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일서 2장 12절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25년 11월 26일
요일 2:12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얻음이요 요일 2:13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 요일 2:14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요일 2: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요일 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요일 2: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구약에서는 에스겔서 47장에 신앙의 단계를 4가지 단계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발목 단계는 초보적인 유아기적 단계입니다. 둘째 단계는 무릎의 단계입니다. 기도하고 주일 예배드리는 단계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셋째 단계는 허리의 단계로 청년의 단계입니다. 허리를 굽혀서 봉사하고 노력하는 단계입니다. 넷째 단계는 창일한 단계입니다. 완전히 넘쳐서 수영하는 단계입니다. 영적으로 충만한 단계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은혜와 말씀이 충만한 단계입니다.
신약에서는 비유로써 사람의 단계를 4단계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길가 밭, 돌밭, 가시밭, 옥토 밭입니다. 길가 밭은 마음이 딱딱하고 말씀이 들어가지 않는 것입니다. 돌밭은 말씀을 듣고 기뻐하는데 환난과 핍박에 견디지 못하고 넘어지는 밭이요, 가시떨기의 밭은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으로 말씀이 막혀서 성장하지 못하는 밭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옥토는 마음의 밭이 부드러워 어떤 말씀이라도 아멘으로 받는 밭입니다.
오늘 본문의 요한일서, 즉 성경의 마지막 부분에서 신앙의 단계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단계를 살펴볼 때 나이와 관계없음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혹시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으로 받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신앙의 단계가 한 차원 더 높이 올라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합니다. 사도 요한은 세대 간의 영적인 특징을 설명하면서 영적인 신앙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현대에 맞게 신앙생활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말씀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 아이들의 신앙
요일 2:14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아이들’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파이디아’라는 단어로서 아무런 교육을 받지 않은 무지한 단계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백지와 같은 단계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갓 태어난 아이의 모습을, 본능적으로 아빠 엄마를 부르는 단계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즉 이 단계는 겨우 주일 출석하여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고 구세주인 예수 그리스도를 가슴에 모시고 성령님을 인정하는 단계입니다.
저는 어린이 주일 날 예수님께서 어린이를 사랑하시고 순수함과 그리고 깨끗함을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에 그러한 면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아이들의 신앙을 영적으로 다시 점검하여 다른 면으로 접근하려고 합니다.
어린아이들은 돈에 대한 절제를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제가 그 책을 읽고 세뱃돈을 준비하였는데 봉투로 주었습니다. 우리 평강이 자랐지만 돈에 대한 절제를 못하기 때문에 엄마가 그의 통장에 예금을 해주었습니다. 물론 이사할 때 평강이 돈을 빌리기는 했지만 어린아이들은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지 모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 가운데 물질을 어떻게 사용할지 모르는 분들이 있습니다.
아이들의 신앙은 무엇입니까? 아이들의 신앙은 먼저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인 신앙입니다. 배려할 줄 모르는 신앙입니다. 모든 것이 자기중심입니다. 우리 초신자들이 성전에 오면 우리가 모든 것을 배려해 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아직 말씀의 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정말 오랜만에 감사 헌금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알아주기를 원하고 자신을 나타내려고 하는 마음이 있는 아이와 같은 신앙을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아이들의 신앙은 산만합니다. 여러분들이 마음이 예배드릴 때 아직도 산만하면 아직도 영적인 단계가 어린아이의 단계입니다. 아이들은 예배드릴 때 떠들기 시작합니다. 아이들의 신앙은 예배드리는 시간에도 기도 시간에도 성경을 넘기고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합니다. 예배시간에도 아무렇게나 돌아다니는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를 놀이터로 생각합니다. 교회 와서 노는 장소로 알고 있습니다. 교회가 혹시나 먹을 것을 주지 않으면 마음이 섭섭한 생각이 듭니다. 우리 평강이 친구 중에 먹을 것을 유난히 좋아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한동안 먹을 것을 주지 않으니 오지 않습니다. 그래도 교회는 그러한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돌보며 사랑해야 합니다.
