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bible

시편 파수꾼의 아침

2015-11-13 21:57:07


주일설교 2015년 11월 5일 (죄사함과 기다림)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15년

1. 여호와여 내가 깊은 곳에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

2. 주여 내 소리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3.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지켜보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

4.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하게 하심이니이다

5. 나 곧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는도다

6.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7.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여호와께서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속량이 있음이라

8. 그가 이스라엘을 그의 모든 죄악에서 속량하시리로다

요즘 잇슈는 당연히 국정화입니다. 많은 대한민국 국민이 국정화를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그에 찬성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정의화 국회의장도 반대한 것으로 알지만 대통령의 의지가 확고하니 여당에 있는 분들도 그에 따라서 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극동방송국에서 이러한 칼람을 들었습니다. 요즘 암살이라는 영화가 천만 관객을 돌파하였습니다. 그 영화 가장 인상 깊었던 대사는 안옥윤(전지현)하고 하정우가 대화하는 부분에서 그깟 두명 죽인다고 뭐가 달라지냐는 말에 안옥윤이 “적어도 우리가 계속 싸운다는걸 알려주야하지 않겠어”라고 말합니다. 어느 대학교수는 그 행위를 테러활동이라고 구분한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독립이 연합국의 승리이지 우리가 이룬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민주화 과정도 마찮가지입니다. 늘 우리나라의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하여 우리가 민주화의 과정을 격게 되었습니다. 이 부분에서 민주당과 새누리당이 부딪치는 부분입니다. 민주당에서는 민주화의 과정을 부각하려는 입장이고 새누리당에서는 그러한 입장을 부각하지 않으려고하는 것입니다.

다시 암살이라는 내용으로 들어가서 “적어도 우리가 계속 싸우는 것을 알려줘야하지 않겠소.”라는 말속에는 우리교회의 입장에서 살펴보도록하겠습니다. 우리가 11월 15일날 다음주 추수감사주일날 우리교회에서 전도하려고합니다. 우리가 한사람 두사람 전도한다고 우리교회가 그리고 대한민국성도에 얼마나 도움이 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우리가 해야할 일을 하지 않아야겠습니까?

우리 기독교가 욕을 먹고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회에 정화하는 기관이데 정화는 커녕 세속화 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렇게 핍박을 받아도 그렇게 손가락질 받아도 계속적으로 전도해야합니다. 그리고 복음을 증거해야합니다. 그 기다림의 끝이 언제인지 모르지만 우리가 열심히 전도함을 보여줌으로 우리가 좀 더 하나님앞에서 교회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일들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번에 강송훈 집사님의 심방으로 인하여 함께 김성애 권사님과 충주에 갔다왔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가면서 김성애 권사님이 차 멀미를 하고 그리고 구토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 차를 하나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인터넷을 뒤지는데 찻값이 괭장히 싼 차가있습니다. 스타렉스차인데 650만원입니다. 인천에 있습니다. 그리고 2015년 차량인데 8천키로를 다녔는데 500만원입니다 그래서 계약을 하려고 하니 이 친구가 정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목사님 세상에는 이렇게 싼 차가 어디있습니다. 이러한 차를 인터넷차라고합니다. 그냥 보통차는 정품중고차량과 인테넷 차량이 있는데 쉽게 보시면 뇌사차량이라고 보시면 된다는 것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자폐아, 뇌사 상태로 태어난 차량이라는 것입니다. 잘 가다가 핸들이 잠긴다는 것입니다. 연애인 차량같이 3500만원인데 650만원입니다. 그 차량은 연료가 3배나 들어가는것입니다. 어떤 고장이 날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품차량을 보여달라고 하니까? 저희 교회에 있는 차량보다 20만 키로를 띤 차량이 1350만원입니다. 그래서 포기하고 왔습니다.

신앙생활에도 영적인 하나님에 대한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남들이 보는 데에만 급급하고 자신은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모습으로 신앙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겉모양은 아주 좋은데 속은 영적으로 비어있는 사람입니다. 누가봐도 성령충만하고 누가봐도 교회 열심히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영적인 뇌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조금만 시험이 오면 포기하고 핸들이 잠기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에서 힘들고 어려운 시기 가운데 오직 죄사함이 있는 하나님께 나와 그의 은혜를 구하고 또 하나님의 복을 기다리며는 성도의 모습이 어떠한 것인가? 함께 은혜를 나누도록하겠습니다.

1. 죄 사하시고 오래 참으시는 주님

1. 여호와여 내가 깊은 곳에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

2. 주여 내 소리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3.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지켜보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

4.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하게 하심이니이다

지난 수요예배 시간에 로마서 강해를 하면서 죄사함에 대하여 말씀드렸습니다.

