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장 1절 금요철야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25년 9월 26일

 

 

1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2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5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8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9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10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11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저희 아버지로부터 받은 유산은 가정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온 가족이 예배를 드립니다. 그것이 싫어서 우리 둘째는 먼저 집을 가출하고, 나머지 형제 자매들은 남아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추석이나 명절이 되면 모든 가족들이 특별히 제수씨들과 함께 가정예배를 드립니다. 드리고 난 뒤에 용돈을 드리고 여러가지 가지고 온것들을 통하여 음식을 먹고 덕담하고 집에 나옵니다.

 

각자의 가정에서 직업이 다릅니다. 저는 목회를 둘째는 건축사업을, 셋째는 교수를 하다가 그림 그리는 일을, 넷째는 가르치는 일, 다섯째는 건축의 일을 합니다. 그럼 각자가 가지고 오는 것을 하나님께 드려야하는데 물질로 하나님께 드립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께 예배, 즉 제사를 드리는데 특징이 있습니다.

  1. 제물과 믿음

첫째는 제물입니다.

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제물에는 차이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사는 창세기 3장에서 가죽옷을 의미하고 있듯이 피의 제사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창세기 4장에서 말씀하고 싶은 것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을 드림으로 하나님이 그 제물에 대하여 연랍하셨습니다.

 

둘째는 믿음입니다.

히브리서 11장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아벨의 제사가 하나님께 열납(기쁘게 받으심)된 가장 주된 이유는 아벨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합당한 제물을 드리려는 마음의 태도를 가졌던 것이지요.

 

제물은 믿음의 표현입니다. 아벨은 자신의 양 떼 중 ‘첫 새끼와 그 기름’을 드렸습니다 (창세기 4:4). 이는 당시의 관습상 가장 귀하고 좋은 것을 드리는 행위였으며, 피 흘림이 있는 희생 제사였습니다 . 즉, 이 제물 자체는 아벨의 순종적인 믿음과 죄에 대한 속죄의 인식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표현이었던 것입니다 .

 

가인의 제사와의 차이점: 가인도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지만, 그의 제물(땅의 소산)과 드리는 태도가 하나님께 열납되지 못했습니다. 성경은 가인이 자신이 원하는 방법으로 제사를 드렸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는 제물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가인의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믿음과 순종이 없었음을 시사합니다.

 

 

  1. 정성스러운 예배

가인과 아벨의 제사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영적인 의미는 바로 정성입니다.

 

미가서 6장 8절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가 6:8)

 

1) 공의를 행하는 것, 약자를 보호하고 불의에 맞서고,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대하는 것입니다.

2) 인자 (사랑)를 사랑하는 것, (Love Mercy/Lovingkindness): ‘인자’는 히브리어 ‘헤세드(hesed)’입니다. 이웃에게 자비를 베풀고, 변함없는 사랑으로 타인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3) 겸손하게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 (Walk Humbly with Your God): 겸손한 태도, 그분의 인도하심 나의 지혜와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만 높이는 삶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신약에서는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4:23-24):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으로 드리는 예배 성령과 온 마음으로 드리는 영혼 깊숙한 예배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진리로 드려지는 예배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어떤 추장이 자신의 신에게 가장 귀한 꼬리를 바치면서도, 마음 한구석으로는 ‘아깝다’고 생각한다는 것은, 예배나 제물을 드릴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땅의 소산’이 무엇인지 말씀하고 있지 않고 있습니다. 다 시들은 풀인지, 썩은 곡식인지, 귀한 것 처음 것이라고 하지 않고 땅의 소산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은 형식적인 예물인듯합니다.

 

 

  1. 부끄러운 예배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가인은 예배를 비교의 대상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예배를 드림은 비교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나와의 관계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드리든지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의 예배입니다.

 

가인은 농부로서 자신의 경작한 땀의 노력으로 하나님께 드려야합니다. 구약의 소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자신을 내세우는 기준으로 삼든지, 자기의 자랑으로 생각한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관점이지 비교의 대상이 아닙니다. 가인은 얼굴색이 변할 정도로 분노했습니다 (창세기 4:5). 이 분노는 단순히 자신의 제물이 거절당한 것에 대한 실망을 넘어, 아벨과의 비교 속에서 자신이 열등하게 평가되었다는 생각에서 비롯되었을 수 있습니다.

 

‘나는 내 나름대로 열심히 드렸는데 왜 아벨의 것만 받으시는가?’

 

다른 사람의 봉사를 비교하고, 다른 사람과 물질을 비교하고, 다른 사람과 헌신을 비교함으로 영적인 예배가 아니라 형식적인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1. 피의 제사

10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11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당시의 관습상, 모든 세계가 가장 귀하고 좋은 제사가 바로 피의 제사입니다. 성경에서는 레위기 17장 11절에 생명이 피에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피의 제사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죄의 대속에는 반드시 피 흘림이 있어야한다고 하였습니다.

 

누가복음 11장 50-51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시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책망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창세로부터 흘린 모든 선지자의 피를 이 세대가 담당하되, 곧 아벨의 피로부터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의 피까지 그리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과연 이 세대가 담당하리라.”

 

‘아벨의 피’는 하나님의 뜻대로 최초로 드려진 제사입니다. 의로운 예배의 순교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벨의 피처럼 예수님께서 흘린 보혈의 피는 동물의 피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단번에 드려지는 속죄의 완전한 제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피로 말미암아 완성될 구속 사역을 가리킵니다.

 

히브리서 12장 24.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니라

 

창세기 4장12.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창세기 4장 12절에 땅을 갈아도 효력이 없는 이유는 잘못된 피를 뿌렸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2000년동안 고난을 받고 잘못된 피를 뿌렸기 때문에 댓가를 지불하고 있습니다.

 

“모든 백성이 대답하여 이르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마태복음 2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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