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16장 9절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24년 9월 29일 주일설교
  1.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잠언 16장 1절에 마음의 경영(사업장)을 운영하고 일을 시작하는 것은 사람에게 있어도 응답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9절에 사람으로 마음으로 자기 길을 게획할지라도 그것을 결정하는 분은 하나님이라고 하셨습니다.
두 말을 종합하면 계획은 사람들이 하지만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싸울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배하지만 이김은 하나님의 뜻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조금 어려운 표현으로 섭리(攝理), 하나님이 손으로 만들고 그것을 듣고 또 듣고, 또 듣고 한다는 말입니다.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유대교와 기독교의 다른 점
유대교와 기독교의 차이점은 예수님이 있고 없고의 차이입니다. 둘째로 유대인들은 구약만 믿고, 기독교인들은 구약과 신약을 믿습니다.
유대교에는 복된 소식 복음이 없지만, 기독교는 복음이 있습니다. 복음이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이 전한 복음이 예수님과 그의 제자 사도들로 부터 전승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전 15:1), 복음은 성경대로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 복음이라고 하였습니다. (고전 15:3,4). 복음의 결론은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유대인들은 유일신 하나님 만 믿지만 기독교인들은 하나님도 믿고 예수님도 믿고 하나님의 영, 성령님도 믿는 것이 차이점입니다.
초기 기독교에서는 유대인들이 중심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12제자 (베드로, 안드레…..), 그리고 사도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이 거의 대부분이 유대인들이였습니다.
그러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전통적인 모세의 율법을 가리치는 구약과 예수님의 법 신약을 전통적인 유대인들이 받아들이지 않게되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오직 유일신 하나님만 믿기 때문에 기독교와 함께할 수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법을 지금도 이단으로 생각하고 하나님을 미혹하게 하는 자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유대교가 가장 싫어하는 교리가 바로 삼위일체(三位一體) 교리입니다. 유대교에서 삼위는 삼신(三神)을 의미하고 있고, 우리 기독교에서는 하나님과 예수님, 성령님이 한 하나님으로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 얌니아 회의 (Council of Jamnia)
기원후 90년경 얌니아(Jamnia, 지금의 야브네(Yavneh))에서 개최한 바리새파 유대교로서 방향을 설정하고, 기독교와 관계를 단절했습니다.
얌니아 회의에서 중요한 것은 그동안 부분적으로나마 공존해왔던 유대교와 단절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모든 유대교 회당에서 예배를 드리기 전에 ‘그리스도교 이단에 대한 저주’를 반복할 것을 명했습니다.
잠언 16장 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1. 기독교 형성과 발전
사도 바울이 복음을 증거하는 곳마다 교회가 형성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가정교회로부터 형성되었습니다. 빌레몬 가정교회, 빌립보의 가정교회, 고린도의 가정교회에서 출발하고, 더 나가서 시너고그 ( synagogue), 유대인의 사원 회당에서 예배드리다가 교회가 형성되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소아시아지역(에베소, 빌립보, 고린도)에서 로마로 스페인까지 복음이 증거되기 시작하였습니다. 특별히 전세계의 수도인 로마는 사도 바울의 전도지로서 교인들이 점점 많아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교회가 점점 부흥하고 발전하게 될 때에 로마에서 대형화제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에 네로 황제는 기독교인들의 방화라고 몰아붙여서 기독교를 핍박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러한 박해 가운데 많은 기독교인들이 원형극장에서 사자 밥이 되었고, 십자가의 형틀에서 사형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러한 박해 가운데에서도 성도들은 믿음을 지키게 되었고 복음이 순수하지기 시작하였습니다.
  1. 카타콤교회
초대교회는 카타콤(Catacomb)과 콜로세움(Coliseum)이 상징 유물입니다. 카타콤은 라틴어 단어들 “가운데”(cata)와 “무덤들”(tumbas)이 합성되어 “무덤들 가운데”(among the tombs)라는 의미이다.
로마시대에 기독교인들이 시신을 묻기 위한 지하 무덤입니다. 카타콤은 로마의 전형적인 묘입니다. 나폴리, 시칠리아, 북아프리카, 소아시아, 파리 등지에서도 그 유적이 발견되었다. 사람이 죽으면 수평의 벽관들을 파서 시체를 안치한 뒤 벽돌이나 석회로 밀폐했습니다.
