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bible

어버이주일

2014-05-20 17:33:01


 

어버이주일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14년 5월 어버이주일

11. ○또 이르시되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12.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13.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14.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15.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16.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5월 8일 어버이날 어머니집에 갔습니다. 온 식구들이 다 모였습니다. 물론 동생의 문제로 갔습니다. 막내 동생의 남편이 사업을 다른 사업을 하기 위하여 사업준비차 그곳에 갔습니다. 가면서 어머니의 근황을 물었습니다. 어머니는 5년 전부터 대학교에서 평생대학이라는 대학교에 다닌다고 합니다. 종종 아파서 가지는 못하지만 늘 배움에 대한 영정을 버리지 않고 계시는 어머니입니다. 어리 시절부터 자주 아프시고 늘 힘들어하시는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가 한글을 잘 읽으시는데 글을 쓰는 것을 참으로 어려워하시고 늘 글을 쓰기를 원하시는 분이였습니다. 그래서 여러편의 글을 쓴을 저에게 주셔서 그 그를 여러분들에게 읽어드리기를 원합니다.

어머니의 글이 있습니다. 실제의 이야기입니다. ‘생선장수 김영자’

1984년 가을 재법 쌀쌀한 날씨였을게다. 팔십년대는 집집이 연탄을 때는 시절이였다. 연단 재를 들고 막 대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무거운 힘지박을 이고 들어서는 생선장수 아주머니와 마주쳤다. 아주머니는 함지박을 내리면서 갈치를 사달라는 것이다. 아주머니는 갈치 몇 마리를 골라 수도가에 앉자 깨끗이 손질하는 것이다. 나는 속으로 아주머니 행동을 의아했지만 말할 수 없었습니다.

잠시 후 갈치 손질을 다하였다. 얌전히 놓고 돈을 받아 갔다. 그후 부터는 일주일 간격으로 와서 생선을 손질해 놓고 가셨다. 주인이 없어도 놓고 가신다. 손질해 주는 것이 좋아 오래도록 단골이 되었다. 바람이 불고 추운 겨울 무거운 함지박을 내려놓는 순간 내 가슴이 쿵 하는 소리가 내 귀전에 전해 들렸왔다. 아주머니 머리카락이 무거운 짐을 이고 다닌 훈장처럼 탈모 자극이 흉했다. 옷도 남루하다 아주머니 신발은 검정고무신 한짝은 커보였다. 그 신발은 가는 새끼줄로 감겨 이었다. 고생을 하면서도 항상 웃는 얼굴 어느날 조심스럽게 가족에 대한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아주머니는 어린 아들과 살고 있다고 합니다. 아주머니는 아들 자랑을 하였다. 그녀의 모습이 잊을 수가 없다. 우리는 이사를 하게 되어 아주머니 소식을 들을 수가 없게 되었다. 우연히 이웃집 살던 아주머니에게 생선장수 아주머니 소식을 듣게 되었다. 아주머니 아들은 의과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과 동시에 유학을 간다고했다. 아주머니 소박하고 따뜻한 꿈이 이루어 다는 안도감과 오래도록 행복하게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많은 세월이 흘렀다. 나는 양노원에 봉사활동을 오래 동안 해왔다. 문득 양노원에 가고 싶어 양노원을 향하여 차를 몰고 가는 도중 후미진 곳에 오게 되었다, 길가에노인이 앉아있다. 차를 멈추고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노인의 얼굴을 보니 어딘지 낮이 익은 사람이였다. 자세히 보니 옛날 생선 장수 아주머니다. 차를 같이 타고 너즈시 물어보았다. 아드님은 잘있지요 학 물었다. 뜻밖에 대답이다. 양노원에 들어 온지 오래되었습니다. 나는 말을 듣고 멍하니 한참 동안 말을 못하였다. 그녀는 아들이 유학을 떠난 후 소식이 없다고 했다. 그녀는 내 손을 잡고 부탁합니다. 아들이 있다는 말을 하지 말아주세요 부탁합니다. 참으로 가슴이 아파온다. 그녀의 곤고한 어께가 내 눈앞에 스쳐 지나가는 것디아. 모성이란 이런 것인가 아직도 아들을 사랑하는 뜨거운 모성애가 보인다. 그녀와 작별인사도 못하고 헤어지고 말았다. 그후 양노원에서 들은 이야기는 임종시 마지막 물음에도 자식이 없다고 했다 한다. 한 많은 세상을 등졌다고 했다. 그녀의 마지막 길은 쓸쓸한 그 자체였을 게다. 예잔하고 서러운 기억으로 남게 된다.

