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6장 세 종류의 사람들

요한복음 6장 1절 주일설교 오병어어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5.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6.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7.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8.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12.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13.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3 종류의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사복음서에 모두 나오는 오병이어의 기적중에서 3종류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예수님의 기적을 많이 보고도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빌립니다. 둘째로 무엇인가라도 찾아서 주님에게 드리는 사람 안드레입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있는 것을 두리는 작은 소자 어린아이 소년도시락 주인공입니다.

● 여러분 조폭의 세계나 기업의 문화에서도 3종류의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1) 말로 지시해서 행동하는 사람들입니다. 보스나 사장이 이것해 저것해라고 지시하면 하는 사람들입니다. 말연 말단입니다.

2) 눈치로 하는 사람들입니다. 보스가 사장이 말로 하지 않고 눈치로 지시하는 경우 그것을 행동하는 사람들입니다. 조금더 민첩한 사람들입니다.

3) 가장 인정받는 사람들입니다. 보스나 사장이 말로나 눈치로 지시하지 않아도 행동하는 사람들입니다. 마음을 알고 행동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보스나 사장이 그를 인정해주고 차기보스로 차기 CEO가 되는 사람입니다.

요즘 우리 사모가 행복하는 것을 봅니다. 왜냐하면 마지막 학교 생활 가운데 보람있는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학교에 아이들이 없기 때문에 예전에는 아이들끼리 바빠서 선생님들끼라 갈등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없으니 선생님끼리 갈등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모가 이 갈등을 해결하여 교감선생님으로부터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칭찬을 받는 모습을 보고 참 말년에 보람된 일을 하고 정년퇴직하려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끼어들고 싶지 않았지만 도움을 청하는 선생님에게 어쩔 수 없이 도움을 주다 보니까?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러분 일본의 역사를 보면 제미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저는 일본을 좋아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싫어하지 않습니다. 그 속에서 우리가 배울점을 배우고 버릴 점을 버리는 것입니다. 미국의 좋은 점을 우리가 배우고 미국의 나쁜점을 버리고 우리에게 맞는 행동하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독교 문명이 전파되면 각 나라의 샤마니즘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사마니즘속에서 나쁜게 나타날 수 있고 좋게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한 예로 불교에서 새벽에 공양을 하고 예불을 드리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들어오서 그 예불이 우리나라의 새벽기도회가 되었습니다. 어찌 보면 나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세상에서 오직 우리나라 밖에 없는 기독교의 좋은 문화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새벽기도회가 나쁘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좋은 문화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contextualization(토착화)라고 합니다. 우리의 삶속에서 좋은 방법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일본의 건국한 사람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일본은 천왕 밑에 쇼군이 있습니다. 쇼군은 우리나라의 장관, 장군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지금은 수상입니다. (예 고이지미, 나가소네 등). 그리고 그 밑에 막부, 지방영주가 있습니다. 그것을 다이묘라고합니다. 이 다이묘들 일본에 산제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통일한 사람이 바로 도구가와 이에아스라는 사람입니다.

그 당시에 3명의 걸출한 사람들 있었습니다. 첫째는 오다 노부나가와,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히데요시, 그리고 주인공인 도구가와 이에아스라는 사람입니다.

1) 오다 노부나가(일본어: 織田 信長, 1534년 6월 23일 ~ 1582년 6월 21일)는 오와리국의 센고쿠 다이묘 오다 노부히데의 장남으로 태어나서 일본을 통일의 기초를 놓은 사람입니다. 그는 확실한 성격으로 출신신분에 관계없이 등용한 사람입니다. 남자답고 일처리가 시원한 성격을 가지고있습니다. 저돌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쟁 중에 조총으로 2번을 맞았지만 갑옷의 도움으로 구사 일생으로 살아나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믿고 있는 신하에게 배신을 당하므로 사망하게 되었고 자신과 가장 닮은 아들도 전사함으로 도요토미히데요시에게 모든 전권이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2) 도요도미히데요시

