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20장 3절 천년왕국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3. 무저갱에 던져 넣어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는데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
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폴 브랜드 박사는 한센병 의사로서 50년동안 봉사하였습니다. 20년을 인도에서, 30년을 미국에서 봉사하였습니다. 한센병은 피부와 말초신경이 썩어가는 것을 모르는 병입니다. 쥐들이 한센병 환자들의 손가락을 갈아먹어도 모르고 잠을 자는 모습을 보면서 이곳이 지옥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폴 브랜드 박사는 런던에 도착하여 호텔에서 쉬고 있는데 자신의 발뒤꿈치가 감각이 없는 것입니다. 예리한 것으로 찔러도 아픈 감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고통 가운데 ‘나는 한센병이 걸렸구나’ 하고 잠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 병원을 가기 위하여 다시 한번 자신의 발을 뾰족한 부분으로 찔러보았는데 너무 아파서 비명을 질렀다고합니다. 그리고 엎드려 하나님께 감사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고통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신경이 살아있음을 감사합니다. 아프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여러분 말세를 살아가는 성도들이 이와같이 죄에 대하여 감각이 없고, 말세를 말세로 모르고 살아가는 성도들에 주시는 영적인 교훈입니다.
손흥민이 프레미어리그에서 골을 넣었을 때에, 제가 응원하는 한화가 이겼을 때에 우리나라 축구가 다른 나라를 이겼을 때 잠깐 동영상을 보면서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영화나 드라마를 방송에서 다시 하게 될 때에 그 결말을 알고 볼때에는 얼마나 마음이 평안한지 모릅니다. 이처럼 마지막 결말을 알고 사는 사람과 모르는 사는 사람들은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마지막을 사는 성도들에게 어떤 환난이 오더라도 잘 이겨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단들이 자주 인용하고 있는 요한계시록중에서 천년왕국에 대하여 살펴보도록하겠습니다.
I. 먼저 요한계시록을 쓴 목적에 대하여 살펴보도록하겠습니다.
1.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난뒤에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교회와 세계선교를 맞기시고 난 뒤에 그들에게 행복만 찾아온 것이 아니라 핍박이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그 핍박을 이기기 위하여 토굴에서 빈들에서 원경경기자 사자 밥앞에서 그렇게 어려움 당하는 성도들에게 노예와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위로를 주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들은 새벽에 일어나서 하나님의 말씀인 요한계시록을 듣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일들을 다하고 난뒤에 저녁에 금요철야처럼 예배를 드리고 잠에 듭니다. 이렇게 어려움 삶을 사는 성도들의 위로의 말씀입니다. 천국소망
2. 요한계시록은 처음에는 정경으로 바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사도행전들 모든 성경이 정경으로 될 때에도 요한계시록은 정경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나머지 성경이 다 정경으로 된 뒤 한참 뒤에 요한 계시록은 정경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성경의 해석이 어렵고 모호하기 때문입니다.
3. 특별히 천주교에서 기독교로 독립하면서 종교개혁을 하게 되었습니다. 종교개혁자 루터와 장로교의 창시자 칼뱅이 요한계시록을 집필하지 않았습니다. 1) 어려움 2) 정경으로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선한 사마리야 비유처럼 강도당하여 버려진 신세가 되었습니다.
4. 요한계시록의 저자는 기독교회에서 전통적으로 요한은 요한복음, 요한1,2,3서 서신, 그리고 요한 계시록의 저자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성서 학자들은 요한 사도가 요한계시록을 작성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동명이인인 장로 요한이 작성하였다고 보는 신학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1. 전천년설 (문자적으로 해석함)
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글자 그대로 믿는 신앙입니다. 이 천년왕국은 일천년동안 주님과 왕노릇한다는 말씀을 그대로 믿는 신앙입니다. 요한계시록 19장에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이 할렐루야 하면서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어린양 혼인잔치가 행해지는 것입니다.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성도들의 옳은 행실의 옷을 입고 혼인자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이 천국으로 입성하는 장면입니다. 하늘에서는 하늘이 열리고 백마 탄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오시는 장면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과 함께 믿는 자들이 천년왕국을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사탄은 무저갱속에서 천년동안 결박당하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이 말씀은 초대교회 성도들과 그리고 교부들이 믿고 있습니다. 지금도 이 말씀을 믿는 사람들이 많고, 특별히 이 내용을 도용하여 이단들이 자신들이 만든 날짜를 만들고, 통일교의 천년왕국, 이만희 신천지들을 도용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온 세상에 코로나 바이스러스가 퍼저나가듯이 이단의 활동이 얼마나 왕성하게 퍼저나게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2. 후천전설 (상징적으로 해석)
요한계시록에서 천년왕국은 상징적인 숫자로 보는 것입니다. 천년왕국이 있은 후에 예수님의 재림이 있다고 믿는 신학입니다.
