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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7장 14절 성탄(임마누엘)

2013-12-16 11:09:12


 

성탄 말씀 1 (임마누엘 )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13년 12월

이사야 7장 14절

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마태복음 1장 23절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공산주의자들은 모든 면에서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고모부를 총살 시키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 끔찍한 생각이 듭니다. 죄목도 반동행위 및 태도불순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함께 하는것입니다. 같이 있어 행복합니다. 예수님이 있어서 행복하고, 동역자와 성도가 있어서 행복합니다. 구약의 모세와 여호수아가 있어서 행복하고, 엘리야 엘리사가 있어서 행복하고, 제 2인자가 있어서 행복한 것입니다.

잘난 것 하나 없지만 그래도 매일같이 있어 행복하게 나는 행복합니다. 가진 것 아무것도 없지만 우리 성도들이 함께 있어서 늘 행복합니다. 예배를 함께 드려 행복하고 예배 후에 함께 식사하는 시간이 행복합니다. 행복한 크리스마스 시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만드시고 우리와 늘 함께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늘 하나님과 함께 하지 못하도록 우리를 방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아담과 함께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과의 함께는 늘 행복이고 풍요로움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않는 삶은 인간에게 3가지 저주가 다가왔던 것입니다. 환경의 저주, 죽음의 저주, 영적인 저주가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비밀을 창세기 3장 15절에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좀더 구체적인 계획을 예수님 오시기 전에 700년전부터 예언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1. 그러한 계획을 믿지 않는 자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 가장 크게 의심하는 것이 바로 어떻게 여자 스스로 임신하느냐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과 방법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지 창조주 하나님의 방법으로는 능히 가능하는 것입니다. 하물며 사람도 가능합니다. 시험관 아기가 바로 그것이고, 현대 과학자들은 인간의 손으로 복제하여 둘리를 만들고 복제 늑대와 소를 만드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이루워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와 신학자들 사이에 성경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장 23절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의 말씀은 이사야 7장 14절의 말씀을 그대로 인용한 말씀입니다. 이사야 7장 14절의 말씀은 히브리어로 알마라고 말합니다. 알마는 처녀가 아닌 젊은 여인의미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의 처녀는 베툴라이며 알마는 젊은 여인으로 우리나라 말로 미시입니다. 결혼한 젊은 여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합니다. 오직 히브리어의 베툴라만이 처녀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오역을 하였다고합니다.

23. !Idou; hJ parqevno” ejn gastri; e{xei kai; tevxetai uiJovn, kai; kalevsousin to; o[noma aujtou’ !Emmanouhvl,

그래서 기원전 3세기 중엽부터 번역되기 시작한 초기의 헬라어 70인역의 성경(셉튜전) 즉 히브리어를 헬라어로 바꾼 것입니다. 처녀를 의미하는 파르테노스로 번역하였습니다. 마태가 이를 인용하여 그렇게 바꾼 것입니다. 그러나 그 후에 이 번역이 잘못되었다고 하여 여러 헬라어 성경의 출판에서 파르테노스를 사용하지 않고

젊은 처녀로 바꿔어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로 보건데 마태의 오역이라고 합니다.

유창윤교수는 이사야 7장 14절의 임마누엘 되시는 예수님이 아니라 이사야의 둘째 아들 마헬살랄하스바스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약 2년 뒤인 기원전 732년에 이스라엘 왕 베가와 아람왕 르신이 죽고 앗시리아가 수리아를 정복하고 이스라엘 침공하는 것이 역사적 사실이라고 전재하며 ‘예수님을 예언한 것이 아니고 이사야의 둘째 아들을 예언한 것이다’라고 주장합니다.

우리가 늘 외우는 사도 신경의 동정녀의 마리아에게서 예수님이 태어났다는 것을 우리는 신앙고백하고 있습니다. 그 동정녀가 바로 virgin처녀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고백하는 것은 예수님을 믿지 않겠다는 것이고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공부하면서 새벽마다 역대상과 사무엘상하의 내용과 용어나 단어들이 상당히 다른 부분이 나오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렇다고 성경이 잘못되었다고 믿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고 그리고 그분이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심을 믿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을 때에 등장하는 헤롯은 헤롯 대왕이라고 불리운 사람입니다. 그는 이두메아인(에돔인)으로서 머리가 비상한 책략가였고, 또한 잔인한 독재자였습니다. 그는 주전 31년까지 안토니우스를 지지했습니다. 그러나 옥타비아누스가 안토니우스와의 정권 다툼에서 승리하게 되자, 그는 급히 옥타비아누스를 찾아가서 왕관을 벗어들고 자신을 처벌해 달라고 자청했습니다. 그러나 옥타비아누스는 헤롯을 용서하고 그에게 왕관을 씌워 주었습니다.

