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7장 1절이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12년 마지막 주일
전 7:1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전 7:2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유심하리로다
전 7:3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함으로 마음이 좋게 됨이니라
전 7:4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느니라
전 7:5 사람이 지혜자의 책망을 듣는 것이 우매자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나으니라
전 7:6 우매자의 웃음 소리는 솥 밑에서 가시나무의 타는 소리 같으니 이것도 헛되니라
전 7:7 탐학이 지혜자를 우매하게 하고 뇌물이 사람의 명철을 망케 하느니라
전 7:8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나으니
전 7:9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자의 품에 머무름이니라
전 7:10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하지 말라 이렇게 묻는 것이 지혜가 아니니라
지난 수요일날 김옥자 집사님 가정에 수요예배를 드리면서 전도서 강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7장 1절이하를 설교를 하는데 다 하지 못하고 특별히 오늘 본문이 마지막 주일에 해당되는 내용이 있기 때문에 본문을 중심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 도록하겠습니다.
전도서 7장 8절의 말씀의 제목을 따라 “전 7:8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나으니” 일의 끝이 좋은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도록하겠습니다.
모든 사람들마다 일을 하며 살아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어떤 분은 사업을 하고 어떤 분은 장사를 하고 어떤 분은 운전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일을 시작하여 장사를 잘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분은 장사를 하였는데 그 장사가 잘되지 않아서 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서울 중구 무교동 45번지 코오롱 빌딩 김석봉 대표는 아침 7시면 0.8t트럭을 몰고 와서 토스트 장사를 합니다. 오이 양파 당근 등을 잘게 썬 채소를 넣어 달걀 반죽, 정수로 끓인 물로 커피를 그리고 유통날짜가 확인된 우유을 준비하고 흰 까운을 입고 조리사 모자를 쓰고 토스트를 팝니다. 전북 정읍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자동차 정비소를 견습공을 하다가 쇠파이프로 등짝을 맞자 지금도 많이 결리고 합니다. 인천으로 올라와 신학교를 다니면서 장사를 시작하였습니다. 아내와 결혼하고 녹번역에서 홍제역에서 하다가 종로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일본사람들까지 알려저 지금은 명물로 등장하였지만 그의 전기를 읽으면 얼마나 눈물나는 장면들이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그가 그 어려운 가운데도 주의 일을 하고 일하면서 주의 일을 힘쓰는 우리 우춘식 전도사님처럼 살고 있습니다. 지금은 큰 매출을 올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강연도 많이 다닙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나중은 창대하라고.. 그리고 성경의 역사를 보면 아브라함도 복을 받았고, 다윗도, 솔로몬도 많은 위인들도 하나님의 복을 받았습니다. 물론 물질적이고 기복적인 신앙은 좋지 않지만 하나님의 주신 복으로 구제하고 선교하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욥 8:7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그러면 성경에서 어떻게 하면 잘 될 것인가? 성경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잔치집보다는 초상집에 가라고 하였습니다.
전 7:2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유심하리로다
지난 수요일날 왜 잔치 집에 가라고하였습니까? 잔치집에서는 즐거움과 쾌락이 있지만 초상집에는 인생의 삶의 반성과 죽음을 준비하는 자세입니다. 우리 기독교인에게 초상집은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사는 삶을 의미합니다. 김활란 박사님은 그사 소천할 때 울고 있는 성도들에게 찬송가 하늘 가는 밝은 길을 불러달라고 하였습니다.
또 초상집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첫째로 초상집에 눈물이 있고 잔치 집에는 눈물이 없습니다. 잔치집에는 웃음이 있습니다. 기쁨이 있습니다. 기쁨과 즐거움은 인생을 풍요롭게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눈물 뒤에 자신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자신을 경건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여러분 전쟁에 나가기 전에 논산 훈련소에서 훈련을 합니다. 왜 훈련합니까? 바로 피를 흘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훈련동안 땀을 흘리면 피를 흘리지 않습니다. 인생에 눈물을 흘리지 않고 빵을 먹어보지 않는 사람들은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둘째로, 초상집에는 잔치집에 없는 회개가 있습니다. 인생을 살 때에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하나님이 천국을 주시 전에 회개하라고 하였습니다. 자신이 회개하면 진정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욥 1:5 그 잔치 날이 지나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케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사가 항상 이러하였더라
욥은 잔치를 하고 난 뒤에 혹시 부지중에 자랑하거나 교만하거나 하나님 앞에서 바르지 못한 행동을 하였을까? 늘 회개의 기도와 번제를 드렸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벨드사살이라는 사람은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성전의 성물을 가지고 술을 먹다가 메데와 파사군에게 멸망당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잔치집에는 본향에 대한 생각이 없고 초상집에는 천국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자신이 죽을 때에 장례를 이렇게 치루워라고 하였습니다. 자신의 관을 만들 때 자신의 손을 관 밖으로 내놓으라고 하였습니다. 자신은 저 세상으로 갈 때에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2. 지혜자의 책망을 듣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전 7:5 사람이 지혜자의 책망을 듣는 것이 우매자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나으니라
세상에서 공부를 통하여 지식을 얻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로는 지혜를 어는 것입니다. 지혜의 근본은 바로 하나님을 섬김에서 오는 것입니다. 지혜자가 되기 위하여서는 성경말씀의 책망을 들어야합니다.