전천년설은 세상이 점점 나빠지고 점점 죄가 관영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오셔서 심판해야한다고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후천년설은 세상이 예수님 때문에 점점 좋아지고있다고 믿는 신학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이 들어가는 곳에 행복한 나라가 건설되고 예수님을 잘 믿는 나라들이 발전하고 복되게 살아간다고 믿는 신학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난 뒤에 부활하시고 사탄의 머리를 완전 밟아 치명상을 입혔으므로 복음을 받은 사람들은 밝고 환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 신앙입니다. 이 주장을 한 사람들은 어거스틴과 칼뱅, 루터입니다.
3. 무천전설
1) 천년왕국은 정확한 숫자가 아니고 뿐만 아니라 천년왕국 자체가 없다고 믿는 무천년설입니다. 예수님의 초림부터 예수님이 다시오는 날,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심판의 날이 다가와 주님이 재림한다고 믿는 신앙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14만 4천명도 상징적인 숫자이고 666도 상징적인 숫자로 보고 있습니다.
2) 천년왕국을 없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눈이 보이는 천년왕국이 없다고 믿는 신학자들입니다. 예수님의 초림, 예수님 이땅에 오신 시간까지를 천년으로 보는 신학자들입니다. 존 웨슬레, 어거스틴이 이에 해당됩니다.
III. 믿는 성도들은 어떤 견해를 선택할 것인가
목사님의 견해, 저는 전천년설이나 후천년설이나 무천년설이나 모든 견해에 공감이 갑니다. 다 신학자들이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무천년설입니다.
그 이유로는 전천설의 경우 많은 교부신학자들이나 세대주의자들이 문자적으로 전천년설을 받아들임으로 이단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제가 1992년에 신학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많은 한국 신학생들이 이장림 책을 읽고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그 날자에 마음에 준비를 한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1992년 10월 28일은 성원순복음교회도 많은 성도들이 이곳 성미산에 올라가서 주님을 기다리고 이단에 빠졌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2) 후천년설의 경우 세상이 좋아지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할 것은 인간은 인간입니다. 죄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죄인일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여전히 이기적으로 살고, 예수님을 믿어도 여전히 거짓말하고 다른 사람들을 속이고 살아갑니다. 특별히 중세 시대에는 예수님을 잘 믿는 나라를 중심으로 십자가군전쟁과 세계 1차대전과 2차 세계대전이 벌어졌습니다. 세상은 좋아지나 예수님이 다스리지 않으면 여전히 죄인의 세상입니다.
IV. 천년왕국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영적인 말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고통이 없고 환난이 없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환난이 있고 고통이 있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을 작성할 당시의 상황도 예수님을 믿는 것은 바로 고통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곳 곳에서 환난을 잘 이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요한복음 16장 33절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2) 이기는 자에 대하여
요한계시록 2장 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요한계시록 2장 11.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1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요한계시록 3장 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이기는 자에게 대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이기는 자가 이만희하라고 하여 자신이 제림주라고 가르치는 신천지의 교리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이기는 자 신천지가 코로나 바이러스 기간에 그 비리가 들어나고 몇칠전에 휠체어를 타고 교도소문을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곳 요한계시록의 이기는 자는 환난을 통과한 우리 성도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기앞에 놓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물질적인 어려움앞에 놓였습니다. 교회는 어려운 상황속에 놓였습니다. 예배가 정상적으로 들려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있는 성도들이 조금씩 믿음을 잃고있습니다. 이러한 상황가운데에 우리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드려워하여 피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주님을 의지해야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앞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장면을 생각하여 보아야합니다.
