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장 1절 주일설교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3.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1. 序
어떤 일들을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방법중에 가장 효과 적인 방법은 육하원칙에 의하여 설명하는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왜 했나 하는 방식입니다. 하나님은 성경 첫장에 육하원칙으로 사람들에게 하신일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태초에(언제), 하나님이(누가), 무엇을 (천지창조), 어디서 (우주공간에서), 어떻게(말씀으로), 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43장 7절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지 않고 자신의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위하여 살았습니다.요한일서 2장 16절
로마서 1장 23절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우상의 모양으로 바꾼 인간들에게 진노하사
이사야 42장 8.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9. 보라 전에 예언한 일이 이미 이루어졌느니라 이제 내가 새 일을 알리노라 그 일이 시작되기 전에라도 너희에게 이르노라
이 타락한 세상에 다시 하나님은 새일 예수 그리스도를 이땅에 보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절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2.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1) 창조의 과학과 하나님의 말씀의 차이점은 무엇입니다.
기독교인들은 과학을 무시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과학도 하나님의 주시는 학문이기 때문에 과학적인 것을 우리가 믿어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과학이 전부 사실일 때 만 믿고 추론과 가설일 때에는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제가 구글에서 우주의 연대기를 살펴보았습니다.
우주의 연대기에 의하면 (宇宙年代記, chronology of the universe) 우주 대폭발로 인하여 138억년전에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신뢰수준 68% 신뢰 수준에서 약 2100만 년의 불확실성이 있다고 합니다. 또한 지구의 역사는 태양계의 일원으로 탄생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45억 전으로 추론하고 있습니다.
물론 성경도 정확한 연도를 말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씀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태초에, 이 태초는 언제인가? 우리는 그 연대를 정확히 알수 없습니다. 과학자들이 이야기하는 시점일 수 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우주와 지구의 시작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공동번역에는 한 처음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단회성, 시작점, 일회성, 출발점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 본문에 두번째로 중요한 것은 창조라는 단어입니다. 창조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바라입니다. 히브리어에서 창조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에 내용이 다릅니다.
1) 바라:무에서 유를 창조할 때에 완전한 신적인 창조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2) 아사: 이미 창조된 물질에 재료를 더하여 나온 물질입니다.
3) 야찰: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기존에 있는 것을 만들 때에 사용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의 이 말씀을 믿느냐 믿지 않는냐에 따라서 성도가 되기도 하고 성도가 되지 않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이 말씀을 믿느냐 믿지 않는냐에 따라서 참 주의 종이 되기도하고 거짓 선지자가 되기도 합니다.
세상의 인간은 이성과 과학의 발달로 인하여 이 말씀을 잘 믿으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과학자의 말을 더 믿으려고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지 않고 어떤 Big Bang이론이나, 진화론자들이 말하는 것 더 믿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선조들은 하지, 워필드, 바빙크 같은 개혁주의 신학을 정립해온 대가들은 하나님의 창조를 문자적으로 해석한다는 것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과학 발전 이전의 아우구스티누스도 문자적으로 6일로 보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칼뱅도 성경을 과학 책으로 접근한다는 것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물론 문자적으로 해석한다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지만 너무 성경을 자신의 생각과 이성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고자하는 것을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성경학자들은 이렇게 해석합니다.
창세기 1장 1절로 2절에 수십억년된 지질 시대가 다 들어가 있다는 간격이론과, 창조의 각 날들이 24시간이 아니라 오랜 세월들이 였다는 날 이론이 있습니다. 그러나 정리해보면 1장 1절과 2절은 수백억년이고, 3절이 이후에는 성경에서 말하는 BC 4004년으로 보는 사람들이있고, 천지 창조의 6일 동안 하루하루의 기간이 몇천년일 수 있고 몇 억년일 수 있도 보는 학자들입니다.
이 여기에서 하루라는 히브리어 단어 욤은 정관사 하 욤을 사용하여 특정한 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인간적인 날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적용되는 날, 즉 24시간이라는 단어가 아니라 하나님이 지정한 시간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시간에는 크로노스와 카이로스가 있는 것 처럼 인간의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섬리하는 때 시간으로 카이로적인 시간입니다.
● 하나님의 창조를 믿지 않는 볼테르의 예
옛날에 계몽주의 시대의 불란서 사상가요, 저술가이며, 무신론 철학자였던 볼테르(Voltaire)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본명은 프랑스아 마리 아루에(Franois Marie Arouet ; 1694. 11. 21~ 1778. 5. 30.)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실존을 부인하는 것은 물론 천국과 지옥을 부인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없다. 천국과 지옥도 없다.”
