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3장 빌라델비아 교회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 목사
2026년 3월
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1. 열린 문입니다.
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유대인의 회당은 기독교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장소였으나, 유대교 공동체가 기독교인을 이단으로 규정하면서 회당의 문이 닫히게 되었습니다. 이는 기독교인들이 더 이상 유대교의 틀 안에 머물 수 없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유대인들이 기독교인의 출입을 막기 위해 회당의 문을 닫았지만, 하나님께서는 복음 전파를 위한 영적인 문을 열어두었습니다. 12사도를 포함한 초기 기독교인들은 유대인들로부터 '나사렛 이단'으로 몰려 박해를 받았으며, 이는 단순한 종교적 갈등을 넘어 공동체에서의 추방과 생존의 위협을 동반한 역사적 사실이었습니다.
2. 다윗의 열쇠와 다윗의 집의 열쇠
1) 다윗의 집의 열쇠 (이사야 22:22)
유다 왕 히스기야 시대에 궁내대신(왕궁 맡은 자)이었던 엘리아김에게 부여된 권위입니다. '다윗의 집(왕실)' 전체를 관리하고 책임지는 관리자적 권위를 뜻합니다. 왕의 이름으로 창고를 열고 닫으며, 누가 왕 앞에 나갈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실질적인 행정권을 상징합니다.
열쇠를 어깨에 멘다는 것은 그만큼 책임이 무겁고 권위가 확고함을 시각적으로 보여줍니다.
2) 다윗의 열쇠 (요한계시록 3:7)
이사야서의 말씀을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용하여 재해석한 표현입니다. 한 나라의 왕실을 넘어 하나님의 나라의 온 세상의 영원한 주권과 절대적인 능력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에 주신 말씀으로, 유대인들이 회당의 문을 닫아 기독교인들을 박해할지라도, 진정한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예수님께서 열어주시는 구원의 문은 아무도 닫을 수 없다는 위로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생명의 문입니다. "양의 문"(요 10:7)이자 "길과 진리와 생명"(요 14:6)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 이름을 열린문교회라고 쓰지만 진정으로 열린문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유대인들이 회당 문을 닫고 박해할지라도, 교회는 예수님이 열어주신 구원의 문 안에서 복음으로 하나가 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열려있음이라는 말씀은 기도의 연속성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계속적으로 기도를 통하여 교회의 문을 여는 것입니다. 마치 새벽기도회 기도를 하는 것처럼 기도해야 합니다.
구약의 성막의 휘장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찢으신 것처럼 오늘도 하나님의 자녀들이 예수님의 피를 의지하여 그 문으로 들어가 기도하는 것입니다.
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작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말씀은 세상적으로 지위가 낮고, 경제적인 빈곤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가능합니다. 유대인 공동체로부터 축출당하고 로마 사회에서도 소수자로 밀려나, 박해를 막아낼 정치적 힘이나 재력이 전혀 없던 상태를 뜻합니다.
작은 능력이란 공동체의 규모가 매우 작다는 뜻입니다. 거대한 이교도 신전과 유대인 회당 사이에서 기독교 공동체는 눈에 띄지 않는 아주 작은 모임에 불과했습니다.
그들은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계 3:8)라고 기록됩니다. 즉, 능력이 작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인내하며 믿음을 지킨 영적 강인함을 보여줍니다.
평양의 장대현교회 주기철 목사님이 그러했습니다. 고문과 핍박 속에서도 일사각오로 신앙을 지켰으며 거대한 일본 국가 권력 앞에서 타협하지 않고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않고 믿음으로 살다가 믿음으로 순교하여 지금 대한민국에 이렇게 많은 교회들이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무명의 작은 교회' 예화 (거울 예화) 한 마을에 아주 작고 가난한 교회가 있었습니다. 주변에는 화려하고 큰 교회들이 많았지만, 이 교회 성도들은 매일 아침 모여 동네의 독거노인들을 돕고 함께 기도했습니다. 한 기자가 물었습니다. "이렇게 작은 교회에서 무슨 큰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목사님은 작은 거울 조각 하나를 꺼내며 대답했습니다.
"이 거울 조각은 스스로 빛을 낼 능력이 없습니다. 하지만 태양을 향해 비스듬히 서 있기만 하면, 어두운 구석까지 햇빛을 전달할 수 있지요. 우리의 능력은 작지만, 우리가 예수님(태양)만 바라보고 있다면 세상은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빛을 보게 됩니다."