어린 시절 우리 아들이 주안에서 살지 않거나 바르게 성장하지 못하였을 때에는 훈계하고 체벌도합니다. 그러나 성장하고 중고등학교 다니면서 말로 훈계를 합니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가면 말도 하지 않고 기다리기만 하였습니다. 알아서 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비록 그 자녀가 방탕하고 하나님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갈때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기다리는 것처럼 저도 아들을 기다리며 돌아오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마치 탕자가 돌올 때에 아버지가 신을 벗고 달려나가는 것처럼 자s녀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선민이라고 그들의 육신의 할례와 율례와 율법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나고 이중생활을 하므로 하나님이 그들을 벌하기 전에 선지자와 예수님을 통하여 그들에게 회계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생활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앗수르와 바벨론을 통하여 로마를 통하여 이스라엘백성들을 책망하였습니다. 그래도 듣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로 그들은 해방되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여전히 이스라엘백성들의 회복을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율법의 힘으로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모세의 율법으로 할례를 통하여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오직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믿으니 그를 의로 여기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렇다고 우리가 늘 의인처럼 살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매일 죄를 짖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짖고 살아가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죄사함을 주시는 것입니다.

마치 베드로와 예수님의 대화를 통하여 우리가 죄사함을 받은 비유처럼 말입니다. 목욕을 한 사람은 손과 발을 매일 씻는 것처럼 우리의 죄를 매일 씻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젊은 시절에 지은 죄들을 또 생각나고 또 기도하고 회개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한번 자복하고 회개하면 되는 것입니다. 처녀의 시절에 총각의 시절에 지은 죄들이 많이 있습니다. 왜하면 나이가 들어서 죄를 짖는 것보다 젊은 시절에 죄를 짖는 수가 많이 있기 때문에입니다. 환경이 그렇게 말들어졌기 때문에 친구들 때문에 죄를 짖는 수가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늙으면 죄를 짖지 않습니까? 목사님이 되면 죄를 짖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이 죄를 짖는 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방해순자매)

낮에는 지킬박사님처럼 다른 사람들 돕고 치료하는 사람이 되고 밤에는 하이디처럼 죄를 짖는 야수와 같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의 정수를 보여주었던 사도바울도 그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참회가 있을 때에 로마서 8장 1절의 말씀이 나오는 것입니다. 시편 22편의 고통이 있을 때에 시편 23편의 찬송시가 나오는 것입니다.

큰 죄도 지옥에 가고 작은 죄도 지옥에 갑니다. 마치 태평양 바닷가에 큰 돌도 풍덩 빠지지만 작은 돌맹이도 바닷물에 빠지는 것입니다.

요셉은 죄가 없는 것처럼 성경에 비취어집니다. 그러나 요셉도 하나님 앞에서 죄인입니다. 다니엘도 믿음의 사람처럼 비처지지만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들이 다 죄인입니다. 세상에 어떤 율법학자도 죄를 짖지 않고 살아갈 수 없습니다, 가정상담을 하는 박사님의 자녀가 말성 앞에 꼼짝을 못합니다. 결혼상담소 소장님도 이혼하고 가정 풍파가 일어납니다. 단지 이론으로 배우는 것이지 우리가 배운대로 인생은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직 사유하심이 주님께 있습니다.

우리 평강이가 어머니 아버지의 돈을 훔쳤다고 가정해보시겠습니다. 아빠 어린 시절에 아빠 돈 훔첬는데, 그리고 방학을 마치고 와서 아빠 돈을 훔쳤는데, 그리고 몇칠전에 아빠 돈을 훔쳤는데, 아빠 저녁을 먹는데 그러한 이야기를 하면 이제 그만해라 됐다. 아빠는 다 용서했는데 왜 그렇게 하느냐고 하였습니다.

김재복집사님과 강송훈 집사님의 병원에 심방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한가지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죄에 댓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묻지도 않은데 목사님 저희들이 주일 출석하지 못해서 이러한 벌을 받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면 이제 돌아와서 주일 출석하면되는 것입니다.

2. 주님을 기다림속에 풍성한 속량이 있습니다.

5. 나 곧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는도다

6.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7.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여호와께서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속량이 있음이라

8. 그가 이스라엘을 그의 모든 죄악에서 속량하시리로다

저는 하루를 시작하면서 우리 새벽기도 성도들을 기라리면서 살아갑니다.

우리 사모를 홍대역 1번출구에서 기다립니다.

한주간을 우리 사랑하는 성도들을 기다리면서 살아갑니다.

한달을 매주 첫주 성찬예배를 기다라면 살아갑니다. (지동현권사님)

육개월을 우리 평강이를 기다리면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평생을 교회부흥을 위하여 기다리면서 살아갑니다.

