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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1장 21절 지금 부활하셨습니다.

2015-04-10 12:54:57


요한복음 11장 21절 27절말씀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15년 4월 부활주일 설교

21.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22.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24.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27.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세상의 점쟁의 말을 믿고 사는 사람들은 참 바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합니다.

한보 그룹의 회장 정태수가 바로 그러한 인물이니다.

모든 결정을 점쟁이말듣고 추진했죠. 사옥 만들지말라는 점괘믿고 은마상가 꼭대기에 사무실하나만 두고 정태수가 할줄알았던거는 세무공무원으로 갈고닦은 남다른 로비규모뿐 이였습니다. 종국은 형무소에 콩밥을 먹게 되었습니다. 이병철이야 박제산 탄허스님 말을 참고 했는 말 있습니다.

외국에서는 막센티우스입니다. 막센티우스는 여자 주술사인 예언자를 찾아가 물었습니다. 만일 내가 지금 당장 티베르 강을 건너 로마로 향해서 진격해오고있는 콘스탄틴의 군대를 공격하면 그 결과가 어찌 되겠는가? 그러자 그 예언자는 이렇게 확답을 하였습니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일수록 자신 있게 말하는 법이거든요. 물론 대승입니다.” 그래서 막센티우스 황제는 그 점술사의 말을 믿고 나가서 콘스탄틴의 군대를 공격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전투에서 막텐티우스의 군대는 전멸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날 로마는 콘스탄틴의 수중으로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로마를 기독교국가로 만들었습니다.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부활에 대하여 예수님은 수차례나 예언하였습니다.

누가복음 24장 25절 – 27절에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눅24:25~27)

모세의 글에서 예수님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고하였습니다. (눅24:27)

모세의 글이 무엇입니까?

1) 창세기부터 시작합니다. 창세기 3장 15절에

2) 시편 22편 1.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리고 18.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시편 41편 9절의 말슴이 요한복음 13:18에서 예수님에 의하여 인용하셨습니다.

여러분 어는 종교가 이와 같은 예언이 있겠습니까?

불교나 유교나 도교, 마호멧의 어느 경전도 예언이 없습니다. 그도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어떻게 사람이 앞일을 미리 알고 예언할 수 있겠습니까? 한치 앞을 내다 보지 못하는 것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람교의 경전인 코란에 예언 하나를 찾아볼수 있다고 합니다. 그 예언으로 말하자면 너무나도 당연한 것으로 마호메트가 메카로 돌아올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고합니다. 그러나 이런 예언은 예수님께서 죽은지 사흘만에 부활할 것이라고 하신 예언이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돌아올수 있습니다.

미국의 예언가 진 딕슨 부인입니다. 케네디 대통령이 죽음도 예언하였습니다. 적중하였습니다. 스탈린 사후에 마렌코프가 후계자로 등장할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맞았습니다. 케네디의 재혼에 대하여 예언이 적중했습니다. 그래도 그는 예언의 100%가 아닙니다. 1960년대에 케네디가 대통령 선거에서 낙선할 것이라고 장담하며 예언하였다고합니다. 틀렸습니다. 1952년과 1956년과 1960년대에 걸쳐 미국에서 대통령선거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딕슨 부인은 미국에 있는 양대 정당의 대통령후보가 누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지만 모두 빗나갔습니다.

2. 본문 설명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가장 가난한 동내 지금 말하면 서울의 수색지역입니다. 제가 그곳에서 개척을 하였습니다. 예루살렘 변두리의 베다니 문둥촌에 살고 있는 나사로와 마르다와 마리아의 가정을 찾아가 부활을 말씀하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도 죽었다가 살아나셨지만 나사로도 우리를 살리시는 것을 보여주기 살아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요한복음 11장 45. 마리아에게 와서 예수의 하신 일을 본 많은 유대인이 저를 믿었으나

그런데 갑자기 나사로가 병이 들었습니다. 나사로는 자신들의 아버지요 그리고 가장과 같은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병들어 죽어가고 있는 이 가정에 소망이 없는 가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틀을 더 머물러 계시면서 나사로가 완전히 죽기를 기다렸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완전히 죽고 난 뒤에 예수님의 나사로를 깨우러 가지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1장 4. 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함이라 하시더라

가난한 가정에는 행복이 없습니까.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습니까? 그러지 않습니다. 연구결과에 의하면 방글라데시나 부탄 그리고 필리핀과 같은 나라의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행복지수보다 더 높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왜 그러합니까? 수입이 올라갈수록 행복한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수입이 어는 정도 올라가고 나면 이제는 그 수입으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행복은 어떻게 사는냐에 따라서 행복한 것입니다. 작은 것에 감사하고 그리고 작은 것에 만족하고 사는 삶입니다. 마치 사도 바울인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아는 신앙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2. 동일하신 하나님입니다.