우리 교회는 작은 교회입니다. 이곳에서 10명 남짓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많은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선교사님들을 돕고 있습니다. 매주 37만원으로 선교 헌금과 개인적으로 노엘이라는 친구에게 선교 헌금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작은 성도입니다. 경제적으로 능력이 없을지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 즉 기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살면 하나님이 칭찬하십니다.
1) 말씀을 지키고 2)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한 평생을 노인복지에 헌신하신 사회복지법인 성애원(성애노인요양원) 이서자 원장이 지난 19일 오후 9시10분 경 향년 80세로 별세하셨습니다. 장례식은 사회복지협의회장으로 치러지며, 빈소는 성애노인요양원(대전광역시 서구 관저동)에 마련되었고, 오는 23일 오전 10시 30분 구봉산 선영에 안치됩니다. 고 이 원장은 지난 51년 4월15일 현재의 성애노인요양원의 전신인 성애 양로원을 정식으로 개원하면서 좀 더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기독교의 아가페 정신에 입각한 무한한 사랑으로 당시 불모지였던 노인복지의 기반을 쌓았습니다.
또한 원장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지시하기보다는 평생을 ‘섬기는 자’로써 살아 사회복지의 모범이 되셨습니다.
외로운 노인들의 딸로, 그리고 친구로 생활했고 직접 2000여 노인들의 임종을 함께 한 한국 사회복지의 산증인이십니다.
한편 고 이 원장은 국민훈장 석류장, 대일비호 대상, 공산문화상, 충남문화시민상, 보건복지부장관상 수회, 충남도지사상 수회, 비헤른 봉사상, 대전 문화시민상, 세계평화인물상 수상자로 선정되는 등 많은 상과 업적을 남기셨습니다.
성애노인요양원(☎545-9874, 011-425-9874)으로 문의하면 됩니다.
9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사탄의 회당인 이유는 자신들은 선민이라고 주장하고 그리스도인들을 이단으로 규정하여 박해하고 핍박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을 핍박하고 방해하는 자들입니다.
계시록에서 배웠듯이 발람, 니골라당, 이세벨입니다. 교회 내부에서 괜찮다, 하면서 거짓 가르침으로 성도들을 타락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탄'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 '사탄(שָׂטָן)'에서 유래했으며, 핵심적인 의미는 '대적자' 또는 '반대하는 자'입니다.
역대상 21:1: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
히브리어 '사탄'은 법정 용어로 '고소하는 자'라는 뜻을 가집니다. 하나님 앞에서 신자들의 죄를 들춰내 비난하는 역할을 합니다.
요한계시록 12:10: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스가랴 3:1: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천사 앞에 섰고 사탄은 그의 오른쪽에 서서 그를 대적(고소)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요한복음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요한계시록 12:9: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대적자 (Adversary): 하나님의 뜻에 정면으로 맞서고,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존재를 뜻합니다.
고소자 / 참소자 (Accuser): 믿는 사람들을 하나님 앞에서 비난하고 정죄하여 실족하게 만드는 역할을 의미합니다.
이간질하는 자: 하나님과 사람 사이, 또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를 깨뜨리고 분열을 일으키는 존재입니다.
발람이나 이세벨의 교훈처럼 세상의 가치관이나 우상 숭배를 신앙과 교묘하게 섞는 행위는 영적 간음입니다. 이단들이 진리에 다른 불순물을 섞어 분별력을 마비시키는 행위가 바로 사탄이 사용하는 핵심 수법입니다.
"여호와께서 성읍을 향하여 외쳐 부르시나니 지혜는 주의 이름을 경외함이니라 너희는 매가 예비되었나니 그것을 정하신 이가 누구인지 들을지니라" (미가 6:9)
여호와의 이름속에 '구원의 능력'이 있습니다. 적그리스도들은 자기들의 이름을 높이지만, 성경은 오직 여호와의 이름에만 구원이 있다고 말합니다. 잠언 18:10: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
시편 23: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사울은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하지 않고 자신의 명예와 권력을 쫓았습니다. 결국 그는 회개(사과)하지 않고 끝까지 다윗을 대적하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역대상 10:13-14: "사울이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기 때문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넘겨 주셨더라"
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입니다.
인내의 말씀이란 무엇일까요?
