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1장 1-7절 말씀 주일설교 두려움과 경외
홍철기목사
2014 마지막 주일예배
성원순복음교회
1. 다윗의 아들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잠언이라
2. 이는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며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며
3. 지혜롭게, 공의롭게, 정의롭게, 정직하게 행할 일에 대하여 훈계를 받게 하며
4. 어리석은 자를 슬기롭게 하며 젊은 자에게 지식과 근신함을 주기 위한 것이니
5. 지혜 있는 자는 듣고 학식이 더할 것이요 명철한 자는 지략을 얻을 것이라
6. 잠언과 비유와 지혜 있는 자의 말과 그 오묘한 말을 깨달으리라
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고양이가 무서워서 아무것도 못하고 벌벌 떠는 쥐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이를 불쌍히 여긴 한 마술사가 그 쥐를 고양이로 변신시켜 주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두려움에 휩싸여 살지 않기를 바라며 말입니다. 그런데 고양이로 바뀐 쥐가 이번에는 개를 두려워하기 시작합니다. 멀리서 개 짖는 소리만 들려도 기겁을 했습니다. 마술사는 긍휼을 베풀어서 이번에는 개로 변신시켜 주었습니다. 그러나 개가 된 쥐는 또다시 동물의 왕 호랑이를 두려워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술사는 한 번 더 긍휼을 베풀기로 했습니다. 동물의 왕 호랑이가 되면 더 이상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을 거라고 기대하며 말입니다. 과연 호랑이로 변한 쥐는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을까요? 호랑이가 된 쥐에게 또다시 두려운 존재가 등장했는데, 그 대상은 엽총을 든 사냥꾼이었습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두려움이 없는 곳이 없다. 오직 두려움이 없는 곳은 공동묘지밖에 없는 것입니다.
1. 경외의 시작은 두려움입니다.
6. 잠언과 비유와 지혜 있는 자의 말과 그 오묘한 말을 깨달으리라
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저에게는 어린 시절 두려움은 귀신이였습니다.
저희 어머니 아버지가 수요예배나 구역예배를 가시면 제일 두려운 것은 귀신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꼭 그시간에 전설따라 삼천리를, 수사반장, 전설의 고향 같은 것들한 기억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주일학교에서 수요예배에 가면 언제나 공동묘지를 지날때에는 두려움이 극치를 달하였습니다. 예배를 잘 드리고 집에 오는 길이 정말 힘들고 어려운 길이였습니다. 제가 다니는 교회는 서울, 김포공항근처의 대성교회이고, 저희집은 방학동 제일 끝자락 담태내 집이였습니다. 그 공동묘지를 지나가는 길이 정말 무섭고 힘들었습니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이가 대한민국을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바로 중학교 2학년이라고 합니다. 왜 중학교 2학년이라고 물었더니 무서움이 없는 아이들입니다. 한번 사춘기가 시작하면 물불 가리지 않고, 어느 방향으로 튈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춘기가 시작되면 죽고 살기로 덤벼들고 싸우고 부스고 이상한 행동들을 하기 때문일고합니다. 두려움을 모르는 나이입니다.
제가 지금은 제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지 아십니까? 우리 사모입니다. 우리 권사님 전도사님은 제가 어떤 설교를 하여도 다 아멘으로 받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모님은 조금 다릅니다. 토시 하나 용어하나를 정확하게 집어내는 것입니다. 그러니 서쁘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설교하면 망신을 당하는 것입니다. 내가 은혜를 받지 못하고 내가 이해하지 못하고 설교하면 은혜가 안되고 은혜가 안되면 예배가 엉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모님도 별로입니다. 정말로 두려워해야할 분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설교가 끝나고 제 자신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목사야 하나님이 두렵지 않습니까?
설교를 그렇게 하고 너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느냐?하고 반문하는 것입니다.