아이들은 예측 불허입니다. 럭비공이 이리 뛸지 저리 뛸지 모르기 때문에 늘 비위를 맞춰주어야 합니다. 기분이 좋을 때는 열심히 교회에 출석하고 기분이 나쁘면 교회에 출석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기분에 따라서 믿음이 오르고 자신의 기분이 좋지 않으면 믿음이 없어서 교회에 나오지 않습니다. 주일이면 생명을 걸고 나와야 하는데 그것을 그렇게 여기지 않고 자신의 마음대로 움직이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아이들의 신앙으로 인하여 초신자들이 교회에 정착하기가 정말로 어렵습니다. 특별히 아이들의 마음은 비어 있기 때문에 무엇을 채워주어야 합니다. 그 채워지는 것이 세상의 것으로 채워지는 것인지 아니면 영적으로 채워지는지 다르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두 가지 영을 받았습니다. 하나는 성령의 영을 받았고, 다른 하나는 짐승의 영을 받습니다. 짐승의 영을 받은 사람들이 짐승처럼 산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프리카에서 짐승처럼 무자비하게 산다는 뜻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짐승처럼 사는 것입니다. 먹고 마시고 즐기고 그리고 세상의 쾌락을 위하여 산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영의 사람들은 비록 어렵고 힘들어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어린아이의 신앙은 부모님에게 의존합니다. 자신의 힘으로 하지 못합니다. 남의 도움을 받습니다. 남의 도움을 청하는 것입니까? 신앙이 자라지 못하고 늘 의존하고 살아갑니다. 예배도 조금 더 많이 나와야 하는데 자신의 원하는 것만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새벽 기도회도 나오고 그리고 수요 예배도 하고 철야도 나오고 그리고 조금씩 자라나야 합니다. 공부를 하여도 공부를 스스로 못하는 단계, 곧 엄마 아빠와 함께 가르치면 그것만 아는 단계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은 키가 작습니다. 이 말은 믿음이 작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작기 때문에 금방 무너지는 것입니다. 시험이 오면 금방 다른 일을 하는 것입니다.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고도 금방 없어지는 것입니다.
어느 날 오리 가족들이 있었습니다. 주일 아침이 되었습니다. 오리들이 자녀들을 데리고 뒤뚱뒤뚱거리면서 성전에 들어와 찬송가 1장을 부르고 말씀을 읽고 성가대의 찬양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거룩하고 품위 있는 오리 목사님이 나와서 오늘 본문으로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오리 여러분,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날개를 주셨습니다. 그 날개로 여러분 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날 수 있습니다.” 하고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청둥오리는 날지만 집오리는 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말씀을 들어도 행동하지 않는 것이 어린아이의 신앙입니다. 아무리 아이들이 귀엽고 예쁘다고 하여도 아이들은 성장해야 합니다. 지식과 영적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우리 성원순복음교회의 성도들이 성장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의 신앙에 머무르지 않고 힘 있는 청년의 신앙으로 발전해야 합니다.
- 청년들의 신앙
요일 2:13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 요일 2:14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여러분들이 혹시 어린아이의 신앙에 있다면 청년의 신앙으로 올라가시기를 바랍니다. 청년의 신앙은 오늘 본문에서 보듯이 악한 자를 이기는 신앙입니다. 14절에 보니까 여러분들이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 속에 거하시고 여러분이 악한 자를 이기는 신앙을 소유하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자를 이기는 신앙입니다. 여러분에게 주는 시험이 있습니다. 영적인 골리앗입니다. 물질의 시험, 육체적인 청년의 음란의 시험, 그리고 세상으로 향하는 시험들을 이기는 것입니다.
우리 집사님들이 권사님과 안수집사님들처럼 시험을 이길 수 있는 큰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는 국민일보에서 김철호 사장에 대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그는 IMF 때 사업에 부도가 나게 되었습니다. 아내의 기도와 어머니의 기도로 그는 포장마차에서 시작하여 마침내 본죽이라는 큰 기업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청년들은 힘이 있다는 뜻입니다. 청년들은 강한 것이 특징입니다. 목사님도 얼굴은 청년인데 나이가 예전의 나이가 아니어서 우리 평강이하고 농구를 하거나 운동을 하면 점점 당할 수 없습니다. 그전에는 제가 종종 이기는데 요즘은 이기지 못할 것 같습니다. 우리 평강이나 우리 청년들은 몸은 성장하고 어른처럼 커졌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영적인 경험이 조금 부족합니다. 그래서 신앙을 지키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가거나 이단에 넘어가기도 합니다.