'인내'를 뜻하는 헬라어 '휘포모네(ὑπομονή)'는 '아래(hypo)'와 '머물다(meno)'의 합성어입니다. 환난의 무거운 짐 아래서 도망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는 힘을 의미합니다.
누가복음 8:15: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데살로니가후서 3:5: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인내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환난을 피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환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지켜주심으로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공생애 기간동안에 시험을 받았지만 예수님은 시험을 말씀과 성령으로 이기셨습니다.
야고보서 1장 4절: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로마서 5장 3~4절: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누가복음 8장 15절 (씨 뿌리는 비유):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누가복음 21:19: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히브리서 12장 2절 (예수님의 인내):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인내하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베드로후서 3장 9절 (기다리시는 예수님):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인내하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독일 어느 대학에 라틴어를 가르치던 노 교수님이 계셨습니다. 교수님은 라틴어뿐만 아니라 구사하는 언어가 족히 10가지나 되었고, 그중에 히브리어가 유창하다는 사실을 모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루는 제자가 교수님에게 어떤 연유로 히브리어를 공부를 하게 되었는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교수님은 40여 년 전에 세계 대전 때 있었던 사연을 들려주었습니다.
교수님은 유대인 친구와 함께 기숙사에 살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에게는 이상한 버릇 하나가 있었다고 합니다. 바로 혼자서 중얼중얼 이상한 시를 외우는 것이었습니다.
아도나이 로이 로 에흐사르
히브리어로 낭송하는 시를 교수님이 알아들을 리 없었습니다. 그저 하나의 음악처럼 리듬을 타며 암송되던 그 시가 신기할 따름이었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암송하느냐고 물었더니 친구가 대답하기를, 바로 구약성경에 있는 다윗의 유명한 시, 시편 23편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이 시편을 히브리어로 외우고 나면 마음이 이상해져 공부가 잘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날부터 교수님도 친구에게 그 시를 배워서 암송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게 2년을 함께 보내는 동안 그들은 공부하며 지치고 힘들 때마다 서로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시편 23편을 히브리어로 암송하며 힘을 얻곤 하였습니다.
불행히도 유대인 박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나치의 핍박은 점점 거세졌고, 유대인 친구는 결국 학교를 그만두고 은신처에 숨어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친구로부터 급한 연락이 왔습니다. 지금 나치 비밀경찰들이 들이닥쳤으며 자신은 가스실로 끌려가게 될 것 같다는 충격적인 소식이었습니다.
교수님은 급히 자전거를 타고 친구에게 달려갔으나, 이미 너무 늦었습니다. 친구와 그 가족들이 나치의 트럭에 실려 어디론가 끌려가고 있었습니다.
교수님은 친구의 마지막 얼굴이라도 보기 위하여 미친 듯이 페달을 밟았습니다. 그렇게 눈물범벅이 되어 따라가고 있는데 트럭 옆에 가려진 포장을 들치자 친구가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친구는 싱긋 웃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소리 높여 무언가를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히브리어로)
죽음의 가스실로 끌려가는 친구가 미소 띤 얼굴로 외친 것은 바로 시편 23편이었습니다. 친구는 평소와 다름없이 평온한 모습으로 시편을 암송했습니다. 그렇게 친구는 교수님을 떠나갔습니다.
시간이 흘러 교수님도 군대에 징집되는 것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결국 러시아 지역으로 파병되었다가 포로로 잡혀 다른 전쟁포로들과 같이 총살 당할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젊은 포로들은 죽음의 대열에 끼어 걸으면서 하나 같이 공포에 울부짖었습니다. 오만가지 생각이 교차하는 그 때 교수님의 머릿속에 갑자기 가스실로 끌려가던 친구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그래 나도 친구처럼 웃으며 담담하게 죽음을 맞이해야지. 동료들이 하나, 둘 총탄에 쓰러지고 드디어 교수님의 차례가 다가왔습니다. 교수님은 그 자리에 서서 총을 겨눈 군인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습니다. 허락을 받은 교수님은 잠시 눈을 감고 사랑하는 친구가 죽음의 길을 떠나면서 외쳤던 시편 23편을 조용히 소리 내어 암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러자 연합군 장교가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목소리를 높여 교수님과 함께 시편 23편을 외웠던 것입니다. 그것도 히브리어로 말입니다. 어느새 교수님의 눈에도 유대인이었던 연합군 장교의 눈에서도 뜨거운 감동의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교수님은 목숨을 잃지 않고 무사히 풀려났습니다.