로마 부근 언덕에 약 50개의 카타콤이 있습니다. 지하 동굴은 거미줄 처럼 굴착된 행랑들이 총 거리는 8백72㎞나 된다고 한다. 카타콤의 갱도는 미로와 같이 복잡하기 때문에 로마병사들의 추격을 따돌릴 수 있었습니다.
당시 성도들은 로마제국의 박해를 피해 음습한 카타콤으로 모여들 수밖에 없었다. 죽은 자를 묻기 위해 만들어진 카타콤이 기독교인들의 목숨을 살리는 안식처와 예배의 처소가 되었습니다.
콜로세움은 로마 제국 시대에 만들어진 원형 경기장이다. AD72년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착공해 8년 뒤에 아들인 티투스 황제가 완공했다. 콜로세움은 그 길이는 189m이고 너비는 156m이다. 또한 그 면적은 24,000제곱미터이다. 외벽의 높이는 48m이고, 둘레는 545m 입니다. 하지만 수세기 동안 지진들이 일어나며 곳곳에 균열이 갔고 남쪽 벽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현재에는 북쪽 벽만 온전한 형태로 남아있다.
로마제국의 전성기에는 5만 명에서 8만 명의 관중들을 수용할 수 있었다. 콜로세움에서는 주로 검투사들의 결투가 이루어졌으며, 아름답고 웅장한 경기장에서 처절한 비극이 벌어졌으며, 죄없는 그리스도인들을 산체로 짐승밥이 되게 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 콘스탄티누스 대제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첫번째 기독교인 로마 군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치세는 기독교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는데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에 대한 관용을 선포하여 기독교에 대한 박해를 끝내고 사실상 정식 종교로 공인했다.
약 300년동안 1대부터 9대손까지 이르는 긴 세월동안 기독교인들은 사자 밥으로, 십자가의 형틀에서 죽어가면서 그들의 신앙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신앙의 자유를 주셨습니다.
교회는 이제 탄압받지 않고 보호 받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얼마나 축복받는 일입니까? 이일로 인하여 하나님이 더 잘 섬기고 순수해야하는데 인간들은 그렇게 생동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로마제국이 탄압과 핍박할 때에 복음은 순수해지고 더 활발하게 전파되었습니다. 복음은 순수할 때에 능력이 나타나고 복음은 거룩할 때에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세상의 종교 윤리는 삶의 질을 악화시키지만, 복음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능력이 있습니다. 기독교가 순수할 때에 타 종교와 탁월한 대비가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기독교는 영생에 관계 되기 때문에 더 순수하고 거룩해저야하는 것입니다.
순수하고 거룩해 질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예수님의 부활의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죽어도 산다는 부활의 신앙이 어떤한 환난에서도 믿음을 지키면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로마제국의 기독교를 공인하고 교회가 국가로부터 보호를 받게 됨으로 교회는 부요하게 되고 타락하게 되고 정치세력과 타협하게 되었습니다. (아들 평강이)
  1. 기독교의 순수성을 찾아서
국가가 교회를 보호함으로 신앙의 순수성보다는 형식과 외형의 거대함만 남게 되었습니다. 핍박은 베드로사도와 사도 바울이 받고 풍요는 교황과 사제들이 다 누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수도원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수도사를 monk라고 합니다. 헬라어의 원어 고독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monachos. 홀로 거주하는 수도사들을 의미합니다. 사막이나 깊은 산골로 들어가 노동과 기도하며 시편을 낭송하고 성경을 암송하며 살았습니다.
