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17년 12월 첫주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4.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5.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 오늘 본문을 자세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두고 제자들에게 이렇게 앞으로 일들에게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십자가에 죽고 그리고 다시 부활하여 천국에 가서 너희들의 있을 집을 예비하고 올 것이다. 그리고 다 예비 되면 다시 너희에게 와서 저희를 영접할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그때에 의심많은 도마가 예수님에게 묻습니다. 예수님 예수님께서 어리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합니다. 그 길을 어찌 알겠습니까? 하고 질문합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 유명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아버지께로 천국으로 올 길은 나밖에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지방회 목사님들을 모시고 해외 선교여행을 가게 되었습니다. 페비자매님이라고 우리 게스트 하우스에 왔던 자매가 저를 도와주어서 모든 스케줄을 예약하였습니다. 호텔, 그리고 차량, 그리고 어는 어는 곳을 가라고 예약하여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사람을 만나는 일은 제가 할 일입니다.
공항에 도착하였는데 우리는 이름을 써놓고 마중나오는데 어는 주차장으로 오라고 하는 것입니다. 제가 어떻게 그 길을 알겠습니까? 물어 물어 주차장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배를 타고 밧담으로 가는 길속에서 호텔을 찾아가야하는 것입니다. 공항을 통과하는 과정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리고 말레지야의 국경을 넘는데 그길도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잘못 사람을 만나거나 살못 실수하면 엉뚱한 길로 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매일 하루에 두 번씩 예배를 드렸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목사님 한분이 설교 하고 저녁에도 성령대망회를 목사님들과 함게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기도회를 하면서 가장 걱정인 것은 다른 호텔들은 문제가 없었습니다. 말레지아의 호텔입니다. 그곳은 무슬림이고 그리고 목사님들이 얼마나 열심히 찬송을 하는지 혹시나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하는 걱정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모든 일을 마무리하려는데 우리 목사님중에 불평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때에 저는 모세를 생각하였습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는데 광야의 길을 가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평하는 소리를 듣고 혈기로 바윗을 지팡이로 2번 때렸습니다. 그로인하여 가난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던 것입니다. 저는 그러한 원망을 들으면서 참고 잘 무사히 인천공항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지구는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달은 지구를 중심을 정확하게 궤도를 따라서 돌고 있습니다. 바다의 선박도 그 뱃의 길을 따라서 움직입니다. 비행기도 그 항로에 따라서 움직입니다. 제 생각에 한라산을 왼쪽으로 오면 좋은데 한라산을 중심으로 오른쪽으로 돌아서 배행기가 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기차도 철길을 따라 열심히 목적지를 향하여 달려가는 것입니다.
각종경기하는 사람들은 경기의 규칙에 따라서 운동을 하고, 정치인도 정치 철학으로 경제인도 경영철학에 따라서 회사를 운영합니다. 우리 목회자도 목회철학에 따라서 움직여야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각자의 자기의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은 어는 누구도 그리고 어떤 사람도 같이 걸어갈 수 없는 길이고 자신만이 그 길을 가는 길입니다. 그 길속에 실패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들은 큰 성공을 거두기도 합니다. (예화, 임금부름, 세상사람, 가족들, 그런데 예수님)
그러므로 우리는 고지식할 정도로 그 정도의 길을 탈선의 길을 걷지 않고 정도를 걸어가야하는 것입니다. 제가 신학교 들어간 것은 1987년에 들어갔습니다. 필리핀에서 4년 그리고 부교역자로 10년, 그리고 개책하여 16년이라는 세월흘러 그 많은 기간동안 많은 목회자들과 많은 성도들을 만나났습니다. 그 만남을 통하여 한가지 결론을 이른 것은 정도를 걸어가야한다는 것입니다.
지방회장으로 일하시면서 하나님앞에서 정직하지 못하셨나 교회가 점점 어려움을 당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총회에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000 목사님은 지금 형무소에서 살고 있습니다.
싱가폴에 갔습니다. The city of church라는 곳에 갔습니다. 교회가 굉장히 크고 그리고 또 다른 큰 건물을 운영하고 있는데 4년이 아니라 10년 이상을 교도소에서 있어야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사모님이 가수인데 교회돈을 가지고 유용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인생을 걷는 사람들을 중에 히브리서 11장에 타나는 16명중에 3분을 중심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합니다.
