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장 12절 새벽기도회
새벽기도회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26년 3월 3일
12 몸을 돌이켜 나에게 말한 음성을 알아 보려고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13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14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15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16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17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18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19 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20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예수님의 제자들은 다 순교하였지만 오직 요한만은 순교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았습니다. 요한은 사명이 있기 때문에 순교하지 않았습니다.
요한은 끓는 기름 가마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요한계시록을 작성하기 위함입니다.
교회사 초기 저술가인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의 기록에 따르면, 요한은 로마의 도미티아누스 황제 박해 시절 로마로 압송되어 끓는 기름 가마에 던져지는 형벌을 받았다고 전해집니다. 그를 죽이는 대신 밧모(Patmos) 섬으로 유배를 보냈습니다. 바로 이 유배지에서 인류 역사의 마지막을 예언한 ‘요한계시록’이 탄생하게 됩니다.
다른 사도들이 피를 흘려 복음의 진실성을 증명(순교)했다면, 요한은 가장 오래 살아남아 예수님의 공생애를 직접 목격한 마지막 증인으로서 교회의 기틀을 잡는 역할을 했습니다.
요한복음 21장에는 베드로가 요한의 미래를 묻자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요 21:22)
예수님의 모습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실제 모습과 요한이 바라보는 모습은 달랐습니다. 요한은 늘 예수님의 곁에 있었고 예수님의 곁에 누웠다고 하였습니다.
요한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워” 있었습니다. 이는 당시 유대인들의 식사 방식(비스듬히 기대어 앉는 형태)이기도 했지만, 요한이 예수님의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정서적·물리적 안식을 누렸음을 상징합니다 요한은 자신을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라고 부르며, 지상에서의 예수님을 사랑이 많으신 목자이자 형님 같은 존재로 경험했습니다.
요한복음 13:23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가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
요한복음 13:25 “그가 예수의 가슴에 그대로 의지하여 말하되 주여 누구니이까”
요한복음 21:20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여 주를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더라”
3년 반을 함께 생활하다가 이제 천상에 계시는 주님은 영광의 주님인 것입니다. 과거의 예수님이 아닙니다. 두려움과 위엄이 있는 예수님입니다.
요한계시록 1장에 기록된 예수님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었으며, 머리털은 양털같이 희고 눈은 불꽃 같았습니다. 목소리는 많은 물소리와 같고 입에서는 좌우에 날 선 검이 나오는 압도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얼마나 영광스러우면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었습니다 (계 1:17).
12 몸을 돌이켜 나에게 말한 음성을 알아 보려고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13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요한은 주님의 음성을 듣고 몸을 돌이켜 주님을 보았는데 첫번째 예수님의 모습은 일곱 금 촛대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금 촛대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20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금촛대는 바로 교회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금촛대 사이를 걷고 있는 것입니다.
- 왜 교회를 촛대로 비유하셨을까요?
예수님은 세상을 비추는 참 빛으로 오셨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고 오히려 거부했습니다.
요한복음 1:9-11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하지만 그 어둠 속에서도 빛을 받아들이는 이들이 있었고, 그들에게는 놀라운 신분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금촛대인 교회는 촛대의 빛을 발하기 위하여 자신은 녹이 헌신해야합니다.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빛을 보시고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빛되시는 예수님이 이땅에 오셨을 때에 십자가를 죽는 고통가운데 우리를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녹아지고 헌신하는 사명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개역개정 마태복음 5장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참고, 이단에 대하여 요한일서에서 찾기)
13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예수님은 촛대 사이를 다니시는 모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이 교회를 통치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시대의 문제 박영선목사님, 김문호목사님)
요한의 그의 요한복음에서 인자를 예수님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의 인자 (Son of Man)은 겸손과 희생양으로 표현하며 대속의 십자가를 지러 오신 예수님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요 3:14),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요 6:53).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라고 역설적으로 표현하십니다 (요 12:23).
심판주로 오신 예수님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계 1:13-15), 만왕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입니다. 구름 위에 앉아 예리한 낫을 휘둘러 세상을 심판(추수)하시는 권능의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계 14:14).
14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머리와 털은 희기가 흰 양털과 같고, 눈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순결성 깨끗함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흠 없는 순결성과 거룩한 깨끗함을 상징합니다. ‘흰 머리’는 다음과 같은 깊은 의미를 더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다니엘 7장 9절에 등장하는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하나님)’의 모습과 일치합니다. 이는 인자 예수님이 곧 영원 전부터 계신 하나님이심을 드러냅니다.
‘흰 양털’과 ‘눈’은 성경에서 죄가 전혀 없는 상태를 상징할 때 쓰입니다. 이사야 1:18의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는 말씀처럼, 스스로 순결하실 뿐 아니라 우리를 깨끗게 하시는 권능을 상징합니다.
눈의 모습을 불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불꽃과 같다. 모든 것을 다 감찰하고 계신다. 우리의 모든 행동을 알고 계십니다.
