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5장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25년 5월 31일
-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우리교회에서 부흥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리교회는 38년된 병자와 같은 교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부흥강사가 되어주셔서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시는 말씀을 처럼 일어나 걷는 교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위해 신발을 모아 전달한 미국 초등학생의 사연이 미국의 한 매체에 의해 알려졌다.올해 초등학교 6학년생인 케이트 힐러 양은 수업시간에 아프리카 어린이들이 맨발로 흙길을 걷는 사진을 보고 이들을 돕기로 마음먹었다. 케이트는 학교와 동네를 돌아다니며 아프리카 자선 사업 계획에 대해 설명회를 열고 신발을 모아 달라고 요청했다. 케이트의 정성에 감동한 친구와 주민들은 모두 250켤레의 신발을 모아 줬다. 이 신발들은 구호단체를 통해 아프리카의 어린이들에게 전달됐다. 케이트는 자신의 선행이 사람들을 자극해 더 많은 구호활동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며 내년에도 또 다른 기부 행사를 계획하겠다고 했다. 네티즌들은 “어른들도 쉽게 못 하는 일인데…”, “기특한 생각을 하고, 실천까지 하다니 놀랍다!”, “크게 될 아이”
- 경쟁속에 사는 사람들
-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오늘 본문으로 들어와서 베데스타 연못가로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그곳은 치료 받기를 원하는 사람들로 가득찼습니다. 경쟁이 아주 치열하는 곳입니다. 먼저 들어가면 낳기 때문입니다. 서로 먼저 들어가려고 아주 심한 전쟁을 치루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큰 발전을 한 것은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요, 둘째는 경쟁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경쟁하는 것입니다. 학원에서 경쟁합니다. 대학이라는 입시관문을 통하여 월급과 그리고 생애의 삶이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좋은 대학에 들어가려고합니다. 여성은 취업, 남성은 군과 취업이라는 큰 걸림돌이 있습니다. 그로 인하여 경쟁하게됩니다. 먼저 들어가기 위하여 힘든 고통가운데 있습니다.
저는 이 사람이 병명이 무엇을까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중풍병자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워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병명을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 옹기종기 모여 사는 사람들
-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3.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베데스타 집입니다. 은혜의 집입니다. 주위에서 옹기종기 모여살고 있습니다.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마른 사람들, 누워있는 삼십팔년된 병자. 교회 근처에 모여있는 사람들입니다.
서울역에 노숙자들이 누워있습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직업과 학력을 조사해보니 좋은 대학나온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이곳에 왔느냐고 하였는데 한번 발을 들어놓기가 어렵지 한번 들어놓으면 마음이 편하고 좋습니다. 세상 근심걱정없습니다.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이라는 책이있습니다. “단순 반복적인 일로 매일을 보내는 사람 역시 위험하다. 그가 진정 성실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렇다.” 라는 내용입니다. 구본형작가는 서강대학교 사학과 경영학을 공부한 그는 1980년부터 20년 동안 한국 IBM에서 근무하면서 경영 혁신의 기획과 실무를 총괄했고, IBM 본사의 말콤 볼드리지 국제 평가관으로 근무하시다가 작가가 되었습니다.
신앙의 미덕중에 성실이 중요합니다. 성실함 속에 익숙함 속에서도 늘 새롭게 자신을 가다듬지 않으면 도퇴되고 인생을 실패하고 맙니다. 신앙도 마찮가지입니다.
신앙에 있어서 익숙해짐은 축복이 아니라, 위기요, 저주입니다. 하나님이 익숙해지면, 신앙이 익숙해지면, 봉사가 익숙해지면, 사역이 익숙해지면, 그 신앙은 역동성이 떨어지고, 반드시 병들게 되어 있습니다. 매일 새벽기도하고, 수요예배, 철야예배 의무적으로 드리지 않고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 38년 동안 도움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남에게 신세 지기를 싫어합니다. 우리 아들도 아빠 엄마의 도움을 싫어합니다. 어린 시절에 용돈 달라고 하면서 가까이 다가오는데 지금은 자신의 방에 들어오기를 싫어하고 부모의 간섭을 싫어합니다.
