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8장 1절 음행중에 잡힌 여인

(설교영상 Youtube”chulki hong”)

요한복음 8장 1절 새벽기도회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요 8:3)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요 8:4)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요 8:5) ㄱ)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레20:10

(요 8:6)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요 8:7)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요 8:8)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요 8:9)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요 8: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요 8: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 하나님은 약한 자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이스라엘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고통받는 나라입니다. 이집트로부터 그리고 앗수르, 바벨론(이란,이라크)로부터, 그리스 로마로부터 많은 침약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중동의 나라와 함께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과 함께 전쟁 중입니다.

우리나라 역시 중국으로부터, 러시아로부터, 일본으로부터 많은 침약을 받고어려움을 당하는 나라입니다. 현재는 함께 살고 있는 북한으로부터 전쟁중인 나라입니다.

 

● 이스라엘은 우리나라의 1/5정도의 나라입니다. 우리나라의 강원도 만한 나라입니다. 이렇게 작은 나라가 세계적인 영향이 있습니다. 지적, 경제적, 문화적인 영향은 말할 수 없는 나라입니다. 이러한 나라와 우리나라와 비슷한 점이 많고 같이 협력하며 살아가지고 이스라엘 대통령이 우리나라와서 FTA조약을 하고 갔습니다. 특별히 어느 나라도 인정하지 않는 독도를 대한민국의 영통라고 하여 이스라엘 나라에서만 인정하고 있습니다. 현재 6000개 스타트업 기업있습니다. FTA로 관세가 7%이상 내려가기 때문에 이스라엘 나라에 수출하고 있는 모든 수출품에 경쟁력이 있습니다. 특별히 현재 현대와 기아차가 판매 1위입니다. 토요타가 2위인데 확고한 우위를 점할 것 같습니다. 특별히 우리나라의 K-pop과 예술문화가 수출되고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나라는 인본의 의존적인 현대기술을 이스라엘에서 도움을 받을 것 같습니다. 반도체부분, 항공, 무선통신부분등은 일본의 의존도를 낮출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와이즈만 연구소을 통하여 기술 이전을 받게 된다고합니다. 특별히 이스라엘 총리가 여의도순복음교회에 와서 간증하고 갔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약한 나라들을 택하여 하나님의 놀라운 뜻을 이루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중에 현장에 잡힌 여자를 끌고 예수님을 발앞에 세워놓았습니다. 모세의 율법에는 이러한 여자는 돌로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고발할 조건과 시험에 빠드리려고 이 여자를 끌고 온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지 않고 몸을 굽혀서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는 것입니다. 그들은 아무런 물음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일어나서 너희 중에 죄 없는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그들이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부터 젊은 사람들이 하나씩 돌을 놓고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하시며 이 여자를 돌려보내는 내용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약자를 불쌍히 여기시고 궁휼을 베풀어주셔서 보내시는 내용입니다. 간음하다 현장에 잡힌 여인은 돌에 맞아 죽을 상황인 것처럼 우리도 주님의 용서와 사랑이 없으면 마귀로부터 세상사람들로부터 어려움을 당할 것입니다.

 

물론 이 여인이 잘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 여인도 잘못한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용서와 사랑이 더 위대한 말씀입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우리 성도들과 함께 예수님의 사랑과 긍휼에 대하여 함께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성도는 있어야할 자리에 있어야합니다.

잠언서 7장 9. 저물 때, 황혼 때, 깊은 밤 흑암 중에라

10. 그 때에 기생의 옷을 입은 간교한 여인이 그를 맞으니

11. 이 여인은 떠들며 완악하며 그의 발이 집에 머물지 아니하여

12. 어떤 때에는 거리, 어떤 때에는 광장 또 모퉁이마다 서서 사람을 기다리는 자라

13. 그 여인이 그를 붙잡고 그에게 입맞추며 부끄러움을 모르는 얼굴로 그에게 말하되

14. 내가 화목제를 드려 서원한 것을 오늘 갚았노라

15. 이러므로 내가 너를 맞으려고 나와 네 얼굴을 찾다가 너를 만났도다

16. 내 침상에는 요와 애굽의 무늬 있는 이불을 폈고

17. 몰약과 침향과 계피를 뿌렸노라

18. 오라 우리가 아침까지 흡족하게 서로 사랑하며 사랑함으로 희락하자

19. 남편은 집을 떠나 먼 길을 갔는데

20. 은 주머니를 가졌은즉 보름 날에나 집에 돌아오리라 하여

21. 여러 가지 고운 말로 유혹하며 입술의 호리는 말로 꾀므로

22. 젊은이가 곧 그를 따랐으니 소가 도수장으로 가는 것 같고 미련한 자가 벌을 받으려고 쇠사슬에 매이러 가는 것과 같도다

23. 필경은 화살이 그 간을 뚫게 되리라 새가 빨리 그물로 들어가되 그의 생명을 잃어버릴 줄을 알지 못함과 같으니라

24. ○이제 아들들아 내 말을 듣고 내 입의 말에 주의하라

25. 네 마음이 음녀의 길로 치우치지 말며 그 길에 미혹되지 말지어다

 

