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3장 1절 모세 2 하나님의 주권세우기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25년 2월 16일
1.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2.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3.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그 때에
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5.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시대마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브라함, 모세, 사무엘, 다윗, 엘리야, 이사야, 다니엘, 베드로, 바울, 그리고 오늘도 여러분들을 부르셨습니다.
낮은 곳으로 임하소서 (책)
부유한 삶을 사시던 아버지, 안진삼은 어느날 갑자기 회심한 뒤에 재산의 대부분을 평양신학교에 헌납하시고 8남매와 함께 어려운 지역의 목회지를 돌면서 목회하셨습니다. 특별히 장남인 안요한을 목회자로 만들기 위하여 요한이라고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안요한은 평생 가난하게 사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이해할 수 없어 방황하기 시작하였으며 아버지의 목회를 방해하기까지 했습니다. 전혀 나무라지 않으시고 아들만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서울외국어대학 불문과를 입학하고 아버지의 권유로 서울신대도 다니기는 하였지만 방황의 끝이 없었습니다. 군생활은 카튜샤 생활을 하면서 미국에 직장을 얻게 되었고 결혼하고 미국에 들어가려고 결혼을 하였으며 아버지의 중매로 목회자의 딸과 결혼하여 두 자녀를 낳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두 눈이 이상이 생기기 시작하였고 눈이 점점 보이지 않게되었습니다. 미국을 포기하고 논산에 있는 쌘뽈여고의 불어교사로 근무하였지만 눈이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자 아내의 권유로 충청도에 있는 곳에서 혈맥을 찾아 피를 뽑아 내는 침으로 등골 살을 파내는 처절한 고통 속에 102일간의 치료를 받다가 실신하여 죽을번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도저히 치료를 받지 못하자 안요한은 두 딸을 데리고 친정으로 가라고 하며 이혼하게 되었고 두번의 자살시도 끝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구약성경 320페이지를 펴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수아 1장 5-8절의 말씀입니다. 여호수아를 버리지 않는 것 처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도 자신을 반겨주는 사람이 없어 혼자서 이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하여 서울역으로 가게 되었고 서울역 주변에서 노숙인생활을 하면서 함께 모인자들과 함께 구걸도하고 도움을 받게 되었고 특별히 뉴욕에 있는 헬렌켈러 재단의 도움을 받아 신학을 공부하게 되었고 새빛맹인선교회를 개척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어린 나이에 부르시고 어떤 사람들은 젊은 청년때에 부르시고, 어떤 사람들은 늙어서 부르십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80세된 할아버지 모세를 부르시고 그가 사명을 다할 때까지 사용하셨습니다.
20세에게 세상을 변화시키겠다고 하려고 하였지만 한 사람도 변화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40세에 자신의 동네의 사람들을 변화시키려고 하였지만 동내의 한사람도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60세에 자신의 자녀와 식구들을 변화시키려고 하였지만 한 사람도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80살에 스스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부터 변화되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무디는 목회를 하면서 자신을 가장 괴롭히는 성도가 누구인가 생각하였습니다. 목사인 자기 자신이라고 하였습니다. 고치지 못하는 자신의 성격, 삶의 태도들을 고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교회에 가장큰 장애물은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양파껍질을 까면 깔 수록 눈물이 나는 것 처럼 자기 자신을 벗기면 벗길수록 자신의 삶을 벗기면 벗길 수록 부족하고 연약함을 느끼게 됩니다.
2. 떨기나무와 같은 모세 (80세)
2.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 꿈도 없고 소망도 없고 아무 생각도 없는 모세에게 하나님은 찾아오셨습니다. 옛날 영화에서 보면 아버지 복수를 위하여 무술 스승을 찾아온 그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에게 아무 일도 시키지 않고 오직 기초체력을 기르고 모든 힘을 빼는 가르침처럼 모세가 하나님을 만날 때에는 아무런 능력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 모세의 첫째 아들의 이름은 게르솜(게레숌, גּרשׁם)입니다.