그런 볼테르가 언젠가 영국 런던으로부터 초청을 받고 무신론에 대해 강의를 하기 위해 배를 타고 대서양의 도버해협을 건너가게 되었습니다. 그날 따라 바다에 풍랑이 일어 배가 거의 뒤집히게 되었습니다. 그 때 볼테르는 갑판 위에서 “하나님 살려 주십시오”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 광경을 함께 배에 타고 볼테르를 취재하기 위해 쫓아다니던 한 기자가 목격했습니다. 다행히 배는 파선되지 않고 천신만고 끝에 도버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볼테르는 예정대로 런던에서 무신론에 대해 강의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날 신문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났습니다. “볼테르의 무신론은 바다에서는 약하고 육지에서만 강하다.” 의미 있는 말입니다.
그는 또 성경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100년이 지나면 이 지구상에 성경은 단 한 권도 남아 있지 않고 기독교는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그런 말을 한 지 25년이 지난 후, 그는 죽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고 그의 집은 성경을 인쇄하는 인쇄소가 되었고, 성경을 보관하는 창고가 되었습니다. 만약 그가 살아서 그 광경을 보았더라면 그 땐 무슨 말을 했을까? 지금은 그의 집 이 층은 가정집으로 사람이 살고 있고, 지층은 식당인데 그 식당 이름이 ‘볼테르 식당’입니다.
그런데 볼테르 생전에 숨겨진 재미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런 볼테르가 병들어 죽게 되자 의사에게 찾아가 6개월만 더 살게 해 달라고 애원을 했습니다. 그래도 안 되자 성직자에게 찾아가 생명 연장을 위한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모든 인간은 생명에 대한 애착이 있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그는 숨을 거둘 때 몸부림을 치면서 울부짖었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유언을 하고 죽은 것입니다. “나는 지옥도 천국도 없다고 했는데 이제 깨닫고 보니 천국과 지옥은 분명히 있다. 나는 지금 지옥으로 내려가고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다는 무신론자들이 있습니다. 무신론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 사실을 찾아야합니다. 그러나 그 사실은 불가능합니다. 인간이 지구의 모든 부분에서 하나님이 없다고 입증할 방법이 없고 특별히 전 우주에서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것을 증명할 사람이 없습니다.
한 예로 한국에서는 갈매기가 살고 있지 않다고 증명한다면, 인천에서, 부산에서, 목포에서 갈매가 없다고 증명해야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처럼 전부 임재하고 있지 않고 하나님처럼 능력이 많아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우리는 철저히 가설로 하나님의 있다 없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물음이 있습니다. 신이 존재한다고 증거를 대보세요. 성경을 전부 읽어보셨나요? 탈무드를 다 읽어보셨나요? 철학 책들을 읽어보셨나요? 아니요! 당신은 무신론자가 아니라 무식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하나의 증거만 있어도 무신론은 거짓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오늘 예배드리러 나왔습니다.
시편 14편 1.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성경은 분석의 대상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입니다. 학교에서 공부하듯이 성경을 믿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III. 하나님은 빛을 창조하셨습니다.
창세기 1장 3.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요한복음 1장 1절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이 빛은 태양 빛이 아니라 생명의 빛입니다. 천국의 빛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출생하시기 전 요한은 이 빛를 말씀이라고 하였고, 빛이 하나님이라고 하셨고 말씀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공생애 사시면서 산상수훈을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누가복음 11:33절에 “33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움 속에나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 34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35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36 네 온 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으면 등불의 빛이 너를 비출 때와 같이 온전히 밝으리라 하시니라”
또 예수님은 등불이 눈이라고 말씀하였고,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이정철 목사님의 경우 눈이 어둡기 때문에 자주 넘어지고 기둥에도 부딛치고 먹을 잘 찾지 못하여 사모님이 먹을 것을 앞에 두십니다. 눈이 어두우면 몸에 성한 곳이 없습니다. 온 몸이 멍자국뿐입니다. 눈이 어둡기 때문입니다. (사모님도 넘어짐)
우리의 영적인 눈이 어두우면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도 알지 못하고 우리의 눈이 어두우면 우리의 가는 길을 바르게 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눈은 밝습니까? 어둡습니까?
● 영의 눈을 뜬 선교사님 (빛의 역활하신 선교사님)
한 선교사가 밀림에 들어가 오랫동안 선교하셨습니다. 그곳에 는 마땅한 과일이 없어서 싱싱한 과일을 먹기 위해서 파인애플 묘목을 사서 심었습니다. 원주민들에게 임금을 주고 파인애풀을 잘 기르도록 했습니다. 파인애플을 심은지 3년이 되던 해, 드디어 파인애풀이 익었습니다. 파인애플을 먹을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어 수확하기로 한 전날 밤이였스니다. 아내와 함게 농장에 나가보았습니다. 그런데 파인애플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원주민들이 파인애플을 모두 따서 가져가 버린 것입니다. 화가 나서 물어보니 밀림에는 ‘심는 사람이 먹는다’ 는 어이없는 법칙이 있었다고 합니다. 선교사는 자신이 베푼 사랑에 이렇게 보답하는 원주민이 미웠습니다. 그래서 무료 병원을 닫았습니다. 그러자 아픈 사람이 늘어났습니다.