농민계급니다. 투구를 사라고 지시했는데 가장 좋은 것으로 사와서 인정받기 시작하였고, 추운 겨울날 주인의 신발을 가슴에 품고 있다가 주인이 나오면 신을 내어 드리고 주인의 마음을 신원케하였습니다. 그는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민첩하고 교활한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치에 빠르고 마치 빌립과 같은 이성적인 사람입니다. 그가 우리나라에 임진왜란을 일으킨 사람입니다. 죽게된 이유는 명나라 사신 심유경이가 먹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고 이것을 먹으면 건강에 좋고 몸이 가쁜하다고 하는 소리를 듣고 처음에는 의심하였습니다. 그래서 도요도미히데요시는 환약을 반으로 나누워 먹게 되었고 그리고 계속적으로 복용하여 죽게 되었고 심유경은 먹고 난뒤에 해독약을 먹어 살았다고합니다.

3) 도구가와 이에아스

아버지 2살 때 죽고, 자신은 인질로 잡혀가 생활하게 되었고, 오다노부나 가문으로 가게 되었을 때에 가문으로부터 죽여도 좋다한는 말을 듣고 절망하기도하였습니다. 전투에서 패하고 도망치다가 말 안장에 똥을 쌌고 그 옆에 부하가 똥 냄세가 난다고 하여, 그 부하에 “이게 된장이지 똥이냐? 한번 맛을 봐라 이놈아!” 하며 먹였다고합니다. 그로인하여 그는 도요토미히데요시 가문으로 도주한 일화가 있습니다. 너구리와 같은 사람으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목적하는 이루는 성격입니다. 마치 안드레와 같이 여러운 상황을 극복하고 잘 참고 이겨나는 성격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오래 오래 참고 기다리다가 마침내 대망을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책 이름이 대망입니다. 도구가와 이에아스에 대한 역사소설입니다.

1. 빌립

5.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6.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7.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빌립은 오직 보이는 것만 믿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난뒤에도 보이지 않는 예수님을 믿지 못하겠다고하면서 의심한 사람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빌립에게 나타나서 보고 믿는 자보다 보지 못하고 믿는 자가 더 복되다고 하셨습니다.

빈들과 같은 상황입니다. 모든 것이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예수님은 빌립을 시험하고자 먹을 것을 찾아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때에 그가 한 말은 이백 데나리온의 떡으로 부족합니다. 약 2천만원정도의 돈이 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상황이 바로 이러한 상황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상황입니다. 사람들마다 어려움을 격고 있습니다. 전염이 되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렵습니다. 사람들의 소비가 위축되고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실직을 하고 있습니다. 송순덕 권사님의 손자도 실직하였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여러분 제로섬(zero sum)이라는 단어를 하십니까? 모든 상황이 제로가 되는 것입니다. 일본 히로시마에게 원자탄이 떠진 사전으로 인하여 제로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북한에 처들어와 625사변으로 온 나라가 전쟁터가 되었습니다. 911 테러로 인하여 뉴욕무역센타가 젯덤이가 되었습니다.

성경적으로 말하면 80세가 된 모세가 아무 것도 없이 지팡이만 의지하고 있는 가시나무털기에 서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쫒기어 광야로 그리고 아둘람 굴로 피신해 있는 상태입니다. 오늘 본문은 날은 어두워가고 그리고 먹을 것은 없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기진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그곳 제로섬에 주님이 계시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상황 가운데 빌립은 돈을 생각하였고 안드레는 먹을 찾았습니다. 돈이 있다고 하여도 어떻게 해결합니까? 우리나라처럼 배달도 잘 되는 시절도 아니고 설령 배달한다고 그 많은 2만명을 어떻게 배달하여 먹이겠습니까?

옛날 우리나라는 대가족중심입니다. 그런데 소가족으로 바뀌고 그리고 나 혼자 산다가 유행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왜요, 부모님과 형제들이 살다가, 저희 가정은 7명입니다. 부모님이 안방 우리는 형제자매 모두 5명이 한방에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서둘려서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결혼하면 둘만의 공간이 되어 사생활이 보장되고 못살아도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부사이도 벌어져 돌아온 싱글들이 많고, 아에 결혼하지 않는 나혼자 산다의 가족들이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사회적인 문제가 되기 시작하였습니다. 혼자 살기 때문에 이혼하여, 남편과 사별하여, 그리고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다보니 경제적이 부담은 줄었지만 정식적 육체적인 공허함과 두려움이 몰려와 병적인 현상들이 많이 발생하고 예전에는 없던 정신건강학과가 많이 생기고 병원도 많이 생기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정신적으로 해결할수 없느 것을 교회가 해결해주어야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교회가 공공의 적이 되었습니다.

