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1장 15절 모세 하나님의 주권세우기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25년 2월 9일
15. ○애굽 왕이 히브리 산파 십브라라 하는 사람과 부아라 하는 사람에게 말하여
16. 이르되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해산을 도울 때에 그 자리를 살펴서 아들이거든 그를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17.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린지라
18. 애굽 왕이 산파를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같이 남자 아기들을 살렸느냐
19. 산파가 바로에게 대답하되 히브리 여인은 애굽 여인과 같지 아니하고 건장하여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하였더이다 하매
20. 하나님이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 그 백성은 번성하고 매우 강해지니라
21. 그 산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안을 흥왕하게 하신지라
1. 하나님의 주권세우기
하나님의 주권이란 하나님은 창조자이시고 인류의 모든 일들을 통치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성경전체에 걸쳐서 가장 중요한 교리중의 하나님입니다. 이것을 섭리라고 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모든 것이 움직입니다.
하나님은 인간과 모든 만물들을 창조하시고 그분의 절대적인 권위 아래 두시고 모든 것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욥기서 25장 2. 하나님은 주권과 위엄을 가지셨고 높은 곳에서 화평을 베푸시느니라. 3. 그의 군대를 어찌 계수할 수 있으랴 그가 비추는 광명을 받지 않은 자가 누구냐 4. 그런즉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하며 여자에게서 난 자가 어찌 깨끗하다 하랴 5. 보라 그의 눈에는 달이라도 빛을 발하지 못하고 별도 빛나지 못하거든 6. 하물며 구더기 같은 사람, 벌레 같은 인생이랴
지난 시간까지 우리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이 하나님의 주권아래서 하나님께 영광돌리며 하나님의 주권을 세워드리는 일들을 통하여 우리가 은혜를 나누웠습니다. 오늘은 모세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모세의 출생 과정에서 도움을 준 산파들과 가족들에게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 시대적인 배경
요즘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고 무역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미국내에 국민들을 보호하겠다는 것입니다. 미국 제일 주의로 살아가겠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멕시코 사람들이 몰려와서 미국의 일자리를 차지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국도 유럽의 연합에서 탈퇴하겠다는 의미의 영국(Britain)과 탈퇴(exit)를 합쳐서 만든 합성어로 브렉시트(Brexit)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수많은 중동 사람들과 아프리카 사람들이 들어와서 영국의 정체성이 흔들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로마가 왜 멸망했는지 아십니까? 로마가 전쟁에 이기고 수많은 노예들이 들어와 로마의 정체성이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70명 애굽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430년이 흘렀는데 사람들이 약 300만명이 된 것입니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이 나와서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민자들이 너무 많이 있다 우리가 전쟁이 일어날 때에 그들이 대적들과 힘을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우리 땅을 나갈까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괴롭게 하였습니다.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였습니다. 라함셋은 지금의 피라밋 만든 곳입니다. 그리고 그 자손들을 학대하고 인구정책을 써서 그들을 인구를 줄이자고 하였습니다.
애굽왕이 산파들을 불러 아들이거든 그를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십브라와 부라는 산파는 왕의 명령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여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렸습니다. 왕이 묻습니다. 어찌하여 이같이 하였느냐고 하였습니다. 히브리여인들은 애굽여인과 같지 않아 우리가 도착할 때에 해산하였다고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옛날 저 어린 시절에 산파를 생각하면 동내 할머니들이 애기를 받았습니다. 지금부터 50년전에는 산부인과가 있기는 하였지만 왠만하면 친정어머니나 동내 할머니들이 아기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가끔씩 죽기도하고 어려움을 당하기도하였습니다. 지금은 산부인과에서 거의 모든 아이들을 살리고 제왕절게 수술로 산모와 아기를 살리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장정이 60만명인데 여성들과 아이들까지 약 200만명이였을 것입니다. 생각하면 많은 숫자가 아기를 낳았을 것입니다. 그 당시에 산파들이 굉장히 많은 산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직 십브라와 부라의 이름만 성경에 기록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을 지도자 모세의 출생을 도왔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을 두려워하였습니다.
17.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린지라
여러분 하나님을 믿는 나라와 가정들이 복을 받습니다. 개인도 그러하고 하나님을 믿는 나라들을 살펴보면 다 잘 살고 있습니다. 나라의 국민들도 풍요롭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살펴보면 처음 복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속에 얼마나 큰 어려움이 있는지 모릅니다. 로마에서 얼마나 많은 순교자가 나왔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을 믿는 모든 나라들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수많은 사람들이 순교의 피를 흘렸는지 모릅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어설푸게 믿기보다는 확실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 믿음을 보시고 복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마귀가 이만큼 방해하고 훼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제가 가장 아픈 적이 있습니다. 1주일동안 움직이지 못하고 오복교집에서 누워서 독감으로 고생했는지 모릅니다. 바로 목사고시를 보기 위하여 준비하는 기간이였습니다. 그런데 그 시험을 보지 못하게 마귀는 나를 아프게하고 시험을 주었습니다.