단순히 ‘본다’는 수준을 넘어 ‘불꽃’으로 묘사된 데에는 몇 가지 깊은 영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꿰뚫어 보시는 예수님입니다. 어둠을 밝히고 사물의 본질을 드러냅니다. 예수님의 눈이 불꽃 같다는 것은 인간의 겉모습이나 가식에 속지 않으시고, 우리의 마음 중심과 깊은 동기까지 낱낱이 꿰뚫어 보신다는 뜻입니다.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 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히브리서 4:13)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간음하다 잡힌 여인이나 사마리아 여인의 숨겨진 과거와 아픔을 이미 다 알고 계셨던 분으로 나타납니다. 또한 다윗왕의 간음과 살인을 알고 계시고 (사무엘하 11장), 가룟 유다의 탐욕과 배신 (마태복음 26장)을 알고 계시고,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거짓말과 외식 (사도행전 5장)를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셉처럼 깨끗하게 살아야합니다. 다윗처럼 회개하면서 살아야합니다.
15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예수님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성경에서 주석 (놋)은 단단하고 강한 금속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풀무불에 단련되었다는 것은 어떤 시련이나 방해에도 굴하지 않는 예수님의 불변성과 확고한 의지를 상징합니다. 세상의 어떤 권력도 그분의 발걸음을 막을 수 없다는 뜻이지요.
주님의 발은 승리와 정복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어둠과 죄악의 세상을 예수님의 발이 닫는 곳마다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승리함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목소리
사도 요한은 3가지로 정리했습니다.
장엄한 물소리 같은 목소리입니다. 거대한 나이가라 폭포가 떨어지듯 온 세상에 복음을 소리를 떨어짐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으로 풍랑이 잔잔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목소리는 거짓이 없고 인간의 잔꾀가 통하지 않는 주님의 위엄있는 목소리입니다.
에스겔 43:2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때 그 음성을 “많은 물 소리”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둘째로 온 세상에 울려 퍼지는 복음과 심판의 목소리입니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흘러가듯 복음은 낮고 천한 곳으로 흘러가지만 모든 낮은 곳이 체워지면 노아의 때처럼 모든 면을 물로 체워지는 것입니다. 온 세상의 심판의 목소리가 될 것입니다. 피할 곳 없는 두려운 심판의 선언입니다.
셋째로 예수님의 목소리는 세미한 음성과 같은 것입니다. 선한 목자는 세미한 음성으로 다가옵니다. *(요한복음 10장 3절) 양을 부르듯 주님이 사랑하는 자신의 양들을 부를 때에 조용히 부드럽게 부르시며 쉬만한 물가로 인도하십니다.
16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예수님의 오른손에 일곱별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 20절에 직접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지도자들 주의 종들을 붙들고 있습니다.
주의 종들과 성도들을 주님이 직접 오른손으로 붙잡고 있습니다.
오른손은 성경에서 능력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보호하심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손에서 누가 패았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8장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또한 주님의 통제 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누구도 제멋대로 움직이 않고 주님이 직접적으로 그 길을 인도하십니다.
요한복음 10장 28절”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이사야 41:10 (개역개정)”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사야에서 “너를 붙들겠다”고 약속하신 그 ‘의로운 오른손’이, 요한계시록에서는 실제로 교회의 사자들(별)을 ‘꽉 붙잡고(Hold fast)’ 계신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욥기 1장 10절은 사탄조차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하나님의 완벽한 보호를 ‘울타리’라는 아름다운 비유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르심 때문이 아니니이까…”
‘울타리’와 ‘오른손’은 사탄이 뚫을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욥을 공격하고 싶어 안달이 났지만, 하나님이 치신 울타리 때문에 손을 댈 수 없다고 불평합니다. 이는 우리가 나눈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계신” 주님의 권능과 맞닿아 있습니다. 주님의 손 안에 있는 자는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합니다 (요한일서 5:18).
요한계시록 1장 16절의 세상을 심판하는 검은 즉,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이말씀은 히브리서 4:12의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은 검은 지금도 살아있습니다. 주님은 물리적인 칼을 휘두르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말씀’만으로 만물을 굴복시키고 심판하십니다. 세상의 전쟁은 총과 미사일과 탱크로 전쟁하지만 예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심판하십니다.
17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요한은 예수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던 요한의 모습과 대조적인 것입니다. 친밀함이 경외함을 바뀌게 된 것입니다. 해같은 얼굴, 불꽃 같은 눈, 주석같은 발, 그 앞에 압도 되어서 죽은자와 같은 모습으로 엎드려진 것입니다.
어느 인간이 이와 같은 장면에 본능적으로 살아남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다니엘과 이사야의 경험: 구약의 선지자들도 하나님의 환상을 보았을 때 “내 몸에 힘이 빠졌고 나의 아름다운 빛이 변하여 썩은 듯하였다”(다니엘 10:8)고 고백했습니다.
다니엘은 세 세레 동안 금식하며 기도하던 중, 세마포 옷을 입고 순금 띠를 띤 ‘한 사람'(인자 환상)을 대면합니다. “그러므로 나만 홀로 있어서 이 큰 환상을 볼 때에 내 몸에 힘이 빠졌고 나의 아름다운 빛이 변하여 썩은 듯하였고 나의 힘이 다 없어졌으나”
다니엘 8장 27. 이에 나 다니엘이 지쳐서 여러 날 앓다가 일어나서 왕의 일을 보았느니라 내가 그 환상으로 말미암아 놀랐고 그 뜻을 깨닫는 사람도 없었느니라
이사야는 성전에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신 주님을 뵙고, 스랍들이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외치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대한성서공회 이사야 6장)
죽은 것 같은 요한을 위로해주십니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계 1:17)