오늘 본문에 우리에게 주고 하는 영적인 교훈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은 항상 동일하신 하나님입니다. 우리 예수님이 인간처럼 기분이 좋은면 들어주시고 기분이 나쁜면 일하지 않으신 하나님이라면 우리는 벌써 죽었을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언제나 동일한 분입니다.

1) 과거의 예수님입니다.

21.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22.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2) 현재의 예수님입니다.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3) 미래의 예수님입니다.

24.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신약성경 히브리서 13장 8절에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오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옛날의 이야기책이지, 옛날 사건인데 지금 나에게 그러한 기적들이 일어날까? 나에게도 부활이 있을까? 하는 의심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먼저 모세에게 나타나셨던 하나님을 살펴볼까요?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장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출애굽기 3:15)

모세는 아브라함의 시대도 지나가고 이삭의 시대도 지나가고 야곱의 시대도 지나고 그리고 많은 세대가 흘렀습니다. 모세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에 대하여 이삭의 하나님에 대하여 야곱의 하나님에 대하여 알고만있지 지식으로만 알고 있는 그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세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인 것처럼 너의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 능력이 지금이나 앞으로도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고 바로앞에 가라는 것입니다.

말라기 3장 6절을 보면 “나 여호와는 변역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사실을 요한복음 11장 21절부터 27절까지는 마르다의 오라버니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째가 되던 날, 예수님께서 베다니로 오셨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 앞에서 흐느껴 울면서 “주님께서 나흘 전에 오셨더라면 오라버니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는 과거의 예수님을 인정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생각을 고치기 위해 “네 오라버니가 다시 살리라”고 하셨으나 마르다가 이번에는 “예, 부활의 그날에 오라버니가 살 줄 압니다.”라고 말하며 미래의 예수님을 인정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르다가 과거의 예수님을 인정하고 미래의 예수님을 인정하면서도 현재의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자 예수님께서” 나는 지금 너의 오라비를 살릴 수 있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무덤을 향하여 “나사로야, 나오너라!”고 하시자 나사로가 수족을 베로 동인채로 무덤에서 걸어 나왔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마르다처럼 과거의 예수님, 미래의 예수님만 인정하고 현재의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으나 예수님께서는 지금 이 시간에도 역사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전의 모세는 자신의 힘으로 무엇을 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는 공주의 아들로서 애굽의 최고의 학문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많은 무술도 배웠을 것입니다. 지위도 있어 자신의 원하는 것은 모든 것을 할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 자신이 히브리인이라는 것을 알고 자신의 힘으로 히브리인를 구원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눈치를 보았던 것입니다.

[개역개정] 출애굽기 2:12 좌우를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죽여 모래 속에 감추니라

제가 부교역자 시절에 이러한 말을 들었습니다. 어는 분이 저에게 그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목사님 사람의 눈치를 보지 말고 하나님의 눈치를 보면서 살아야지요. 하나님앞에서 살아야지요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우리 성도들 가운데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신앙생활하고 있다면 바리세인과 같은 서기관과 같은 성도들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보고 계신 것을 보고 신앙생활해야합니다. 그 영원하신 하나님이 지금 내 앞에 계신다고 믿는 믿음으로 신앙생활해야합니다.

3. 부활의 잘못된 편견을 버려야합니다.

영국의 문화인들 가운데 미켈란제로를 좋아하고 로뎅의 작품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버나드쇼는 사람들을 초청하여 그것을 고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파티가 한참일때에 버나드쇼는 미켈란제로의 그림을 가지고 와서 이 그림은 로뎅의 그림인데 정말 훌륭한 예술작품이라고 소개하였습니다. 드런데 많은 사람들이 시큰둥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들에게 이 작품은 미켈란제로의 것인제 제가 잘못들고 나왔습니다. 하고 이야기 하였다고합니다.

사람의 편견을 가지고 있으면 3가지 현상들이 나타난다고합니다.

1) 오래 갑니다. 한사람의 이미지는 3초면 완성되는데 그 사람의 이미지가 20년이상을 간다고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부활하지 않았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으면 그것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2)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실을 외곡합니다. (정동영의원과 일본의 편견)