출애굽기 14장 13.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14.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1) 가만히 있으라고 하였습니다.
위기를 만난 사람들의 특징은 조급합니다. 서두루기 시작하다보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저는 지난 주일 너무 서둘러서 자신을 책망한 적이 있습니다. 자신을 바보라고 하였습니다. 성전청소도 해야하고, 그리고 2층청소도 해야하고, 그리고 방송도 준비하여하고 여러 가지 준비할 사항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 저것하다가 정말 중요한 기도로 준비하지 못한 것을 크게 후회하였습니다. 그리고 카메라를 녹음하지 못하였습니다.
바쁠 忙 망(마음심에 총 6획입니다) 마음이 망하는 것입니다. 조금 쉬운 의미로 마음이 갈라져서, 마음이 바빠서 망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의미의 한자어가 있습니다. 望 바라다, 원하다, 소망하다의 뜻입니다. 주님을 앙망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바라는 것입니다. 그럼 실수하지 않습니다. 가만히 있어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서두르면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낳게 되듯이 우리가 서둘려 하나님 제처놓고 일하면 꼭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서둘러 덤벼들면 꼭 실수하게 되는 것입니다.
2)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 힘으로 애굽의 군대를 이길 수 있겠는가! 너희 힘으로 홍해를 건널수 있는가 보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너희가 가만히 있으면 하나님이 일을 이루시고 그것을 지어 성취하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 요한계시록에 주는 영적인 교훈은 마음에 문을 열고 주님을 모시라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아주 가끔식, 일년에 한두번씩 꼭 문서 파일이 깨져서 별표가 되거나 복구가 불가능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복구 프로그램이 있으면 누가 이렇게 된 것을 볼수 할 수 있다면 참좋겠다는 생각을 들었습니다. 우리 평강이가 그러한 프로그램을 발견했으면 좋겠습니다.
술중독이 된 사람들을 복구하고, 마약하고 있는 사람들을 복구하고, 놀음하는 사람들을 복구되어 주님을 잘 믿는 사람으로 바꾸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다락방에서 최후의 만찬을 하고 난뒤에 가룟유다는 대제사장에게 갔고, 예수님의 제자들은 기도하러 감람산에 가기전에 모든 제자들이 자신을 배반할 것을 말씀합니다. 베드로는 분개하여 다른 사람들은 다 버린다고 할찌라도 나는 주님을 따라가겠습니다. 마태복음 26장에 베드로보시고 네가 나를 닭 울기전에 3번 부인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룟유다는 예수님이 어디 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제자들과 함께 자주 그곳에 올라가서 기도하였기 때문에 예수님의 제자보다 3배 많은 군인들을 이끌고 예수님을 잡으러 왔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베드로는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칼을 뻬어 말고의 귀를 잘라버렸습니다. 예수님은 말고의 귀를 다시 고처주셨고 예수님은 잡히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요한과 베드로는 안전거리를 유지하면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장담하였던 베드로는 3번 여종에과 비자에게 부인하고 맹세하고 저주까지 하면서 예수님을 부인하게 되었고 그리고 닭이 울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후회하게 되었고 그리고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가룟유다도 뉘우치기는 하였지만 주님께로 돌아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카일 아이들먼 목사님은 은혜가 더 크다의 책에서 이렇게 자신을 솔찍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신과 아내가 부부싸움을 하고 난뒤에 주먹으로 벽을 처서 구멍을 내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숨기기 위하여 큰 거울을 그곳에 놓았는데 그만 설교전날 그 거울이 깨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묵상하다가고 난뒤에 자신의 아내에게 이 말을 성도들에게 하여야겠다고 승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뉘우치게 되었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4명이상의 남성 성도가 목사님에게 다가와서 ‘목사님 저희 집 침실에도 구멍있어요’하고 말하고 가시는 성도들을 보게되었습니다.
말세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다시 주님께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가룟유다가 아니 베드로의 삶처럼 주님를 다시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다시 사명을 받아 주의 일을 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럼 가정이 치유되고, 나라와 민족이 치유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