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20장 7절 여호와의 이름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7.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1. 이름
● 이름의 가치 브랜드 가치
설교를 작성할 때에 제 컴퓨터의 페이스북이 미국 내에 최고의 직장으로 올랐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애플은 84위로 떨어졌습니다.
이름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요? 최고의 이름의 가치를 가진 기업이 애풀입니다. 2위는 블랙베리, 3위는 구글, 그리고 배송서비스 업체인 아마존닷컴, 그럼 우리나라의 삼성의 이름의 가치는 전 세계의 14위입니다. 약 143억 달라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합니다. 최근 인터넷 검색입니다.
예전에는 코카콜라의 이름의 가치가 최고였습니다. 704억달러, IBM 647억달러, 마이크로 소프트 608억달러…. 그럼 하나님의 가치는 얼마일까요? 우리가 측량할 수 없습니다. 그는 처음이요 마지막이고 모든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 이름에 권위가 있습니다.
여러분 명동성당하면 농성장소로 유명합니다. 명동성당이 인기 있는 이유는 경내에서 농성을 하면 경찰의 공권력이 진입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역입니다 공권력이 함부로 건드리지 침입하지 못하는 지역입니다.
우리의 삶에 최소한의 거룩한 영역이 있어야합니다. 최소한에 우리의 삶속에 거룩한 영역이 있어야합니다. 외적으로는 성원순복음교회이고 내적으로 내 마음속에 성령이 거하는 처소가 있어야합니다.
● 시카고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 레오 10세가 성 베드로성당을 완공을 위하여 막대한 공사비가 필요했습니다. 테첼(Johannes Tetzel, 1465-1519)은 언변이 뛰어나고 사람을 감동시키는 기질이 있었습니다. 전 세계에 걸처 식민지로 많은 돈을 번 부자들이 자신의 부모의 죄를 돈주고 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연옥에 있는 자는 그 은화가 헌금함 속에 떨어져 소리가 나는 순간, 곧 천국으로 올라간다’고 하였습니다. 죄인 된 우리가 십지가의 보혈의 피로 죄 사함 받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 것이지 비성경적으로 가르치는 천주교에 종교개혁을 일으킨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의 가치 기묘자 묘사라 우리 성도님들이 그리고 우리 주변에 있는 분들이 선물을 저에게 주었습니다. 어떤 물건은 가치 없는 선물을 주신 분들이 있습니다. 정성이 들어가지 않는 선물이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그 선물을 받고 정말 귀한 선물을 받았습니다. 마음의 정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크리스마스의 최고의 선물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 주시는 것입니다.
● 여호와의 이름
7.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아담이라는 이름의 뜻은 아다마, 즉 흙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와, 산자의 어머니입니다. 아브람 큰 아버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름을 바꾸워주었습니다. 아브라함, 즉 열국의 아버지입니다. 야곱입니다. 야곱의 이름의 뜻은 속이는자입니다. 그런데 이름을 이스라엘이라고 이름을 바꾸워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뜻은 하나님과 씨름하여 이기다라는 뜻입니다.
여호와, 스스로 있는자 (에흐에 에세르 에흐에) 나는 스스로 있는자입니다.