1974년 남아공 더반에서 열린 WBA세계 밴텀급 챔피언 결정전에서 우승한 홍수환 선수입니다. 그 때에 그가 우승직후 어머니와 통화하면서 엄마 나 챔피온 먹었어는 40년 지난 오늘날에도 많이 이가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체급을 올려 파나마에서 개최한 주니어 패더급에서 화려하게 부활합니다. 이때의 상대 선수는 지옥에서 온 사자라 불리는 별명을 가지 KO승의 달인이였습니다. 2라운드에 4번 다운 3라운드에 4번 따운되었지만 역전승을 거두고 김포공황에서 서울역까지 카퍼레이드를 하게 되었습니다. 홍선수의 어머니도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함께 퍼레이드를 하였습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금일봉 200만원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의 200만원이면 집 2채의 값입니다. 제가 2번이나 챔피언을 해보았지만 그 영광은 짧습니다. 그리고 인생의 밑바닥까지 내려갔다고 합니다. 알래스카에서 택시운전하다가 마약을 배달했다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까지 가게 되었다고 간증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1. 믿음으로 예배드리며 걷는 길
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아벨은 더 낳은 제사를 드렸다고 하였습니다. 믿음의 명예의 전당에 첫 번째 올라온 사람이 아벨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는 목적은 바로 예배입니다.
예배는 매우 중요합니다. 먼저 믿음으로 예배를 드려야합니다. 믿음이 없는 예배는 울리는 꽹가리와 같은 것입니다. 필리핀에서 예배를 드립니다. 얼마나 찬양에 열정적인지 모릅니다. 춤으로 추고 모든 성도들이 나와서 즐겁게 예배를 드립니다. 탬버린을 치고, 그리고 아멘도 잘합니다. 반응도 좋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 실천합시다. 하면 잘하지 않습니다. 필리핀에 이제는 돈이 없는 나라가 아닙니다. 많은 필리핀의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찾아옵니다. 젊은 사람들도 여러번 우리 나라에 와서 즐겁게 쇼핑하고 갑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와 필리핀의 차이점은 헌금에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믿음있는 헌금을 드리는 것 같습니다. 필리핀 선교사 교회가면 1000명이 이상이 예배를 드립니다. 그런데 헌금은 10만원도 되지 않습니다.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사실입니다. 필리핀 주의 종들을 선교사님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교회에서도 꾸준히 로델 선교사를 돕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역대하 16장 9.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이 일은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은즉 이 후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으리이다 하매
이사야 43장 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복음 4: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낳은 제사를 드렸습니다.
무엇이 더 낳은 제사입니까? 더 낳은 제사가 어린양입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곡식도 레위서에서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입니다.
첫째는 믿음으로 드린 것입니다. 이 예물속에 믿음이 있었습니다. 본문도 믿음으로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정성스럽게 드렸습니다. 성경에서 보니 아벨의 제물은 양의 첫새끼였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가치있는 것이 되어야합니다. 그래서 예배를 Worship이라고 합니다. worth 가치있는 ship은 신분입니다.
최고의 가치를 하나님께 드림이 바로 예배입니다.
핸리포드는 아일렌드의 더불린 고아원에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마음으로 천파운드를 작정하여 드렸습니다. 신문에 오탈자가 나왔습니다. 2만불이라도 되어있습니다. 원장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신문기사가 오탈자가 되었는데 어떻게 수정할까요? 아닙니다. 그러나 헌당식할 때에 헌당문구에 이렇게 써주세요. “핸리포드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 뜻으로 건축하게 되었습니다.”
2.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
5.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세상에서는 죽음을 맞보지 않고 곧장 올라간 사람이 있습니다. 에녹과 엘리야입니다. 에녹은 천국으로 아벨은 죽음으로 천국에 천국에 갔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하는 것이 무엇일까? 그가 살아계심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이 자리에서 우리가 예배드리는 것을 기쁘시게 받아주시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에녹은 큰 업적을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처럼 공적도 없고, 다윗처럼 나라를 세운 것도 아니고 모세처럼 수많은 기적을 행한 것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동행입니까?