우리 청년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위치까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목사님이 성경 공부를 하라고 하지 말고 스스로 모여서 성경 공부를 하고 그리고 스스로 모여서 중고등부 및 유년 주일학교를 발전시킬 수 있는 일들을 해야 합니다. 예전에 우리 청년들이 스스로 성가대도 하고 그리고 성탄 발표도 그리고 부활 주일 발표도 추수감사 준비도 한 것처럼 스스로 영성을 위하여 수련회도 준비하고 교육관에서 모여서 1일 수련회도 하고 열심히 준비하다 보면 청년들이 부흥할 수 있습니다.
저는 종종 저도 중고등부 그리고 대학 다닐 때에 목사님이 성경 공부를 하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어른들만 열심히 예배드리면 되지 우리들까지 하라고 할까 하였습니다. 그런데 모여서 성경 공부하고 열심히 친교하는 교회가 부흥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청년과 중고등부의 시절을 지내보니까 내가 헛똑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은 내가 아무리 예배를 드려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특별히 제가 큰 교회에서 부교역자 생활을 하더라도 자신이 열심히 노력하지 않으면 어느 곳도 신앙의 성숙이 없는 것입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를 그리고 온누리교회를 가도 내가 만족함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곳에 영적인 성숙을 주는 곳입니다.
물질을 이길 수 있도록 청년들에게 박목월 시인의 아들을 교육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들이 어머니에게 아이스크림을 사달라고 조르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아들을 지물포로 데리고 갔습니다. 누런 종이 한 장을 사 들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종이를 잘라서 봉투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봉투에 돈을 넣어주며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라고 봉투를 주었습니다. 그런 일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머니는 밥상에서 밥풀을 주워 봉투를 만들곤 하였습니다. 학교에 등록금을 낼 때 그리고 연필이나 공책을 살 때 돈을 봉투에 담아주었습니다. 그래서 그 소년은 돈이란 무조건 봉투에 담아주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왜 엄마는 항상 돈을 봉투에 넣어주시오 그냥 주시면 안 되나요?” 그러더니 심각한 얼굴을 하면서 그 소년에게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너는 돈을 만지면 안 된다. 돈을 만지면 돈을 벌고 싶어지니까, 너는 공부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너는 돈을 만지면 안 된다.” 그 이야기를 하시면서 어머니의 눈에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대학교에 들어갈 때에도 어머니는 손수 옷을 깨끗이 손질하여 교정에 찾아오셔서 돈을 내었습니다. 그는 서울대학교 국문학과 교수가 되셨고, 아침마당에 나오시는 교수님으로 유명합니다.
- 아비들의 신앙
요일 2:13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 요일 2:14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성경에서 아비들의 신앙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영적으로 깊이 체험하는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식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체험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대화하기 위해 기도의 시간을 가지는 것입니다. 남들이 느껴보지 못한 신앙적인 체험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4장 15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 하였습니다. 아비는 어린아이와 청년들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
안수집사님, 장로님, 구역장, 목회자로서 신앙적인 깊이가 없다면 다른 어린아이의 신앙과 그리고 청년의 신앙을 가르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화난다고 나도 똑같이 화내는 것은 아비의 신앙이 아닙니다. 힘들어도 참는 것이 아버지 어머니의 신앙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다 맛있게 먹어도 때로는 금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주일 예배, 그리고 수요 예배, 그리고 철야 예배, 새벽 기도를 나오지 않아도 솔선수범하여 내가 나오는 것이 아비의 신앙입니다. 다른 사람이 1,000원 헌금할 때에 나는 2,000원해야 하고 다른 사람들이 2,000원 할 때에 5,000원, 10,000원하는 것이 아비의 신앙입니다. 그래야 모범을 보이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50만원 건축 헌금할 때에 나는 100만원 건축 헌금하는 것이 바로 아비의 신앙입니다. 그런데 인색하여 아까워서 하지 못하면 아비의 신앙이 아닙니다.