모든 성도들은 우리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살아갑니다.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지는 과정이 뉴스에서 반복되어 방영되었다. 모든 가족의 사연이 가슴아프겠지만, 가장 마음아팠던 것은 거진 70년간 생이별을 해야 했던 부부의 이야기였다. 할머니는 아이를 가진 상태로 할아버지와 헤어졌고 그 아이가 벌써 66세의 노인이 되었다. 돌아올지도 모르는 남편을 기다리며 이사도 가지 못하고

삯바느질 등으로 아들을 키워온 할머니. 할아버지는 10년을 기다리다가 새로운 가정을 꾸리셨단다. 아내와 아들을 보며 미안함에 말을 잇지 못하는 할아버지를 보며

눈물을 참기 힘들었다. 뉴스를 들으면서 거의 울을 번하였습니다. 마지막 일정을 끝내고 할아버지와 이별하는 할머니의 표정이 다시 한 번 나를 울렸습니다. 이번 생에 다시 볼 수 있을까.. 아쉬움과 체념, 내가 이해할 수 없을 깊이의 감정이 뒤섞인 눈빛에 마음이 아린다. ‘나라면’을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아픔과 기다림, 그리움. 위로의 글자를 적을 수가 없다. 부부의 연이란 어떤 것일까. 나는 늙어서 어떤 모습으로 우리 부부는 살아갈 것인가?

http://blog.naver.com/rhatmxkdlf?Redirect=Log&logNo=220516307140

사람들은 왜 살며 그리고 무엇을 하면서 사는 것일까? 94%이상은 무엇을 기다리면서 산다고 합니다. 건강을, 병낫기를, 사업을, 자식을, 천국을, 부흥을 기다리면서 살아갑니다.

오늘 성경의 저자는 자신의 죄를 사함을 받게 됨의 죄사함은 은혜와 속량이 얼마나 위대한 축복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7.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여호와께서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속량이 있음이라

기다림은 성경에서 아브라함의 예를 통하여 우리에게 많은 깨달음을 줍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75세에 부르시고 큰 민족을 이룰 것을 약속합니다. 그러나 기다리지 못하고 엘리에셀을 하나님께 아룁니다. 다시 사라와 상의하여 85세에 하갈의 몸에서 이스마엘를 상속자로 하나님께 아룁니다. 하나님은 아니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마침내 25년만에 하나님은 이삭을 주십니다. 그로인하여 중동의 참혹한 전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6장 13.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14.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

15. 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실패하더라도 또 참고 기다리면서 주님의 섭리를 기다리면 아브라함이 복을 받은 것처럼 우리도 우리 하나님께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 시인은 영적으로 지처있는 상황입니다. 파수군은 밤새도록 보초를 서게 됩니다. 성을 지키기 위함입니다. 파수군이 성을 지키지 않으면 성전체가 위험합니다. 우리나라의 38선을 휴전선을 지키듯이 늘 군생활은 보초의 연속입니다.

인테넷 구글에서 파수군이라고 검색을 하니 영화가 나오더라고요? 그 내용은 고등학교 다닐 때에 학교에서 짱이였습니다. 자신에게 가장 친한 친구가 있습니다. 그친구들이 하나씩 전학가고 자신과 헤어짐을 통하여 자신의 마음을 지키지 못하고 자살하게 되는 과정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속에서 주고자하는 영적인 의미는 고등학교 시절이 지나면 아무것도 아닌데 새로운 세계가 또 있는데 그 고독과 외로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자살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파수군이 성을 지키는 것처럼 성도들은 마음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파수군의 아침을 기다림을 체험적이 있습니다. 저는 1983년도에 군에 입대하여 연무대에서 훈련을 받고 의정부 벽제에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상황병으로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각 방공포대에서 보고를 하면 우리 대대에서 사령부로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 상황병이였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제가 졸았습니다. 그래서 영창갈번하였습니다. 우리 옥00 소령님이 사령부에 잘 말하여 제가 영창을 가지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제대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한 생각이 듭니다. 그 당시에는 어찌나 졸리는지요. 잠을 자도 졸리는 시절이였습니다. 정말 새벽 기상나팔소리가 얼마나 기다리는 시절인지 모릅니다.

기다림입니다. 우리의 겨울이 싫고 건너 뛰고 싶어도 겨울이 없이는 봄이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민족의 역사에 고난의 역사가 없었다면 저는 여전히 여전히 후진국에서 살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교회를 이렇게 연단시키고 어려움을 주시는 것은 분명히 복주고 복주시는 하나님을 기다리면서 살아하는 것을 느끼게 하십니다.

결론입니다.

오늘 본문의 시는 이스라엘 민족이 포로되었고 그 원인은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앞에서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하여 1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령에 빠진 것입니다. 포로의 수렁에 빠진 것입니다. 고통의 수렁에 빠진 것입니다. 우리 나라와 민족도 기독교의 침체의 수령에 빠진 것입니다. 그 수령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 마귀요 그리고 죄악입니다. 죄를 깨닫고 죄악을 치유하는 것이 주님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 고통을 해결하는 길이 바로 모든 죄를 사해주는 주님께 있음을 알고 주님께 회개함으로 주님께 나가자는 시편입니다. 그 죄사함의 은총을 기다림이 마치 파수군이 아침을 기다림과 같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나라를 그리고 우리 한국교회를 우리 성원순복음을 교회의 다시 한번 영적인 부흥을 위하여 노력해야할 할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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