11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면류관은 그리스도인에게 상급과 축복입니다. 면류관은 단순한 명예를 넘어 구원과 영생에 대한 축복입니다. 충성스러운 삶에 대한 귀한 상급(생명의 면류관 등)을 상징합니다. 이 상급은 세상의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이 값진 것입니다.
면류관이 외부의 유혹, 환난, 박해, 그리고 개인의 믿음 약화나 배신 등으로 인해 얼마든지 빼앗길 수 있는 위험이 있음을 경고합니다.
여러분들에게 가장 와닿는 면류관은 무엇일까요?
1) 생명의 면류관: 시련을 참아내고 죽도록 충성한 자에게 주어지는 상급입니다. (야고보서 1:12, 요한계시록 2:10)
2) 의의 면류관: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운 자가 받습니다. (디모데후서 4:8)
3) 영광의 면류관: 맡겨진 양 무리를 성실히 돌본 목자(리더)들에게 약속된 시들지 않는 영광입니다. (베드로전서 5:4)
4) 썩지 않을 면류관: 세상의 일시적인 명예와 달리, 자신을 절제하며 영적인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승리자의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9:25)
5) 기쁨(자랑)의 면류관: 복음을 전하여 구원받게 한 영혼들을 상징하며, 전도자의 보람과 기쁨을 뜻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19, 빌립보서 4:1)
이 중 현재 가장 마음에 와닿는 것은 생명의 면류관입니다.
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 위에 기록하리라
1. 하나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리니
- 두 기둥 (야긴과 보아스)
솔로몬 성전 입구에 세워진 두 기둥의 이름에는 하나님의 통치 원리가 담겨 있습니다.
1) 야긴(Jachin): "그가 세우시리라"는 뜻으로, 모든 일의 주권과 기초가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합니다.
2) 보아스(Boaz): "그에게 능력이 있다"는 뜻으로, 교회를 지탱하고 승리케 하는 힘이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상징합니다.
신약에서는 갈라디아서 2:9에서 야고보, 게바(베드로), 요한을 '기둥'으로 묘사하듯 공동체를 떠받치고 지탱하는 핵심적인 일꾼 혹은 중요한 역할을 맡은 자를 뜻합니다.
성전의 기둥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서 가장 안전하고 영예로운 자리를 영원히 보장받는다"는 축복의 약속입니다.
첫째, 튼튼해야 합니다 (영적 실력과 내공).
기둥은 건물의 모든 하중을 견뎌야 합니다. 튼튼하지 못한 기둥은 겉보기에 화려해도 결국 건물을 무너뜨립니다. 고난과 시험의 무게를 견딜 수 있는 믿음의 맷집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반석 위에 집을 지으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말씀에 대한 순종으로 다져진 튼튼한 믿음을 뜻합니다.
세계적인 건축물 중 하나인 성 베드로 대성당의 기둥들은 엄청난 무게의 돔을 지탱하기 위해 속이 꽉 찬 거대한 돌로 만들어졌습니다. 우리 신앙도 겉모양만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말씀과 기도로 속사람이 꽉 차 있을 때 공동체의 무게를 짊어지는 기둥이 될 수 있습니다.
둘째, 곧아야 합니다 (진리와 정직).
기둥이 굽어 있으면 힘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비틀려 무너집니다.
의미: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기준에 맞춰진 정직과 순결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를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불렀습니다.
예화: 목수들이 집을 지을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다림줄'을 내려 기둥이 수직으로 곧게 섰는지 확인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이나 세상의 유행이 아니라,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다림줄에 비추어 내 삶을 매일 곧게 교정하는 자가 성전의 기둥이 됩니다.
셋째,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신실함과 변함없음).
기둥이 자리를 옮기거나 흔들리면 건물 전체가 위태로워집니다.
어떤 환경이나 감정의 변화에도 자리를 지키는 신실함을 뜻합니다.
미국의 한 교회에는 60년 동안 영아부실 입구에서 아이들을 맞이했던 '니나'라는 할머니 집사님이 있었습니다. 화려한 직함은 없었지만, 수십 년간 한자리를 변함없이 지킨 그녀를 사람들은 그 교회의 '보이지 않는 기둥'이라 불렀습니다. 기둥은 돌아다니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때 기둥으로서 가치를 증명합니다.
13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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