울적한 마음으로 미용실에 들려 머리 손질을 하는 중 중학생 아이가 엄마와 머리를 자르려 왔다. 남자 아이는 상당히 머리가 길어 보였다. 엄마가 미용사에게 짧게 깍아 주세요. 아이는 조금만 자르세요 한다. 미용사는 엄마 말대로 잘라 버렸다. 아이는 거울을 보더니 벌떡 일어나 엄마에게 달려들어 발로 두 번 차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물건을 들어 거울을 부서 버렷다. 거울이 산산 조각이 나서 미장원 안이 수라장이 되었다. 경찰에 전화를 하려는 순간 아이 엄마는 주인에게 빌고 있다. 비는 모습을 보며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노인학대도 종종 일어나는 시대다 아이들한테 날아오는 돌팔매을 나이 많은 우리 시대는 어떻게 감다해야 할 것인가?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올해는 예전과 같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녀를 잃고 힘들어하고 있는 상황이고 특별히 세월호 참사로 인하여 어린 넋들이 꽃을 피우기전에 어른들의 잘못으로 바다에 묻히는 것에 가슴이 미어집니다. 마지막 선객이 구조될 때까지 배를 지켜야 하는 명예와 책임을 팽개친 선장이나, 선객들을 남겨두고 도망쳐 나온 선원들은 큰 벌을 받아야 하지만, 자신의 우리 부모님의 모습입니다. 사실은 우리 나이든 세대가 다 잘못한 문제입니다. 세월호의 선장만의 문제가 아니고 구원파 세모의 실질적인 사장 유병언씨의 문제도 아닙니다. 모든 대한민국사람들의 마음속에 이러한 마음이 다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들의 자화상입니다. 우리 모든 국민들의 마음속에 어려움이 있으면 화내고 도망치려는 마음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소리만 지르고 먼저 도망가기에 바쁜 우리의 부모세대의 모습니다. 그 문제에 희생하려는 사람이 없습니다. 한국인의 의식속에는 절제하는 브레이크 보다는 속도를 내는 엑셀레이터가 지배적이고 빨리 성공하려는 마음과 의식이 지배적입니다. 그 영향을 받아서 부모가 재산이 없으면 푸대접을 하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인간의 품성과 인성을 강조하기 보다는 지식 로버트를 생산하는 입시 위주의 기능주의가 되는 풍조에서 세월호 선장과 선원이 대량 생산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어째 법과 제도를 지키지 않는 것이 세월호 밖에 없습니까? 케이블카, 전철, 또 다른 선박과 차량들이 우리나라에 즐비하게 널려있습니다. 대통령이 무슨 색깔을 옷을 입은 것이나. 교육부장관이 사고 현장에서 라면을 먹으면서 계란도 넣지 않았는데 라고 논평하는 대변인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께서 우리 하나님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관심에 대하여 우리에게 예를 통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의 모습과는 다르게 살라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1. 탕자의 물질관 (조건적인 삶)

11. ○또 이르시되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12.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13.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아버지가 아직 돌아가지도 않았는데 아들은 아버지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아버지 네 분깃을 주시옵소서.”라고 이야기합니다.

유대인의 율법에는 아들이 둘 있을 경우에는, 큰 아들에게 전체유산의 3분지2를 주고, 나머지 3분지1을 작은 아들에게 주도록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유산의 분배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하지만, 나누어 가지는 것은 대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에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탕자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도 전에 자기 몫의 유산을 달라고 요구하였습니다. 아버지가 아무리 달래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탕자가 왜 이렇게 끈질기게 자기 몫의 유산을 요구하고 있습니까?

아버지를 떠나 자신의 마음대로 살고 싶어서입니다. 탕자는 아들로 시작하여 모든 제산을 다 모아가지고 먼 나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주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거지가 되었던 것이니다.

자게 동생차에 타면서 동생이 차에 타면서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텔레비에서 보았다고 하면 싸가없는 아들에 대한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위하여 유학비를 주었으며, 그리고 자신의 양조장과 아파트까지 팔아서 주었는데 아버지를 완전이 버린 파렴치한 아들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공문서 위조로 고발한 배은 망덕한 아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자신의 집에 왔는데 손자녀석은 더 한술 더떠서 할아버지를 몰아내고 형편없는 곳에 머물게 하는 장면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아들을 위하여 투자했는데 돌아온 것은 쪽방신세가 된 부모님의 모습니다. 자신들은 큰 아파트에 그리고 큰 공장을 가지고 사업을 하는데 부모님에 대한 효를 저버린 그러한 아들의 모습을 말하고 있다고 하면서 형도 조심해하고 조언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탕자는 자신의 제산을 허랑방탕하였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 허랑방탕은 바로 육신의 정욕으로 살았다는 뜻입니다. 즉 30절의 말씀처럼 “30.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창기들과 함게 삼켜 버린 이 아들이라고 큰 아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어디 둘째 아들만 물질에 관심 있었습니까? 큰 아들 역시 더 욕심이 많은 것을 볼수 있습니다. 각각 유산을 나누워 주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아버지의 전 제산에 대하여 많은 욕심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모든 것이 작기 것인데 소와 그리고 금가락지와 신발과 모든 옷들이 자신의 것인데 그것을 허비한 것으로 보았고 그로 인하여 마음이 상한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여러분 세상사람들은 성과주의 조건주의로 살기 때문에 외롭고 힘든 것입니다.