사업하는 사람들은 고객이 가장 두렵고 그 다음으로 월말이 가장 두렵다고 합니다. 사무실 임대료, 직원급여, 서비스 비용등 청구 금액이 얼마나 많은지 어떻게 해결해야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두려움은 광야도 그리고 이방민족들과의 싸움도 아니였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였습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시내산에 우레와 번개가 치고 빽빽한 구름이 산위에 나타나고 거기에는 큰 나팔 소리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보고 온백성들이 두려워했습니다. 하나님이 임재하는데 불가운데 강림하시고 산 전체가 흔들렸습니다.
만약 우리 성원순복음교회 하나님의 임재가 있고 예배시간에 하나님이 강림하시면 여러분들은 두려워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시지 않기 때문에 두려운 하나님이 아니라 편안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정말 하나님이 임재하시면 두려운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지금까지 바로를 두려워했습니다. 광야를 두려워했습니다. 이방인들을 두려워했습니다.
이제 하나님을 만나고 나니 그것을 아무것도 아닙니다. 가장 무서운 것이 산도 아니고 들도 아니고 바다도 아닙니다. 사람도 아닙니다. 가장 두려운 분은 바로 하나님이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 아브라함은 5명의 왕과 싸움에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얻은 승리였고, 다윗의 승리도 하나님을 경외함의 승리입니다. 승의 요소속에는 하나님의 경외함이 꼭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살아가면서 사람, 물질, 직장 미래에 대하여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가장 두려운 분이라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설마 하나님이 설마 우리에게 나타나실까?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 가운데 나타나셨을 때에 그들의 마음속에 두려움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두려워해야할 분은 누구입니까?
몸은 죽일 수 있으나 그 후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 말고, 죽인 후에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으신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참새 같은 미물도 잊지 않으시고 우리의 머리털까지도 다 세시는 분이니 세상의 박해를 두려워 말라고도 하십니다.
예수님 말씀의 핵심은 바리세인과 서기관의 위선입니다. 그것은 곧 들어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않고 세상사람들의 눈에 대한 의식으로 하여 하나님의 믿음이 깨진 상태입니다. 우리가 정말 해서는 안되는 일이 바로 사람의 눈치를 보는 일입니다. 자신을 나타나려고하는 위선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못하고 아무렇게나 하는것입니다.
2. 경외입니다.
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12.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요즘 목회자들이나 성도들이 하나님에 대한 경외함이나 두려움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정말로 하나님을 경외하면 이와 같은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하면 바르고 경건하게 살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경외하는지 하지 않는지 언제나 판단하시고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는 이유도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알기 위함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욥도 마찬가지입니다.
1. 우스 땅에 욥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8.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9.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우리 목회자들이나 우리 성도들을 하나님이 시험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지 경외하지 않는지 시험하시는 것입니다.
교회가 이처럼을 욕을 먹는 것은 하나님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기 때문에입니다. 자신이 바라볼 때에 하나님을 섬기는 축복만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축복이전에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시험하신다는 것을 깨달아야합니다.
오늘 본문은 잠언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잠언과 비슷한 내용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이 아닙니다. 오직 잠언만 성경입니다. 중국의 채근담, 이스라엘의 탈무드 인생의 경험들을 이야기 하지만 그속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오직 잠언만 하나님의 말씀임으로 생명이 있습니다.
책의 이름을 “솔로몬의 잠언들”(미쉴레 쉴로모)라고 불렀어요. 그리스어 칠십인 역 성서는 금언 모음집이라는 의미에서 “파로이미아이”라 불렀구요. 라틴어 불가타 성서는 “프로베르비아”라 이름지었는데, 여기서 영어 이름 “프로버브”가 나왔습니다. 즉 영어로 속담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나라말로는 잠언 중국성서에 유래된 것입니다. “箴言”에서 유래하였어요. 잠(箴)은 병을 고치는 데 쓰는 ‘침(鍼)’을 뜻하기도 하여, 잠언은 침과 같이 톡 쏘면서 생명을 주는 짧고 소중한 가르침이란 의미를 담고 있지요. 침과 같은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진정으로 여러분들이 지혜를 얻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지혜를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요구 사항 중 하나는 그분을 두려워하는 것이다(두려워 한다는 것은 그분을 경외하며 경배하는 것이다). 신 10:12-13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경외함을 받으려면 어디에서 경외가 오는가?
