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6장 35절 에고 에이미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 목사
2025년
요한복음 6장 35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한복음 8장 12절: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요한복음 10장 7절: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요한복음 10장 11절: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요한복음 11장 25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요한복음 14장 6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5장 1절: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사랑하는 제자 요한은 복음서를 통해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7가지의 ‘에고 에이미’ 선언으로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는 과정 속에서 모세에게 자신을 “나는 스스로 있는 자(I AM WHO I AM)” 즉, 야훼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약에서 하나님과 동일하신 예수님은 헬라어로 “에고 에이미(ἐγώ εἰμί)”라고 선언하십니다. 이는 단순히 ‘나는 ~이다’라는 의미를 넘어, ‘나는 하나님이다’라는 강력한 자기 선언입니다. 어떤 신(a god)이 아니라, 유일하시고 영원하신 바로 그분(the God)이심을 뜻합니다.
예수님의 7가지 자기 선언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이 모든 선언이 영생이라는 주제로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구원 계획을 아브라함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에게 보이셨고, 2000년이 지난 뒤에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통해 이스라엘 전체를 구원하시려 하셨는데, 이는 열두 지파를 의미하며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열두 제자가 모여 기도하기 시작했고, 그 수는 120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이것이 바로 초대교회의 시작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전 세계 기독교의 상황은 녹록지 않습니다.
SBNR (Spiritual but not religious, 종교는 없지만 영적인 사람)
유럽과 영국에서는 많은 교회가 텅 빈 건물로 남아 외형만 유지하고 있습니다. 관광객들은 많이 찾지만, 주일 예배에 참석하는 성도 수는 열 명 미만인 경우가 흔합니다. 그들은 예배를 지루하다고 느낍니다. 이것이 유럽 교회의 현실입니다.
가나안 성도
2000년대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가나안 성도'(교회를 ‘안 나가’는 성도)가 전체 성도의 20%에 달합니다. 이들은 교회를 떠났지만 스스로를 여전히 그리스도인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7가지 에고 에이미 선언
예수님의 “에고 에이미(ἐγώ εἰμί)” 선언은 그분의 신성(神性)을 강조하는 매우 중요한 고백입니다. 우리가 이 고백을 믿음으로 받아들여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 나는 생명의 떡이다 (요한복음 6:35, 48, 51)
예수님께서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 하신 배경은 오병이어 기적입니다. 많은 사람이 육신의 떡을 먹기 위해 예수님을 쫓아왔을 때, 예수님은 육신적인 떡뿐만 아니라 영적인 의미의 생명의 떡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만나는 먹고도 죽었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썩을 양식이 아니라(요 6:27) 영원히 주리지 않고 목마르지 않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여기서 ‘먹고 마신다’는 의미는 예수님의 몸과 살을 먹는다는 뜻을 넘어,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분을 믿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화: 홍성관 작은아버지의 63빌딩 도전기
63빌딩 꼭대기 층에 오르기 위해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선택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1층부터 60층까지 땀을 흘리며 꾸준히 올라갔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포기하고 내려갔지만, 그는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 드디어 60층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눈앞에는 또 다른 문이 있었습니다. 전망대로 향하는 마지막 문이었죠. 그는 떨리는 손으로 문을 잡았지만, 문은 굳게 잠겨 있었습니다. 문을 열기 위해서는 ‘열쇠(key)’가 필요했습니다. 그는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가장 중요한 열쇠는 1층 매표소에서 받아왔어야 했다는 것을요. 육신의 고통을 이겨내고, 정신적인 인내를 발휘했지만, 가장 필수적인 ‘열쇠’를 준비하지 못했기에 모든 노력이 허사가 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떡’만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생명의 떡이 중요합니다. 이 열쇠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 나는 세상의 빛이다 (요한복음 8:12, 9:5)
이 말씀의 배경은 유대인의 절기인 초막절입니다. 초막절은 광야 생활을 기억하며 등불을 밝히는 빛의 축제 기간이었는데, 예수님은 자신이 바로 그 진정한 빛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 세상은 불의와 무지, 사망과 죄, 불신앙으로 가득한 캄캄한 어둠이었습니다. 그 어둠 속에 예수님께서 빛으로 오셨습니다.
빛은 모든 생명체에 필수적입니다. 빛이 없으면 우울해지고 건강을 잃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어둡고 캄캄한 세상에서 방황하지 않도록,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도록 빛을 비추어 주십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을 불기둥으로 인도하셨듯이, 빛 되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빛이 되어 어둠을 이기게 도와주십니다.