탕자가 돈이 있으면 사람들이 모여들고 돈이 없으면 탕자를 사람취급도 안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이러한 사회가 말해주고 있는 것이 바로 성과주의와 경쟁주의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정이 없고 사회가 매말라가는 것입니다.

세계 곳곳에서는 수면제 없이는 못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오신 우리 교포가 있습니다. 자신은 미국에서 잠을 잘수 없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와서 잚을 자는데 너무 잠이 잘와서 평안히 잠을 자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금만 불편하면 그것을 불만으로 나타내고 그것을 토로합니다. 그래서 나가게 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성과가 있으면 그 사람을 인정하고 성과가 없으면 사람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학교에서 졸업하고 대학생들이 스펙을 쌓으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참으로 잔인한 사회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밝고 일어나야하는 것입니다.

어린때부터 그러한 것을 키우는 사회입니다. 우리 부모가 그러합니다. 이밥 먹으면 장남감 사줄게 조금 크면 100맞으면 짜장면 사줄게 공부를 열심히 해라 좋은 대학들어간다. 학점이 좋으면 대기업 들어간다 하는 성과주의입니다. 그리고 기업체에서 성과가 있으면 포너스와 월급을 많이 올려주어 편하게 살게 해주는 것이 바로 현대의 사회입니다. 요즘 부부지간에서 좋은 성과가 없으면 좋은 물질의 벌이가 없으면 서로 이혼하고 해어지는 것이 다반사입니다. 예전에는 참고 가정을 일으키는 것이 미덕이 되었지만 지금은 조금만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의 양에 차지 못하면 갈라서는 것이 우리의 사회입니다.

요즘 사회는 모임이 그만큼 했으니 내가 그만큼 도와주는 것입니다. 결혼식도 그러합니다. 네가 이만큼 부조했으니 내가 이렇게 부조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만큼 부의했으니 나도 이만큼 부의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사는 것이 우리 사회의 모습니다.

2. 무조건적인 아버지의 사랑

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그러나 아버지는 물질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아들이 모든 제산을 다 허비하고 모든 물질을 다 탕진하여도 그 아들이 돌아오기만 기다리는 사랑이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탕자는 아버지를 죽은 자와 같이 취급하였습니다. 자신만 아는 막무가내의 아들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시는 아버지입니다.

그것을 로마서 5장 6절 11절에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약할 때에”(6절), 또한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8절), 우리가 아직 원수되었을 때에(10절)에 우리 주님이 화목제물이 되어주시고 죽으셨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라면 이 아들을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동생이 방송을 보고 느끼는 것은 아버지에 대한 사랑보다는 어머니에 대한 잘못된 사랑을 지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렇게 미울짓을 하였어도 그 아들을 위하여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돈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아들인 것입니다. 돈은 또 벌으면 되지만 아들은 죽으면 다시 살릴수 없다는 마음이 그의 마음속에 가득차 있었습니다.

돼지는 유대인들에게 상극입니다. 그런데 그의 인생의 모든 부분을 허비하고 난뒤의 삶은 인생에 가장 혐오스러운 곳에서 우리가 맴돌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가장 처참한 곳에서 그들은 헤매고 방황하고 있단는 것입니다. 부자집 아들이 왜 여기까지 왔습니까?

그는 자신을 다시 돌아보고 난뒤에 자신은 아들이 아니라 품군이 되겠다고 결심합니다. 그는 마음의 결심을 하고 아버지에게로 돌아가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어떻게 말할 것을 열심히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아쁘지게 하지 않을 방법이 품군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고 단지 푼군으로 써주시옵소서 그리고 그냥 밥 3끼만 주시면 열심히 일하겠다고 하였던 것입니다. 우리 게스트 중에 홍콩 스투디어스 글로리라는 처녀가 있습니다. 한국어는 공부하고 싶고 워홀을 하면서 일을 하는데 정말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잠만 제워주고 호텔에서 공짜로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에게 이렇게 입을 여려고 합니다. 어버지 아버지의 종이 되겠습니다. 하려고 하는 순간 아들의 입을 맞추는 것입니다. 말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냥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이것이 이것이 조건없는 사랑인 것이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입니다. 성과를 내게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조건을 열지 못하는 것입니다. 성과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입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지치게 되느 것입니까?

