지 않은 돈을 횡령했던 죄를 고백한 것입니다.
성령님의 역사와 평양 대부흥의 시작
길선주 장로가 죄를 자백하자, 무겁게 예배당을 짓누르던 어둠의 권세가 순식간에 걷히고, 거룩하신 성령께서 빛처럼 환하게 임재하셨습니다. 그날 저녁 집회가 끝난 후, 600여 명의 사람들이 새벽 2시까지 남아 20여 명이 자신의 죄를 공개적으로 고백했고, 서로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이 작은 회개의 불씨는 한국 기독교 역사상 가장 큰 부흥으로 기록된 1907년 평양 대부흥의 시작이었습니다. 한 지도자의 작은 용기와 진실한 회개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이 땅에Summon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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