고난을 각오하고 예수님을 믿어야합니다. 모든 성경의 믿음의 선진들이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들이 히브리서 11장에 열거되었습니다.
현존하는 세상에서 가장 큰 다이아몬드는 1905년 남아프리카 컬리넌(Cullinan) 광산에서 나온 3,106캐럿(621g)짜리 다이아몬드 원석입니다. 영국의 왕 에드워드 7세에게 선물로 바쳐졌다. 이 다이아몬드는 영국에서 100여 조각으로 나뉘게 되었는데, 그 중에서 “아프리카의 별(Star of Africa)”이라고 불리는 가장 큰 조각인 530캐럿짜리 물방울 모양의 다이아몬드는 왕의 지팡이(왕홀)에 박혔습니다. 이 다이아몬드는 약 4천억 원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얼마 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장례식에서 볼 수 있었던 왕관이 바로 그 왕관이다.
이 보석이 싸구려 포장지에 싸였다고 하여서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겉껍데기와 상관없이 그 자체만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왕같은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이 여려분들을 지명하여 불러서 너는 내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성경은 이렇게 여러분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6장 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대학교로, 화려한 옷으로, 자동차로 외모로 재산으로 여러분들을 포장하여도 여러분들의 가치는 세상의 어떤 가치보다 더 귀한 존귀한 가치입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금수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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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하나님의 주권이 모세에게
출애굽기 2장 1. 레위 가족 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 들어 2.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잘 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겼으나
어린 모세를 표현한 장면입니다. 그가 잘 생긴 것을 보고 신약에서는 히브리서 11장 23.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
사도행전 7장에서는 20. 그 때에 모세가 났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 그의 아버지의 집에서 석 달 동안 길리더니
하나님의 섭리가 모세에게 임하였던 것입니다. 사람의 보기에도 잘 생긴 것으로 보고,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살리기로 마음에 작정하였던 것입니다. 여러분 아이들을 어는 정도 자라고 난 뒤에 잘생기고 못생기고 판단하는 것이지 갓난 아이이들을 거기가 거기인 것입니다. 모든 갓난 아이들이 다 예쁜 것입니다.
레위족속인 부부인 아므람과 요게벳이 모세를 낳았습니다. 석달동안 길리웠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숨길수 없게 되자 갈대상자에 담아 나일강 강가의 갈대상자에 두어 나일강을 흘러가게 했습니다. 모세의 누이인 미리암이 이를 지켜보았습니다. 바로왕의 공주가 나일강 강가로 목욕하러 왔다가 모세를 만나 자신의 양자로 세우고 이름을 모세라고 하였습니다.
염평안의 요게벳의 노래 (갈대상자)
작은 갈대상자 물이 새지 않도록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네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녀의 두 눈엔 눈물이 흐르고 흘러
동그란 눈으로 엄마를 보고 있는 아이와 입을 맞추고
상자를 덮고 강가에 띄우며 간절히 기도했겠지
정처없이 강물에 흔들흔들 흘러내려가는 그 상자를 보며
눈을 감아도 보이는 아이와 눈을 맞추며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겠지
너의 삶의 참 주인 너의 참 부모이신 하나님 그 손에 너의 삶을 맡긴다
너의 삶의 참 주인 너를 이끄시는 주 하나님 그 손에 너의 삶을 드린다
그가 널 구원하시리 그가 널 이끄시리라
그가 널 사용하시리 그가 너를 인도하시리
5. 하나님의 섭리 (예화)
1948년 10월 초에 한 젊은 목사님이 오래 된 교회에 부임했습니다. 이전에 그 교회는 웅장함을 자랑했지만 그가 부임할 당시에는 낡고 초라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부임하자마자 교회 수리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그 해의 성탄절 전야예배를 아름답게 드리겠다는 일념으로 목사님은 세 달 동안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런데 성탄절을 이틀 앞두고 갑자기 폭풍우가 휘몰아쳤습니다. 낡은 지붕에서 비가 흘러내렸습니다. 벽이 스펀지처럼 빗물을 빨아들였습니다. 얼마 후에 벽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고 그 자리에 구멍이 생겼습니다.