엄기호 교수가 쓴 단속의 사회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 곁에는 말을 듣는 사람은 점점 사라지고 자신의 말을 들어달라는 사람들만 가득하다. 자신의 마음을 호소하고 싶은데 누구에게나 그 마음을 호소할 수 가없는 사회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방황하고 그리고 병에 걸려 상담하고 힐링을 찾는 사회입니다.

단속이라는 뜻은 2가지로 풀이되고 있습니다. 같고 비슷한 것에는 끊임없이 접속하지만 타인의 고통 같이 조금이라도 나와 다른 것은 철저히 차단하는 단속(斷續)입니다. 둘째로 단속은 주의 기울여 자기를 다잡거나 살피는 단속(團束)’입니다.

저자는 사람들의 상처를 더 들어내고 더 구경거리로 만들어 소설네트워크 공간에서 그 상처를 아픔을 들어내는 것이 지금의 사회입니다. (SNS) 그리고 짧게짧게 떠오르는 모든 생각까지도 SNS에 중계방송한다. 카카오톡 같은 문자서비스에는 24시간 접속해 있다.”(본문 67~68쪽)

우리주님은 이러한 아픔과 고통을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다 들어주시는 것이 우리 주님입니다. (이순재 보험이 아닙니다)

한량없는 은혜… 나를 지으신 하나님 나를 들으신 하나님 나를 보내신이도 하나님

나에 나 된 것을

여러분들은 렘브란트가 그린 돌아온 탕자의 명화를 보면 그것이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자신의 삶을 그린 내용입니다. 렘브란트는 첫째 부인 사스키아와 사랑하는 외아들 티투스의 죽음외에 어려 번 커다란 불행을 겪어 절망에 빠져있습니다. 자신을 탕자로 묘사해 자신을 하나님께 나가는 놀라운 은혜의 그림입니다.

강인한 손과 어머니의 온화한 손 = 아버지의 눈은 매일같이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다 짓물러 멀게 되었다. 때문에 아버지의 시선은 초점이 없다. 이는 눈이 멀기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눈물로 밤을 지새운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한 것이다.

아들을 감싸 안고 있는 아버지의 손을 자세히 주목하여 보라. 아버지의 두 손은 서로 다르게 그려져 있다. 왼쪽 손은 힘줄이 두드러진 남자의 손이고, 오른쪽 손은 매끈한 여자의 손이다. 아버지의 강함과 어머니의 온화한 부드러움이 손을 통해 동시에 표현되고 있다. 아들의 어깨를 만지는 아버지의 왼손은 매우 강하고 근육질이다.

그러한 손가락들이 아들의 등과 어깨를 넓게 감싸고 있다. 그러나 오른손은 누르거나 잡거나 하지 않는다. 아들의 등 위에 부드럽게 얹혀 있으며 마치 안도감과 위로를 주는 어머니의 손과 같다. 또한 이 손에 모든 빛이 모여 있고 화해와 용서, 치유의 의미가 담겨 있다. 그림에서 다른 목격자들의 시선도 아버지의 손에 주목된다.

모든 것을 잃과 돌아온 탕자. 아버지에게 돌아온 탕자는 누더기 속옷을 걸쳤는데 거의 몸만 가리고 있다. 그가 감옥에 있었던지, 수용소에 있었던지 황갈색의 찢어지고 핏기 어린 속옷은 그의 참담했던 생활을 대변해 주고 있다. 게다가 샌들이 벗겨진 탕자의 왼발은 상처투성이고, 오른발은 다 닳은 샌들 자체다. 거친 발바닥은 그의 삶이 얼마나 곤궁했는지를 보여준다.

탕자는 삭발한 죄수의 모습. 아들 탕자의 머리는 죄수처럼 삭발한 모습이다. 뉘우치는 아들이 스스로 죄인임을 나타낸다. 또한 탕자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엄마의 자궁에서 갓 태어난 아기의 모양이고, 마치 어머니의 뱃속에 머물고 있는 태아의 모습처럼 평안해 보인다. 이것은 본래 고향인 하나님의 품에 돌아왔음을 상징하며, 하나님의 품에 안긴 인간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모든 죄를 용서한 하나님수염을 기른 반 실명 상태의 노인, 황금빛의 옷을 두르고 돌아온 자식을 어루만지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절대적인 자애와 조건 없는 사랑, 영원한 용서와 같은 신성의 실재를 보게 된다. 여기서 인성과 신성, 무너지기 쉬운 연약함과 변치 않는 강인함, 늙음과 영원한 젊음이 함께 표현된다. 눈먼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의 등을 육안이 아니라 내면의 눈으로 보고 느끼고 있다. 인간의 모든 죄를 용서한 하나님과 같은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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