어린 자녀에게는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로 칭찬을 해주는 것입니다. 사람이 칭찬을 해주면 고래도 춤을 춘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칭찬을 해줄 때에 권면을 할 때 바르고 귀하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책망을 해야합니다.
어린 자녀에게 칭찬만 해주면 버릇이 없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상황가운데 그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불평하는것입니다. 우리 평강이는 할머니가 모든 것을 해주었습니다. 엄마가 모든 것을 해주었습니다. 집에 와서도 공부를 한다고 목사인 제가 밥을 해준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 학교에서는 자신이 일을 다하지 않으면 벌점을 받았습니다. 학교에 눈도 쓸어야하고 기숙사 생활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안하면 감점의 대상입니다. 그래서 불평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간사고 교활합니다. 만나는 사람들 앞에서 감사하다는 표현 ‘아리마데 고자이 마스’라고 외쳐댑니다. 그러나 속으로 전쟁의 야속이 있습니다. 조선, 대한민국을 집어먹고 중국으로 나가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을 분별할 줄 알아야합니다. 진정으로 좋은 부모나 좋은 선생님 좋은 목사님은 어려분들을 책망합니다. 그것이 여러분들에게 쓰고 아픕니다. 그러나 그것을 통하여 성도가 성장하고 바르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왜 사람들을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그리고 목사님이 책망하십니까? 사랑하기 때문에 책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책망하시고 계시는것입니다. 좋은 하나님이지만 하나님은 바른길을 가게 하시기 위하여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부흥회 시간에 어찌나 우리 성원순복음교회 책망하시는지 듣기가 싫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었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회개를 말씀한 것 처럼 우리 성원순복음교회에서 회개의 운동이 일어날 때에 부흥의 운동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계] 3: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3, 쉽게 노를 발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전 7:9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자의 품에 머무름이니라
지난 번에도 설교한 내용중에서 오다노부나와 도요도미히데요시, 도구까와 이에야스 3사람을 비교한 적이 있습니다. 도꾸까와 이에야스의 자손들이 300년동안 일본을 통치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마지막까지 참았습니다. 오다노부나가 그의 아내 그리고 그의 아들이 죽는 순간에도 참았습니다. 도요도미 히데요시가 죽이려고 하여도 참고 또 참아서 마치내 대망을 이루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2012년도에 내 성질대로 살고 노를 발한 것이 있다면 다른 사람에게 무래히 행한 것이 있다면 올 한 해가 지나가기 전에 다 하나님께 회개하고 2013년도에는 더 안전하고 기쁜 날이 될수 있도록 노력해야합니다.
세상에 성질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목사도 성질이 있습니다. 우리 민서도 성질이 있고 자기 뜻대로 안되면 울어버리는 것입니다. 성정 잠언서에는 아이가 자기 동작으로 말은 못하지만 소변보고 똥싼 것을 몸짓으로 나타난대고 하고 있습니다.
잠 20:11 비록 아이라도 그 동작으로 자기의 품행의 청결하며 정직한 여부를 나타내느니라 것입니다. 성경에는 이러한 내용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질이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는 살기가 등등하였습니다. 그래서 스데반을 죽일 때 자기 발아래 두었고, 그리고 더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기 위하여 다메섹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면 그 성질을 이길 수 있습니다. 성질을 이길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성령의 주신는 힘입니다. 기도의 힘입니다. 어떠한 고난 가운데서도 어떤 혈기 있는 상황을 만나도 기도함으로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이길수 있습니다.