여러분들 우리 부모가 경외함을 받기 위해서는, 목사가 성도로부터 경외를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합니다, 바르게 살아야합니다. 기도해야합니다. 삶의 모법을 보여주어야합니다.
창세기 31:42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이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외삼촌께서 이제 나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셨으리이다마는 하나님이 내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보시고 어제 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
야곱이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이 경외하는 이가, 자신의 아버지가 아브라함을 할아버지를 경외했습니다. 자신도 아버지를 경외합니다.
아버지의 학대를 피하여 2층 창문을 나와 가스배관을 타고 집 밖으로 나와 탈출을 시도하여 영하권 추운 날씨에 반자지에 맨발로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150미터 털어진 슈퍼에서 과자, 사탕등 허겁지겁 먹시 시작하여 주인에 들켜 경찰서로 연행되었고 일단 병원으로 옮겨진 뒤에도 A양은 가족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하지 않다가 경찰이 “사실대로 말하면 집으로 안 보내겠다”고 말하자 그제야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A양이 털어놓은 아빠의 학대는 충격적이었다.A양은 2013년 가을 인천 연수구 빌라로 이사온 뒤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한 채 감금된 상태로 2년을 넘게 지냈다. 아버지 B씨는 직업도 없이 온종일 게임에만 몰두하다가 툭하면 손과 발로 A양을 때리고 심지어는 행거 쇠파이프도 휘둘렀다. 때리고 나서는 화장실 또는 세탁실에 가뒀다. 아빠가 처벌을 받기 원하느냐는 물음에 A양은 정확하게 ‘네’라고 답했다. B씨 등 3명은 결국 24일 검찰로 송치됐다. 이 아이에게 수많은 사람들이 동정의 온전이 쏫아지고 있습니다.
부모에 대한 존경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부모에 대한 효도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부모가 바르게 살때에 나오는 것입니다.
특별히 아버지의 권위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바로 어머니가 아버지를 인정하고 존경할 때에 나오는 것입니다. 교회 목회자의 권위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입니까? 먼저는 목회자가 바르게 살아야하고 그리고 주변에 있는 분들이 목회자에 대하여 존경함을 갖고 권위를 세워주어야합니다.
지금처럼 하나님의 권위를 경외심을 타락한 경우가 없습니다. 너무 값싼 싸구려 복음으로 변질된 편리주의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경외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따뜻한 싼타 크로스 할아버지로 보고 선물주는 분으로 보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우리 목회자들이 하나님에 대하여 반쪽 복음만 증거하였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함을 가르쳐야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복을 주시고 은혜를 주시는 분임을 가려처야하는데 계속적으로 교회다니게 하기 위하여 계속적으로 교회에 헌금이 들어오기 위하여 편리한 복음을 주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벧전 1 : 17 “너희가 이 땅에 나그네로 있는 전 생애 동안을 두려움으로 지내라” 구약이 아니라 신약 말씀으로, 사도 베드로가 오순절이 30년 쯤 지난 시점에서 한 말입니다. 이 땅에서 지내는 전 생애 동안, 두려움으로 지내라. 이 땅에서 사는 전 생애를 두려움으로 지내라고 벧전 1 :17절은 말합니다. 무엇을 두려워하라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경건의 모양만있지 경건의 능력이 없는 성도가 되지 말고 늘 변함없이 하나님께나 성도에게 인정받는 성도들이 되기기를 바랍니다.
저는 우리 평강이가 저를 두려워합니다. 저는 우리 사모가 두렵습니다. 우리 사모는 평강이 두렵습니다. 두려운 존재들이 있기에 늘 바르게 살려고 노력합니다. 평강이 앞에서 그리고 우리 사모앞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보이려고 합니다. 성경말씀을 연구하려고합니다. 그렇할 때에 존경하고 하나님의 말씀의 설교에 능력이 임합니다. 여러분들은 일주일에 한번 그리고 2번, 3번, 일주일 내내 새벽마다 보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의 속옷입은 모습은 보지 못합니다. 속옷입어도 경건이 들어나는 삶이 바로 귀한 삶입니다.
우리 2016년도에 좀더 하나님앞에서 경건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