사람들은 자수성가를 좋합니다. 내 힘으로 해결했다, 내 힘으로 부자가 되었다고하면 좋은 차를 끌고 고향에 내려가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는 것이 인간이 원하는 바입니다.
그런데 아무도 이 삼십팔년된 병자를 도와주지 않습니다. 신세를 지고 싶어도 어느 누구도 도움을 받을 사람이 없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스니다. 긴병에 효자 없다는 말입니다. 불쌍한 병자입니다.
-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이곳에서 정말로 천사가 내려와서 물이 동하게 하였을까? 그럴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곳에서 기다리겠지요? 그러면 얼마나 자주 동했을까요? 일년에 한번, 아니면 한 달에 한번, 글세요. 이곳에서 내려온 천사는 착한 천사가 아닌 듯 싶습니다. 왜냐하면 착한 천사라면 모든 사람들을 치료해야지요.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38년동안 기다리고 있었는데 치료받지 못하고 있으면 물이 동하지 않았다는 생각도 들고요, 전설이 거짓이 되고, 모든 병자들이 평생 소원을 가지고 기다리는 것 뿐이지 정말 치료받았는지는 의문이 됩니다.
저는 이 구절에서 우리 성원순복음교회를 생각해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부흥을 위하여 그렇게 간구하고 노력하면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물이 동할까? 하는 의구심까지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물이 일년에 한번 아니 평생에 한 번 동할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예수님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전설 구약 율법이 아니라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설따라 삼천리가 아니라 구약적인 삶이 아니라 이제는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원순복음교회가 바로 예수님을 만날 때에 부흥이 오고 치료도 온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네가 낳고자 하느냐 예수님의 음성
-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네가 낳고자 하는냐 하는 예수님의 질문입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그곳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는 이유가 거기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자녀 중에 좋은 대학가기를 원하느냐 하고 질문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이영순집사님이 중풍이 낳고자하는 말입니다.
마치 대한민국의 모든 목회자에게 조용기 목사님처럼 교회를 부흥하기를 원하십니까?하고 질문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모든 목사님들이 그렇게 갈망하고 노력하는 것인데 이것을 질문이냐고 하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질문한 이유는 내가 지금도 소망하고 있느냐? 입니다. 내가 낫을 믿음이 있느냐는 질문입니다.
나는 안돼! 무엇을 해도 안돼! 우리 교회는 무슨 일을 하더라도 안돼!, 목사님이 왜 전도합니까. 않돼는대요? 전도지를 만들고 그리고 여의도순복음교회처럼 행복의 초대를 만들고 매주 수요일마다 전도했는데요? 지금까지 해왔는데 안돼겠지 하는 믿음없는 생각입니다.
목사님 우리 교회에 부흥회 왜하냐고 그러시더라고요? 해서 무엇하느냐는 것입니까? 모든 일을 안된다고 생각하여 포기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우리 주님이 여러분들에게 내가 낳고자 하느냐? 내가 치료 받고자하느냐? 내가 부흥하고자하는냐?입니다.
예배시간에 어느 성도가 왔습니다. 그런데 예배는 안 드리고 핸드폰만 보고있는 것입니다. 핸드폰에 몰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배에 집중하지 않는 새가족을 보면 마음이 답답합니다.
전통의 연못, 희망의 연못에 앉아있지만 낳을 생각이 없는 것입니다. 그곳을 떠나면 불안하고 그곳을 떠나면 무슨 날벼락을 맞을 것 같은 생각으로 가득한 것입니다. 마치 교회의 신앙생활입니다. 이곳을 떠나면 불안한 것 같고, 이곳을 떠나면 날 벼락맞을 것 같이서 주일예배는 드리는데 치료받을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그냥 살고는 있지만 감동이 없는 부부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과 신랑과 신부의 관계는 유지 하는 것과 같지만 마음에 감동이 없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다시 성령의 불을 짚혀주셔서 감동이 있게 하옵소서
네가 낳고자 하느냐는 것은 내가 의지가 있느냐는 물음이십니다.