그는 통치 초기에 권력 기반 마련하기 위해서 피의 숙청을 단행했습니다. 자신의 왕조를 세우기 위하여 아내, 장모, 동서등 모두 처형했습니다. 마치 김정은과 같습니다. 어찌 고모부를 처형합니까? 그는 이스라엘백성들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화려한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였습니다. 또한 가이사랴에 항구 도시를 건축하였습니다. 통치 말기에 자기의 아들을 모두 죽였습니다(주전 7년). 주전 4년에 여리고에서 죽음을 당했는데, 마태는 이 시기에 예수께서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마 2:1).

그러면 12월 25일의 날짜는 옳은 것입니까? 결론부터 말하면 12월 25일 예수님의 탄생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탄생에 대하여 성경을 가지고 2가지 추론을 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세례요한의 때입니다.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출생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사가랴는 아비야의 반열에 속한 제사장이므로 다윗왕 시대에 24반열대로 계산하면 계산될 수 있지만 바벨론 포로 이후 에스라 시대의 반열 대로 제편되었습니다. 그래서 정확한 날을 알수 없습니다.

둘째로 추론하는 것은 누가복음 2장 8절에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떼를 지키더니라는 말씀입니다. 북반구에 속한 유대 지역의 목자들이 마을을 떠나 야외에서 목축하는 시기가 3월부터 11월까지입니다. 12월 25일과 거리가 멀지요. 물론 일부 학자들은 마을 가까이 겨울에도 양때를 밖에 노숙시키는 경우가 있다고합니다. 그러나 최근 컴퓨터 발달에 힘입어 얻은 자료는 예수님 오시전 6년 그 날은 5월 14일입니다.

그러면 왜 12월 25일 되었습니까?

예수님의 생일과 무관한 날인데 그 중에 가장 설득력있는 이유는 동짓날을 그리스도의 성탄일로 정하자는 것입니다. 율리우스력에는 춘분을 3월 25일, 그리고 동지를 12월 25일에 고정되었기 때문에 AD 274년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태양신을 최고의 신으로 공표하고 그 축제를 동짓날에 열 개하였습니다. 312년에 기독교로 개종한 콘스탄틴 대제가 지고신 하나님과 로마의 전통적인 태양신이 통하는 면이 있다고 생각이 들어 기독교의 축제일을 12월 25로 지키게 되었습니다. (안산홍)

동방교회는 원래 1월 6일 성탄일로 지키게 되었습니다. 역시 4세기말에 와서 서방교회도 12월 25일을 성탄일로 지키게 되었습니다. 동방교회는 1월 6일을 예수님의 침례받은 날로 축제일로 지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세계기념일이나 성탄절보다는 12월 25일에 시작되는 성탄 절기를 12일 동안 지켰는데 1월 6일까지 성탄절기의 마지막날로 지켰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예수님은 BC 4- 6년 경에 태어났고 그날짜는 정확히 알수 없지만 교회가 그날을 12월 25일로 받아들여 지금까지 지키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태여 그날을 정확히 밝혀서 성탄절을 변경해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탄절은 교회의 전통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2. 임마누엘 예수님이 함께하시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장 21절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2.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임마누엘 예수님이 오시면 아담과 하와로부터 온 원죄와 내가 스스로 지은 죄 자범죄로부터 구원함을 받는 것입니다. 인간은 참으로 위대하고 훌륭합니다. 그러나 가장 단점중의 단점은 바로 스스로 구원할 수 없고 그리고 스스로 영원히 살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 하나님은 외아들 예수님을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려 하심입니다(요한복음3:17). ”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은 우리와 함께하여 죄인으로 살지 않고 주님을 믿음으로 구원함을 받고 의인으로 살게 하시는 목적인 것입니다. 그 구원의 은총을 찬양하는 날이 그리스마스인 것입니다. 그 구원의 감사가 바로 예배인 것입니다.

‘임마누엘’이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란 뜻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나와 동행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내가 직장에 갈 때에도 나와 동행하십니다. 내가 집에 있을 때에 나와 동행하고 계십니다. 내가 사람들을 만날 때에도 그분이 나와 동행하시는 것입니다. 즉 코람데오입니다. 내를 지켜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싱가폴 목사님 중 콩이 목사님의 설교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분이 이러한 간증을 하셨습니다. 일본 야큐샤 출신인데 18살 때부터 일본의 캥단에 들었다고 합니다. 소년원을 5번들어가고 어른이 되기전에도 3번 감옥에 들어갔다고합니다. 감옥에 들어간 것을 자랑으로 생각하고 살았다고합니다. 감옥에서 나오면 술 마약 도박에 빠지게 되었고 일본의 회칼인 카타나로 사람을 찔러 5명을 죽였다고합니다. 그래서 15년 형을 받고 감옥에 살게 되었는데 반대편 야큐샤들이 자신을 헤머로 자신의 머리를 내려치는 바람에 두개골이 깨지고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고합니다. 그는 병원에 실려가게 되었고 그리고 죽은 줄 알았던 자신이 병실에 깨어나게 되었고 자신의 머리 맡에 성경책이 놓여졌으면 시편 23편이 놓여졌다고 합니다. 그는 모든 치료를 받고 감옥에 들어와 목사님의 기도를 받고 변화를 받아서 모든 야큐사에서 떠나게 되었고 지금은 가마모토 하비스트교회를 구역장으로 남성들을 섬기고 있으면 교도소 교정활동에 참여하고 있다고하였습니다.