2.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7.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언약도들은 교회의 영적 독립성을 무시한 찰스 2세의 학정과 종교탄압은 갈수록 강도를 높여 갔으며, 감독제도를 통해 종교 통합을 이루려는 찰스 2세의 강압 종교정책은 결국 하나님과의 거룩하고 순결한 언약을 맺고 국가언약 문서에 서명했던 언약도들의 봉기로 이어졌습니다. 결국 언약도들과 위기를 느낀 정부군들의 군대가 싸우게 되었는데 이 전투로 인해 약 400-500명에 이르는 언약도들이 거룩한 피를 쏟으며 전사하였고, 1,200명의 언약도 포로들이 에든버러 그레이 프라이어 교회 뜰에 마련된 지붕없는 감옥에 수감되었습니다. 정부 당국은 언약의 처참한 결과를 보란 듯이 과시하려는 목적으로 하나님과 언약도들이 거룩한 혼인 언약이 거행되었던 이곳 교회에 감옥을 두었던 것입니다. 스코틀랜드 날씨는 너무도 험악하여 밤마다 비가 오기에 지붕없는 감옥에 있던 언약도들은 헐벗고 춥고 굶주려서 많이 죽었습니다. 그들이 갖은 고초를 겪었던 언약도들의 수용소가 이 지붕 없는 감옥입니다. 목숨을 걸고 거룩한 교회와 양들을 지켰습니다. 그들은 정말 순결하며 거룩한 사람이며 특히 교회를 너무나도 사랑했던 사람들입니다. 무서운 박해 속에서 말씀을 선포하다 순교한 언약도들은 분명 교회 역사 속에서 살아있는 믿음의 영웅들이요, 혼탁한 이 시대에 영적인 신앙의 멘토요 위대한 영적 거장들이라 생각합니다.
교회와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굶어 죽어가면서 자신의 신앙을 지킨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예수님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고 수많은 이단들이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그룹이 바로 여호와증인들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우리나라에만 자신이 진짜 예수님이라고 행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문선명, 박태선, 이만희 등 많은 이단들이 있습니다.
망령되다라는 말은
1) 영어로 in Vain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베인이라는 뜻은 헛된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헛되게 부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2) 국어사전에서는 망령되다라는 뜻을 정신이 흐트려서 언행이 어그러진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정신이 잘못되어 어그러진 언행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3) 한자적으로는 妄靈 허망할 망, 신령한 령의 의미입니다. 허망할 말을 하여 경건치 못하다는 표현으로 보면 될 것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사람이 붙여진 이름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에게 이렇게 부르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구약과 신약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잘못른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1) 구약
다윗은 단번에 통일 왕국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다윗이 유대 지파의 왕이 되었고 그리고 이스보셋, 사울의 자녀는 다른 왕국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사령관이였던 아브넬을 요압이 죽임으로 이스보셋의 왕국은 급격이 약화되었습니다. 그러자 군지휘관이였던 바아나와 레갑이 이스보셋을 살해하고 그 목을 가지고 와 다윗에게 자랑합니다.
사무엘하 4:9 다윗이 브에롯 사람 림몬의 아들 레갑과 그의 형제 바아나에게 대답하여 그들에게 이르되 내 생명을 여러 환난 가운데서 건지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다윗은 청년들에게 명령을 내려 바아나를 죽이고 수족을 베어 헤브론 못가에 매달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2) 신약
사도행전 19장 12절에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들에게 얹으면 병이 떠자고 악귀가 나가게 되었습니다. 돌아다니면서 마술을 하떤 유대인들이 시험삼아 악귀들린 자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하였습니다. 이일을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였습니다. 악귀가 대답합니다. 내가 예수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하고 질문을 합니다. 악귀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집에서 도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도용하여 저주하게 됩니다. (레위기 24장 15절)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맹세할 때에 사용합니다. 렘 5장 23절
독일 교회는 나치의 정당화를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여 정당화하였고, 십자군전쟁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살인하고 도적질을 하게 됩니다. 미국교회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아메리카 인디안들을 학살한지 모릅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마 5:34)
미국사람들은 일이 잘되었을 때나 일이 잘 되지 않았을 때에 예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습니다.
Oh my God !, God !, Jesus ! …Good lord !, Lord of Mercy ! .
장로님과 권사님들이 성경에 손을 얻고 맹세하면서 제판장에게 자신이 명백함을 증명합니다.
여러분 저는 우리교회에서 건물을 지을 때에 기독교의 이름을 가진 회사와 함께 교회 건물을 지었습니다. 익투스입니다.
3. 여호와 야훼 어떻게 불러야합니까?
여호와의 이름을 어떻게 부르는 것이 정답입니까? 어떤 사람들은 여호와라고 하며 조용기 목사님의 경우에는 야훼라고 부르라고 합니까?