성도가 있어야할 자리가 어디입니까? 바로 성전입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리에 있어야합니다. 학생은 학교에, 직장은 회사에, 그리고 퇴근하면 가정에 있어야합니다. 여러분 있어야할 자리에 있지않고 살면 꼭 시험이 오고 어려움이 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초막절입니다. 유대인의 큰 명절입니다.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넘친다고 말씀하시면서 성전에서 말씀하고 있는데 이 여인은 음난한 장소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들켜서 예수님앞에 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니느웨로 가라고 하였지만 다시스로 가다가 풍랑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전쟁터에서 나가서 싸워야하는데 그는 자신의 옥상에서 목욕하는 밧세바를 바라보고 음욕을 품게 되었고 그리고 인하여 우리야까지 죽이게 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또한 그의 아들까지도 죽임을 당하는 어려움을 당하였습니다.

 

2. 바리세인처럼 서기관처럼 간음한 여인을 고발하지 말아야합니다.

(요 8:3)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요 8:4)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요 8:5) ㄱ)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레20:10

 

세상은 잘못한 사람을 가만두지 않습니다. 꼭 정죄하고 그리고 어렵게하는 것이 세상입니다. 우리나라도 다른 나라에 비하여 고소고발의 사건이 가장 많은 나라중에 하나님입니다. 여러분 주의 종들도 시시비비를 가려달라고 법원으로 달려가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성도들까지도 법원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다윗을 죽이려고 하는 사울을 절대로 죽이지 않았습니다.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이 어려움을 당하고 고통을 당하여서 세상의 법정에 가서 시시비비를 가려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잘못된 생각입니다. 하나님이 알아서 그것을 바르게 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주의 종이 왜 세상의 판사 검사에게 판단을 맡기고 하나님의 성도들이 왜 세상의 판 검사에게 옳고 그름을 가려달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과 한국 사람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억압받고 고통 받는 민족의 특징은 바로 한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과 한국사람들은 화를 쉽게 내는 민족입니다. 회의 하다가 싸우고 예배드리다가 싸우고 화풀이하고 욕하는 것이 성공이라고 생각하고 이겼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육적으로 볼때에도 화 내는 일은 극히 해롭습니다. 심리학자들은 화 내는 부모 밑에서 자란 어이들은 화부터 시작하여 자기 의사를 표현한다고합니다. 그러나 아이들을 설득하며 키운 자녀들은 그 부모의 본을 따라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며 차분하게 생각한 후 의견을 개진한다고합니다.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큰 성을 빼앗는자보다 낫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이렇게 이 여인을 끌고 온 목적은 바로 6절입니다. 예수님을 고소할 조건을 찾고 그리고 예수님을 곤경에 빠드리기 위한 것입니다.

 

여러분 솔찍하게 남성들이 더 간음을 많이 합니까? 여성들이 더 많이 합니까? 저는 남성들이 훨신많이 한다고 생각합니다. 힘없고 능력 없이 살아가는 여성들에게는 남자들이 하는데로 따라가며 참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마침 설교를 준비하는데 대한민국의 No 2.인 박원순 서울시자방이 숨친 채 발견되었습니다. 전직 비서로부터 성추행 혐의로 고도된 것을 알고 자살 한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박시장의 전직 비서 A씨는 지난 8일 박 시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적이 있다고 경찰에 고소하였습니다. 그리고 9일날 시장은 당일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오전 10시 44분에 종로구 가회동 소재 시장의 관사에 나와서 10시 53분에 와룡공원으로 향하였고 이후 오후 5시 17분에 박시장의 딸이 ‘4∼5시간 전에 아버지가 유언 같은 말을 남기고 집을 나갔는데 전화기가 꺼져 있다’며 112에 실종신고를 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700여명의 인력을 투입해 수색 작업에 나서 이날 오전 0시께 북악산 숙정문 인근에서 박 시장의 시신을 발견했다고 하였습니다.

정치인들에게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지금의 야당은 부정한 돈으로 인하여 어려움을 당하였고, 지금 여당은 성추행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충남도시자 안희정, 부산시장, 그리고 서울시장이 바로 그러한 것입니다. 인권이라는 발목에 잡혀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는 것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현장에서 간음하다가 잡힌 여인은 성전으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법정으로 끌고 가야하는 것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월권을 하고 그리고 예수님을 욕보이기 위한 술수입니다.

 

레 20:10; 신 22:22의 율법의 말씀을 알고 있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로마법, 즉 로마의 법에는 현장에 잡힌 여인에게 사형을 집행하는 법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지만 사형집행권한이 예수님이 없는 것입니다. 로마의 법과 하나님의 말씀의 법을 가지고 예수님을 모순에 빠드리고 딜레마에 빠뜨리기 위하여 그렇게 한 것입니다.