동행은 나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맞추워 같이 걸어가는 것입니다. 동행이 아니라 독행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혼자 살다보니 자신의 마음대로 자신의 생각한데로 살아는 것입니다. 편한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동행의 대표적인 인물은 저는 요셉과 그리고 욥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셉은 그가 유혹 가운데 있을 때에 내가 하나님 앞에서 득죄하리까하고 자신이 하나님 앞에 있을 보고 죄를 짖지 않았습니다.
둘째로 욥은 10명의 자녀, 가축이 구제역으로, 재산이 도둑으로 다 날라가게 되었습니다. 욥은 악창이 나게 되었고 그리고 그의 부인은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입으로 범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친구들의 토론속에서 약간 믿음이 약해진적이 있습니다.
욥기 23장 8.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9.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여러분 우리가 평안할 때에는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어렵고 힘들 때에 그리고 절망 가운데 있을 때에 우리의 육안으로 하나님이 보이지 않을 때에 정말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하나님의 하 짜도 나오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영적인 침체기입니다. 욥의 고백처럼 말입니다. 그때에는 우리의 척도인 믿음이고 바로 성경이 기준입니다.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는가 늘 읽고 묵상해야합니다.
여러분 비행기 조종사는 구름가운데 있을 때에 입니다. 행해사가 자욱한 안개에 있을 때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믿음의 눈으로 성경을 바라보아야합니다.
4. 경외함이 있는 믿음입니다.
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경외라는 뜻은 공경하며 두려워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거룩한 경외 즉 holy fear입니다. 거룩한 두려움입니다. 학교의 1년 선배와 선생님과 의 경외가 다른 것입니다. 군대에서 1년 선임과 부모님과의 경외는 다릅니다. 손위 동서와 부모님과 동서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다릅니다. 제가 존경하는 최성규목사님과 하나님과 존경이 다릅니다.
하나님의 경외는 두렵고 떨림으로 경외하는 것입니다.
1970년대에 핼리 모리스라는 과학자는 창세기 연구라는 책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장부터 11장 까지의 창조과정 속에서 하나님은 지구를 비닐하우처럼 싸서 인류를 보존하셨다고합니다. 수분과 그리고 온도가 적당하여 사람이 800살에서 969살까지 살도록 되었다고합니다.
즉 비가 전혀오지 않지만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평안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비가 전혀오지 않았기 때문에 부폐나 썩음이 있지 않았습니다. 마치 애굽에서 비가 오지 않는 사막 가운데 유적지가 4000년 동안 잘 보존된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건드리지 말아야할 사람이 2분 있다고 합니다. 한분은 이국종 교수님이고 한 사람은 김연아라는 말이 있습니다. 석태균 선장을 살려냈습니다. 그때에 우리나라 구축함이 투입되었는데 노아의 방주는 이 구축함보다 10배가량된다고 합니다. 그것을 120년동안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8명이 장비도 없이 역청을 집접 찾아서 바르고 왜 그렇게 했습니까? 바로 경외함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고 합격이라고 한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경외함입니다.
창세기 22:12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이제야 알았다. 아멘할 때입니까? 아닙니다. 행동할 때에입니다. 상황이 불리할 때에도 행동할 때입니다. 응답이 늦어져도 행동할 때입니다.
남녀가 결혼을 합니다. 그리고 결혼반지를 서로 나누워끼고 사랑을 맹세합니다. 불행하기 위하여 결혼반지를 끼웁니까? 아니면 서로 간섭하기 위하여 결혼 반지를 나누워 끼웁니까? 아닙니다.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서로 아끼고 보호하기 위하여 결혼반지를 끼웁니다. 그런데 그 반지를 버리는 경우는 어떤 경우입니다. 남편이 아내가 자신을 배반하였을 때에 나 외에 다른 사람과 교제할 때입니다. 신뢰가 무너지는 때에 결혼반지를 버리는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인생은 누구나 자신이 걸아가는 길이 있습니다 . 이 길속에 수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그 길을 정도로 걸어가야 합니다. 그 길을 믿음으로 걸아가야합니다. 믿음의 길은 바로 예배입니다. 주님과 동행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