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3장 1절 새벽기도회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 목사

2026년 3월 25일

 

1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2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3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4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6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일곱 영은 완전성과 충만성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1절 하나님의 일곱 영

삼위일체와 동서남북을 의미하는 완전과 충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외국에서는 가장 좋아하는 숫자이기도 합니다.

 

이사야 11:2의 일곱 영은

1) 여호와의 영 2) 지혜의 영(깊은 진리), 총명의 영(분별), 모략의 영(올바른 길로 인도), 재능의 영(힘과 용기), 지식의 영(하나님을 아는 지식),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순종하는 영)

 

일곱 별은 교회의 지도자, 또는 교회 목회자를 의미합니다.

또는 수호천사를 의미한다는 학자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른손으로 붙잡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교회를 보호하고 통제하고 계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사데 교회의 시대적인 배경은

에베소는 초대교회, 서머나는 로마 황제의 수난 시대, 버가모는 로마가 국교로 인정하고 천주교의 시대, 두아디라 교회는 종교개혁의 시대, 사데 교회는 종교개혁 이후 1500-1700년입니다.

 

사데(Sardis)라는 지역은 지금의 ‘사르트(Sart)’ 지역입니다.

부유하고 군사적인 요충지로서 난공불락의 요새입니다. 해발 약 500m 고지대에 건설되었으며 삼면이 가파른 절벽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요새였습니다.

 

절대로 함락되지 않는다는 자만심에 빠져 경비를 소홀히 하다가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과 헬라의 안티오쿠스 3세에 의하여 함락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깨어 있으라”는 말씀으로 사데 교회에 교훈합니다.

 

 

2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사데 교회는 처음부터 죽은 교회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일깨어 깨어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큰 교회이든지 작은 교회이든 모두 깨어 있어야 합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아무리 크다고 하여도 촛대가 떠나면 위험합니다. 작은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자체가 없어질 수 있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새벽기도회를 하고 몇만 명씩 교회에 예배를 드려도 하나님의 영이 떠나면 교회가 교회다울 수 없습니다.

교회 내에서 가장 중요한 목사님, 장로님, 권사님, 안수집사님이 오랫동안 신앙생활하여도 하나님의 영이 떠나면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이미지는 몇 명의 집사님에 의하여 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 원복래 안수집사님의 이미지와 김재복 집사님의 이미지입니다. 이분들이 두 기둥과 같은 것입니다. 신앙이 투철한 집사님들이 두 기둥이 되어서 교회를 살리고 성도들을 살리는 것입니다.

 

 

사데교회는 전체로 볼 때에는 죽어가고 있습니다.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리 목사님 중에 수술을 하는데 전신마취를 하였지만 발을 얼마나 비볐든지 발뒤꿈치가 다 까질 정도로 까져 있어서 발을 붕대로 감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김명순 목사님)

 

여러분 수면 중에서 죽어 있는 것입니다. 위 내시경할 때에 완전히 죽은 것 같지만 간호사가 깨우면 또 일어나는 것입니다. 살아있지만 죽어 있는 상태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예전에는 열심히 처음 사랑을 가지고 예수님을 열심히 섬겼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 잠을 자고 신앙이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Wake up하고 잠을 깨우는 것입니다.

 

사데 교회의 태만을 깨우고 기도를 깨우는 것입니다.

기도를 하다 보면 졸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영적인 가사 상태(假死狀態)입니다. 옛날에 명성과 종교 활동으로 기도하는 것이 무뎌졌습니다. 깨우는 이유는 아직 남아 있는 불씨가 있기에 다시 살리기 위하여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기도뿐만 아니라 찬송도 마찬가지입니다. 옛날 우리 목사님들이 찬송을 타령으로 한다고 혼났습니다. 박수를 치려면 확실히 치라고 교구장이 가르쳐주었습니다. 입술만 벌리고 아리랑 박수를 친다고 하였습니다. 입술을 열고 큰 소리로 박수도 열심히 치는 것입니다. (이단 찬송하는 것을 보십시오)