부를 포기하고 오직 성령님과의 교제를 통한 삶을 살았습니다. 주님과 교제함이 최고의 낙으로 삶았습니다. 갑바도기아 교부들과 어거스틴도 수도원 출신입니다. 수도원에서 학문과 경건이 꽃이 피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수도사 혼자 생활하기 보다는 점점 그 수가 늘어나서 공동체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수도원에서 모여서 공동체 생활을 하고 부에 대한 즐거움 보다 성경말씀 대로 살고자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늘 읽고 수도원 생활에 규칙을 만들어 노동과 예배, 경건과 절제된 생활을 실천하였습니다. 이 수도사의 규칙을 정해준 사람이 성 베네딕도입니다. 성 베네딕도는 480년경 이탈리아의 누르시아에서 태어난 인물로서 서방 수도생활의 아버지이자 유럽의 수호성인입니다. 그가 저술한 <수도 규칙>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수도원도 시간이 지나면서 부패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많은 기독교들이 죽을 때 유산을 교회에 물려주기 보다는 수도원에 물려주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부가 수도원으로 형성되게 되었고, 수도원에서 나오는 많은 농수산물들이 직거래됨으로 직거래 장터가 되었습니다. 경건과 거룩이 있는 곳에 돈이 도는 두레공동체가 된 것입니다.
  1. 심령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2.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하나님이 교회를 축복하셔서 교회의 큰 부흥이 임하고 교회가 세상을 지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부와 권력이 교회를 타락하게 하였습니다. 성도들이 어려울 때에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복을 받아서 그 부로 인하여 하나님을 멀리하게 되는 것이 기독교의 역사입니다. 마치 사사기에서 풍요할 때에 하나님을 떠나고 어려울 때에 하나님께 간구하여 그 문제를 풀어가는 반복적인 역사가 우리 삶의 역사인 것입니다.
기독교가 부요하고 힘 있을 때에 겸손해야하는데 힘을 잘못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십자군 전쟁이고, 둘째는 종교개혁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를 의롭다 장담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의 속 마음 제일 구석진 곳까지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 죄인일 뿐입니다.
  • 십자군 전쟁
예루살렘에 기독교가 점령하였는데 교만한 기독교에 이스람 세력을 키우시고 이스람을 통하여 교만한 이스라엘 예루살렘을 심판하여 기독교인의 성지가 된 것이 아니라 이스람 성지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유럽교회가 뭉치기 시작하였고 십자군 전쟁이 발발하게되었습니다. 무려 1차부터 9차까지 186년동안 전쟁하게 되었습니다. 오직 1차를 제외하고 예루살렘을 탈환하지 못하였고 자기들끼리 싸우다가 망한 전쟁입니다. 신앙인이 자신의 욕망을 위하여 전쟁하는 것은 패망의 지름길인 것입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십자군 전쟁으로 인하여 교황의 권위가 추락되고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힘이 약해짐을 통하여 각 나라의 왕권이 강화되었습니다.
기독교 역사를 통하여 우리가 알아야할 것은!
복음은 가난한 자에게 부요를
포로된 자를 자유하게 하고
눈먼자를 치료하며
눌린 자를 자유하게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은혜의 복음입니다.
그런데 복음을 믿고 복을 받은 사람들이 잘못 살고 있습니다. 한국기독교 기윤실에서 2008년부터 여섯 차례에 걸쳐서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를 조사하였습니다. 3년마다 실시하였는데 그 자료가 참옥합니다.
교회에 대한 신뢰도가 21%입니다.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74%, 무등답이 5%입니다.
그 이유로는 기독교 목사님와 기독교인의 말과 행동에 믿음이 안간다입니다. 친근감 있는 종교가 카톨릭 20%, 불교 23%, 기독교 19%입니다. 대부분 없다고 답하였습니다.
결론입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3.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4.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그러나 둘째날은 궁창을 만드실 때에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씀이 없습니다. (사탄의 타락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여섯째날 창조할 실 때에 보기에 좋았다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2장에 오면서 사람을 창조하시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왜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시고 최고의 작품으로 만드시고 난뒤에 보기에 좋아다고 말씀이 없으셨을까? 곰곰이 생각하여 보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인간을 완성품으로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육적으로는 완성품을 만들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이루는 과정속에서 인간 스스로 완성하여 가라고 하신 섭리가 아니가 하는 생각이듭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로봇처럼 만들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통하여 순종하면서 아름답게 만들어가고 하신 섬리가 아닌가 합니다.
없을 때게 하나님께 순수하고, 가지고 있을 때에 교만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겠다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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