2. 안드레 (믿음의 사람)

8.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서 안드레는 일단 찾아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예수님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2만명에게 얼마나 되겠습니까? 한사람도 부족한데요, 구약에서도 엘리사의 보리떡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100명을 먹이는 사건이 있었는데 예수님은 100명이 아닌 2만명입니다.

우리 사모는 우리 성도들 점심 10명을 먹이는 일에 힘들어고 고생하는데 사람을 먹이는 일은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이 많은 숫자가 문제가 아니라 그 상황속에 예수님이 계시느냐 계시지 않는냐의 문제입니다. 작은 것이라도 가져다 드리면 예수님은 그것을 통하여 기적을 베풀어주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부족한 면을 보지 않고 예수님에게 집중하기 때문에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안드레는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안드레는 수많은 사람들의 숫자에 관심 없습니다. 어려운 상황 빈들을 보지 않았습니다. 마치 마치 중풍병자의 4친구처럼 주님 앞에 내려놓으면 된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엘리사 시대의 4명의 문둥병자처럼 앉아서 죽느니, 사마리아 성으로 들어가 죽느니, 차라리 적진으로 가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생각하여 소망의 방향으로 발길을 옴길 때에 천군천사의 병거소리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손에 잡히는 것 없고 보이는 것 없어도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앞으로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전진하시기를 바랍니다.

3. 어린아이 (드림)

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이 아이는 어머니로부터 받은 도시락을 안드레에게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예수님의 손에 드리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물질이 어찌 보면 목사인 저에게 그리고 예수님의 손에 들리게 되는 것입니다.

열왕기상 17장 10-11절 사렙다 과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과부에게 물과 떡을 가져오라고 합니다. 이 과부는 자신과 자신의 아들과 먹고 죽을 한끼의 식사 제료밖에 없다고 말씀하시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게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하면서 정직하게 자신의 상황을 말합니다. 한 끼의 식사 먹고 죽을 상황이지만 엘리야는 과부에게 음식을 가져오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상식에 벗어난 주의 종입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하나님이 그 과부를 살려주실 것을 믿기 때문에 음식을 달라하였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물과 기름이 떨어져가고 있습니까? 온 나라가 covid-19로 고생하고 있습니까? 물질의 문제로 고생하고 있습니까? 자식의 문제로 고생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하실 일들을 생각하며 믿음으로 드릴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누가복음 6장 38절에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주는 갈릴리 바다는 풍성합니다. 주지 않고 받는 사해는 죽음의 바다입니다. 우리의 삶속에서 주는 삶을 살 때에 풍성해지고 받기만 하는 삶속에서는 죽음의 바다가 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0:35절에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또한 너희의 헤아리는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헤아린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결혼할 때에 헤아리는 단어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성도님은 우리 가정에 얼마나 부조했으니 나는 얼마만큼 부조하면 되겠구나 하고 헤아리는 것입니다. 헤아리지 않는 다는 것은 주고 받는 관계가 아니라 은혜의 단계로 풍성하게 더 많이 주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저는 송순덕 권사님의 제산 분배과정을 보았습니다. 그동안에 자식들의 삶을 비교하는 것입니다. 모든 자식들을 공평하게 나누워주어야한다고 김예기권사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정상적인 가정일 때 그러합니다. 그런데 주면 더 죄가 되고 악해지는 경우가 있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아들이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받을 수 있는 자녀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시지 않습니다. 왜요 그동안 살아온 것이 잘못 살아왔고 그리고 주면 더 죄가 되고 악해지기 때문입니다.

마무리

여러분들이 드린 물질에 주님이 손에 얻어주시고 그것을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비로 거칠고 투박한 보리떡이라도 그것이 주님의 손에 얻일 때에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어려분의 자녀들의 머리에 주님이 손이 얻일 때에 오천명을 먹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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