 

3. 죄 없는가 먼저 돌로 치라

(요 8: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요 8: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이 여자보다 먼저 자신을 살펴보라는 뜻입니다.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마 7:5)고 하신 말씀과 일맥 상통한 말씀입니다. 즉 교도소에 있는 사람들은 들킨 죄인들입니다. 그러나 교도소 밖에 있는 들키지 않은 죄인들입니다.

 

인터넷에서 전세계의 나라들이 가장 높은 빌딩을 나라들을 비교한 것을 보았습니다. 그전에는 미국 유럽 일본 중심이였는데 요즘 중국과 한국, 홍콩과 싱가포르도 높은 빌딩이 있는 나라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비행기를 타고 내릴 때에 그 나라의 빌딩을 보게됩니다. 높고 큰 빌딩들이 그 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모릅니다.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벤즈를 탔는지, 소나타를 탔는지, 렉서스를 탔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자신을 가시하기 위하여 돈도 없으면서 좋은 차를 타고 다니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세를 살아도 차는 벤즈를 타고 다니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내가 이렇게 잘난다고 하는 과시입니다. 하나님은 이에 대하여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심령을 감찰하시는 분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심령을 감찰 하시는 분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을 아시고 땅에다 무엇인가 글을 쓰시고 너희 중에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왜 이여인 혼자만 대리고 왔습니까? 여러분 간음은 혼자만합니까? 아닙니다. 둘이 같이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혼자입니까? 바로 예수님을 고소하고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함입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을 눈 앞에 둔 상태에서 이제 다 도착하였다고 마음에 안심을 하였는지 모압여인들과 음행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우상에 절하고 우상을 섬기게 됩니다. 그로인하여 이스라엘에 전염병이 퍼지기 시작합니다. 사망자의 수가 2만4천명에 이르게 됩니다. 그런데 그 때에 시므온지파의 한 지도자가 미디암 여인을 데리고 장막안으로 들어게 됩니다. 그때 비느하스가 분노하여 장막 안으로 들어가 그 두사람을 창으로 찔러 죽입니다. 이 처럼 여인을 고소하려면 남자도 함께 대리고 와야하는데 그러지 않고 혼자 대리고 온 것은 다분이 예수님을 고소하려는 이유가 있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노니라고 말씀하시면서 다시는 죄를 짖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죄를 지으면 세상에서는 심판을 받고 죄에 대한 댓가를 받지만 예수님은 그 죄를 용서하시고 사하여 주시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죄를 지으면 항상 댓가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항상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은 심판주이기 때문에 조건없는 용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댓가가 무너지지 않도록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의 댓가를 속량하셨던 것입니다.

 

4. 무엇을 썼을까?

(요 8:6)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요 8:7)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요 8:8)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여러분들은 예수님이 땅바닥 무엇을 쓰셨을까요? 여러분들이 한번 맞추어보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사람들은 십계명을 쓰셨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말라, 두 번째로 쓰셨던 것은 그들의 이름과 죄를 쓰셨더는 신학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쓰셨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저는 그것을 알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에서 말씀하지 않는 것은 굳이 알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서 예수님께 물어보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신학자는 낙서하셨다고 하는 신학자도 보았습니다.

 

어떤 신학자는 이렇게 이야기 하는 신학자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초막절에 일어난 일입니다. 초막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살아갈수 있도록 도와주심에 은혜를 기억하기 위한 절기입니다. 그 광야기간에 이스라엘백성들은 모세를 통하여 내려주시는 하나님의 십계명을 시내산에서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직접 쓰신 십계명 돌판을 모세가 우상숭배하는 것을 보고 그 돌판을 깨드려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시내산에 올라가 그 돌판을 다시 받아 내려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의 잘못을 위하여 십계명을 썼습니다. 그리고 다시 또 그들의 죄들을 쓰셨습니다. 그리고 너희 중에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돌판을 깨뜨린 것처럼 예수님의 자신을 깨드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서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면서 죄 없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구원의 길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결론입니다.

최숙현 선수는 철인삼종 경기 선수입니다. 청소년 국가 대표출신입니다. 유망주입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가옥행위를 하였스니다. 그로 인하여 자살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국회에 나와서 감독과 주장은 구타하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녹음된 사실들이 있는데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많이 괴롭히 팀닥터는 행방이 묘현합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처럼 사람을 죽이고 멸망하는 길로 인도하는 사회입니다. 그리고 사람을 고소하고 고발하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특별히 코로나바이러스 기간에 대예배를 제외하고 모든 예배를 드리면 안된다고 하면 벌금 300만원을 부과 받게 된다고 하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수많은 고소 고발과 분노로 가득한 나라에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분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용서하고 치료하는 것이 우리의 사회에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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