그가 아들을 낳으매 모세가 그 이름을 게르솜이라 하여 가로되 내가 타국에서 객이 되었음이라 하였더라”(출 2:22)
둘째 아들은 ‘엘리에셀'(출 18:4; 행 7:29).
“하나의 이름은 엘리에셀이라 이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 나를 도우사 바로의 칼에서 구원하셨다 함이더라”(출 18:4). 엘리에셀(אליעזר)은 ‘나의 도움이 되시는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 떨기나무
떨기나무의 어원은 찌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떨기나무 속에서 불꽃이 임하여 거룩하여 지게 된 모습을 상상하여 히브리어로 페텔 카도쉬라고 합니다. פטל קדוש(페텔 카도쉬) 영어로 이것을 ‘Burning bush’라고합니다.
시내산 입구 성 케트린 수도원에 한 다발의 떨기 나무가 자라는데 이 나무를 잘 보호하고 있습니다. 시내산에서 떨기나무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지하 계속에서 스며드는 습기를 머금고 자랄수 있기 때문입니다.
● 떨기나무가 나오는 성경 구절을 살펴보면
1) 아브라함의 집에서 쫓겨난 하갈은 이스마엘을 떨기나무 아래 두고(창 21:15),
2) 욥이 당하는 비참함과 기근, 궁핍한 모습을 묘사할 때의 배경이 되었다(욥 30:4, 7).
3) 예레미야는 사람을 믿는 인생과 하나님을 의지하는 인생을 대조하면서 사람을 믿는 것은 떨기나무 같다고 하였습니다. (렘 17:6)
그러므로 떨기나무에서 하나님을 만났다는 것은 쓸모없는 인간 모세를 하나님이 부르시고 그를 사용하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떨기나무는 광야에서 자랍니다. 떨기나무는 금방 타버리는 나무입니다. 장작도 아니고 장작에 불을 부치는 도구에 불구한 나무입니다. 그런 곳에서 나무에 불이 붙어서 계속적으로 타고 있는 것입니다.
떨기나무는 모세의 자화상입니다.
어느 이교도가 랍비를 찾아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왜 떨기나무 속에서 말씀하셨습니까?” 하나님이시라면 적어도 영산(靈山)의 정상에서 천둥 소리로 말씀하셔야 한다는 것이 이교도의 생각이었다. 랍비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 땅에 하나님의 영광이 머물지 않은 곳이 없다는 것, 보잘 것 없는 가시덤불 조차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보이시기 위함입니다.
3. 떨기나무와 같은 모세에게 불이 임합니다.
2.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예배는 불을 체험하는 시간입니다. 불이란 성령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불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가치 없는 사람들이, 떨기나무와 같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불을 받는 과정입니다.
● 우리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 이유는
(눅 12:49)○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50.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51.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라
불은 뜨겁습니다. 불은 환합니다. 불은 태웁니다. 불이 임한 곳에 뜨거움이 임합니다. 추운 겨울날 안방에 보일러 불로 가정을 따뜻하게 합니다. 불이 임한 곳에 환하게 밝아집니다. 성령의 불이 임한 곳마다 마음이 밝아지고 사업장이 밝아지고, 사회가 밝아집니다. 성령의 불은 죄악을 태우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이 불이 되어서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복음이 증거되어 우리 대한민국에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불은 열정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만드는 힘이 바로 불에 있는 것입니다. 자신은 떨기나무인데 하나님의 성, 하나님이 자신의 마음에 불을 붙이는 장면입니다. 열정이 소명이되고, 열정이 사명이되어서 사람들을 마지막까지 귀하게 하나님이 쓰시고 하나님의 나라에 가게 하는 것입니다.