선교사님이 하는 수 없이 병원을 열고 원주민으로 부터 파인애플 농장을 건드리지 않겠다고 다짐을 받은 뒤 다시 파인애플을 심었습니다. 파이애플를 열매가 익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원주민들은 약속을 어기고 파인애플을 몰래 따갔습니다. 이번에는 정글에서 필요한 칼을 그들에게 주며 파인애플을 훔쳐가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심지어 독일산 셰퍼드도 길러본았습니다. 세펴드가 동네의 개들을 모두 물어주여 버렸습니다.
그러던 중 선교사 모임에서 참석하여 그곳에서 은혜롭게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다 주의 것입니다. 주님께 다 드려야합니다 그는 그동안 내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선교사님은 생각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원주민들이 파인애플을 훔쳐가도 야단치지 않았습니다. 원주민들은 이상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그에게 물려가서 물었습니다.
당신은 왜 우리를 꾸짖지 않습니까?  선교사님은 ‘나는 모든 파인애플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라고 답변했습니다. 원주민들은 돌아가면서 우리가 훔친 것은 하나님의 것이구나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니 우리 아이가 아프고, 일도 잘 되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파인애플을 따가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파인애플 스토리라는 책입니다.
선교사님이 생각이 어둠의 생각에서 빛으로 생각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파퓨아뉴기니아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선교를 잘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역사하신 것입니다.
● 빛의 자녀라는 확신을 가지고 사는 삶
오리에겐 일곱마리의 새끼가 있었는데 일곱번째는 노란 털이 아니 회색 털을 가진 새끼 오리였다. 현재 오리들은 자신들과 다르게 생긴 회색 오리를 따돌리며 같이 놀아주지 않았습니다. 회색 오리는 형제들과 다르게 생긴 자신을 원망하고 아무도 자기와 놀아주지 않는다며 밤새 울고는 집을 뛰쳐나왔다. 오리가 지나가는 새들에게 나 처럼 회색 깃털을 가진 오리를 알고 있나요?라고 묻자 새들은 우리는 너처럼 못생긴 오리를 본적이 없다고 대답했다. 어떤 날은 암탉과 고양이에게 위협을 받기도 했다. 결국 회색 오리는 아무도 찾을 수 없는 먼 곳으로 숨어 들어갔다. 그리고 평생 혼자서 숨어 지내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추운 겨울이 되자 점점 먹을 것이 없어졌다. 오리는 먹이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다 지쳐 쓰러졌다. 그때 지나가던 농부가 그를 발견하고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왔다. 맘씨 좋은 농부와 그의 가족들의 돌봄으로 오리는 추운 겨울을 따뜻하고, 건강하게 보낼 수 있었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자 농부는 회색 오리를 연못에 놓아주었다. 연못위를 유유히 떠다니던 오리는 수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 때 겨우내 남쪽으로 떠났던 백조들이 북쪽으로 다시 날아와서 연못 위로 미끄러지듯 내려앉았다. 오리는 그들을 보는 순간 자신이 그들과 같은 종류임을 깨닫고 금세 친구가 되었다.
안데르센의 동화 미운 오리새끼의 내용입니다.
세상을 살고 있는 기독인의 이야기가 아닌가하는 생각이듭니다. 예수님을 믿다는다는 이유로 미운 오리 취급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때론 하나님의 자녀라는 우리의 정체성이 흔들리기도합니다. 때로 유명한 과학자 앞에서 믿는 성도로서 대답할 이야기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것을 설명하지 못해도 우리는 분명이 알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지으셨다는 것과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백조가 된 미운 오리 새끼는 하늘을 날며 자신을 미워하는 형제들에게 너희들을 이해한다고 하면서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위로하면 날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여러분들은 누군가를 사랑해 본적이 있습니까? 사랑하면 나타나는 현상들이 두가지가 있습니다. 1) 보고 싶어하는 감정이 드는 것입니다 2) 그 사람을 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이 나를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호세아 6장 6절)
하나님의 창조에 대하여 우리 완전히는 알지 못하지만 우리 하나님께 빛을 창조하시고 그리고 그 빛이 우리 마음에 들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주님이 빛과 소금으로 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면 사랑하는 사람의 말을 따라서 사는 것입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