새찬송가 379장 “내 갈 길 멀고 밤은 깊은데”
내 갈 길 멀고 밤은 깊은데 빛 되신 주 저 본향 집을 향해 가는 길 험하여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오 내 주여 내 앞길 항상 비추소서
예화: 안요한 목사님의 간증
1975년, 37세의 젊은 나이에 모든 것이 순탄했던 안요한 목사님은 갑작스러운 원인 모를 실명으로 칠흑 같은 어둠에 갇히게 됩니다. 모든 것이 좌절되고 절망과 고통 속에서 신음했지만, 바로 그때 그의 삶에 비춘 것은 세상의 빛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는 눈으로 볼 수 없는 더 깊은 빛, 즉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영혼의 시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 나는 양의 문이다 (요한복음 10:7, 9)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양의 문이라.”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이 말씀은 예수님만이 우리(양)가 드나들 수 있는 유일한 문이라는 뜻입니다. 이 문으로 들어와야만 구원을 얻고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9장에서 날 때부터 맹인 된 자를 고치신 직후 예수님을 비난했던 바리새인들은 도둑이나 강도 같은 존재들이지만, 예수님은 양들에게 생명을 주고 더 풍성하게 주시는 분입니다.
목축업을 하는 베두인 민족에게 양과 목자는 매우 친숙한 예화입니다. 목동들은 밤이 되면 맹수들로부터 양들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문 삼아 양들을 보호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인류가 죄와 사망에서 벗어나 영원한 생명을 얻고 안전한 하나님의 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하고 참된 통로이십니다.
예화: 존 스토트 목사님의 믿음
존 스토트 목사님의 핵심 사상 중 하나는 ‘균형 잡힌 기독교'(Balanced Christianity)입니다. 그는 지성과 열정, 성경적 진리와 사회적 책임을 균형 있게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허구가 아닌 진정한 역사적 인물이자 구원자라는 확신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은 사기꾼이거나 정신병자가 아닌,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강력한 신념 위에서 믿음을 지켰습니다.
-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요한복음 11:25)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기 전, 마르다에게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이미 무덤에 묻혀 있었을 때, 마르다는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선언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예수님은 자신이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실 수 있는 분이며, 영원한 생명까지 주시는 분임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의 신앙이요, 우리의 산 소망입니다.
-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요한복음 14:6)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말씀하실 때 제자들은 근심했습니다(요 14:1). 그때 도마가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라고 물었습니다(요 14:5).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입니다.
인간은 구원과 영생의 길을 찾기 위해 종교, 철학, 선행 등 여러 노력을 기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올바른 방향과 구원의 길을 제시하는 유일한 안내자이십니다. 예수님만이 진리가 되십니다. 거짓과 오류, 왜곡이 없는 참된 길과 지식이 바로 그분께 있습니다. 예수님은 단순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그분 자체가 생명이시며 그분을 통해서만 죄와 사망을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 길과 생명을 확증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기적들을 베풀어주셨습니다.
갈릴리 가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셨습니다. (요 2장)
우리를 죄인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셨습니다. (요 4장)
우리의 모든 질병과 질고를 고쳐주십니다.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38년 된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요 5장)
어떤 질병도 고쳐주시는 분입니다.
오병이어 기적으로 오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요 6장)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먹여주십니다.
물 위를 걸어오셨습니다. (요 6장)
자연 만물과 폭풍우까지 다스리시는 분입니다.
날 때부터 맹인 된 자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요 9장)
우리의 영적인 눈을 뜨게 하여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게 하십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요 11장)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입니다.
- 나는 참 포도나무이다 (요한복음 15:1,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구약에서 포도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했습니다(이사야 5:1-7). 그러나 이스라엘은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예수님께서 참 포도나무가 되어 새로운 구원을 베풀어주십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잘 붙어 있어야만 열매를 맺듯이,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해야’ 합니다.
시편 80편 8절: “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열방을 쫓아내시고 이를 심으셨나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속박에서 구원하여 가나안 땅에 심으신 역사적 사실을 나타냅니다. 시편 80편은 망가진 포도나무가 다시 회복되어 풍성하고 귀한 열매를 맺기를 바라는 깊은 소망을 담고 있습니다.
새 생명을 잉태한 사람이 입덧을 하듯, 예수님으로 구원받은 우리는 예수님이 좋아하는 것을 먹어야 합니다. 술과 담배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기도해야 합니다.
결론
예수님의 이 7가지 ‘에고 에이미’ 선언은 그분이 단순한 선지자나 위대한 스승이 아닌,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유일무이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합니다. 우리는 이 고백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오직 예수님만을 바라보며 살아갈 때 영생의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