4. 구경꾼 모세
3.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그 때에
이 큰 광경을 보기 위하여 떨기나무로 가는 모세입니다. 여러분 80세가 되면 호기심이 없습니다. 80세가 되면 모든 도전을 멈추고 죽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80세가 되면 정부에서 주는 노후 연금만 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회사나 직장에서 불러주지 않습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동기가 필요합니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면 얼마나 교만하지 모릅니다. 나는 다 안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뒤 전에 아이들을 가르치고 선생님을 가르칩니다. 그런데 중학교 1학년이 되면 얼마나 신선한지 모릅니다. 우리 사모가 1학년 학생들을 좋아합니다. 담임맞기를 좋아합니다. 순수하고 말을 잘듣고 고분고분합니다. 그런 아이들이 1년만 지나가면 세상에서 가장 다루기 힘들은 중2입니다. 그리고 가장 교만하고 반앙적인 중 3학년입니다. 담배도 피우고 세상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교만들 떨고 있습니다. 고등학교도 마찮가지고 대학교도 마찮가지입니다. 저는 군대만 갔다오면 모든 인생이 끝난줄 알았습니다 군대만 같다오면 어른이 되는 줄로 착각했습니다. 지금 64살이되었는데 아직도 부족한 것이 많이 있어서 늘 겸손합니다.
하나님은 나이를 먹게하시는지 모릅니다. 특별히 69세, 79세, 89세 아홉수, 아홉수에 이러한 속설이 있습니다. 29살 결혼하면 불행하게 된다. 39살에 이사하면 재물이 빠진다, 49살에 사업을 시작하면 실패한다는 미신입니다. 59살만 건강하게 지나면 오래산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인들은 그것을 믿지 않습니다. 아홉수는대 반격의 시작이다. 다시 일어나는 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잘못된 사고 방식을 바꿔야합니다.
● 마틴 로이드 존스 D. Martyn Lloyd Jones(1899-1981)
30년 동안 런던 웨스트민스터 채플에서 사역한 마틴 로이드 존스는 20세기 최고의 강해설교자이자 탁월한 복음주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26세에 왕립의학협회로부터 의사 자격을 취득하고 당시 왕립 주치의였던 호더 경의 수석 어시스턴트가 될 정도로 촉망받는 청년 의사였으나, 거룩한 부르심에 순종해 뭇 심령을 구하는 ‘영혼의 의사’로서 평생을 설교자로 전심전력했다. 결심하게 된 동기는 존낙스의 후계자인 로버트 브루스의 고백에서“나는 오랫동안 목회의 소명을 거역하였다. 그동안 말을 타고 다니면서 얻은 것이 없고, 말을 타지 않고도 얻은 것이 없다. 그저 양심의 가책만 받았을 뿐이다.” 그는 결국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목회를 안하고 견딜 수 있다면 의사를 하겠지만, 나는 말씀을 증거하라고 부르심을 받았으므로 의사를 할 수 없다. 목회를 시작하였습니다. 개척교회 10년, 대형교회에서 30년동안 가장 중점적인 하나님의 메세지를 그의 묘비에 쓰게 되었습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이 메세지는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일생동안 그의 가슴 속에 자리 잡은 말씀이였습니다.
5. 신을 벗는 모세
5.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하나님의 종이 된다는 뜻입니다. 종은 주인의 말을 듣습니다. 종은 바로 노예와 같은 존재입니다. 노예는, 종은 신을 신지 않습니다.
신을 벗는다는 것은 포기를 의미합니다.
룻기 4장 7. ○옛적 이스라엘 중에는 모든 것을 무르거나 교환하는 일을 확정하기 위하여 사람이 그의 신을 벗어 그의 이웃에게 주더니 이것이 이스라엘 중에 증명하는 전례가 된지라 8. 이에 그 기업 무를 자가 보아스에게 이르되 네가 너를 위하여 사라 하고 그의 신을 벗는지라
기업무를 자가 스스로 포기하는 행위는 바로 그의 신을 벗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권리를 포기하는 행위가 바로 신을 벗는 것입니다.
두번째 신을 벗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예의 표시입니다. 우리 교회 처음 오신 성도님이 계셨습니다. 목사님 성전 들어갈 때에 신을 벗어야합니까? 아니요 신을 신고 오세요. 왜 신을 벗으려고 했습니까? 2가지라고 하였습니다. 깨끗해서 그랬고, 하나님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네덜란드 화가 디에릭 보우츠(1415~1475)가 그린 ‘불타는 떨기나무와 모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