여러분 당장 우리 눈앞에서 그러한 큰 복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인생의 연자 맺돌을 돌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봉사하고 헌신하는 일 즉 콩을 연자맺돌에 돌리면 두부가 나오지만, 연자맺돌만 돌아가면 돌만 갈아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하든지 아니하든지 그 복을 받기 위하여 좋은 상황이라도 좋지 않는 상황이라도 하나님께 우리가 충성하고 봉사하고 헌신하고 헌물드리면 좋으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좋은 일들을 허락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그는 오래 오래 참았습니다. 급한 마음으로 상황을 대처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형들이 자신을 팔 때도 좌절하지 않고 죽음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종살이하면서 모함을 받아고 감옥에 가서도 좌절하지 않고 자살하지 않고 참았습니다. 왜 그러합니까? 자신에게 꿈이 있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자신이 잘되고 난뒤에도 참았습니다. 그의 형들을 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형들과 동생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 성원순복음에게 분명한 꿈이 있습니다. 수요일날 백송빌라측에서 민원을 제기 했습니다. 그로인하여 공사가 중단되었습니다. 민원의 내용이 우리 공사하는 분들이 잘못을 하였습니다. 돈을 조금 아끼려고 하다가 아무렇게 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연기가 그집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둘째로 천막을 처서 사생활을 보호해다라고 하는데 하지 않았습니다. 셋째로 자신의 손자가 그곳에서 넘어져서 다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건설회사가 조금 신경을 써서 잘했다면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그 일이 발생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4. 처음이 나중보다 좋게 되기 위하여서는 옛날이 오늘 보다 낫다고 하지 말라
전 7:10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하지 말라 이렇게 묻는 것이 지혜가 아니니라
많은 사람들은 옛날을 향수에 젖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성원순복음교회에 옛날의 건물을 생각하기 보다는 앞으로 미래를 생각하며서 살아가야합니다. 옛날에 우리집이 어떠했는데 옛날에 내가 교회에서 봉사를 많이 했는데 옛날에 내가 헌금을 많이 했는데 하는 자만에 빠지지 말고 앞으로 앞날을 위하여 생각하고 꿈꾸는 것이 처음보다 나중에 좋은 결과를 가저오는 것입니다.
여름에 바닷가를 걸으면 그 발자국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바닷물이 와서 그 발자국을 지웁니다. 겨울 산행을 하면 하얀 눈위에 발자국을 남기면서 걸아가는 모습을 보면 너무 아름답고 행복합니다. 그러나 햇빛으로 눈이 녹고 다시 눈이와서 발자국이 없어집니다.
인생도 2012년에만 머물수 없습니다. 정말 힘들고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저에게는 정말 많은 고난의 시기였습니다. 금식을 하게 되었고 그리고 교회를 짖는데 업체를 선정하는 문제, 그리고 건물을 허물고 성전을 짖는데 민원으로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릅니다. 특별히 날씨로 인하여 고생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목사로서의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여러분을 대표하여 제가 그곳에 감독자입니다. 또한 성도들이 떠났습니다. 청년들과 그리고 박복례권사님, 그리고 대출의 문제로 인하여 심적인 물질적인 고통이 많이 있습니다. 빨리 문제가 해결되어야한데 마음적으로 고통을 떨어버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면 그 모든 것이 평안해지고 그리고 앞으로 성전에 입당하려고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너무 행복하고 기쁜 마음으로 또 하날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언제가는 이 겨울이 가겠지요.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롯의 가족에게 너희들이 생명을 구원하기 위하여 소돔과 고모라를 나올때에 뒤를 돌아보지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세상의 물질과 부를 생각하면 롯의 처는 돌아봄으로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지난 세월들을 돌아보며 기억하는 것도 은혜이지만, 잊을 것을 잊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에, 망각은 큰 은혜요 축복이 된다.
창 41:51 요셉이 그 장자의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로 나의 모든 고난과 나의 아비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함이요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을 향하여 이렇게 고백한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 달려가노라.”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달려가기 위한 전제가 바로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는 것이다. 잊어버리지 않으면 앞으로 달려가기 어렵다.
한해의 서운한 것들을 다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한해동안 마음의 상처들을 다 털고 일어나야하는 것입니다. 의외로 부모자식 관계에 고통스럽고 서운한 과거를 잊지 못해 어려움 당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릴 적 섭섭하게 한 엄마, 가정에서 제 역할 못해준 아빠에게 대한 상처와 섭섭함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여, 두고두고 가족 안에서 뿐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와 생활에 그늘져 있는 경우가 많다. 시부모나 장인장모에게 무시당했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가족 화목에 얼마나 지장을 주는가! 예수님 안에서 다 정리하고 잊어버리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결론입니다.
욥은 많은 제물입니다 동방의 의인입니다. 자식도 죽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집도 망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오늘 성경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책망을 달게 받았습니다. 둘째로 분노하지 않았습니다. 주신이도 하나님이시오 취하신이도 하나님이라고 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욥은 뒤에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있는 것을 사모하며 나갔습니다.
욥 42:12 여호와께서 욥의 모년에 복을 주사 처음 복보다 더하게 하시니 그가 양 일만 사천과 약대 육천과 소 일천 겨리와 암나귀 일천을 두었고
욥 42:13 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낳았으며
욥 42:14 그가 첫째 딸은 여미마라 이름하였고 둘째 딸은 긋시아라 이름하였고 세째 딸은 게렌합북이라 이름하였으며
욥 42:15 전국 중에 욥의 딸들처럼 아리따운 여자가 없었더라 그 아비가 그들에게 그 오라비처럼 산업을 주었더라
욥 42:16 그 후에 욥이 일백사십 년을 살며 아들과 손자 사 대를 보았고
욥 42:17 나이 늙고 기한이 차서 죽었더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