 

때로 옛날 좋아했던 노래들이 있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할 일이 또 하나 있지

바람 부는 벌판에 서 있어도 나는 외롭지 않아

그러나 솔잎 하나 떨어지면 눈물 따라 흐르고

우리 타는 가슴 가슴마다 햇살은 다시 떠오르네

 

 

3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회개한 다음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깨어 있지 아니하면 도둑같이 이른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사데 교회에 말씀을 주실 때에 이곳에 역사적인 일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랜 신앙생활은 계급장이 아닙니다. 오랜 신앙심은 나의 자랑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 죽어 있으면 죽은 신앙입니다. 영적으로 기억상실증에 걸려서 옛날이야기만 하고 옛날의 사람들만 호칭하면 안 됩니다.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옛날 신앙을 말하면 지금 나의 신앙이 점점 퇴보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 아들과 함께 보았던 라이언 킹, 만화 영화입니다.

심바가 겪는 성장의 핵심 과정들입니다.

 

삼촌 스카의 계략으로 아버지 무파사를 잃고, 죄책감에 밀림을 떠납니다. 품바(멧돼지)와 티몬을 만나 ‘하쿠나 마타타’를 외치며 책임을 회피한 채 살아갑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영혼이 나타나 “Remember who you are(네가 누구인지 기억하라)”라는 명대사를 남기고, 심바는 결국 자신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왕국으로 돌아가 평화를 되찾습니다.

 

예수님이 언제 오실지 예고가 없습니다.

생각하지 않을 때에 오시겠다고 하였습니다. 정확한 날짜와 시각은 인간이 알 수 없습니다. 늘 깨어서 준비해야 합니다. 도둑이 언제 올지 알면 집 주인이 준비합니다. 성도도 주님이 언제 오실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준비해야 합니다. 기름을 준비해야 합니다.

 

회개하면 회개한 만큼 돌아가야 합니다. 메타노이아처럼 ‘메타노이아(Metanoia)’는 단순한 슬픈 감정이 아니라 방향 전환입니다. 그리스어 ‘메타(Meta, 변화/초월)’와 ‘노에오(Noeo, 마음/생각)’의 합성어입니다. ‘마음(생각)을 바꾼다’는 뜻이지만, 성경적 맥락에서는 ‘가던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향하는 전인격적인 변화’를 의미합니다.

 

지적으로, 지식적으로 회개하는 것입니다. 감정(Feeling)적으로 아파하고 슬퍼하는 것입니다. 의지적으로(Willing)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는 것입니다.

 

사데 교회에서 ‘옷을 더럽히지 않은 몇 명’처럼 살아야 합니다.

수술을 하고 난 뒤에 여전히 술 먹고, 담배 피우고, 음란하면 다시 병이 도지는 것입니다. 음식의 양이 줄어들고, 고기의 양도 줄이고 음식의 조절도 잘하여 건강을 유지하는 상태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4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6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사데 교회는 서머나 교회의 폴리갑, 버가모 교회의 안디바와 같은 인물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흰옷을 입은 몇 명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자신의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만 아는 믿음의 성도들입니다. 우리 교회의 성도들 중에 순교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평화로운 삶 속에서 자신의 옷을 더럽히지 않고 믿음으로 사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예수님만 아십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몇 명이 나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과연 그렇게 잘 살고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럼 예수님께서 나에게 많은 것으로 보상해 주실 것을 생각해보았습니다. 금도 주고 은도 주고, 명예도 주고 팔자를 필 만큼 주식도 주고 아파트도 주고 하는 그러한 생각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이름을 생명책에 결코 지우지 않겠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순복음교회에서 복 받으라고 설교하면 목사님의 설교가 저질이라고 생각하고 비평할 수 있습니다. 장로교회에서 복을 받으라고 생각하면 진리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느 교단에서 다른 교단의 목회자, 다른 목회자들을 비평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 요한계시록 3장 5절의 약속(“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을 바탕으로, 인생의 고난과 불합격이라는 절망 속에서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을 발견한 감동적인 간증의 내용으로 보입니다.

