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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4장 24절 신령과 진정의 예배

2016-02-23 08:22:58


요한복음 4장 24절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16년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밤에 전철을 타거나 버스를 타면 방향이 바뀌는 경우가 가끔이있습니다. 내 생각대로는 오른쪽이 서울인데 표지판에는 왼쪽이 서울로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나 자기의 느낌대로 타지 않고 표시판에 써있는데로 탑니다. 우리는 느낌으로 신앙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표지판이 성경의 말씀대로 신앙생활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방향을 잃지 않는 길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가장 중요한 말씀을 듣는 시간입니다. 여러분들이 매일 예배를 드리는데 어떻게 예배를 드릴 것인가에 대하여 말씀하고자합니다.

1. 본문설명

예수님께서 전도를 하시기 위하여 사마리야 지역으로 통행해야하겠다고 말씀하시면 갈릴리에서 사마라야 지역으로 가게 됩니다. 그 당시에는 사라미아야 유대 사람들이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사마리야 사람들이 우상을 섬기다가 앗수르 민족에 포로가 되어 전 민족이 혼합민족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다 민족들은 사라미야 사람들을 상종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만나지도 않고 간섭도 하지않는 그러한 삶을 살았습니다. 마치 우리나라와 북한 의문제와 비슷합니다.

이번에 우리 대통령께서 북한지역에 있는 개성공단을 철수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사전에 미리 사장님들에게 언지를 주었으면 이러한 막대한 피해를 입히지 않았을 것입니다. 물론 말못하는 여러 가지 정황들이 있지만 단번에 결정으로 인하여 많은 어려움을 격은 우리 기업의 사장들과 직원들을 생각하면 피눈물이 나는 일들이 아니가 하는 생각이듭니다. 북한의 사람들은 완전히 불량배고 거저 남의것을 먹는 도둑과 마귀의 심보를 가지고 있는 모습을 보게됩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야 여인에게 전도를 시작합니다. 물을 달라고 하시면서 접촉점을 찾습니다. 그런데 여인은 당신과 우리는 상종하지 않는 관계인데 어찌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 하고 접촉점을 제거하려고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시 호기심을 발동시켜 네가 주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영원한 물이라고 하시면서 호기심을 작극합니다.

2. 남편에 대한 문제

16. 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17.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18.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5명의 남편을 지금까지 대로고 살아왔음을 고백합니다. 저는 어린 시절에는 참 노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첫째는 세상의 오락입니다. 여전히 노는 것을 좋아하고 TV와 영화를 좋아했습니다. 둘째로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셋째로 음악을 좋아하여 늘 성가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넷째로 넉마살기가 있을 정도 세상을 돌아다는 것를 것을 좋아했습니다. 다섯째로 세상에 먹는 음식을 좋아하여 세상에 맛있는 것을 쫒아다니기를 급급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오늘 가장 포인트가 되고 있는 예배에 대한 문제를 여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물위로 걸어다닐 수 없습니다. 오늘 예수님처럼 5병2어의 기적을 베풀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죽은자나 병든자를 고칠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처럼 작은 부분을 담아가도록 노력해야합니다. 비록 기적은 일어나지 않을 지라도 우리는 주님의 모습만 달아가면 좋을 것같습니다.

오늘 작은 기적, 이 보다 더 큰 기적이 어디있게는가? 사마리아 여인을 전도하는 기적입니다. 그 기적 속에서 우리 주님이 하시고자 하시는 놀라운 영적인 의미를 우리에게 말씀하고자합니다.

바로 우리가 매일 드리는 주일예배 수요예배 금요철야예배 그리고 매일 드리는 새벽예배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예배를 어떻게 드릴 것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이 먼저 우리에게 말씀하고자합니다.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배를 드리는데 알지 못하고 예배를 드리리는 것입니다. 죽은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우리 주님이 찾으신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보에있는 형식적인 예배를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몇 주전에 호주에서 오신 류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pastor 홍, 너무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지 말고 하나님의 성회처럼 예배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외국 하나님의 성회에서 성령님의 인도하시는데로 성령의 인도하시는데로 예배를 드리는데 한국에서 예배를 드렸을 때에는 너무 형식적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 같아 마음이 시원하지 못하다고 하였습니다.

3. 예배할 곳

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예배할 곳?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예루살렘은 어떤 곳입니까?

역대하 3장 1.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 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의 아버지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

그 곳은 아브라함이 모리아산에서 이삭을 번제물로 드리려고 한 곳입니다. 그곳은 다윗왕이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서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서 번제를 드림으로 3일의 온역을 멈추게 한 곳입니다. 그곳은 솔로몬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한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곳입니다. 그곳이 초대교회에 예루살렘 성전이 되었고 지금의 교회가 된 곳입니다. 그 예루살렘 성전이 안디옥으로 베뢰아로, 데살로니가 교회로, 고린도교회로, 로마교회로, 영국의 교회로, 미국의 교회로, 한국의 교회로 우리 성원순복음교회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4.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이번에 개성공단의 가장 큰 손실이 무엇인가요?라고 기자가 질문하였습니다. 사장님들의 답변을 들어보았습니다. 1조원의 시설투자 그리고 그곳에서 만들어진 제품들 1조원 총 2조원어치의 손실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가장 큰 어려움은 바로 숙련된 오랫동안 그 일에 종사한 사람들을 잃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합니다. 제봉기술의 숙련공 그일을 하는데 잘 하는 숙련공입니다. 여러분 정부가 땅도 꽁자로 줄수 있습니다. 시설도 만들어줄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와 같이 좋은 제품들을 만들기 위하여 외국의 근로자들을 어떻게 뽑으면 금액은 얼마나 지불해야합니까? 그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하였습니다.

