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씀] 중독을 넘어 영생으로: 성령님을 거역하지 말고 부활을 믿으십시오

1. 영화감독이 아닌 원작자, 에드워드 애슈턴

저는 봉준호 감독이 아닌 영화 ‘미키 7’의 원작자인 에드워드 애슈턴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그는 생물물리학자이자, 한때 게임 중독자였습니다. 그가 중독되었던 게임은 ‘시드 마이어의 문명’이라는 게임입니다. 젊은 세대는 잘 알 것입니다. 이 게임은 인류 문명이 다른 행성으로 옮겨가 문명을 건설하고, 기술과 과학을 발전시키는 내용입니다. 벌써 7번째 버전까지 나왔을 정도로 매우 인기가 많습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재미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수 시간 동안 몰입하며 중독되기도 합니다.

에드워드 애슈턴 역시 이 게임에 중독되었고, 그로 인해 아내로부터 이별을 통보받았습니다. 아내는 이혼까지 요구하며, “당장 게임을 그만두지 않으면 더 이상 함께 살 수 없다”고 강하게 경고했습니다. 결국 그는 중독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했습니다. 중독을 끊고 나니 새로운 무언가를 해야 했고, 그가 선택한 것은 글쓰기였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책이 바로 ‘미키 7’입니다. 그는 후에 아내에게 감사를 표했습니다. 아내 덕분에 게임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2. 세상의 중독에서 벗어나 예수님께 중독되다

우리Human beings are 빠지기 쉬운 존재입니다. 돈, 마약, 술, 담배, 성, 도박, 게임 등 다양한 것에 중독되어 살아갑니다. 세상에 중독된 사람들에게 예수님께 중독되는 것은 어쩌면 종교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마치 기독교인이 되는 것이 세상의 중독에서 다른 종류의 중독으로 옮겨가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에드워드 애슈턴이 게임 중독에서 벗어나 ‘미키 7’을 쓴 것처럼, 우리는 세상의 중독에서 벗어나 예수님께 중독되어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사도행전 26장 24절에서 25절은 이와 관련하여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 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바울이 이르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나이다” (사도행전 26:24-25)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미쳤다는 비난까지 받았지만, 그는 오히려 자신이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고 있다고 변증했습니다. 이는 마치 우리가 예수님께 중독되어 살아갈 때 세상으로부터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우리의 삶이 진실되고 온전한 길임을 확신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파스칼은 하나님에 대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과학자의 하나님, 철학자의 하나님이 아닌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은 단순히 연구 대상이나 철학적 논의의 대상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만나고 교제하며 삶 속에서 경험하는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3. 성령을 거역하지 말라

요한복음 20장 22절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요한복음 20:22)

예수님은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문을 굳게 닫고 숨어 있을 때, 그들에게 나타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샬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샬롬’은 단순히 평화를 넘어, 새로운 삶, 부활의 삶을 의미하는 인사입니다. 예수님은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며 자신이 부활하신 것을 증명하시고, 제자들에게 당신이 하셨던 사역을 이어갈 것을 명하시면서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성령님을 거역하거나 모독해서는 안 됩니다.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마태복음 12:31-32)

성령 모독죄는 단순히 교회나 목회자를 비난하는 것을 넘어, 하나님의 성령님 자체를 의도적으로 거부하고 훼방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4. 성령을 훼방한 장로와 성령을 따른 청년의 이야기

실제로 한 교회에서 목사님과 장로님의 갈등이 있었는데, 장로님이 성찬식 중에 성찬기를 집어 던지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놀랍게도 그 누구도 장로님을 제지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한 학생이 성가대 가운을 입고 달려와 장로님을 막아서며 “장로님, 왜 이러십니까!”라고 외쳤습니다. 교회에서 성령을 훼방하는 행동을 막아선 사람은 그 학생 한 명뿐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의 운명은 극명하게 갈렸습니다. 성령을 훼방한 장로님은 교회 계단에서 내려오다 목이 부러져 사망했고, 성령의 역사를 막지 않고 순종했던 학생은 후에 유명한 목사님이 되었습니다. 물론 이 이야기는 단순히 목사에게 순종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핵심은 성령님을 모독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로 값 주고 사신 곳이며, 성령님이history하시는 거룩한 곳입니다. 비록 목사가 개척했을지라도 교회는 목사의 소유가 아니라 예수님의 소유입니다. 교회 안에는 여전히 예수님의 피가 흐르고, 성령님이 역사하시며,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고 계십니다. 교회의 거룩함을 멸시하고 경멸하는 행위는 성령님을 모독하는 죄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property인 교회를 함부로 대하는 것은 하나님의property를 훼손하는 것과 같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9절은 우리에게 영원한 소망을 제시합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고린도전서 15:19)

5. 영원한 삶을 바라보며

메뚜기와 하루살이 이야기는 우리의 시야가 얼마나 좁을 수 있는지 보여주는 비유입니다. 하루살이는 ‘내일’이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고, 메뚜기는 ‘내년’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에 갇힌 사람들은 영원한 천국과 부활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내일을 경험하지 못했다고 해서 내일이 없는 것이 아니고, 내년을 경험하지 못했다고 해서 내년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천국을 경험하지 못했다고 해서 천국이 없는 것이 아니며, 부활을 경험하지 못했다고 해서 부활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의심 많은 도마처럼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나기 전에는 부활을 믿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도마가 예수님을 만난 후 변화되었듯이, 우리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변화되어 주님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아르케 – 애니메이션 – 보이는 말씀,살아있는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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