 

여러분 이것보다 더 절망의 순간이 없습니다. “내 이름이 없다” 전남대 수학과 합격자 확인 순간 우리 사모의 이름이 없었습니다. “세상에서의 탈락”과 “좌절”로 인하여 울고불고 하는 고통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진짜 이름은 이정연이 아니라 이정숙입니다.

 

떨어진 줄 알았는데 합격인 것입니다. 합격자 명단에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기는 자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들이 대학에 다닐 때에 416 과목에 F 학점을 받았습니다. 미국에서 ‘컴퓨터 사이언스 416’이라는 과목을 수강했는데, 거기서 F 학점을 받게 됩니다. 이는 세상적으로 볼 때 또 하나의 뼈아픈 실패였습니다. 이것이 그에게 큰 기회가 되었던 것입니다. 지금 회사에서 직장에서 귀하게 쓰이고 있는 과목입니다. 이것으로 인하여 돈을 벌게 되고 십일조를 많이 하게 되는 것입니다. 집도 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좌절이 아니라 그것을 통하여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면허증 떨어진 적 있습니까? 운전면허증 시험에 떨어지고 더 연습하여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도록 만드는 과정인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자신의 이름이 하늘나라 생명책에는 결코 지워지지 않게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을 깊이 체험하게 됩니다. “내 이름이 세상 명단에 없지만 하나님의 생명록 책에 기록되는 것이 더 귀하고 감사하는 일입니다.”를 강조하며 많은 이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 우리 교회의 교적부를 본 적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교적부를 보고 웃었습니다. 옛날 사진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에서는 우리 교회 성도, 그리고 우리 교회 다녔지만 다른 교회로 간 성도들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출애굽기 32장의 금송아지와 음란한 섬김 (영적 타락)에 대한 내용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법을 받는 동안, 백성들은 기다리지 못하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이것이 우리를 인도한 신”이라며 먹고 마시고 뛰어놀았습니다. 성경은 이를 영적인 음란함으로 규정합니다.

 

시편 2편 4절 말씀처럼, 인간들이 하나님을 반역하며 헛된 우상을 세우는 모습은 창조주께서 보시기에 실소(失笑)를 금치 못할 허망하고 한심한 일입니다.

 

모세의 위대한 지도력: “내 이름을 지워주소서” 하나님께서 타락한 백성을 멸하려 하실 때, 모세는 지도자로서 가장 위대한 결단을 내립니다. 백성의 이름 vs 자신의 이름 중에서 모세는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을 살려달라고 간구하며 하나님께 이렇게 매달립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생명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출애굽기 32:32)

 

모세는 타인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달라고 요청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예표하는 위대한 지도자의 모습입니다.

“내 이름이 하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천만다행이고 귀한 일인지 절감하게 됩니다. (설교 중에 울어야 합니다)

이름이 도적맞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페르시아의 점령 (기원전 546년): 사데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세워진 난공불락의 요새였습니다. 그러나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군대가 아무도 감시하지 않던 절벽의 틈새를 기어올라 성문을 열어버림으로써 허무하게 함락되었습니다.

 

안티오쿠스 대왕의 점령 (기원전 214년): 약 300년 후, 시리아의 안티오쿠스 3세도 똑같은 전술을 사용했습니다. 사데 사람들은 과거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방심하고 있었고, 한 용감한 군사가 절벽을 타고 올라가 성을 함락시켰습니다.

 

이처럼 사데는 역사적으로 “방심하다가 도둑처럼 침입한 적군에게 무너진 도시”라는 치욕스러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데 사람들의 이러한 역사적 트라우마를 인용하여, 영적으로 깨어 있지 않으면 과거의 비극이 영적으로 재현될 것임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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