예배에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지는 숙련된 성도가 필요합니다.

사마리야 여인이 이렇게 묻습니다. 예배는 어떻게 드려야합니까? 그때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23절에서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1) 22절에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난다. 이 말씀은 메시야는 유대인을 통하여 난다는 것입니다. 즉 유대인을 통하여 구원이 이루워진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유대인 아브라함을 선택하여 한 가정을, 그리고 다윗을 통하여 한 국가를 만들고, 그리고 그 구원의 완성이 바로 메사야 구세주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분을 통하여 예배가 이루워져야한다는 것입니다.

2) 예배를 어떻게 드려야하는가?

예수님을 통하여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심산도 아니고 예루살렘 성전이 아니 예수님의 성전을 통하여 이루워진다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의 인도를 통하여 예배를 드려야하는 것입니다.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합니다. 진리가 무엇이 진리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예배가 되기 위하여는 먼저 성령님을 인정하고 성령님을 모셔들야 합니다. 성령이 없이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것은 주문을 외우는 것과 같고 형식적인 요식행위와 같은 것입니다.

5. 예배를 드린다, 본다.

한국교회에서는 조금 정성된 표현으로 예배를 드린다. 예배한다라고 표현합니다. 대부분은 예배 본다라고 표현하고 있지 않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인간의 마음과 뜻을 통하여 하나님께 드림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 드림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도 많은 부분 드림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거룩한 산제사를 드림

예수님이 먼저 히브리서 10장 18절에 하나님께 자신의 몸을 드림으로 제사, 즉 예배의 근원을 마련하여 놓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불교에서 마치 불공을 드림으로, 자신의 행위를 통하여 무엇인가 노력하여 얻으려는 이미지로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주일 2부예배를 드린다. 본다로 표현하고 있는데 본다는 말은 시각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다는 일은 이러한 말로도 쓰일 수 있습니다. 장을 보다. 즉 구매활동을 하는 것입니다. 일을 보다는 것은 일을 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즉 예배를 드린다는 표현과 본다는 말의 차이는 별 차이가 없지만 본다는 말은 조금 더 낮은 측면에서 볼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경건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표현하는 것이 좋습니다.

5. 예배는 성령의 인도에 따라서 예배드려야합니다.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새벽기도회를 설교를 하고 기도를 시작하면 어느 때에는 마음이 벅찰 만큼 마음이 신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때는 잡생각과 기도의 줄기가 잡히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어느 때에는 설교에 은혜받은 성도들이 정말 열심히 기도를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때에는 같은 설교를 하였는데 기도를 하지 않고 가는 성도들의 모습을 보게됩니다.

무엇이 문제인가를 생각하여 보았습니다. 내 마음속에 성령으로 가득차 있어 하나님께 예배를 잘 드리고 나면 기도도 잘되고 그리고 기도가 잘되면 온몸이 성령으로 충만하여 무엇인가 느끼고 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내 마음속에 세상의 염려와 제리로 인하여 예배에 은혜가 되지 않고 성령님이 내 마음속에 임하지 않게 되었을 때에 기도도 되지 않고 마음이 무거운 상태로 성전을 떠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제가 인천교회 있을 때에 성경학교 성경대학교 시간에 간증을 들었습니다. 그 집사님의 남편이 차로 성전까지 대려다 주었는데 어느날 비오는 날이라서 성전에 들어와 은혜를 받고 자릿세 2000원씩 내기 시작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담배를 끊고 뒤자리에서 앞자리 옴겨오면서 성경학교 반장이 되고 안수집사가 된 것을 간증하게 되었습니다. 점점 장성한 분량에 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 이영순집사님이 중풍으로 고생하고 계십니다. 죽어가는 죽은 세포가 여러번 만지니까? 죽어있는 신경이 살아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죽어있는 죄인이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만나서 조금식 영이 살고 말씀이 살아서 움직여 우리의 몸이 영적인 상태로 변화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구약의 예배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것, 신약의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것, 로마서에는 산제사로 드리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께 예배를 드리면서 집중하지 못하는 것은 세상에 너무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고 우리의 보는 것이 TV로 인하여 하나님께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것들 때문일 것입니다. 따라서 TV를 줄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별히 세상에 있는 사람에게 관심을 갖지 말고, 연애인에게 관심을 갖지 말아야합니다. 특별히 주변에 성도들과 비교하면 예배를 드리지 말아야합니다.

요한복음 21장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1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20.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님 주님을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더라

21.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베드로가 요한의 삶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고 물으니 예수님은 네가 무슨 상관이냐 너나 잘하라는 말씀하고 계십니다. 즉 우리의 삶속에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에 남에게 너무 관심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하나님께 집중하여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려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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