아버지는 가정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가정의 살림을 살피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원교회가 그냥 운영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 헌신하기 때문에 아비와 같은 분이 있기 때문에 운영되는 것입니다.
대전에 부모님을 만나면서 이러한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제 동생 중에 자신의 자녀를 자랑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앞에서 “할아버지 할머니 나 예뻐?” 하면 할아버지 할머니는 “그래 예쁘다” 라고 합니다. 그 어린아이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아이들의 신앙은 끝까지 장성하여 성장할 때까지 지켜봐야 합니다.
우리 아버지 곧 아비의 신앙단계는 세상에서 위대해질 필요는 없습니다. 토끼와 오리와 다람쥐가 있습니다. 동물 학교에 입학했습니다. 토끼는 달리기를 잘합니다. 오리는 수영을 잘합니다. 다람쥐는 나무타기를 잘합니다. 자기 영역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그쪽 분야의 아버지입니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모든 것을 살기 위하여 달리기 과목, 수영 과목, 그리고 나무타기 과목에 모두 수를 맞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토끼 부모와 오리 부모와 다람쥐 부모는 모든 것을 잘하기 위하여 가르칩니다. 토끼는 달리기를 그만두고 수영과 나무타기를 열심히 연습합니다. 그래서 오리는 수영을 그만두고 하루 종일 달리기와 나무타기를 연습합니다. 다람쥐의 경우 수영과 달리기만 노력합니다. 발과 발목과 손목이 엉망이 되고 물갈퀴가 엉망이 되었습니다. 발톱이 빠지고 말입니다.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라는 책을 쓴 잭 캔필드와 스티븐 코비가 쓴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책의 저자들입니다. 시인이며 연기자인 마야 안젤루, 아니타 로딕, 디팩 초프라, 브라이언 트레이시, 스티븐 스필버그 이분들은 한번 강의하면 3억에서 5억원을 받습니다. 이러한 엄청난 금액은 그 분야에서 아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분들이 최고의 학문을 하기까지 그들은 자신의 전공 분야에 무려 6만 시간을 투입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6만 시간을 투자했을까요? 모든 사람들은 그 분야에 6만 시간을 투자하면 이와 같은 일들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6만 시간은 어느 정도일까요? 하루에 24시간을 계산하면 프로들의 하루는 10시간 정도입니다. 하루는 24시간인데 8시간 잠자는 시간과 음식 먹고 움직이는 시간을 빼고 연구할 수 있는 시간이 10시간이 최대로 전공 분야에 노력하는 시간입니다. 1년을 연구하면 300일 정도 토요일까지 연구한다는 가정하에 10년이면 3만 시간입니다. 20년이면 6만 시간입니다. 태어나서 자신의 연구를 위하여 6만 시간을 투입하는 사람들에게는 달인이 되는데 최소한 20년이 걸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개그콘서트에 달인이라는 코너가 나오는데 잠을 자지 않고 말하지 않고 어떤 음식을 먹어도 그 분야의 달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달인 말고 코미디의 개그 달인 말고 정말 한 시대에 위대한 달인이 나오기 위하여 그렇게 노력해야 합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라이트 형제가 선택한 단어는 비행이라는 단어입니다. 토마스 에디슨이 선택한 단어는 전깃불입니다. 노벨이 선택한 단어는 화약입니다. 쇼팽은 피아노 그리고 소렌스탐은 골프, 오프라 윈프리는 방송, 장보고는 무역입니다. 그리고 피카소와 김기창 화백은 그림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믿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들은 얼마나 기도와 그리고 말씀에 달인이 되었습니까? 얼마나 노력했습니까? 우리는 영적인 달인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세상의 프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의 프로가 되어야 합니다. 한 시간도 하나님께 기도하지 못하고 어찌 하나님이 나에게 축복하여달라고 하는 것입니까? 성지순례를 가보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