그 구멍 난 벽을 바라보고 있자니 크게 낙심이 되었습니다. 성탄절까지 강단의 벽을 보수한다는 것은 무리였습니다. 지난 세 달 동안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사님은 믿음을 잃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그 날 오후에 목사님은 중고등부에서 주관하는 자선 바자회에 참석했습니다. 이것저것 둘러보는데 낡은 식탁보 하나가 그의 눈을 잡아당겼습니다. 금색과 아이보리색으로 혼합된 4.5미터짜리 식탁보였습니다. ‘저 식탁보로 강단의 벽에 뚫린 구멍을 막으면 되겠군.’ 목사님은 이렇게 생각하고는 그 식탁보를 샀습니다.
하루 뒤, 성탄절 이브에는 내내 눈보라가 내렸습니다. 목사님은 교회의 문을 잠그고 나오다가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 한 중년 여성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버스가 오려면 최소한 30분은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그녀에게 교회로 가서 몸을 좀 녹이자고 권했습니다.
그녀는 그 지역의 유명한 부잣집에서 유모를 구한다기에 면접을 보러온 타 지역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전쟁 피난민이었고 영어도 서툴러서 그 유모 자리를 얻지 못하고 돌아가던 중이었습니다. 그녀는 교회의 뒤쪽 의자에 앉아서 잠시 기도하고 있었고 목사님은 일어나 구멍 난 벽에다 그 식탁보를 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가 그에게로 달려오면서 외쳤습니다. “목사님, 제 겁니다. 제 식탁보가 틀림없어요.” 목사님이 깜짝 놀라자 그녀는 그 식탁보의 한쪽 구석에 수놓아 있던 자신의 이름을 찾아서 보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녀는 이전에 자신의 남편과 함께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에서 살았는데 제2차 세계대전 직전에 나치에 반대하다가 위험에 처하여 스위스로 이주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둘이 함께 가면 위험하다고 남편이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그녀만 먼저 스위스로 떠나게 됐습니다. 나중에 그녀는 남편이 나치 수용소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목사님은 무척 감동을 받고는 그 식탁보를 그녀에게 돌려주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그것이 교회 안에 있는 것이 더 아름답다면서 사양하고는 떠나갔습니다. 성탄절 전야예배가 드려질 때 그것은 촛불 아래서 더 없이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전야예배가 아주 감동적으로 드려졌습니다. 예배 후 성도들은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그 때 한 신사가 황홀한 듯이 그 식탁보를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그 신사는 교회를 나가면서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참 이상하네요. 오래 전에 저도 저런 식탁보를 가지고 있었어요. 제 아내는 아주 특별한 날에만 그 식탁보를 사용하곤 했지요. 비엔나에서 살 때였지요.”
갑자기 목사님의 온 몸에서 소름이 쫙 끼쳤습니다. 목사님은 흥분을 가라앉히려고 애쓰면서 그 날 오후에 만났던 그 중년 여성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 신사는 신음하듯이 말했습니다. “아니 이럴 수가. 내 아내가 살아 있다니. 어떡하면 만날 수 있지요.” 그 노신사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습니다.
목사님은 그녀가 면접하러 들렀던 그 부잣집에 전화해서 그녀의 이름과 주소를 알아냈습니다. 목사님은 낡은 차를 몰고 그 노신사와 함께 그녀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목사님이 문을 두드리자 그녀가 나왔습니다. 그 날 밤에 목사님은 이들 부부의 눈물겹도록 행복한 재회 장면을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성탄절을 이틀 앞두고 폭풍우가 휘몰아친 것은 우연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빗물 때문에 그 교회의 벽에 구멍이 생긴 것도 우연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자선 바자회에서 그 낡은 식탁보를 산 것도 우연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버스 정류장에서 그 중년 여성을 만난 것도 우연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탄절 전야 예배에 그 신사가 참석한 것도 우연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두 부부가 가슴 벅차게 다시 만날 수 있었던 그 사건을 두고 누가 과연 우연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징검다리를 만드는 돌덩이 하나하나는 우연히 거기에 놓여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쭉 이어져 있는 징검다리는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필연입니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돌덩이 하나하나를 놓아 징검다리를 만든 것입니다.
우연 속에 필연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연하게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는 여러 가지 사건들을 엮어서 아주 필연적인 사건을 만드십니다. 우연 속에 필연이 있습니다. 우연 속에 하나님의 손길이 있습니다. 우연 속에 하나님의 의도가 있습니다. 우리가 잘 살피기만 하면 우연 속에서 빙그레 웃고 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를 믿고 우리는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 맡기고 살아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