지금도 어떤 중독, 어떤 음난, 어떤한 삶의 죄의 길에서 임마누엘 주님을 만나게 될 때에 변화가 되는 것입니다.

독일의 신학자 칼 하임은 한 사람의 죄가 얼마나 심각한가를 양팔저울로 비유했습니다. 양팔저울 한 쪽에는 한 사람의 죄의 무게를 올려놓았고 다른 쪽에는 지구를 올려놓았습니다. 그런데 양팔저울은 한 사람의 죄의 무게 쪽으로 기울었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인간의 죄는 무겁고 심각합니다.

인간 스스로는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불교는 해탈을 하면 죄로부터 자유롭게 된다고 가르칩니다. 힌두교는 범아일체로서 인간이 자연과 정신적으로 합치되면 신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슬람은 다섯 가지 구원 조건을 제시합니다. 알라신에 대한 신앙고백을 하고, 일생동안 한 번은 성지인 메카를 순례하고, 라마단 기간 동안 금식을 하고, 기도 시간에 맞추어서 하루 다섯 번씩 기도를 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면 구원받을 조건이 된다고 합니다. 무슬림들은 구원을 얻기 위해서 성자와 같은 생활을 합니다. 그러한 것으로 구원이 없습니다. 오직 죄사함의 구원의 축복은 내 마음속에 예수님이 함께 하심이 구원인 것입니다.

3. 임마누엘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의 상처와 몸을 치료하십니다.

마태복음 1장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저는 우리 김예기 권사님과 김성애 권사님과 함께 제가 추수감사주일 전도하기로 작정한 박구순성도들 찾아갔습니다. 그렇게 매주일 전화를 하였는데 전화를 받고 기도를 받았지만 교회를 나오지 않았습니다. 한국 정형외과에 찾아갔습니다.

그 성도는 신촌 전화국 근처에서 백반장사를 하였다고하였습니다. 그런데 돈을 제법 많이 벌었던 것 같습니다. 돈버는 백반 장사를 그만두고 우울증에 걸리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약을 먹어가면서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약을 먹고 한강에서 자살하려고 갔는데 그곳에 잠만 자고 왔다고합니다. 그리고 난뒤에 상담을 받았는데 무엇이든지 열심히 무슨 일을 하라고 하여서 열심히 동내 사람들을 대접하고 미장원에 가서 일을 도와주고 그렇게 살아오다가 2년 전부터 교회를 멀어서 다니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이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저희들을 만나게 하셔서 전도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사역의 2/3이상이 치료의 사역입니다. 주님이 마지막으로 치료하는 것은 로마 병정 말고의 귀를 고치시는 장병입니다.

우리에게 치료가 임하기 위해서는 몇가지 단계가 필요합니다.

첫째로 감정의 치료가 임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의 예수님의 말씀과 치료의 능력을 믿는 마음입니다. 즉 이제 예수님의 능력의 말씀을 전선을 연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전선이 연결되지 않았을 때에 컴퓨터의 화면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둘째로 환경을 치료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나의 주변의 환경을 치료하시기를 원합니다. 중병병자의 친구들이 예수님께로 그 중풍병자를 대리고 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만나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주위에 있는 최소한 4명의 친구를 구원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분들을 크리스마스 계절에 전도하시고 그리고 예수님을 전하십시오. 그리고 그들들을 용서하시기를 바랍니다. 용서가 치료입니다.

셋쩨로 주님이 여러분과 함께할 때에 치료가 일어나기 시작하는것입니다. 내 머리에 지금 주님이 안수하고 계십니다. 내가 주님의 옷자락을 만집니다. 믿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구역시대의 절기는 유월절, 오순절(칠칠절), 초막절(수장절)입니다. 신약시대에 이은 현대의 절기는 부활절, 성탄절, 추수감사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특별히 전세계적으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크리스마스의 절기는 모두 다 알고 있습니다. 특별히 북반부에서 위치한 나라들이 크리스마스의 절기를 지키므로 우리나라도 복음의 영향이 미국에서 들어옴으로 추운겨울하면 크리스마스를 생각하곤합니다. 이 추운 겨울에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따뜻하게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셨습니다. 이 성탄의 계절에 임마누엘 되신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위하여 오심을 기억하고 그리고 우리의 영적 육적인 모든 질병을 치료해주시는 분임을 믿고 주님과 늘 동행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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