1) 하나님의 정확한 이름은 신학자들 사이에 알 수 없다고 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이유는 모세가 하나님의 이름을 물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정확하게 부르지를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브인들은 부르지 않고 그냥 건너 뛰거나, 자음으로만 쓰여지게 되었습니다. 야훼(히 Yahweh)라고 불렀습니다.
2) 1270년 스페인 신부에 의하여 여호와로 쓰여지기 시작하였고 지금은 모든 사람이 그 사용하는 것이 익숙하였기 때문에 바꾸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영어로 말하면 조호바로 사용되고 있어 바꾸기가 쉽지 않았던 것입니다.
3) 인터넷에서 찾아보았습니다. 그대로 인용해왔습니다.
야훼, 또는 야웨(히브리어: יהוה, 영어: Yahweh)는 유대교의 유일신의 고유한 이름이다. 야훼는 자음 표기만 있던 고대 본문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알파벳으로 쓰면 YHWH가 되지만, 과거 유대인들이 일 년에 딱 한 번, 대제사장만이 발음할 수 있었던 그 발음을 완전하게 알 수는 없다. ‘주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라는 계명을 독자가 어기지 않게 하도록, YHWH에 대응되는 모음 대신 주님 (아도나이)에 해당하는 모음을 첨가하게 된다. 이 두 단어의 자음과 모음이 결합된 단어 (여호와)는 당시 유대인들 입장에선 매우 어색한 발음이었다. 따라서 마소라 본문을 읽는 독자는 하나님의 이름이 적힌 곳을 ‘아도나이’ (주님)으로 읽을 수 있었다. 상당수의 현대 성경 편집자들도 이 전통을 이어, 하나님의 이름이 적힌 많은 부분을 굵은 볼드체로 ‘the LORD, 주님’라 대체하고 있다. 다만 한국의 개신교는 대체로 이를 마소라 본문에 적힌 대로 여호와(영어: Jehovah)라 발음하여 쓰고 있다.
4. 여기에서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는 것에 대한 해석이 필요합니다.
1)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는 것은 함부로 잘못되이 부르지 말라는 뜻이지 거룩한 이름을 사용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로마서 10장 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천주교 성경에서는 13 과연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잘못 사용하기 때문에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는 것이지 어렵고 힘들 때에 위험할 때에 부르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번에 인천앞 바다에서 반복되는 해경의 역할이 너무 잘못되었다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박근혜정부도, 문제인 정부도 한 생명의 귀함을 잘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119를 부르고 해경을 부러도 대답이 없고 살아있는 3사람도 30분동안 한 시간 더 넘게 부러도 대답없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미국사람들이 자신감을 갖는 이유가 무엇일까? 왜 영국사람들이 자신감을 갖는 이유가 무엇일까? 자신의 나라가 자신들을 지켜줄것이라는 확신입니다. 자신의 나라가 세계에 제일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라이언일병구하기를 보십시오. 한 생명을 위하여 많은 군인들이 투입하여 그 병사한명을 살리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북한에 들어가서 그리고 중국에서 포교활동을 하면서 죽어가더라도 정부가 그 사람을 구했다는 목사님들을 구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적이 없습니다.
열왕기상 8장 42. 그들이 주의 크신 이름과 주의 능한 손과 주의 펴신 팔의 소문을 듣고 와서 이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43.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이방인이 주께 부르짖는 대로 이루사 땅의 만민이 주의 이름을 알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처럼 경외하게 하시오며 또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을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줄을 알게 하옵소서
2) 여러분 주님의 이름을 자주 불러야합니다. 예수 예수라고 부르는 것보다 존경하는 마음을 예수님 예수님이라고 불렀으면 더 좋을 듯합니다. 기도할 때도 주여, 주여, 주여 하고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을 다 응답하시는 주님, 우리의 기도가 마지막으로 기도의 종결을 할 때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라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을 얼마나 많이 얼마나 자주 부르는지 모릅니다.
베드로도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를 사용하여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장면들을 보게 됩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