일본 공익법인 ‘신문통신조사회’가 최근 미국·프랑스·영국·태국·중국·한국 등 6개국 국민 6000명을 대상으로 일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한국과 나머지 국가들 사이에 커다란 격차가 나타났다. 일본에 대한 호감도는 물론, ‘일본인’ 하면 떠오르는 인물도 전혀 달랐다. 아사히·요미우리·마이니치신문 등은 29일 이 조사를 소개하면서 “한국은 일본에 대한 호감도가 눈에 띄게 낮았다”고 전했다. “일본에 호감이 간다”는 질문에 태국은 거의 모든 사람이 “매우 혹은 약간 그렇다”고 답했다(합계 94.1%). 프랑스는 열 명 중 여덟 명(76.3%), 미국과 영국은 열 명 중 일곱 명꼴로 “일본이 좋다”는 대답이 나왔다(미국 74.3%, 영국 65.9%). 반면 한국은 “일본에 호감이 간다”는 사람이 세 명 중 한 명에도 못 미쳤다(29.5%). 중국은 여론조사를 위탁받은 현지 회사가 이 문항의 조사를 거부해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왜 이런 차이가 벌어질까. “알고 있는 일본인을 한 사람만 대보라”는 질문에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1위를 차지한 것은 한국·중국·태국이 똑같았다. 그러나 2위부터는 달랐다. 중국과 태국은 일본 여가수 야마구치 모모에(56)와 아이돌 겸 에로 스타 아오이 소라(32)가 각각 차지했다. 한국은 ‘을사늑약’을 강요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1841~1909)가 2위였다. 중국 대중 역시 한국만큼 강렬하게 정치와 역사의 틀로 일본을 바라보진 않는다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다. 미국·프랑스·영국으로 가면 이런 현상이 더 두드러졌다. 세 나라 모두 1위는 히로히토 일왕입니다.

3) 편견을 가지고 있으면 사람을 미워합니다.

사랑의 교회의 교인은 2종류입니다. 목사님이 미운 사람과 목사님을 존경하는 사람들입니다. 목사님이 미우면 그의 자녀들과 사모님까지 미워합니다.

나다나엘이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나다나엘은 예수님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수 있는냐고 생각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북쪽의 사람 (마치 북한 사람들)과 남쪽의 사람들 환경이 다릅니다. 남쪽의 사람들은 서기관 바리세인 그리고 종교지도자들이 나오고 나라의 통치자가 많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북쪽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나다니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수 있느냐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나다나엘을 편견을 깨드렸습니다.

부활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22장 23.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그 날 예수께 와서 물어 이르되

24. 선생님이여 모세가 일렀으되 사람이 만일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에게 장가 들어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25. 우리 중에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장가 들었다가 죽어 상속자가 없으므로 그 아내를 그 동생에게 물려 주고

26. 그 둘째와 셋째로 일곱째까지 그렇게 하다가

27. 최후에 그 여자도 죽었나이다

28. 그런즉 그들이 다 그를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일곱 중의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30.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31. 죽은 자의 부활을 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

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33. 무리가 듣고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더라

이것이 가능한 이야기입니까? 세상에 이러한 일들이 있을 수 있습니까?

자신의 시동생 6명과 함께 살수 있다는 것입니까? 이것은 완전히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무엇을 위하여서 바로 부활이 없다고 하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만들어 놓은 이야기입니다. 비 합리적인 예화입니다. 그 비합리적인 예화의 창시자가 바로 이민희 (신천지 교주)인 것입니다.

오늘 부활주일을 드리는 성도님들은 도마처럼 의심하는 성도가 아니라 우리 모든 성도들은 예수님을 보이지 않지만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합니다.

1. [요 20: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2. [요 20: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성도님 가운데 아직도 부활을 의심하는 성도님이 있습니까?

성도님들 가운데 이직 여러분의 질병을 치료받을 것을 의심하고 계시는 분이 있습니까?

성도님 가운데 아직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믿고 있는 분이 있습니까? 의심은 절대로 기도의 응답이 없습니다. 믿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이 충만할 때에는 하나님이 정말 내 앞에서 살아 있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세상의 염려와 근심이 다가오면 하나님이 살아계시는가 하는 의심이 다가옵니다. 성경을 읽을 때에 뻥과 같은 생각이 들고 왜 성경을 이렇게 썼을까하는 생각까지도 듭니다. 특별히 성경을 맞추워 쓰다보니 그렇게 썻구나 하는 의심마져듭니다. 그러나 그러한 의심을 버릴 때에 여러분에게 부활의 기적, 치료의 기적, 문제의 해결의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썩지 않는 씨앗이 꽃을 피울 수 없듯이 자존심의 포기 없이는 생의 꽃봉오리를 맺을 수 없습니다. 분명 이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만큼 보인 것만 믿는 세상도 아니고 어리석은 공간이 아닙니다. 모름지기 우리는 낮과 밤을 동시에 보낼 수 없으며, 봄과 가을을 동시에 즐길 수 없습니다. 밤의 어둠을 지나야 아침의 찬란함이 찾아오고, 여름의 장마를 지나야 가을의 들판으로 나설 수 있습니다.

부디 우리 안에 있는 의심을 걷어내고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볼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세상의 개나리와 진달래 꽃은 저절로 피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권사님에게 물었습니다. 거것이 무엇입니까? 배추를 뽑아내고 싶은 마늘입니다. 마늘의 새싻들이 돗아오른 것은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에게 부활의 생명의 역사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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