- 병 고치는 예수님 (네가 낫고자 하느냐)
-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여러분 대부분의 의사는 쉬운 병을 원합니다. 한 사람의 환자당 1만원씩 반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100명만 오면 100만원을 하루에 버는 것입니다. 상담할 시간이 많치 않습니다. 그래서 쉬운 환자들만 많이 오기를 기도한다고합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가장 어려운 환자 고질병과 같은 38년된 병자에게 찾아가는 것입니다. 충농증에 고질병, 두통의 고질병, 심장병의 고질병, 당뇨의 고질병을 찾아가 고처주십니다.
우리 성원순복음교회는 38년된 병자와 같은 교회입니다. 율법으로 고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이 오셔서 고처주시는 것입니다.
박보영목사님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부모님들이 목사님이고 자신이 목사가 되는 것을 싫어했다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장로님 목사님들이 싸고, 성도들이 교회에서 싸우는 모습을 보고 목사 대신에 의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을 39살까지 하지 않다가 부인과 이혼하고 심장이 언제 멈춤줄 모르고 죽음의 문턱에 있을 때에 마가다락방에서 치료를 받고 가장 불쌍한 청소년들과 함께 살면서 목회를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그 때에 예수님게 질문했다고합니다. 예수님 그 때에 성도들이 싸우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고 질문하였을 때에 예수님이 그들은 가짜라고 하였습니다. 가짜 예배를 드리고, 가짜의 삶을 산다고 하였습니다.
- 병자의 변명
-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성경을 읽다보면 많는 변명들이 나옵니다. 예수님 야이로 딸이 죽었습니다. 야이로의 사람들이 오셔도 소용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라고 하시면서 고처주셨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야의 가정을 초상집에서 잔치집으로 바꿔주셨습니다. 변명하고 있는 아브라함에게 아들이 있다고 하시며, 변명하고 있는 주의 종과 선지자들에게 진리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빌립에게 빈들 광야에서 5000명을 먹일수 있겠느냐? 없습니다. 200데나리온이나 듭니다. 그러나 안드레는 병명하지 않고 오병이어의 작은 것을 주님께 드림으로 그것이 씨앗이 되어서 열매를 맺게 하시는 것입니다.
인도의 왕이 신하들에게 수숫께기를 내었습니다. 벽에다가 자신이 줄을 그었습니다. 그리고 이 줄을 손대지 않고 짧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신하들이 포기하고있는데 지혜로운 신하가 다가 가더니 자신의 줄을 길게 그었습니다. 그러더니 왕의 줄이 짧아진 것입니다.
- 일어나 걸으라
-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안식일인데 율법적으로 일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생각과 고정관념을 깨드렸습니다. 그 생각을 바꾸셨습니다. 행동하는 신앙으로 바꾸셨습니다.
독일과 일본의 차이가 있습니다. 고노담화와 같은 성명서나 변명이 필요없습니다. 독일처럼 스스로 배상하고 전범들을 처형하고 그리고 홀로코스트에 가서 헌화하고 잘못했다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38년의 행동을 보십시오. 유대인들이 안식에 걸으라고 하였다고 율법을 어기었다고 하여서 출교하려고 하니 38년된 병자는 나는 그가 누구인지 모릅니다. 그때에 예수님은 그 자리를 피하였습니다.
그 일 후에 예수님이 그 사람을 성전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도록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사람이 예수님이라고 말합니다. 그 결과 유대인들이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한 예수님을 핍박합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9장에 나타나는 맹인은 다릅니다. 진흙으로 눈을 뜨게 하였습니다. 그것도 안식일입니다. 바리새인 중에 한사람이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였다고 합니다. 이 사람이 하나님께서 난 사람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로서 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러한 기적이 일어날 수 있느냐고 하였습니다.
22절에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한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그들을 무서워함이러라고 말씀하고있습니다. 그 부모는 두려워서 그 아들에게 물어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아들이 대답합니다. 그가 예수님이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지만 한가지 아는 것은 내가 맹인되었다고 지금 보게 된 것 그리고 그분이 나를 고처주신 것은 확신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